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정신과지나영마음이흐르는대로 p282-283
나 자신과의 미팅이 더 중요하다는 것
남편은 내가 머리를 굴리며 잡생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Shut off your brain(머리를 꺼)”이라고 말하며 핀잔을 주곤 한다. 실제로 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 부터 잠자리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말 그대로 온종일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다(집중력 부족 과다행동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대개 이러하며, 내 아버지도 이러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런 내 성향은 유전인 것 같다). 사실 병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는 게 사람을 이토록 지치게 할 만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인지 알지 못했다. 뇌무게는 우리 몸무게 중 고작 2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뇌는 몸 전체 혈류의 15퍼센트, 하루 치 열량의 25퍼센트정도를 소비하는 매우 비중 있는 장기다. 그러니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거나 신경을 쓰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신체적인 노동보다도 뇌의 노동이 사람을 더 녹초가 되게끔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병에 걸리고 난 후, 내 몸에서는 뇌로 가야 할 혈류와 에너지 공급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서 나는 반강제로라도 뇌를 충분히 쉬게끔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심장관상동맥 질환으로 인해 심장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드는 경우 격한 운동을 하면 심한 통증이 오듯이 뇌로 가는 혈류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생각을 골똘히 할수록, 즉 뇌를 격하게 운동시킬수록 두통이 심해지는 걸 나날이 경험했다. 그러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머릿속 생각들을 어떻게 끊어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내뇌를 마치 컴퓨터를 종료하듯 끌 수 있는지가 내 삶의 크나 큰 과제가 되었다.
* 필자의 체험 (통하는기도 차동엽 p286)
이 사탄 또는 마귀가 하는 일은 구원을 방해하고, 사람을 타락으로 이끌며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다. 필자는 특히 마귀의 방해 공작과 관련된 체험이 많다.
한번은 신흥영성운동을 연구할 때 일어난 일이다. 알다시피 여기에는 사탄이 배후로 깔려 있다. 우선 기초자료조사를 위해 한 연구원을 전담으로 동원시켰다. 그런데 그 뒤로 이 연구원이 연구소에 오면 이상하게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조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그 이유가 새로 가입했다는 동아리활동 탓인 줄로만 알았다. 거의 한 달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래서 일단 작업을 정지시키고 다른 연구원에게 맡겨보았다. 그런데 약속한 날짜가 됐는데도 기초자료가 안 올라오는 것이었다. 화가 난 필자는 여태껏 한 자료들만이라도 다 받아서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연구소에 도착한 필자가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전부 훑어보는데 내용이 보통 뒤죽박죽이 아니었다. 가장 머리 맑던 그 시간이 그날따라 어수선한 원고들로 인해 두통과 졸음이 확 몰려 오는 것이었다. 그제야 필자는 실체를 파악했다. 곧바로 기도서를 꺼내 ‘103위 호칭기도’를 바치고 대천사 세 분을 불러 각각 기도드렸다.
“영적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오셔서 이 하늘을 맑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30분도 채 안 되어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고 졸리던 기운이 가시는 것이었다. 몇 달 동안 진척 없던 그 작업은 필자의 명오가 열리자 오전 내에 다 정리되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신흥영성운동을 낱낱이 파헤친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라는 책이다. 이 체험을 통해 필자는 확실히 깨달았다. ‘역시 대천사들의 끗발이 좋구나, 진짜 어려울 때는 이분들을 불러 기도해야겠다!’
또 다른 체험은 『다빈치 코드의 족보』라는 책을 집필할 때다. 당시 『다빈치 코드』가 유행하면서 일부 젊은이들과 무신론자들 사이에는 예수님을 부정하고 교회를 멸시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필자는 그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 다빈치 코드가 내세운 얼토당토않은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쓰는 중이었다. 역시 기초자료 수집을 위해 연구원 한 명을 투입시켰다. 그런데 그 연구원이 얼마 못 가 필자한테 상담을 요청했다.
“신부님, 이걸 연구한 이후로 밤에 잠을 못 자고 뭔가 헛것이 자꾸 나타나요. 건강도 나빠지는 것 같구요.”
대충 짐작한 필자는 그 연구원 대신 일부러 아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연구원에게 맡겨보았다. 역시나 곧 골치가 지끈지끈해서 못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 해 놓은 원고작업들을 몽땅 날리기까지 했다. 결국 필자가 전 작업을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경험상 이렇듯 아주 중요한 영적인 싸움은 말하자면 일반신자들이 건드렸다간 공격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영적 전쟁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다.
* 내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편지 2305)
조선시대 이씨(李氏)는 대대로 부자였는데 증손, 현손에 이르러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어려움을 면하기 위해 한양의 집을 홍씨(洪氏)에게 팔았습니다.
평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홍씨라는 사람은 그렇게 한양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커다란 기와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대청의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무너지려는 것을 보고 수리를 하였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로운 기둥을 세우기 위해 헌기둥을 뽑아낸 자리에서 어찌 된 영문인지 은(銀) 3,000냥이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놀란 홍씨는 급히 수소문하여 집의 이전 주인인 이씨를 찾았습니다. 이씨는 홍씨에게 집을 팔고 검소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홍씨는 이씨를 찾아가 은전이 든 항아리는 이씨의 조상이 간직해 둔 돈이라면서 주려고 했지만, 이씨가 사양하면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집을 팔면서 그 집의 기왓장이나 주춧돌까지 몽땅 당신에게 팔았소. 그리고 그 돈이 우리 것이라는 증명할만한 문서도 없으니 그 돈은 당신 것이 맞소.”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홍씨와 이씨의 사연이 관청에 전해지자, 관청에서는 조정에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교서를 내렸습니다.
‘우리 백성 가운데 이처럼 어진 자가 있으니, 누가 오늘날 사람이 옛사람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그리고는 은전을 반씩 나눠 가지게 한 뒤, 두 사람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 때의 시인 조수삼의 문집 ‘추재집(秋齋集)’에 실려 있는 이야기입니다.
‘주운 물건은 주인에게 돌려줘야 해요.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돼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어릴 적부터 배우지만, 좋은 것을 보면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그런 본성을 억누르고, 심지어 자신의 것이라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큰 재물을 보고도 양보하고, 더 합당한 주인을 찾으려 하는 행동은 크게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세상의 어떤 것도 그대의 정직과 성실만큼 그대를 돕는 것은 없다.
- 벤자민 프랭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