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2일,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제 497회 한사모 주말걷기에 함께 하기 위하여 48명의 회원님들이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매표소 앞에 모였습니다.
함수곤 대표님 내외분께서도 일찍 나오셔서
오시는 분들과 오랫만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돈화문 앞 계단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인원 점검을 한 후
고궁의 단풍 구경에 모두들 밝고 환한 표정으로 입장하였습니다.
돈화문은 서울의 궁궐 정문 중 가장 오래된 문으로
'왕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을 돈독하게 교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2층에 종과 큰 북을 걸어두고,정오와 야밤의 통행금지는
종을 치고 통행금지의 해제는 북을 쳐 시간을 알렸다고 합니다.
돈화문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남겨두고 60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금천교 돌다리를 맑고 바른 마음으로 건너 진선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금천교 주변의 나무들도 곱게 물든 붉은 단풍으로 불타는 듯
숨막힐 것만 같은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도 선사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창덕궁 후원을 산책하러 왔기 때문에 긴 설명은 하지 않겠으나,
진선문을 지나면 저 멀리 보이는 숙장문과의 사이에 넓은 공간이 펼쳐집니다.
인정전의 외행각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YS 때(1996)부터 시작된 재건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으로 드나드는 인전문에서는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등 조선의 여러 왕들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인정전은 창덕궁에서 가장 권위있는 건물입니다.
이곳에서는 왕이 혼례를 치르거나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거나 신하들에게
하례를 받는 등 공식적인 국가행사를 치르던 공간입니다.
인정전에서 나와서 헌종의 사랑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마지막 황실 가족의 생활공간이었던 낙선재를 둘러보았습니다.
낙선재는 조선의 제24대 왕인 헌종(재위 1834-1849)이 자신의 연침(왕이
평소에 한가로이 거처하던 전각)으로, 그 동쪽에 위치한 석복헌은 헌종이
새로 맞이한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로, 다시 그 동쪽으로 자리한
수강재는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순조의 왕비)의 처소로 마련한 공간입니다.
이 세 채의 건물이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지면서도, 뒷동산에 조성된 후원이
운치를 더하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검소하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참고로 영친왕의 비인 이방자 여사는 낙선재에서 지내다가 1989년에
타계했으며, 덕혜옹주도 이곳 수강재에 머물며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가
같은 해인 1989년 열흘 사이로 두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곳 석복헌에서는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머물다가 1966년에
세상을 떠났고 미국에서 귀국한 이구 씨도 한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오후 3시가 되어 창덕궁 후원(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후원 입장료는 5천원이며, 경로우대가 없습니다.
휴식과 사유의 공간이었던 창덕궁 후원은 울창한 수목과
연못, 정자가 한데 어우러져 우리나라 궁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 정원의 멋과 운치를 더하는 아름다운 공간입니다.
오늘처럼 해설사의 안내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관람 기간에는
단풍에 물들어가는 자연 경치를 관람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마치 그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그대로 즐기고 감상하는 맛이 일품인 시기라 하겠습니다.
창덕궁 후원을 일컫는 여러 명칭이 있지요.
'후원(後苑)'은 궁궐 건물 뒤편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궁궐의 북쪽에 있어
'북원(北苑)', 왕족 이외에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어서 '금원(禁苑)'이라 합니다.
또 궁궐의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내원(內苑)'이라고도 하며,
왕의 정원이라는 의미로 '상림원(上林園)'이라고도 불립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비원(秘苑)'은 1903년 대한제국 당시에 후원의
관장부서가 '비원(秘院)'이었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비밀스러운 정원'
이라는 비원(秘苑)의 의미로만 일컬어지게 된 것입니다.
간혹 후원에 와서 비원을 찾는 분도 있는데, 비원이 바로 후원입니다.
중희당 터에서 후원 안쪽으로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 시원한 바람이
먼저 반기며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바람을 맞으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하늘도 올려다보고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나뭇잎도 감상하며 야트막한 경사로를 유유히
걷다 보면, 제일 먼저 닿는 곳이 바로 부용지 일원입니다.
네모난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영화당이,
서쪽으로는 사정기비각이 자리하고, 남쪽으로는 부용정이
물위에 반쯤 뜬 채로 세워져 있습니다.
부용정 건너 북쪽 마루턱의 넓은 터에는 주합루(1층이 규장각),
그 아래로는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에 지은 정자들이 모두 그렇듯, 이곳 주합루 일원의
정자들도 규모가 작습니다. 이는 자연 경관을 위압하지 않으면서도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한 배려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영조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는 영화당을 지나 후원 안쪽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담장과 불로문이 나옵니다.
왕의 불로장생을 기원하기 위해서 십장생의 하나인 돌로
불로문을 만들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기에 우리 일행도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문을 지났습니다.
불로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이 애련지 일원이고, 왼쪽 언덕에는
효명세자가 개인 서실로 사용하였던 의두합 일대가 자리합니다.
연꽃은 더러운 물속에서도 오염되지 않고 청아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치우침이 없는 군자의 기개에 비유됩니다.
애련정은 기둥을 따라 펼쳐지는 저녁 햇살의 가을 풍경이 아주
아름답고, 의두합은 소박한 맛이 나는 검소한 왕세자의 공간입니다.
애련정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연경당이 나옵니다.
효명세자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고자 1827년에
창건하였고, 1856년 고종이 새로 지은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단청을 칠하지 않고 사대부집 형태로 지은 연경당은 남자와 여자의
생활공간을 나누어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 지은 점이 특징입니다.
일반 사대부집을 일컬어 99칸 양반집이라고 하나, 연경당은
이보다 많은 120여 칸 집입니다. 120칸은 방의 개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1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뜻합니다.
연경당 앞으로 흐르는 명당수를 건너면 솟을 대문인 장락문이
보이는 데, 달나라에 있다는 장락궁에서 빌려온 이름입니다.
사랑채 오른편에는 '책의 향기'를 뜻하는 선향재가 있습니다.
서재 겸 응접실 역할을 한 선향재는 궁 안에 유일하게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로 보관하던 책들이 바래지는 것을 막고자 지붕 위에 동판을
씌운 지붕을 덧대고 도르래식 차양을 달아 햇살의 기울기를 조절했습니다.
연경당은 부엌을 안채 북쪽에 독립된 공간으로 짓고 담으로 구획한
한 점이 독특합니다. 안채의 뒤쪽 통벽문 담 너머에 자리잡은
이 부엌은 '반빗간'이라 하며, 음식 장만이며 안주인이 거느리던
이들이 허드렛일을 하였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연경당 일원의 햇살에 반짝이는 가을 단풍의 풍광을 찍기 위하여
카메라를 멘 작가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연경당 뒷문을 지나 작은 고개를 넘으면 가을철 단풍의
아름다움에'와!'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존덕정 일원입니다.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긴 정자 폄우사를
먼저 대하게 됩니다. 이곳은 효명세자가 자주 머물던 독서채입니다.
아랫쪽 관람지에는 부챗살처럼 펼쳐진 마루와 지붕의 모습이
독특한 관람정이 있으며, 현판이 파초 잎 모양을 띠고 있습니다.
1644년 지어진 존덕정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로,
정조가 몸소 지은 글인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는 게판이
북쪽 창방에 걸려 있는 아주 격이 높은 육면정입니다.
지붕 아래 또 다른 지붕을 한 겹 덧댄 모습이며 지붕을 받친
기둥 역시 두 겹을 이루었는데 안쪽 기둥들은 굵은 반면
바깥 기둥들은 가늘어 안정감을 주는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존덕정에서 옥류천으로 가는 산마루턱을 열심히 걸어오면
쉬어가기 알맞은 곳에 취규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취규는 '별들이, 문장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모여들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데, 왕 주위로 인재들이 모여들어 나라가 바로 서고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옥류천으로 들어서기 전 우뚝 선 정자가 취한정입니다.
100년 전만 해도 소나무로 빽빽한 숲을 이루어 여기에
들어서면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서늘했다고 하여
'취한'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생태계의 변화, '전이'를 실감하게 해 줍니다.
흰 바위 밑 작은 폭포가 인상적인 옥류천을 중심으로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농산정 등 여러 정자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습니다.
옥류천 소요암에는 '玉流川'이라는 인조의 친필과
이 일대 경치를 읊은 숙종의 오언절구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飛流三百尺 흐르는 물은 삼백 척 멀리 날고
遙落九天來 흘러 떨어지는 물은 구천에서 오네
看是白虹起 이것을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飜成萬壑雷 온 골짜기에 우렛소리 가득하네
청의정은 궁에서 유일한 초가 정자입니다. 왕이 농사를 지어 가을
걷이를 마치면 그 볏짚으로 해마다 이 정자의 지붕을 이었다고 합니다.
청의정의 모습은 땅을 딛고 하늘로 향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하며
기둥을 지탱하는 주초석 또한 예사 돌이 아닌 옥돌이라 합니다.
태극정은 왕이 수신하는 장소였다고 하며, 소박한 작은 집 모양의
농산정은 왕이 방문했을 때 다과를 준비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옥류천에서 연경당 쪽으로 걸어나가며 창덕궁의 가을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것도 행복이었습니다. 조선의 여러 왕들이 생활하며 신하들과
함께 나라를 경영했던 창덕궁을 도심 한가운데서 이렇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 한사모 회원들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일 것입니다.
특히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느긋하게 후원을 걷고 있노라면...
세계유산으로 궁궐의 모습이 보존된 데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연과 건축의 어울림을 함께 존중한 창덕궁의 모습은
계절마다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이 더해져 언제나 새로운
감동과 멋과 운치를 우리에게 선사해 줄 것입니다.
담장 하나 사이이긴하지만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창덕궁
후원과 인공의 미가 좀 더 가미된 창경궁의 가을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회원 여러분의 심미안으로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창경궁의 가을에 취해서 일까, 오후 4시 30분 창덕궁과 창경궁의
연결 통로 문 닫는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 앞에서 272번 버스를 타고 다시 창덕궁
돈화문 앞으로 되돌아와서 17:00 정각 한식당 향가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향가의 한정식입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려야 할 연말이 다가옵니다. 올 한해도 당당하고,
신나게, 그리고 멋지고 저주며 살아 온 회원 여러분에게 감사하며...
‘당신~~’, ‘멋저!’
‘멋저!!’, '당신~~’
오랫만에 우리 한사모 회원들만의 공간을 확보한 기쁨으로
윤종영, 김용만, 이달희 고문님들의 멋진 애창곡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나병숙 회원님, 손귀연.신원영 부부 듀엣,
한사모의 명가수 이창조 회원님의 열창도 있었습니다.
다음 주(11월19일) 제498회 주말걷기 안내를 맡으신
윤종영 고문님.홍종남 회원님께 한사모기를 인계하였습니다.
다음 주에는 신분당선 '광교중앙(아주대)역' 3번 출구에서 만나서
광교호수공원 내 원천호수 둘레길을 걷는다고 하였습니다.
윤종영 고문님께서는 많이 나오셔서 함께 걷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오늘 사진을 찍으시느라 수고해 주신 윤현희 사진위원님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씀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창덕궁 후원을 함께 걸어주신 한사모 회원님,
안내를 준비하며 여러 회원님들 덕분에 행복하였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첫댓글 창덕궁의 가을의 모습은 아름다움과 감동의 절정이였습니다.
"선향제"의 책 보관법도, 아름다움에 소리가 절로 나는 "존덕정"도, 가을을 온 몸으로 느껴보며 걷고
또 이런 멋-진 후기를 읽어 볼 수 있는 우리 한사모회원들도 말 할 수 없는 자랑이며 행복입니다.
읽고 또 읽어가며 이경환회장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