|
지난여름 이탈리아 관광 여행기 마지막날을 올렸는데
본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내리겠습니다.
로마 시내는 대형 버스 운행이 어려워 왜건형의 차량 세대에 나누어 타고 다니기로 하는데 이것도 옵션이라 1인당 60유로, 발아픈 나는 오히려 잘되었다 생각하는데 결론은 발 안아픈 사람도 소형 차로 관광 하는게 옳았다. 벤즈회사 차라 여행사에서는 로마 벤즈투어라 한다.
콜로세움(멀리 잔디밭도 지나 전체가 보이게 찍었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Colosseum)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콜로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과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피지배계층의 관점이나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은 경기를 보며 일체감을 느끼고 그 내용을 즐기는 하나의 공공 오락시설이었다. 때로는 로마나 귀족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었다.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 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기독교를 공인한 황제) 개선문인데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 가고 싶어했으나 옮기면 망가진대서 못 가져 가고 파리에 개선문을 만들었다나.
콜로세움과 개선문이 가까이 있다. 후대에 콜로세움의 돌들을 자기네 집을 지을때 뜯어가 석재로 사용하여 황폐해 졌단다.
표사서 내부도 볼 수 있으나 시간을 안 주는구나.
아쉬운 대로 우리부부는 콜로세움 외부를 한바퀴 돌며 틈으로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어렸을때 시골에 온 서커스 천막 들여다 보던 실력이 60여년후 발휘되는건가.ㅋㅋ. 500m가 넘는 콜로세움을 절며 한바퀴 돌아본 사람은 우리 일행중엔 우리 부부 뿐이었으니 늙은이의 극성이었나.
콜로세움 내부(펌)
검투사가 같이 사진 같이 찍는데 4유로라며 찍으란다. 카메라를 옆으로, 세로로 찍더니 20유로 달라네. 4유로라 했잖아 하며 지우고 한푼도 안준다며 지우려 하니 그냥 4유로 달란다. 나중에 보니 그 짧은 동안에 다섯 컷이나 찍었다 그래서 20유로 달랬구나.
이쪽 면은 4층까지 비교적 손상이 덜 하다.
몰타 공화국 대사관 열쇠구멍으로 내다보면 대사관 정원과, 바티칸성당의 돔과, 이탈리아의 맑은 하늘이 천국처럼 느껴져 '천국의열쇠'라 한단다.
여기서 부터 위의 벤츠 밴을 타고 로마 관광을 한다. 로마시내는 복잡하고 길은 좁아서 관광버스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많다. 벤츠기사들은 일정교육을 받아야 하며 나름대로 긍지가 대단하다. 관광지에 도착하면, 먼저 내려 문을 열어주면서 관광객을 내리게 한다. 안전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잘하는 것이리라.... 우리차에는 세부부가 탔는데, 일행중의 김사장이 나를 배려하느라, 둘째 줄에 앉은 처옆에 나를 앉으라 하니 기사는 다리가 불편한 나를 운전석 옆, 앞좌석에 앉으라고 강한 몸짓을 한다. 기원전 753년 4월21일(우리는 단군년대는 쓰지만 월,일은 나는 모른다.) 로물루스(Romulus)가 팔라티노언덕에서 로마를 개국했단다.
팔라티노 언덕(Monte Palatino)
로마는 일곱개의 언덕으로 되어있다는데 팔라티노 언덕(Monte Palatino)에서 개국이 되어 번성했고 귀족들의 집 광장 건물이 많았는데 지금은 부서져 성벽 같다.
대전차 경기장
다른이들 사진에는 푸른 초원이던데 8월 말일에는 누릇누릇하다. 영화 벤허를 여기서 촬영했는지는 모르지만 로마시대에 그런 용도로 사용했으리라. 요즈음은 20여만명 이상을 수용할수 있어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리고 경기장아래 유물은 있으나 발굴은 하지않는단다.
진실의 입
로마 중심부의 코스메딘 산타마리아델라교회 입구 벽면에 있는 대리석 가면.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축시장의 하수도 뚜껑이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이드는 후세에 진실의 입으로 불리며 손을 넣고 말하게 하여 바른말을 하여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정적들의 손을 뒤에 숨어서 잘랐단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본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단다.
코스메딘 산타마리아델라교회 내부
포로로마노(Foro Romano)
기원전 6세기무렵부터 293년에 걸쳐 로마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하고 수도 기능이 라벤나로 옮겨지면서 이민족의 약탈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서로마가 멸망한 뒤부터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묻혀 버렸다.
19세기부터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유적들은 대부분 제정 시대 이후의 것이다. 포로 로마노는 베네치아 광장과 콜로세움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로마의 중심부인 포룸 로마눔의 유적지이다.
고대 로마 시절 대부분의 도시에는 스톤골룸(영어 포럼의 어원)이라고 불리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광장이 있었는데, 이 포로 로마노는 수도 로마에 개설된 최초의 포룸이며,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원로원 의사당과 신전 등 공공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동쪽으로 가면 콜로세움에, 서쪽으로 가면 테베레 강, 남쪽으로 가면 팔라티노 언덕, 북쪽으로 가면 캄피돌리오 언덕이 있다.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니 중복되는구나. 내려가 돌아다니며 보아야 하는데...
캄피돌리오 광장
캄피돌리오 광장은 "바오로 3세" 때인1536년 미켈란젤로의 설계로 만들었다. 그의 사후 쟈코모 델라 뽀르따와 지롤라모 라이날디가 완성했다.
광장의 독립된 세 건물은 "ㄷ"자로 세나토리오궁,누오보궁,콘세르바토리오궁의 정면은 완벽한 대칭의 조화를 이루고 건물위 난간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있다. 좌우 건물이 마주보는 간격은 투시효과(透視效果)의 조화를 위하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할수록 넓어지게 만들었다. 가운데 건물은 시청사이고, 카피톨리노 박물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퍼온 사진)
원룸,하숙집
철거하자는 말 까지 나온 건물(이유는 흰색에 예술성이 없다나)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고대 로마시대에 전차경기장이었기에 좁고 길게 뻗은 형태로 되어 있다. 1세기의 로마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도미티아누스 스타디움(Stadium of Domitianus)의 관람석 자리에 건설되었다. 건축물의 대표적 양식은 바로크 양식으로 넵튠분수,모로분수,피우미분수(Fontana Dei Fiumi)와 주변 건물들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 피우미분수에 조각되어 있는 4명의 거인은 갠지스강,나일강,도나우강,라플라타강을 나타낸다. 광장 남쪽의 모로분수는 돌고래와 싸우는 이디오피아인의 모습을, 북쪽의 넵튠분수는 넵튠이 문어와 싸우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오벨리스크(돌로만든 긴 기둥 같은 것)는 이집트에서 빼앗아 온것일 게다.
넵튠이 문어와 싸우고 있는 모습
판테온 신전(Pantheon 북측 입구 사진)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져 만들어 졌다.
아그리파 집정관에 의해 처음 건축된 신전은 대화재로 소실되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를 재건하기 위한 계획으로 다시 건축되었다. 당시 판테온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전하는 바 없으나 아그리파 집정관 때 처음 만들어진 건축의 흔적으로는 석판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한다. 북측 입구에 코린트식8주 전주식(前柱式)의 돌출랑(突出廊)이 있으며, 기둥 높이는 12.5m이다. 내부에는 7개의 벽감(壁龕:神像을 안치한 작은 방)이 설치되어, 제우스,아폴론,아르테미스,헤르메스(에르쿠리우스) 등 로마의 중요한 신들이 모셔졌다. 채광은 돔 정상에 설치된 지름 9m의 천창뿐이며, 벽면에는 창문이 없고, 거대한 본당의 외형에는 전혀 장식이 없다. 그 수적 비례의 미와 강대한 내부 공감의 창조라는 당시의 경이적인 토목기술로서 서양건축사상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브루넬레스키가 판테온의 돔 건축 방식을 채용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건축하여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인정받았다. 중세를 거치면서 건축물이 훼손되는 것을 그나마 막을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판테온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는데 라파엘로, 카라치, 빅토리오 임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도 판테온에 묻혀 있다.
동남쪽에서 본 판테온 신전
천정에 채광용으로 뚫린 9m의 구멍
우리나라 절은 촛불을 모두 켜두는데
어미새가 모이를 먹이는 조각 같다.(어느 부위에서 찍은지 모르겠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17세기에 교황청 스페인 대사가 이곳에 본부를 두면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졌으며 이탈리아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계단을 올라가면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Chiesa della Trinita dei Monti)가 있다.
17세기에 트리니타 데이 몬티의 프랑스인 주민들이 교회와 스페인 광장을 계단으로 연결시키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후로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이스크림을 흘려 계단을 더럽혀 이제는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못 먹게 한단다.
광장 중앙에는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바르카치아 분수가 있다. 물에 반쯤 잠겨 있는 물이 새는 배는 베르니니가 만든 것이다. 바르카치아는 '쓸모 없는 오래된 배'를 의미한다. 티볼리의 빌라 데스테에도 배 분수가 있었는데.
꼭대기는 성모상이다.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
로마의 분수중에 가장 유명하다. G.L.베르니니의 원안(原案)에 따랐다고 하는 N.살비 설계의 대표작으로, 1732년 착수하여 살비 사후인 1762년에 완성하였다.
거대한 1쌍의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해신(海神)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상(像)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 있으며, 거암거석(巨岩巨石)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룬다. 가이드는 분수를 등지고 오른손의 동전을 왼쪽 어께넘어로 분수에 던지란다
한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고,두번이면 사랑이 이루어지고,세번은 헤어진다는구나. 하루에 3천유로정도, 건져 문화재 보수등에 쓰인다네요.
트레비 분수 앞의 성당
점심후 차 기다리는 동안 무심코 쳐다본 처가 한마디 한다. '무거운 집을 여자가 받치고 있게 하다니' (내 속 생각에 남자는 가슴이 안예뻐서 겠지...후후후)
로마시내 관광 오후 (2011.8.31.)
오후 일정에 들어가며먼저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는데 현지 이종경 가이드는 우리나라 아이스크림은 영하 24도로 얼리는데 이태리는 영하 16도로 얼리므로 더 부드럽단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밖에서 줄서 기다릴 정도로 붐빈다.
아이스크림을 이탈리아 말로는 젤라또라 한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타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단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작업대를 만들고 천장에 그림을 그렸다. 프레스코화는 천장이나 벽에 바른 회벽이 마르기전에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그리다 마르면 회벽을 뜯어내고 다시 그려야 한단다.
이로 인해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하였다. 성서의 천지창조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즉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4단계를 거쳤다.
첫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과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 하늘과 물의 분리,달과 해의 창조,빛과 어둠의 창조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1월과 8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머지 모든 원형 벽화로 같은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이에 완성되었다.
그려나간 순서에 따라 화면은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데, 이것은 높은 곳에 그려지는 천장화의 특수성을 미켈란젤로가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림은 1512년 완성되어 같은 해 만성절인 11월1일 제막식을 가졌다.
그후 500여 년 동안에 이 벽화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덧칠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1982년에는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한 복원작업이 9년에 걸쳐 실시되어 그림을 덮고 있던 때와 후대에 이루어진 덧칠이 제거되어 본래의 색채와 형태가 되살아났다.
피냐정원(Cartile delle Pigna :솔방울 정원)
높이 4m의 솔방울
옛날에는 마르스 평원 이지스 세라피스 신전 에 있던 것을 옮겼다. 솔방울을 받치고 있는 사람들은 고대 로마시대의 운동선수들.
입장하기전 위와 아래 그림으로 천장화의 부분부분을 가이드로 부터 설명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설명 할 수 없단다.
구(球)안의 구(球)라는 현대 조각품(아르놀도 포모도르 작품) 베드로성당 돔위의 구체와 같은 크기란다.
치과 생각이 난다.
신(神)은 천상의 존재이므로 땅을 딛지 않아 맨발에 콧대도 오똑하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제우스는 번개,아폴론은 활,아폴로는 월계관등으로. 술과 술잔은 주신 박카스. 이렇게 알고 보니 맨발의 조각상이 많은데 모두 신(神)인가 보다.
로마 시가지도 바라보고
라오콘 상
기원전 1세기의 그리스 조각가 아게산드로스,아테노도로스,폴리도로스 세사람의 작품 에스퀄리노 언덕에서 1506년에 밭 갈던 농부가 발견. (발견당시 오른팔이 없었는데 여러사람이 모여 팔을 복원하자는데 모두 하늘을 향하게라는데 미켈란젤로만 뒤로 향한다 했는데 나중에 팔 을 찾고보니 미켈란젤로 주장이 맞았단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또한번...)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목마를 트로이에 들이지 말라하여 두 아들과 함께 포세이돈이 보낸 뱀에게 감겨 고통 받으며 죽어간다. 라오콘 군상은 인간의 격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헬레니즘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벨베데레 토루소(Belvedere Torso)
기원전 1세기의 그리스 사람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이 조각상은 나중에 발굴되었는데 가장 완벽한 근육미라며 더이상 보탤데없는 완벽한 조각이란다. 미켈란젤로와 후대의 조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다.
로톤다의방
로톤다는 둥글다는 이탈리아 말로서 돔 형식의 둥근 천장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오트리콜리 목욕장(沐浴場)바닥에서 출토된 모자이크 장식의 13m 둘레의 네로황제의 수반. 벽면에는 BC4세게에 조각된 제우스의 두상,안티누스 흉상,아드리아누스 황제의 두상이 있다.
바닥도 예술이다.밟고 다니기도 죄송스럽다.
지도의 방은 양(兩) 벽면으로 오늘날의 지도와 비슷한 지도가 많았다.
카펫그림
아래그림부터 미켈란젤로의 시스타나성당의 천장화이다. 천장화 방에 들어오니 옛날 추석전 공중목욕탕 같이 사람들이 붐빈다.
가이드는 천장화 촬영금지라던데 사진 안찍는 사람이 없다. 망설이다 나도 찍는데 경비원인가 나보고 뭐라는데 못알아 듣겠다. 똑딱이로 라이트 사용하여 찍는사람도 부지기수라. 자리비켜 다시 찍었다.
가운데 아래의 미켈란 젤로는 37세에 완전한 늙은이처럼 흰 수염이... 이 작업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불쌍한 마음이 든다.
이제 베드로 성당으로 가야하는데 가까운 문을 우리에게만 안열어주네 일본사람 서양사람 모두 내어보내며 우리만 안된단다. 가이드는 미리 예약을 안해 그렇다며 졸라보는데 끝내 거절이다. 나는 일본사람에 묻어 나갔는데 처가 못나와 나랑 같이가야 한다니 나 까지도 되 들어 오라 하여 15분 이상 빙~돌아 베드로 성당으로 갔다. 가이드가 다음 팀 부터는 예약을 잘 하겠지.
안 걸어 내려 가도 될 회전계단을 빙빙 돌아 내려가네
성 베드로 성당
성베드로 성당지붕에서 찍은 사진 (펌) 열쇠 모양이란다.
줄서서 입장을 기다리는데 팔없는 옷 슬립퍼 신은 사람들 못들어 가게 한다.
글자가 있어 찍었는데 오후 4시라 아래까지 찍으니 햇빛 때문에 흐려서 위만 찍었다.
미켈란젤로가 1498~1499년에 대리석으로 만든 피에타(Pieta)
비탄에 잠긴 미리아는 아들인 예수님을 안고는 있으나 감히 만지지 못하는 거라네(왼손:가이드의 말) Pieta는 이탈리아 말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듯이란다.
로마공항을 떠나며 |
첫댓글 인위적으로 약간 손댄곳도 있겠지만 옛것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로마시내..앉아서 구경 잘했으니
고마움은 다음에 만나서 한잔술로 대신하면 아니 될까요~?
아니되기는요 되고도 남지요.
일래형!!!
인사가 늦었습니다 만.... 강릉제일고 18기 카페가입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 사진이나 회원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만한 좋은 글이나 정보 등을 종종카페에
올려주었으면 합니다
지금 보니 일래형은 컴퓨터의 고수가 아닌가 ? 하는 감이 드는데.....
그런데 "시밀"의뜻은?
앗참! 일래형!!!
카페 신입회원으로 가입하면 간단한 인사말씀 한마듸가 있어야 하는데......
다시 한번 카페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앉아서 로마 관광 잘 했습니다 탱 ㅡ큐
일래형
카페 회원가입 진심으로 축하 !!!
사진도좋고 편집하시는라고 수고 많았습니다,자주자주,좋은사진 좋은 글 부탁드림니다
시밀 내외가 건강 하시니 로-마 관광도 갇다 오시고 어느새 컴퓨타 도사가 되어 관광 견문기를
편집 18까페에 올려 로-마 관광 돈 안내고 잘 할수 있구요!! 특히 아주머니 건강 회복, 하느님께 감사,
또한 관광을 게기로 18 메일에 입회 한것 환영 축하 축하 mail입회 인사 한마디는?
이상은님
가입 축하 고맙습니다.
시밀은 내가 태어난 묵호 심곡리의 우리말 이름입니다.
컴 고수는 아니고 글쓰고 사진 올리는 정도입니다.
경만수님
축하 반갑습니다.
자주 글과 사진 올리겠습니다.
엄무길님
처의 건강 염려 고맙습니다.
메일 입회 인사는 해야 하는지 말 재주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