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발품’은 걸어 다니는 것을 말하지만 거기에는 단순히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품앗이’처럼 무엇을 위한 수고나, 그 어떤 품을 갚는 것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대개는 행위자체에서 얻어내는 성과와 연결된다.
한데 왜 서두에 이 말을 꺼내는가. 이유가 있어서다. 일전에 친구의 부탁을 받고 어느 낯선 장소에 나가서 발품을 팔았던 것이다. 갔던 곳은 기자 회견장인데, 모처럼 하는 부탁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나와 직장생활을 같이하고 퇴임도 같은 해에 했던 사람이며, 내가 글쓰기에 몰두한 반면에, 친구는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야인 향토답사와 유적지 발굴에 부단히 힘을 써온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장군의 활약상에 꽂혀서 불타는 의욕을 발휘하여 꾸준히 활동해 왔다. 최근에는 묘도 선장계의 위치와 봉산동 제철유적지를 찾아내기도 했다. 친구와 나는 가끔 만나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간에 부담을 지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날은 모처럼 동행을 부탁해 왔던 것이다.
“어이 자네, 기자회견장에 동행을 좀 해줄 수 있겠는가. 내 쪽에서 혼자 나가기는 좀 그렇고, 같이 나갔으면 해서.”
그 말에 나는 앞뒤 재지 않고 흔쾌히 승낙해 했다. 혹시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운 말투였지만, 내가 승낙을 하자 한결 목소리가 밝아졌다. 대략적인 설명을 했다. 여수 상징 문을 세우고 있는데 아무래도 문구 수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약속을 하고 시청 브리핑 실에 나가니 미리 벽면에 게시물이 내걸려 있었다. ‘졸속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취소되어야 하며 여수를 상징하는 새로운 문구를 넣어야 한다.’ 한데 이날 정식 기자회견은 열리지 못했다.
또 다른 행사로‘낭만포차 이전행사’와 일정이 겹쳐서 기자들이 그곳으로 많이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간 사람들은 장소를 이동하여 그 취지와 대책을 논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추진경과에 대해서는 친구를 통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좀 더 상세하게 저간의 일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에서는 지금 여수 들머리 국도 위에 조형물을 건립 중에 있다. 29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내년 상반기 준공을 한단다. 당초 이 계획의 추진은 여수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시청에 건의한 사람은 남영식회장이다. 그의 발품이 많았다.
그는 충무공 연구를 해 보니 여수만큼 이순신장군과 밀접하게 관계있는 곳이 없고, 장군과 관련된 유적도 산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충무공께서는 난중일기에다 여수를 본영으로 지칭한 회수가 132회나 되어 장군을 널리 알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여수는 2012년 엑스포가 개최된 후 관공도시로 부각되고 있는 중에 있기도 하다.
친구는 여수가 과거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곳인 만큼 ‘삼도수군 통제영’ 이란 문구가 들어가기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어려움에 부딪쳤다. 경남 통영에서 이미 통제영 명칭을 선점한 때문이었다.
공사는 벌써 여수 상징 건물인 진남관을 담은 조감도가 나오고 설치할 장소가 확정이 되었는데 막막한 상황에 이르렀다. 적합한 문구를 확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대안으로 ‘거북선의 고장 여수’. ‘여수 삼도수군 통제영’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한데 이것은 최근 시민을 상대로 한 설문여론조사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여수문’이란 문구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분히 설문 문안 작성의 의도성에 의해서 정해진 측면이 있다. 전라북도에 ‘전주문’ 이나 ‘남원문’처럼 여수도 지역 명을 따서 ‘여수문’이 좋다는 것이나, 문제가 있다. 즉, 전자의 것들은 지역이 어디를 지나게 되는 곳에 있어 이정표적 성격이 있는데 반하여 여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이 남도 끝자락에 있는지라 단순히 지명을 써놓은 건 그런 이정표의 효과도 없고 와 닿는 이미지도 없는 것이다.
앞의 두 지역의 경우, 전주는 조선조 이태조의 본향이고 남원은 춘향 골을 상징하지만 ‘여수문’이라고 하면 무엇이 와 닿겠는가.
그래서 친구는 다시 이 명칭을 공론에 부치면서 다음 문구를 제시하고 있다. ‘삼도수군통제영 여수.’ 이렇게 하면 명칭표시비도 막고 당초 세우고자 했던 취지에도 맞는다는 주장을 편다. 삼도 수군통제영은 어떤 특정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순신장군이 머문 곳을 다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어느 지역의 전유물인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점을 감안하면 여수야말로 삼도수군통제영의 이름이 합당한 게 아닌가 한다. 물론 이웃의 통영은 지금까지 200여 년간 줄곧 써온 연고가 있지만, 여수 또한 장군이 이곳에 머물며 거북선을 만들고 옥포해전, 합포 해전, 사천해전, 한산도해전 등 10회가 넘은 출진으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날 나는 처음에는 부탁을 받고 다소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했지만 느끼는 것이 많았다. 무언가 노력하는 사람이 있어 사회는 조금씩 발전하고 바로잡혀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어떤 조형물이나 기념물 하나에도 마음을 모아 추진한 손길이 있음을 다시 보게 된 것만 같다.
아무튼 문구채택은 내가 생각해도 다시 바로잡아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쪼록 좋은 방향으로 다시 결정이 되었으면 한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무엇을 시정하는 데는 손 놓고 뒷방에 나앉아서 있어서는 아니 되고 때로는 목소리도 크게 내야함을 깨달았다. 모처럼 발품을 많이 판 날이 아니었나 한다. (2018)
첫댓글 뜻 있는 발품이 되었군요
여수문이라는 명칭이 시민여론수렴 결과라니 할말은 없지만 썩 와닿지는 않네요
지역발전을 위해 앞장서는 분들이 있어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저도 가끔 시나 청와대에 건의사항을 보내지만 별무성과네요 여수관문에 충무공 관련 문구를 곁들이면 좋겠는데 세상일 뜻대로 되기 어려우니 답답하기도 합니다
이번 재추진 행사는 주로 남영식 이순신연구소 이사와 여수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는 종고회(회장 성해석)이 주축이 되어 하고 있더군요. 명칭 변경은 무미건조한 '여수문'으로 할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떼려야 "떨수 없는 만큼 그분의 호국의지를 떠올리는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의미있는 발걸음을 했습니다.
문구가 여수문으로 굳어진 건가요? 아니면 다른 문구로 채택이 되었는지요..
이미 여수문으로 정해져 지금은 그렇게 세워져 있습니다. 참으로 볼품없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도 보는 눈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