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역사무협소설] 반역 <513> 제국의 함대(14)
키르키스 산줄기를 따라 포진한 금군은 철기 제4군이었는데 군단장은 평원왕 쿤두스였다. 쿤두스는 타타르 출신으로 기마전술에 능한 용장이다.
"적의 척후가 돌아갔으니 지금쯤 케말이 진용을 갖췄을 것입니다."
군사 보르고가 말했을 때 쿤두스는 빙긋 웃었다.
"오스만 제국군과 처음으로 전면전을 치르는 것인가?"
"양대 제국간의 첫 싸움이나 같습니다. 이번 싸움이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대금의 명예가 걸려 있다."
얼굴을 굳힌 쿤두스가 시립하고 있는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겔리볼루를 함락하여 오스만 제국의 해상권을 묶어놓은 상황에서 우리가 이번 육지전을 이긴다면 서역 정벌은 이룬 것이나 같다. 각자 목숨을 바쳐 직분을 다하라."
장수들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진막을 나갔을 때 쿤두스가 입술 끝만 구부리고 웃었다.
"케말은 아직 우리 전력을 모를 것이니 한발 앞서 나갔다."
"대지가 연일 화창하니 작전에 지장이 없을 것 같소이다."
보르고가 화답했다. 쿤두스군 전투병 4만은 모두 총포로 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해 소치항에서 베네치아의 너디치로부터 소총 10만정과 대포 1000정을 받은 것은 한달전이다. 그래서 제4군 뿐만이 아니라 제3군과 2군도 총포를 소지하게 된 것이다. 쿤두스가 굳어진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좋다. 내일이 결전이다."
다음날 정오가 조금 지난 미시 무렵이 되었을 때 앞쪽 지평선에서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구름이 낮게 깔린 것처럼 보였지만 한식경쯤이 지났을 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의 기마군이다. 기마군은 사열 횡대로 벌려져 있었는데 그 폭이 6리(3000m)나 되었다. 기마군 7만이 벌려서 있는 것이다. 기마군은 속보로 전진해 오는 중이었으므로 윤곽이 차츰 선명하게 드러났다.
"장관이다."
중군 진막이 있는 낮은 언덕 위에 선 쿤두스가 감탄했다.
"오스만 기마군의 위용이 대단하다."
"서역땅에서는 천하무적이지요."
보르고가 역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것이 감탄한 표정이었다.
"기마군 뒤에 보군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포군은 그 뒤쪽에 있지요."
거기에다 기마군은 셋중 하나가 총포병으로 마상에서도 총을 발사하는 것이다. 총포는 화살보다 빠른데다 거리도 두배 가깝게 된다. 쿤두스가 머리를 끄덕였다.
"놈들이 우리 기마군을 기다리는군."
그러나 이쪽은 조용해서 기침소리 한번 들리지 않았다. 거기에다 기마군은 뒤쪽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다. 쿤두스는 아군의 진을 다시 훑어보았다. 이쪽의 전면에 배치된 군사는 보군으로 총포군이다. 역시 횡대로 배치된 총포군은 3열로 엎드려 있었는데 오스만군 측에서는 보이지가 않을 것이었다.
"거리가 2리(1000m)로 가까워졌소이다."
침을 삼킨 보르고가 말했으나 쿤두스는 입을 꾹 다문채 앞만 보았다. 땅은 더욱 흔들리면서 오스만군의 말울음 소리까지 들려왔고 가끔씩 지르는 함성이 메아리를 쳤다. 그때 쿤두스가 입끝을 올리며 웃었다.
"저 놈들은 아직 우리가 총포를 갖고 있지 않는 줄로 안다."
그리고는 쿤두스가 허리에 찬 칼을 번쩍 빼들더니 허공에 대고 휘저었다. 그것이 신호인 것이다.
[이원호 역사무협소설] 반역 <514> 제국의 함대(15)
그때는 오스만의 기마군이 벌써 300보쯤 앞쪽으로 다가왔을 때였으니 총포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 후였다.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이쪽을 바라보던 보군 지휘관이 벽력같은 호령을 질렀고 그 순간 보군의 전열 총포군 8000이 일제히 총포를 발사했다.
오스만 기마군은 그때 전력으로 쇄도해오던 중이었다. 거리는 벌서 200보로 다가온 터라 기마군의 얼굴까지도 드러나 있었다.
"우르르 쾅!"
보르고에게는 일제히 발사된 총포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그 순간 4열로 쇄도해오던 오스만 기마군의 앞 열 태반이 말과 함께 곤두박질을 치며 땅바닥에 뒹굴었다. 다시 보군 지휘관의 호령 소리와 함께 제2열 총포대가 발사했고, 오스만 군은 또다시 무너졌다.
3열의 총포가 발사되었을 때 총포를 피한 일부 오스만 군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다가 재빨리 탄약과 탄알을 장전한 제1열 총포대가 굉음을 내며 발사하자 단 한명도 건너오지 못했다. 다시 굉음이 다섯번째 울렸을 때 오스만군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진을 멈추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섯번째 총포가 울렸을 때 겨우 3할 정도의 오스만 기마군이 말꼬리를 보이며 퇴각하기 시작했는데 일곱번째 발사를 피해 살아 돌아간 기마군은 겨우 1할 정도였다.
"기마군 7만이 전멸했소이다!"
너무나 격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보르고가 고함치듯 말했을 때 쿤두스는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고 태연했다.
"기마군을 전진시키라."
쿤두스가 옆에 선 전령장수에게 말하자 곧 호포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뒷열에서 대기하던 쿤두스의 타타르 기마군이 함성을 지르며 돌진해 나왔는데 사기가 충천했다. 그들 모두는 눈 앞에 서 타타르의 기마군이 몰사당한 것들을 본 것이다.
"보군을."
쿤두스가 짧게 외치자 곧 우렁찬 호포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이제는 보군이 전진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수레에 대포를 실은 포군이 따른다.
"천하, 오스만군이 퇴각합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전방을 살피던 보르고가 소리쳤다. 지평선을 가득 덮고 있던 오스만 보군의 대열이 흐트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이쪽의 기마군은 벌판을 무인지경으로 달려 오스만군의 양쪽 옆구리로 돌입하는 중이다. 기마군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 것이다.
"전진!"
쿤두스가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손으로 앞쪽을 가리키자 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진군이다.
"고유방의 유격군이 제 때에 돌입해야 할텐데."
쿤두스가 혼잣소리처럼 말했으므로 보르고는 외쪽의 산줄기를 보았다. 그때 고구려 유민 출신이며 원정군의 유격군 총사령인 고유방은 기마군 2만5000을 거느리고 맹렬하게 질주하는 중이었다.
고유방은 총사령인데도 불구하고 앞에 선봉군 3000만을 세운채 중군의 선두에 섰다.
"왼쪽이 본진이올시다."
고유방의 부장인 원개가 소리치며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미 흐트러진 오스만 보군 수만이 무리를 지어 쫓겨오고 있었는데 밝은 햇빛에 쇠갑옷이 초라하게 번쩍였다. 눈을 크게 뜬 고유방이 원개가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선봉대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다."
바로 케말 왕자의 본진이다.
[이원호 역사무협소설] 반역 <515> 제국의 함대(16)
"전하, 이쪽으로."
위사장이 악을 쓰듯 소리쳤으므로 케말은 머리를 돌렸다. 무너지기 시작한 전열은 걷잡을 수 없게 되어서 군사들은 아예 무기를 동댕이친 채 도주하고 있다.
위사장은 유탄에 맞아 한쪽 팔이 피범벅이었다.
"적 기마군입니다. 어서."
위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하늘을 덮은 먼지구름이 보였다. 적이 배후에서 공격해 오고 있는 것이다.
"아아, 어찌 이럴 수가."
케말이 치를 떨며 말을 뱉었지만 이제는 어깨가 늘어져 있었다. 말고삐를 챈 케말은 100여기의 위사에 둘러 쌓인 채 서남방을 향해 달렸다. 그로서는 철석같이 믿었던 기마군이다. 쇠갑옷으로 무장한 기마군은 금군의 화살쯤은 튕겨내고 단숨에 사분오열시켜야 정상이었는데 처참하게 궤멸되었다.
금군이 총포를 사용하고 있을 줄은 예상치도 않았던 케말이다. 전장을 이탈했지만 아직도 마음을 놓지못한 케말은 위사들에 둘러쌓여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15만 대군중에서 살아남은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짐작도 되지 않는다.
"분하다."
달리는 말위에서 마침내 케말이 눈물을 쏟았다. 그로서는 치욕적인 패전인 것이다. 그때였다. 앞쪽 산모퉁이를 돌아나오는 일대의 기마군이 보였으므로 케말은 눈을 부릅떴다.
"전하! 매복군입니다."
위사장이 안간힘을 쓰듯 외치고는 눈을 치켜뜨고 케말을 보았다.
"전하! 동쪽으로 피하소서. 소장이 적들을 막겠소이다."
"어허."
그 경황중에서도 케말이 허탈하게 웃었다. 다가오는 기마군은 500기도 넘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쪽의 5배가 넘는다.
"어서!"
위사장이 소리치며 케말의 말고삐를 잡아 왼쪽으로 비틀었다. 그러자 말은 머리를 동쪽으로 틀어 달렸다. 이제 케말을 따르는 위사는 10여기 뿐이다. 나머지는 위사장을 따라 적을 막으려고 갈라진 것이다.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케말은 목구멍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위사군 5000은 양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기마군을 막으려고 2000으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1000여기로 나중에는 100여기까지 되었는데 결국 지금은 10여기가 남았다.
철기군의 공격은 교묘하기 짝이 없어서 두갈래로 나뉘어져 공격하는 것 처럼 보였다가 그것을 헤쳐나가면 다시 네갈래, 여섯갈래로 늘어났다. 동녁 기마군과의 교전은 처음인 케말이어서 전혀 전법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아앗! 전하!"
옆에서 외치는 소리에 케말이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위사가 손짓으로 가리키는 앞쪽에서 달려오는 기마군이 보였다.
"적입니다!"
위사가 악을 쓰듯 외쳤을 때 케말은 허리에 찬 칼을 빼들었다.
"으음, 곧장 돌격한다."
눈을 치켜뜬 케말이 말했으나 10여명의 위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기마군은 500여기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죽자!"
케말이 칼을 치켜들고 소리쳤으나 두어명의 위사만 갈라진 목소리로 짧은 외침만 뱉었다. 앞쪽의 기마군은 정연하게 선채 다가오고 있었는데 황금색 깃발이 오후의 태양빛 아래 번쩍였다.
"자, 나를 따르라!"
기마군과의 거리가 100여보로 가까워졌을 때 케말은 미친듯이 소리쳤다.
[이원호 역사무협소설] 반역 <516> 제국의 함대(17)
고유방 휘하의 500인장 복군도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원정군에 소속되었는데 언제나 치중대를 맡거나 후위에 소속되었던 바람에 이번 전투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후방의 매복군으로 배치되어 크게 낙담하고 있었던 복군이다. 500 기마군의 맨 앞장을 서서 달리던 복군은 달려드는 10여기의 오스만군을 보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거리는 아직 300여보 정도였으므로 말할 여유는 있다.
"저 놈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그때서야 허리에 찬 칼을 스르릉 빼든 복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양쪽에서 달려오고 있는중이라 거리는 금방 200보로 가까워졌다.
"가만, 저놈들은 조금 이상하다."
복군이 혼잣소리로 말했다. 오스만 기마군들은 모두 한덩어리가 되어 있었는데 중앙의 장수를 보호하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순간 복군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중앙의 장수는 생포하라!"
복군이 칼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투구를 벗고 맨머리를 한놈이다!"
케말은 쓰고 있던 황금 투구가 눈에 띌까봐 벗어 던졌지만 그 혼자만이 맨머리였다. 거기에다 70, 80보 앞으로 다가간 복건은 케말의 호화로운 옷차림을 보았다. 이놈은 보통 장수가 아닌 것이다.
"이얏!"
쌍방이 내지른 함성과 함께 칼날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으나 싸움은 그것으로 끝났다. 오스만 기마군 10여기는 단 한차례의 부딪침으로 전원 몰사를 한 것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한명에게 대여섯이 창과 칼을 내질렀으니 당해낼 재간이 있을리가 없다.
"이놈들!"
그러나 한사람 케말은 살아 있었다.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치며 좌충우돌했지만 빙 둘러싼 500기의 기마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칼등으로 팔목을 맞아 이미 쥐고 있던 칼마저 떨어뜨린 상태인 것이다.
"저 놈을 끌어내려라."
한쪽에 말을 타고 서 있던 복군이 명령했을 때 거친 군사 하나가 나서더니 창으로 케말의 말목을 찔렀다. 말이 앞다리를 치켜 올렸다가 그대로 엎어졌으므로 케말은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케말의 몸을 굵은 삼줄로 동여매고 꿇어 앉친 것은 잠시 후였다.
"신분이 무어냐고 물어라."
복군이 오스만어에 능한 군사에게 말했다.
"속인다면 단칼에 목을 베겠다고 일러라."
그리고는 복군이 머리를 들고 앞쪽을 보았다. 전방에서는 이미 병력수로 3배가 넘는 오스만 군을 궤멸시켜 대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고작 장수 하나를 생포하고 기마군 10여기를 베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공을 세울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때 케말과 말을 주고받던 군사가 번쩍 머리를 들고 복군을 보았다.
"나리, 이자가 오스만 제국의 왕자 케말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놀란 복군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고 둘러선 기마군들이 웅성거렸다.
"케말 왕자라고?"
"그렇다고 합니다."
"으으음, 저 놈이."
눈을 찢어질듯이 치켜뜬 복군이 오랏줄에 묶여 꿇어앉은 케말을 보았다. 이것은 길에서 우연히 금덩이를 주은 것이나 같다.
"저 놈의 결박을 손만 묶고 말에 태우도록 하라."
복군이 떨리는 목소리를 말했다. 틀림없이 천인장으로 승급이 될 것이었다.
[이원호 역사무협소설] 반역 <517> 제국의 합대(18)
겔리볼루에 머물고 있는 황제 이반에게 오스만 제국의 왕자 케말이 끌려온 것은 7월 중순 무렵이었다. 그때는 겔리볼루는 요새화 되어 있는데다 사방 200리 지역을 대금의 직할 영토로 삼아 2개 철기군단을 주둔시켜 놓은 상황이다.
거기에다 수군제독으로 임명된 장규가 밤낮으로 수군을 조련시켜 이제는 갈리온선도 조랑말 타듯이 수군들이 부릴 수가 있게 되었다. 항구의 진막에 머물고 있던 이반에게 케말을 데려온 장수는 이번 공으로 1000인장에 봉해진 복군이다.
"폐하, 오스만국의 케말 왕자입니다."
이제 장수들의 공용어가 된 조선어로 겔리볼루 총독 안수홍이 아뢰었지만 이반의 시선은 케말의 뒤쪽에 납작 엎드려 있는 복군에게로 향해졌다.
"그대가 오스만 왕자를 잡았느냐?"
조선어로 황제가 직접 물었으므로 복군의 벌렁거리던 심장이 딱 멎었다.
"예, 폐하, 소인의 부하들이."
"장하다."
머리를 끄덕인 이반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칼집채 빼더니 내밀었다.
"이미 1000인장으로 승급되었다니 이것은 내 상이다. 받아라."
놀란 복군이 눈만 치켜뜨고 벌벌 떨었을 때 옆쪽에 서 있던 1만인장 누군가가 눈을 부릅뜨고 얼른 나가라는 눈짓을 했다. 엉거주춤 일어선 복군이 다가가 칼을 받았을 때 이반이 싱긋 웃었다.
"신의를 지키는 장수가 되도록 하라."
복군이 답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가슴이 탁 막히더니 대신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그때서야 이반의 시선이 케말에게로 옮겨졌다. 케말은 이제 반듯한 차림에 수염도 깨끗이 다듬었고 묶지도 않아서 손님 행색이었다.
"그대는 이곳에서 지내도록 하라."
이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을 때 옆에 서 있던 바쑤가 투르크어로 통역했다. 바쑤는 모하마드 성주 칼리파의 사령관이었다가 포로가 된 오스만 제국 출신이다. 물론 케말은 바쑤를 알고 있던 터라 눈을 치켜뜨고 가만 있었다.
"그대는 손님이야, 겔리볼루 지역을 마음대로 다녀도 좋다."
바쑤의 말을 들은 케말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질이군. 오스만 대제국 군이 공격해 올 적에 나를 성문 앞에 매달겠지."
이반이 바쑤의 통역을 듣더니 싱긋 웃었다.
"이미 대금국은 동쪽 끝에서 이곳까지 수만리의 영토를 갖게 되었다. 오스만국은 대금에 비하면 어른 앞의 갓난아이라고 생각지 않는가?"
"오스만 대제국은 최강이다."
바쑤의 통역이 끝났을 때 진막 안에 모여있던 100여명의 고관들이 소리내어 웃었다.
이반도 다시 빙그레 웃더니 옆에 서 있던 군사 허도행을 보았다.
"군사께서 왕자에게 지도를 보이시오."
"예. 폐하."
역시 웃음띤 얼굴로 허도행이 대답하더니 곧 케말의 앞에 사방이 여섯자나 되는 비단으로 만든 지도를 펴놓았다. 케말로서는 처음 보는 지도였으며 눈을 좁혀 뜨고 보았으나 어디가 어딘지 알 수 가 없다.
"자, 이곳이 대륙이오."
허도행이 엷은 노랑물감으로 칠해진 부분을 지휘봉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푸른색은 바다이고."
그리고 허도행의 지휘봉이 검은 선을 따라 이동했다.
"이 검은선이 대금의 영토외다. 그리고 오스만국은 이곳, 우리가 있는 겔리볼루는 여기요."
케말의 뒤쪽에서 머리만 뽑고 있던 복군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대금의 영토는 전 대륙의 반도 넘는 것이다.
[이원호 역사무협소설] 반역 <518> 제국의 함대(19)
눈을 치켜뜬 케말이 지도를 내려다 보았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한 눈에 알아 볼 수가 있었다. 대금의 영토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한줌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짐승에 비교하면 말 앞에 선 강아지만 했다. 그때 황제 이반이 말했고 바쑤가 통역을 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킬 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이곳 겔리볼루에서 석달이나 머문 이유를 그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어서 이반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나는 동과 서를 잇는 대제국의 황제로서 문명을 교환하고 왕국들의 전쟁을 막아 하늘 아래 모든 백성이 풍요와 평화를 누리게 할 것이다. 그대는 이곳에 머물면서 그것을 보라."
케말은 눈만 크게 뜬채 바쑤의 통역을 들었고 곧 청 밖으로 끌려나갔다. 케말이 나갔을 때 바쑤가 익숙해진 조선어로 이반에게 말했다. 그는 이제 이반의 측근이 되어 밤낮으로 조선어를 익힌 것이다.
"폐하, 케말을 심복시키려면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알고 있다."
쓴웃음을 진 이반이 머리를 끄덕였다.
"마호메트 3세가 내 계획을 알게 된다면 케말의 안위는 개의치 않고 전력으로 공격해올테니 주의하도록 하라."
"소신이 힘껏 해보겠소이다."
바쑤가 얼굴을 굳히고는 허리를 굽혔다. 이반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자 케말을 심복시켜 오스만 제국의 황제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부자간의 다툼이 된다. 그때 허도행이 입을 열었다.
"마호메트 3세의 측근중에서 이 계획을 짐작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요."
이반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가 웃음띤 얼굴로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케말은 아직 마호메트의 후계자이니 후계자를 죽였다는 책임을 뒤집어 쓸테니까 말이요."
그날밤 이반이 침소에 들어섰을 때는 자시 무렵이었다.
"케말을 끌고 왔다지요?"
헬레나는 이제 황후 행세를 하고 있었는데 조선어에도 조금 익숙해졌다. 시녀들과 함께 밤낮으로 조선 출신 위사로부터 조선어를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반이 머리만 끄덕이자 헬레나가 겉옷을 벗기면서 말을 이었다.
"케말은 여자를 밝혀서 카스틸랴 왕국에서도 여자 수십명이 끌려갔습니다. 혼자 지내기가 어려울텐데요."
"그런가?"
저고리에 바지 차림이 된 이반이 보료 위에 앉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군사도 그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 그렇다면 여자를 보내야겠다."
"제가 시녀 중에서 눈치 빠르고 믿을 만한 아이를 몇명 고르겠습니다."
이반의 옆에 앉은 헬레나가 붉은 입술을 펴고 웃었다.
"침실에서 나누는 정담이 진심에 가장 가깝습니다."
"허, 그대는 모사로다."
따라 웃은 이반이 헬레나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영민한 헬레나는 이반이 케말을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이반이 헬레나의 저고리를 벗겼을 때 희고 둥근 젖가슴이 드러났다.
"불을 끄겠습니다."
상반신이 알몸인채 자리에서 일어선 헬레나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불을 끄고 돌아온 헬레나가 금방 알몸이 되더니 이반에게 바짝 붙었다.
"저는 이제 카스틸랴 왕국이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헬레나가 서둘러 이반의 바지를 벗기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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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