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주제를 학문적으로 잘 설명해 주는 사람은 스타호크다. 스타호크 (Starhawk)는 필명이다. 그녀가 여성, 페미니즘, 그리고 영성에 대해 무엇인가 쓰고 싶었을 때 꿈 속에 매 (hawk) 한 마리가 나타나 노파로 변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 새가 자신을 보호하는 느낌을 받았고, 당시 타로 카드에 별 (star)이 나타나 둘을 합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번역하면 정말 멋있는 이름이 된다. 1) 별매. . .
스타호크는 대지를 숭상하는 유럽 전통 토속신앙 종교, 페이거니즘 (Paganism)의 대변인으로 동시대에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 존경 받고 있으며, 지금까지 11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 속에는 동화도 끼어 있다. 핵발전소 건설 반대, 평화 촉구 데모에 참여하고 그 경험에 대해 쓰기도 하는 열정적인 사회활동가이고 신토속신앙 (Neo-Paganism)의 제사장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퍼머컬쳐 (Permaculture)운동에도 열중이다. 2) 스타호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이 아래 사이트에 가 보기 바란다.
http://www.starhawk.org/starhawk/bio.html
그녀의 책, <나선형 춤: 고대의 위대한 여신 종교의 재탄생 >(The Spiral Dance: A Rebirth of the Ancient Religion of the Great Goddess) 은 1979년, 그녀가 아직 20대일 때 쓴 뒤, 이후 10년마다 재편집해서 1999년에 3판을 냈다. 그녀는 1979년을 미국의 여신 재발견 하기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해로 여긴다. 이 해에 여러 분야의 여성들이 함께 만든 <떠오르는 여성영성:종교에 대한 여성주의 독본>(Womanspirit Rising: A Feminist Reader on Religion> 이라는 책이 나왔고, 78년과 79년 사이 여성영성 운동에서 중요한 행사가 많이 있었다. 3) 페미니즘 운동과 더불어 삶의 전반적인 체계를 여성의 눈으로 보기 시작해 의식을 깨우친 여성들이 종교에 대해서도 심각한 질문을 하고 관련된 책들을 내기 시작한 때이기 때문이다. 스타호크의 글을 보면 보통 영성에 심취한 사람들이 현실정치에는 거리를 둔다는 통념을 깨고, 여성운동 뿐 아니라 환경 평화 운동 분야에서도 열심히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영성운동을 정치에 통합하는 새로운 정치, 사회, 문화운동--특히 사회운동과 미디어를 통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진정한 변화는 신화와 문화의 상징이 바뀔 때만 가능하고, 여신의 상징성이야 말로 억압의 체제에 도전 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있고, 더불어 생명을 지향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게 한다고 말한다. 4) 이 점은 계속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므로 나로서는 다만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영성과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주제가 페미니즘 전반에 찬란한 빛을 더하는 즐거운 대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1) 스타호크. <나선형 춤> 16 쪽.
2) Permaculture: 인간의 환경을 친환경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운동. 자급자족과 지구를 온전히 지탱하게 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공하고 있으며.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국제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3) 산타 크루즈(Santa Cruz) 대학에서 <다시 떠오르는 위대한 여신>이라는 학회가 열려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와 함께 여신에 관한 여러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여신의 기운이 뻗쳐 화두로 떠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4) 같은 책, 35 쪽.
“. . . true social change can only come about when the myths and symbols of our culture are themselves changed. The symbol of the Goddess conveys the spiritual power both to challenge systems of oppression and to create new, life-oriented cultures.”
유태인인 스타호크는 영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소설도 쓰면서 방황과 모험, 탐구의 과정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0대에 히피 운동의 절정기를 경험했고, 60년대 당시 히피 운동, 여성 운동과 더불어 일어나기 시작한 유럽의 토속신앙 운동 (Paganism)에 뛰어 들어 여신을 만나게 된다. 여신 운동을 벌이면서 글만 쓴 게 아니라 지혜로운 여자들 (witch)의 모임, 주로 13명이나 그 이하로 만들어진 그룹인 코븐 (coven)을 만들어 멤버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고대의 제의를 되살리고 또 현대인에게 맞게 제의들을 창조하기도 하는 등 여신 공동체를 일구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다양한 여신의 이름들
무언가 감으로는 잡히나 딱 집어 말할 수는 없는 무엇--여신이 영성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다른 이름들로 불리고 있다: Dark Mother, Ancient Mother, Mother, The Goddess, The Great Cosmic Mother. . .
<나선형 춤>에서 스타호크는 여신을 ‘the Goddess’ 라 쓰고 있다. 그리고 서구 전통 토속신앙의 남성 신(the God)에 대해서도 말한다. 여신을 숭배한다고 남신을 배제하지는 않는 점이 여신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통제하는 가부장제 종교와 대조된다.
스타호크는 말한다. 무엇보다 여신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녀와 접하는’ 것이라고. 5) 우리는 무언가 믿고 싶어--아마도 많은 종교를 들락거리다-- 헤매고 또 헤매다 그녀가 있는 곳까지 왔는데, 믿는 것이 아니라니. . . ? 이것은 또 무슨 황당한 말이며, 그녀와 접해야 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우리 모두가 무당이라도 돼야 한단 말인가? 아무런 힘이 없는 우리에게 복을 듬뿍 내려
주지도 않고, 영생도 약속해 주지 않는단 말인가? 그러면 여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말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선 스타호크의 설명을 들은 뒤. .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여신을 접할 수 있는가? 달을 통하여, 별, 바다, 대지, 나무, 동물,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우리 자신을 통하여....” 6)
5)스타호크. <나선형 춤> 103 쪽.
“. . . we do not believe in the Goddess--we connect with Her.”
여신을 말 할 때는 가끔 주어가 아니더라도 대문자로 쓴다. Her,
6) 같은 책, 103 쪽.
“. . . through the moon, the stars, the ocean, the earth, through trees, animals, through other human beings, through our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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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 즉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우리 속의 영적인 힘과 접한다는 이 점이 추상적으로 하늘에 있는 어떤 신을 믿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떠나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다른 많은 기성 종교와 다른 점이다. 여성영성 학자들은 신성이 남성화 되면서 동시에 추상적으로 되어, 즉 머리, 이성에만 가치를 두게 되어 여성을 비하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몸과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의 기조가 된 이원론이 현대 지구가 당면한 위기를 가져 온 철학적 근거라는 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다: 몸과 마음, 선과 악, 주인과 노예, 동양과 서양, 우월한 종족과 열등한 종족 등. --나아가 이것은 여성의 몸을 더 세분하여, 여자들 중에 아내와 어머니 감인 좋은 여자, 창녀나 성을 즐기는, 흐트러지거나 못된 여자로 이등분시켜,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장치하는 심리의 밑바닥이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그 장치는 얼마나 잘 쓰이고 있는가. 한국 곳곳에 있는 웅장한 결혼식장을 보라. 미국에서만 해도 결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법적 이익을 보라. 독신들 보다 더 세금 감면, 의료 보험 혜택 등.
영성이 추상적이지 않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기에 온갖 제의를 주관하며 무엇인가 신성한 것과 접하려고 한 고대의 믿음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출생에 별자리가 아직도 중요하고, 꿈은 분석을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하고, 또 삼태극으로 나타나는 우리나라 고대의 믿음, 즉, 하늘, 땅, 인간의 조화에 대한 믿음이 아직도 관심을 끄는 건 왜일까.
나는 ‘들어가며 하는 이야기’에서 내가 샤먼의 워크샵이나 최면술사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했다. 그것들은 결국 이 여신을 접해 내 속의 힘을 길러 평온함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는데, 스타호크는 이런 영적 훈련을 매직 (Magic)이라 한다. 또 페이거니즘을 믿는 사람들은 미스터리 (Mystery)라고도 한다. 매직의 정의가 흥미롭다: 매직을 ‘마술’로 번역하면 그 본래 뜻을 잃어 버리고 말아, 그대로 쓰기로 한다. 스타호크에게 매직은 ‘우리의 의식을 뜻대로 바꾸는 예술이다.’7) 그리고 예술이므로 많은 시간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제사장이나 무당이 되는 것과 같이. . .
우리의 의식은 무한히 넓고, 무한히 깊어, 수많은 종교인들은 이 예술을 갈고 닦느라--즉 도통하기 위하여, 길을 나서고 (집, 아내, 자식을 다 버리고), 긴 긴 명상을 하고, 극도의 고통을 통한 수행을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여자들은 배제됐다. 여자가 도통해 영적 힘을 가진 자가 누리는 특권을 누릴까 두려웠을까? 경전과 종교의 상부 조직에 여자는 끼워 주지 않는 많은 장치들을 해 두어서, 지금까지도 여성배제의 근거로 잘 쓰여지고 있다. 여자 교황이 있는가? 여자 선승이 몇이나 있는가? 회교의 종교지도자 중에 여자가 몇이나 있는가?
남성이 중심이 된 종교 안에서 여자들은 그저 열심히 노동력을 제공하고, 착하디 착하게 살며, 절대이자 유일한 신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아무런 불평 불만도 없이 살아 왔다. 그런 믿음을 실천하다 한 여자가 죽을 때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한이 없을까? 여자로서의 인생을 실컷 살아 보았다고 느껴질까?
7) 같은 책, 42 쪽.
“Magic is the art of changing our consciousness at 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