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商道)』는 한 조선시대 상인의 삶을 통해 바른 상행위와 경영의 도가 무엇인가를 깨우쳐주는 소설이다. 예로부터 상업은 직업의 위계에서 가장 낮은 천격(賤格)으로 여겨졌다.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기고 그 이윤으로 부를 쌓는 상행위는 군자가 해서는 안 될 도리로 여겼던 것이다. 주자학의 전통 위에서 삶의 도를 구하고자 했던 조선시대에는 만물의 이치를 구하고 그 이치에 맞는 예와 도를 따르는 것이 삶의 정도로 이해되었다. 오로지 물건을 팔고 이윤을 추구하는 상도는 만물의 바른 이치가 서지 못하는 사도(邪道)요, 품격과 예가 없는 천도(賤道)였다. 그 옛사람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부자가 되자 !’고 주문을 외고, 재테크가 생활의 도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풍속을 꿰뚫어 보았다면 그 도저한 윤리의 퇴락과 퇴폐에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도(商道)』는 조선시대의 무역왕이자 대상(大商)으로 성공한 한 인물의 흥미로운 인생유전을 통해 사람들이 천격으로 여기는 상업에 도가 있음을 실증하는 그런 소설이다.
임상옥은 의주 태생의 상인이다. 스무 살 무렵 중국 연경에 들어가 큰돈을 손에 쥐지만 유곽에 팔려온 장미령을 딱한 사정을 듣고 자유의 몸을 만들어준다. 임상옥은 공금을 유용한 죄값으로 상계에서 파문을 당한다. 멀리 도약하려는 개구리는 제 몸을 크게 움츠린다. 이 파문은 임상옥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내는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모든 영웅담에서 영웅들은 시련을 만나면 그 시련을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 안과 밖이 더 큰 인물로 자라나는 법이다. 시련은 그 사람의 내면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는 까닭이다. 상계에서 파문 뒤에 임상옥은 승려가 되어 때를 기다리는데, 임상옥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으로 풀려 고관대작의 첩이 된 장미령이 이번에는 임상옥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깊은 물에 저를 숨긴 잠룡(潛龍)이 하늘로 올라갈 때를 놓치지 않는다. 임상옥은 환속하여 재기의 걸을 걷는다.
서울의 군권과 치안을 맡는 총융사 벼슬자리에 있던 박종경이 친상을 당하자 임상옥은 5천 냥을 들고 달려가 문상을 한다. 거액을 조의금으로 낼 뿐만 아니라 1백 냥을 풀어 그 집 종들에게 몇 푼씩 쥐어주고 술도 사준다. 임상옥은 박종경이 반드시 저를 찾으리라고 예견한다. 과연 상을 치른 박종경은 며칠 후 임상옥을 찾는다. 박종경이 임상옥의 사람됨을 시험하기 위해 묻는다. “남대문으로 사람이 몇이나 출입하는지 알겠느냐.” 임상옥은 거침없이 “두 명입니다.”라고 답한다. 사람이 많아도 이(득)도 해도 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니 쓸모 있는 사람은 이, 해 두 명 뿐이라는 기발한 대답이다. 박종경은 대번에 임상옥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깨닫고, 그에게 인삼교역권을 맡긴다. 상인 임상옥의 예지와 분별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웅담에는 시련에 빠진 주인공이 벗어날 수 있는 조력자들이 항상 나타난다. 임상옥에게는 석숭 스님이 바로 그런 조력자다. 임상옥이 하산할 때 석숭 스님은 세 가지 비결을 내려준다. ‘죽을 사(死)’ 자와 ‘솥 정(鼎)’ 자와 ‘계영배(戒盈盃)’가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는 중국 상인들이 인삼불매동맹을 맺으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임상옥은 스스로 인삼을 태운다. 제 상품을 태워버리는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중국 상인들의 잔꾀를 단번에 깨버린 이 수법은 죽음으로 삶을 구하라는 석숭 스님이 내려준 첫 번째 비결을 따른 것이다. 두 번째는 홍경래의 뿌리치기 힘든 유혹에 임상옥은 ‘솥 정(鼎)’자의 비의를 풀고 거기에 기대어 목숨을 구한다. 번성하는 길로 보이는 길이 실은 죽음의 길이고, 죽음의 길이라고 보인 길은 실은 삶의 길이 되는 것은 현실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다. 임상옥은 과욕을 경계하고 제 분수를 지킴으로써 난세에 제 목숨을 지켜내는 것이다. ‘계영배’에 숨은 비의는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계영배는 가득 채우면 다 없어지고 오직 팔 할쯤을 채워야만 그 안에 든 술이 온전하다. ‘계영배’는 가득 채우려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계영배’의 교훈은 최고의 상도(商道)가 많이 팔고 많은 이윤을 얻는데 있는 게 아니라 욕심을 버리고 자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임상옥은 나아가고 물러설 때를 깨닫고 그에 따라 저의 처신을 분명히 했다. 임상옥이 난세에 제 목숨을 부지하고 상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바로 그런 현실을 정확하게 바로 보는 눈과 처신의 엄격함에 있었다. 임상옥은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을 솔개가 채어가는 모습을 보고, 제 명운이 다했음을 깨닫는다. 임상옥은 저에게 빚진 상인들을 불러 모아 빚을 탕감해준다. 어디 그뿐인가. 그들에게 금덩어리까지 들려 보낸다. 임상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차피 빚이란 것도 물에 불과한 것.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받을 빚이요, 갚을 빚이라 하겠는가. 또한 빚을 탕감하고 상인들에게 금덩어리를 들려 보낸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상인으로서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불과한 일이다.” 임상옥이 평생을 바쳐 추구한 상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임상옥은 ‘재상평여수(財上平如水) 인중직사형(人中直似衡)’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는 뜻이다. 최인호는 2백여 년 전에 실재했던 인물 임상옥을 통해서 이 시대의 바른 상도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했고, 사람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다. 『상도(商道)』의 주인공인 임상옥은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는 해야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의 분별이 뚜렷했고, 작은 이윤을 따르는 것보다 의와 도를 따르는 것이 더 큰 이윤을 남기는 일임을 보여준다. 『상도(商道)』는 삼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상도(商道)』가 그렇게 많이 팔린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우선 한번 잡으면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소설이 재미있다. 최인호의 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소설이 바로 『상도(商道)』다. 그리고 『상도(商道)』에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삶의 지혜와 교훈이 녹아 있다. 사람들은 돈을 따르고 벌기를 바라지만,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를 모른다. 『상도(商道)』는 어떻게 돈을 벌고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임상옥이 평생을 바쳐 추구한 상도는 곧 사람의 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