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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먼 옛날 하늘에 변고가 있었다.
거대한 배역의 광풍이 하늘을 휩쓸었다. 하늘 나라의 평화와 기쁨은 사라지고 한 번도 경험 못한 혼란과 분노가 천사들 사이를 스며들었다. 오랜 세월 하나님을 섬기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질서를 지켜온 천사들이었다. 배역으로 천사들은 나뉘었으며 서로를 향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치열한 전쟁에 돌입했다. 질서가 무너지고 하나가 깨지자 양 진영으로 갈라졌고, 하나님의 보좌에 대항하는 적대적인 집단이 생긴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도전한 반란의 수괴가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천사장 루시퍼였다. 그는 천사의 1/3을 꾀어내어 배역에 동참시켰다.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아는 천사들이 반란의 대열에 함께 하였다는 것은 루시퍼의 능력과 선동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일 것이다.
하나님은 루시퍼를 특별하게 지으셨다. 능력과 영광을 넘치도록 부어주셨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겔28:13)
루시퍼가 지음을 받던 날에 그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다. 고대에 북과 피리와 같은 악기는 왕을 위한 것이었다(단3:5, 6:18). 또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그의 거처는 열 가지가 넘는 보석으로 단장되었다. 그는 아침의 아들과 계명성으로 불리었다(사14:12). 아침의 아들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새벽의 아들, 혹은 여명의 아들이다. 창조의 여명에 가장 먼저 지음 받은 루시퍼는 우주를 다스리는 왕이었다. 계명성(啓明星)은 Daystar 혹은Morningstar이며 새벽에 뜨는 샛별이다. 그가 배역하기 전에는 빛을 가져오는 Star였다. 후에 어둠의 왕국의 수괴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새벽별인 샛별의 히브리 발음이 루시퍼다. Latin Vulgate 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은 계명성을 루시퍼로 번역하고 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겔28:14)
루시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천사장이었다. 왕과 제사장에게 기름을 붓듯이 천사들을 다스리는 왕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는 덮는 그룹이었다. 출애굽기 25장 18-21절에서 보면 지성소의 은혜의 보좌 위에 덮는 그룹들이 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보필하면서 그분과 매우 친밀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히9:5).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우주적인 경배를 인도하였을 것이다(계 4:6-11).
루시퍼는 하나님이 계시는 지극히 거룩한 산을 왕래하는 특권을 누렸는데, 불타는 보석들이 있는 곳이다. 모세와 아론과 칠십 인의 장로들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분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였다(출24:10). 또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다(출24:17). 루시퍼는 이러한 영광의 영역을 왕래하는 자였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많으므로 네 가운데에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냈고 불타는 돌들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28:15-17상)
루시퍼의 배역의 원인은 교만이었다. 교만을 심상히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가 교만한 이유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마음이 높아지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다(겔28:12).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높아져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탄의 길을 가게 된다.
그는 또 무역이 풍성하므로 교만해졌고 영화로우므로 자신의 지혜를 더럽혔다. 이것은 후세의 모든 자들에게 경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현 시대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좋은 예이다. 중국이 무역이 풍성해지자 시진핑은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중국몽을 꾸게 되었다. 이제 시진핑은 미국을 꺾고 패권국가가 되는 중국몽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중국몽은 실상 사탄몽이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로 유명한 등샤오핑은 중국을 개혁, 개방하여 경제적인 번영을 가져왔다. 그가 죽기 전에 유언한 말은 ‘도광양회(韜光養晦)’다. 도광양회란 ‘칼을 칼집에 넣어 검광(劍光)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고 그믐밤 같은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라고 유언한 것이다. 덩샤오핑은 이런 노선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100년간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의 대결도 100년 동안 피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시진핑은 무역이 풍성해지자 교만해져서 미국을 향해 고개를 들고 도전을 했다. 그 결과 중국 공산당은 백척간두에 서 있게 되었다.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면서 독백을 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이러한 교만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단4:29-32)
다윗도 어느 날 저녁때에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삼하 11:2). 높은 왕궁 옥상을 거닌다는 것은 마음이 교만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가 높은 왕궁 옥상에 거닐지 않았다면 결코 어두워져 가는 저녁에 목욕을 하는 밧세바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교만이 범죄로 이어지고 결국 압살롬의 배역으로 심판을 받게 되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할아버지는 다윗의 모사인 아히도벨이었다. 후일 압살롬이 반역할 때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섰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아히도벨의 계략은 하나님과 버금가는 것이라서 압살롬이 그의 계략대로 전쟁을 수행했더라면 다윗은 끝났을 것이다. 여하튼 작은 교만으로 일어난 범죄는 다윗 가족의 비극과 이스라엘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잠 18:12)
결국 이러한 교만은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게 되고 우주적인 배역으로 치닫게 되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네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14:12-15)
루시퍼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비기려고 하였다. 이런 오만한 배역으로 인해 ‘하나님의 대적’이란 의미인 ‘사탄’이 그의 이름이 되었다. 사탄은 거만하게도 “내가 ~하리라(I will)”를 다섯 차례나 사용하였다.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높이는 것은 사탄이 되는 지름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자신의 능력과 은사를 드러내므로 사탄의 전철을 밟고 있는지!
사탄은 강한 의지로 하나님의 보좌를 탐했다.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신의 자리를 높이기를 원했다. 말할 수없이 교만하여져서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고자 하였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기를 갈망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 되기를 소망한 것이다.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의 보좌를 찬탈하려고 하다니! 하나님은 이를 매우 더럽게 여겼다.
사탄의 사상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물의 경배를 받고 자신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반복해서 일어난다. 사탄의 예표인 두로 왕도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하나님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그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아니거늘, 그는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그의 큰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도 한다. 또 그의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하여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며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그의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그의 영화를 더럽히며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 것이다.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성취되었다.
옛 뱀인 사탄이 하와를 꾈 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게 된다”라는 자신의 사상을 주입하였다. 그래서 하와는 사람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되려고 자신만 선악과를 먹을 뿐 아니라 남편까지도 먹게 하여 인류의 타락을 가져왔다.
재림이 임박할 때,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지어질 것인데, 사탄의 화신인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가 그 안에서 스스로 하나님이라 칭하며 사람들의 경배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사탄의 배역은 압살롬의 반란과 상당히 닮아 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다.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다. 그의 아름다움으로 교만하였을 것이다. 누이 다말이 성폭행을 당한 후 2년을 참았다가 이복 형 암논을 죽이고, 망명 생활 3년, 귀국해서 2년은 죽은 듯이 살았으며 그 뒤로 4년을 준비했다. 11년을 기다려 반역을 실행한 것이다. 압살롬처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흠잡을 데 없이 잘 생긴 사람이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니 그들이 압살롬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있었을까?
압살롬은 4년 동안 치밀하게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 아마 사탄도 오랫동안 천사들의 마음을 훔쳤으리라. 그는 매우 부지런해서 아침 일찍이 성문 길 곁에 서서 억울한 일이 있어서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자신이 먼저 나가 맞으면서 친절하게 어느 성읍 사람인가를 묻고 말하기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너의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라고 했다. 또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은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4년을 행하여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쳤다. 사탄도 뿔난 악마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서 온화하고 사랑스럽게 천사들의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다.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고 자신의 제자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훔치는 자는 사탄의 길을 가는 자이다.
하나님은 사탄을 심판하셨다. 그를 땅으로 내쫓고(사14:12, 겔28:17), 스올(하데스,음부)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지고, 최종적으로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마25:41)에 들어가도록 판결을 받았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리신 판결을 집행하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이 판결을 여러 방면으로 집행하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집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 판결을 칠십 명의 제자를 통하여 집행하셨고(눅10:18), 십자가 위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집행하셨으며(히2:14, 요12:31), 대환난 전 사탄이 땅으로 내던져질 때에는 사내아이와 미가엘을 통하여(계12:5, 7-10, 13), 천년왕국 전 사탄이 무저갱, 즉 밑 없는 구덩이에 던져질 때에는 천사를 통하여 이 판결을 집행하실 것이다(계20:1-3). 사탄은 최후에 불 못으로 던져져, 천년왕국 후부터 영원토록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계20:10).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중 하나가 그분의 대적인 사탄을 멸하고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생명 안에서 사람과 연합하기 위함이다. 사람만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으며 연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다. 하나님의 형상(Image)은 사랑(요일4:8)과 빛(요일1:5)과 거룩(계4:8)과 의(렘23:6)이다. 사람이 생명나무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연합되면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가짐으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고 사탄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할 수 있다. 사람의 창조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을 굴복시키고 2)사탄에 의해 손상된 땅을 회복하고 3) 이 땅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서도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마6:10, 13).
첫 사람 아담은 이 목적을 이루는데 실패했지만 둘째 사람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성취하실 것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 이기는 자를 통하여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룬 이기는 자는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왕들이 될 것이다(계2:26-27).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증하는 새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계21:24, 22:5).
사탄은 교만과 권력의 화신이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천사장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는 순간 사탄이 되는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를 탈취하고 우주를 지배하기 위해 온갖 거짓과 술수와 살인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다. 교만과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은 마귀의 자식이며 그의 아비 마귀와 동일하게 거짓말과 권모술수와 살인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권력에 눈 먼 자들이 저지른 온갖 만행은 역사 가운데 셀 수 없이 많다. 압살롬과 같이 아비를 죽이고자 하는 악행은 역사 안에서 다반사이다. 권력을 위해 배신, 배역, 살인, 음모, 권모술수, 거짓말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행하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며 어둠의 자식이다.
마귀의 자식이 정치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는 집단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에서 사탄의 궤계가 은밀히 이뤄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서기관은 성경 박사들이고 바리새인들은 당시 타락한 유대교를 바로잡고자 일어난 개혁주의자들이었다. 당시 유대인의 눈에는 매우 의롭고 뛰어난 종교지도자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실상을 폭로하셨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나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8:44)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존경 받고 의로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마귀의 자식이라니! 항상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율법을 지키라고 설교하던 그들이 마귀에게서 났다니!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더욱 더 신랄하게 비판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다. 또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형태는 오늘날 누구와 비슷한가? 영락없이 교계 지도자들이 아닌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마귀의 자식이라면 교계의 지도자들은 과연 누구의 자식일까? 교만함으로 사탄이 되었고 “내가… 하리라”를 다섯 번 외치다가 마귀가 된 것을 보면 이마에 문둥병이 걸린 기독교의 큰 인물들은 예수님의 제자일까, 마귀의 제자일까?
최근 김진홍 목사는 설교 중에 이런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자신과 친한 목회자 한 분이 어떤 교단 총회장 선거에서 낙선을 하였다. 그 목사는 “30억을 썼는데 떨어졌다. 40억 쓴 사람이 당선되었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정치인들도 울고 갈 이런 선거판을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더 주님께 칭찬을 받을 것 같다. 그리고 총회장이 되기 위해 은밀히 벌어지는 부정 부패와 권모술수, 음해, 비방에다 심지어 육탄공격까지 벌어지는 것을 보면 사탄이 파 놓은 함정에 서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이 아닌가.
이런 권력 다툼과 헤게모니 쟁탈전이 조직화된 교단뿐 아니라 소위 진리의 최고봉이라고 자랑하던 곳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권좌에 오르기 위해 벌어지는 암투는 왕좌에 오르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와 음해와 살인이 일어나는 모든 왕조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가장 사악한 자가 정상에 오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형적인 양상이다. 신앙 양심을 가진 자들은 그들의 리그에 끼지도 못하고 중도 탈락한다. 권모술수도 비방도 음해도 못하니 정상에 오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교단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겠는가? 비둘기 같은 성령님은 이런 아수라장 같은 정치판에서 조용히 떠나신다. 거대해지고 조직화되어 신도들을 군림하는 권좌가 있는 곳에는 마귀의 자식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참된 교회는 결코 조직화되지 않고 거대해 지지 않는다. 그리고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총회나 본부가 없다.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어떤 계급도 없다. 각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고 중간 계급이나 땅의 본부가 없다. 주님은 사탄이 되게 하는 이런 교만을 미워하신다.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위대한 고백을 한 후에 우쭐해져서 곧 바로 사탄이 되었다. 바울도 간증하기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12:7) 이 육체의 가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것이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세 번 주께 간구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주 예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교만에서 벗어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만과 자신을 높이는 것을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한다. 여기에서 실패한 자들은 아무리 큰 역사를 이뤘더라도 버림을 받을 것이다. 교만은 곧 사탄이다. 주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꾸짖으면서 제자들에게도 경계의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8-12)
교황(Pope)은 Papa라는 뜻이다. 즉 ‘아버지’라는 의미이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목사는 목양하는 선생이라는 뜻이다. 선생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 우리는 다 형제이다. 어떤 형제가 목사가 되었다. 어느 날 어느 형제가 그 목사에게, “형제님!”이라고 불렀더니 그 목사가 조용히 그 형제를 부르더니, “이제 목사가 되었으니, 목사님이라 부르세요.”라고 했다. 형제보다 위에 있는 호칭은 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교황님, 목사님, 총회장님, 사도님, 장로님과 같은 명칭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하나님과 비기리라던 사탄의 마음일 뿐이다. 더 많은 신자들, 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은 주님의 마음이 아니라 사탄의 마음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분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스스로 높이는 사탄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일곱 번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길을 갈 것인가? 지극히 자신을 높이던 사탄은 구덩이 맨 밑에 빠뜨려지고, 지극히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사 모든 무릎을 그분에게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분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다. 우쭐했다가 사탄이 되었던 베드로도 청년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전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6)
오순절 이후 약 300년간 교회는 성령의 운행하심에 순종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인도를 잘 받았다. 하늘의 머리와 하나된 이 땅의 교회들은 사탄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순수함과 순결함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교회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방종교의 풍습이 스며들었고, 그리스도외의 수많은 이름들이 높여졌으며, 집에서 모이던 예배가 화려하고 거대한 예배당에서 이뤄졌으며,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제도가 확립되었다. 주교와 감독들에게는 각종 특권과 권력이 주어졌기에 야심이 있는 자들이 지도자가 되기 위해 헤게모니 쟁탈전이 일어나, 전혀 영성이 없는 자들이 감독과 주교와 교황이 되다 보니, 거대한 배도가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개혁의 이름으로 떨어져 나온 개신교도 그 형태와 구조에는 전혀 변화가 없이 사탄이 쳐놓은 그물에 빠져 교회라는 이름은 있으나 전혀 교회다움이 없는 변질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리하여 사탄에 대한 판결을 집행하기 위한 교회 내의 이기는 자들이 산출하기가 어려운 상태에서 ‘개독교’라는 오명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소위 교회라는 곳이 얼마나 부패했는지는 우찌무라 간조의 글에서 엿볼 수 있다.
교회 문제 [우찌무라 간조, 內村鑑三]
“하나님이 신도의 마음에 임하실 때는 교회 내에 설치한 제단 위에서 임하시지 않습니다. 혹 고요한 수풀 속에서 혹은 큰 물결이 이는 해변에서 또는 회개의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 침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임하십니다. 나는 교회의 절대적 불필요를 말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세상의 교회론자가 교회가 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교회의 필요를 주창하는 것을 볼 때 항상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교회 신자들은 열심히 협동일치의 필요를 말합니다. 나도 물론 그것에는 대 찬성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 자신들 가운데 과연 화합일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만 이것뿐입니다. 만일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오늘의 이 소위가 기독교 교회라는 것은 결코 화목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는 목사가 서로 반목하고 신도가 서로 다투며 참소가 있고 모함이 있고 파당이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때로는 구역질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요사이 어떤 신자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불신자 사회에 있었을 때에도 아직 한 번도 교회의 형제들 사이에 있는 그러한 끈질긴 싸움을 본 적은 없습니다.”라고. 나 자신의 경험도 같은 것입니다. 나의 생애에서 내가 만났던 가장 나쁜 사람은 교회신자였습니다. 그의 궤계, 그의 간사함은 도저히 불신자 사회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물론 여러분의 이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의 교회란 결코 화락일치의 마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일치가 만일 있다면 여러분의 교회 내의 일치에 그치는 것입니다. 널리 다른 교회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 나라에 대표적인 교회만 하더라도 40이 넘는데 그 다수의 교파사이에 실로 차마 들을 수 없는 불화 경쟁이 있는 것은 당신께서도 이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실상은 기독교신자는 아니다.”라든가 “정통 교회는 우리 교회뿐.”이라든가 그밖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을 그들 교회 신자는 자기 교회 이외의 교회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며, 침례도 하나이니.” 그렇습니다. 진정코 그렇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감독 교회는 퀘이커 교회를 주의 교회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신교와 구교 사이에 개와 고양이 보다도 더한 질투와 투쟁이 있느냐 말입니다. “형제와 연합하여 화목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서의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조합교회와 장로교회와의 관계를 관찰해 보십시오. 당신은 이 성스러운 가르침에 가장 좋은 반증을 얻으시고 눈물과 함께 당신의 확신을 더 굳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무교회 신자에 “성도의 교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잘못입니다. 우리들 사이에도 지극히 두터운 교제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회원증이 없으므로 서로 이것을 보이면서 교제를 구하는 편의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주를 믿고 그 구속을 받은 자는 회원증을 보이지 않아도 결국에는 깊은 영적 형제임을 서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하게 된 후의 우리들의 교제는 이것을 맛보지 못한 자로서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칙에 복종하여 된 일치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서에 말하는 바 “영의 일치”(엡4:3)입니다. 그리고 이 일치는 특별히 반드시 무교회 신자간에만 한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속한 자, 속하지 않은 자의 구별 없이 무릇 같은 영으로써 같은 주의 구속 받은 자 사이에 있는 일치입니다. 진심으로 주를 믿는 자는 모두 우리들의 형제입니다. 우리들은 “귀하는 언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하고 물어 그 사람이 신자냐 아니냐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품성에 나타난 나사렛 예수의 감화력을 인정하여 그런 후에 그가 그리스도인임을 알고 그를 향하여 우리의 교제를 시작합니다. ”
우찌무라 간조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악한 사람이 교회 성도였다고 말했다. 참으로 충격적이지만 일견 공감이 갔다. 나의 삶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악한 자는 한 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이다. 그런 악하고 비열한 책략을 통해 교회를 완전 장악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 보좌를 찬탈하려고 한 사탄의 권력에 대한 야망이 세상의 패러다임이 되었지만, 세상을 향한 빛인 교회 안에서까지 이러한 패러다임이 스며든 것은 비극일 것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이러한 타락한 교회를 보고 무교회주의를 주창하였던 것일까?
우찌무라 간조는 반목과 대립, 파벌과 분리에서 벗어나 참된 교회를 찾고 세우려는 노력이, 어느 교파의 교회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를 추구하는 교파적 자유함이, 무교회주의자로 오해 받았던 것이 아닐까. 따라서 ‘판정’내리기 좋아하고 ‘규정’짓기에 익숙한 교파적 의식으로 이러한 간조의 참 교회 운동을 ‘무교회주의’로 단칼에 베어버린 것은 아닐까. 정작 간조는 온갖 ‘주의’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갈구했다.
“오, 내 영혼아, 온갖 ‘주의’들로부터 벗어날지어다. 김리교주의건, 조합교회주의건, 다른 무슨 고상하게 들리는 주의건 간에 상관치 말고 진리를 추구하여 인간으로서 처신하고, 사람들로부터 벗어나서 위를 바라볼지어다.”(우찌무라 간조의 ‘신학에 빠져들다’중에서).
우찌무라 간조가 경험한 교회는 실상 참된 교회가 아닐 것이다. 주님께서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에 대해 교회 간증인 금등대를 옮겨 버리겠다고 경고하신 것처럼 간증이 없는 껍데기 교회일 것이다. 그런 교회의 특징은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불신자들보다 더 타락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교만으로 인한 권력에 대한 탐욕. 이것은 사탄이 조종하는 세상의 패러다임이다. 사탄을 집행할 이기는 자를 배출하는 교회는 결코 헤게모니 쟁탈전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늘의 식양대로 건축되는 교회는 쟁탈할 지위나 계급이 없기 때문이다.
밀라노 칙령 이후 바뀌어진 교회의 패러다임은 교권과 이권에 대한 무한 투쟁일 것이다. 정상에 오른 지도자들은 마키아벨리즘을 신봉하는 최악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밀라노 칙령으로 변질된 교회를 다시 오순절의 원형교회로 되돌리는 것이 우리의 위임일 것이다. 그리하여 원형교회로 전환하기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1. 예배당 중심의 모임에서 가정 중심의 모임으로 전환한다. 밀라노 칙령 이전에는 가정에 있는 교회였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모이면 교회가 건축되는 교회집회가 말살된다. 성도들은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며 온전케 되기가 어렵다. 수백 명, 수천 명, 심지어 수만 명이 한 사람의 설교만 듣고 끝내는 모임에서 어떻게 교회가 건축될 수 있겠는가.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는 교회집회는 사라지는 것이다. 가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낼 수 있다. 두바이의 칠성급 호텔의 한국인 셰프가 인터뷰를 했다. 어떤 기자가 질문했다. “셰프님은 프랑스 요리를 비롯하여 온갖 요리를 전문으로 만드시는데, 가장 맛있었던 요리는 무엇인가요?” “그건 어머님이 끊여주시는 된장찌개입니다.” 칠성급 예배당에서 온갖 말씀의 레시피로 요리하는 유명한 목사님들이 계실지라도 우리 가정에서 끓여지는 영적 된장찌개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다.
2. 사역자의 일방적인 메시지에서 각 성도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말하는 교회집회로 전환한다. 교단의 본부에서 내려오는 일방적인 메시지로 교회집회를 하는 것은 흉내만 내는 것이지 참된 교회집회가 아니다. 각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말해 내는 말씀만이 진정한 교회 집회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성도들의 훈련이 필요하다.
3. 주님께서 열두 사도를 배출하셨고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도를 배출하였듯이 사역자의 배출은 전적으로 성령의 보내심에 달려있다. 신학교에서 배출된 목회자들은 교단의 종이지만 성령님에 의해 배출된 사역자는 주님의 종이다. 사역자는 주님의 종일 뿐 아니라 성도들의 종이다. 성도들을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사역자는 거짓 사역자다. 바울은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고 선언했다(고후4:5). 성도들의 종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 보좌 옆에 자신의 보좌를 두고 성도들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사역자는 분명 사탄의 화신일 것이다. 순종이 성도들의 귀한 미덕임에 틀림 없지만, 형제 이상의 지위로 순종을 강요하는 것은 사탄의 길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이단교주들은 자칭 하나님이 되었다. 성경에서는 일방적인 순종이 아니라 서로 순종하라고 권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
4. 교회의 호칭은 그 교회(호 에클레시아)이며 이에 벗어난 호칭은 비성경적이다. 다만 교회 행정이 각 도시에 있기에, 예루살렘에 있는 그 교회, 에베소에 있는 그 교회라고 명명하듯이 진주에 있는 그 교회, 서울에 있는 그 교회라고 명한다.
5. 각 지역의 그 교회의 모임은 건물이 아닌 각 가정에서 이뤄지며 최소한 부부가 헌신된 가정에서 모임을 가지며 이웃에 사는 성도들이 연합하여3-40명의 단위로 교회집회를 가진다. 각 가정교회의 장로가 성도들을 목양하고 행정을 책임진다.
6. 각 도시 안에 있는 가정교회의 장로들이 수시로 원탁에 앉아서 그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머리이신 주님께 묻기 위해 기도하고 응답을 받아 실행한다. 복음전파와 구제와 선교에 대한 것이 주요 실행일 것이다.
7. 각 지역의 장로들이 직접 주님께 책임을 지고 행정을 하며, 그 위에 어떤 상위조직이나 본부가 없다. 장로들의 상위 기관은 오직 하늘 보좌뿐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직접 소통한다. 타 지역의 교회와는 성령의 교통이 있을 뿐, 간섭하거나 군림하지 않는다.
8.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일치하나 비본질적인 것은 관용한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죄사함을 받는 것과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 외의 것은 관용한다. 교리적인 문제로 인한 논쟁은 자제한다. 안식일이나 방언이나 휴거나 전천년설, 후천년설, 무천년설, 침례나 세례, 만찬 그 외 교리적인 것은 열린 마음으로 교제할 수 있지만 주장하지는 않는다. 각 지역의 가정교회에서 성령의 조망에 의한 성경해석권을 가질 수 있다.
9. 순회사역자와 가정교회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 서로 존중하며 관심을 가지지만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관계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10. 한 가정에 적정한 인수가 넘어가면 CELL분열을 하듯이 새로운 가정모임을 형성한다. 사탄의 속성은 더욱 커지고 높아지기에 세포분열은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더 큰 권력이 만들어지고 더 높은 지위가 형성되어 헤게모니를 쟁탈전으로 피바다를 이룬다. 더 큰 영토를 확장하였던 권력자의 모습은 사탄적이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다. 한 가정모임이 가장 큰 교회집회이면 사탄의 패러다임이 교회 안에 들어올 수 없다. 신천지의 추수꾼들이 노리는 곳은 대형 교회이거나 중형교회이다. 가정교회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수 없다. 생명과 사랑이 왕 노릇 할 수 있을 것이다.
11. 가정교회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만이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교제하는 시간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12.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침례를 간구하는 것이다. 성령의 강림하심은 확실한 교회의 확정이다. 수 년 내로 이러한 체험을 얻기를 기도한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교회문제는 우찌무라 간조의 글인가요? 제가 동의하는 내용이 많아요. 형제의 동거함은 사실은 십자가를 통해 인간본성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헌신으로만 가능하니까요. 나는 십자가를 통과하기 전에는 공자와 맹자도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형제님은 교회란 여자 한사람과 남자 여럿이 사는 것인데, 이 남자들이 수컷의 본능을 제거하는 과정이 라고 표현하시더군요. 수컷들이 모여 사는데 여자를 사랑하므로 수컷의 본능을 제거해 버린 사람들의 모임.....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본성이 제거하는 과정이 교회생활이 아닐까요? 조직화된 교회에서는 그러한 삶이 불가능하다고 느낍니다. 주님 안에서 좋은 교통 이어나가길 기도합니다.
"본래 우주 가운데는 하나의 의지, 곧 하나님의 의지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사탄이 타락하자 우주 기운데는 두번째 의지, 곧 거역하는 의지가 있게 되었다. 그런다음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을 창조하시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택할 수도 있고 사탄을 택할 수도 있게 하셨다. 영원미래 안에서 사탄이 불못에 던져진 후 우주 안에는 다시 하나의 의지만 남게 된다. 그러나 이 의지는 태초의 의지와는 다르며 하나님의 의지와 사람의 의지가 완전히 하나로 연합된 의지이다" -워치만 니-
형제님께서 띄우신 게시글 제목이 '사탄의 권력의지' 여서 문득 떠오르는 글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의지만 우주에 있다면 갈등과 분열과 고통은 없었으리라 믿습니다. 사탄의 의지가 생겨나서 우주 안에 혼란이 존재하고 지상에 사는 인류에게도 온갖 문제들이 난무한다고 봅니다. 사탄의 의지 중에 권력을 탐하고 집착하는 권력의지가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12제자들에게도 그것이 드러나고 역사적으로 모든 문제는 권력에 탐하는 자들로 말미암는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로 오신 그리스도,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분 안에서 믿는이의 삶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