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김용호
1
내 사랑의 강!/ 낙동강아!//
칠백 리 굽이굽이 흐르는 네 품속에서/ 우리들의 살림살이는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너 함께 길이길이 살 약속을/ 오목조목 산비탈에 깃발처럼 세웠다.//
내 사랑의 강 !/ 낙동강아 !//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 요람이었더냐./ 너는 얼마나 그리운 자장가였더냐.//
앞집 영이와 풀싸움하던 그 언덕에는/ 언제나 우리들의 끔을 재우던/ 황혼의 보금자리가 비좁게 따뜻하였고//
툇마루처럼 올라다니던/ 동리 어구 - 전설의 할무니/ 세 아람이나 되는 은행나무엔/ 우리들의 콧물이 마를 사이도 없었다.//
2
그러나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별은 얼마나 총명한 하늘의 아들이었더냐/ 우리들은 얼마나 총명한 이땅의 아들이었더냐/ [하늘천 따짜지 가매솥에 누른밥]하며/ 콧물이 점점 소매 끝에서 줄어들고/ 수박참외를 하루밤 호-올닥 매어 놓았던/ 그 원두막 [오랑이 딱딱] 할아부지가/ 어딘줄 모르게 시언 섭섭이 떠나가고/ 나룻배 사공-한룡이의 멋떠러진 노래가/ [저 건너 갈미봉]에서/ 무언가 응 [이이다사 마다사]로 바꿔져갈 때/ 우리들은 어린양만 피워서는 안될/ 어무니의 한숨을 기-ㄴ 겨울밤 호롱불 밑에서보았다.//
3
이듬해 봄!//
우리들은 삶의 고달픈 행로의 첫 걸음을/ 지개에 걸머지고/ 마을 뒷산을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이 촉초-ㄱ이 올라붙은/ 포푸라 나무가지로 끊어 만든/ 우리들의 쌍나팔 -- 피리가/ 순이를 씬나물 맨나물 쑥들을 캐는/ 산기슭을 헤쳐지나/ 머 -ㄹ 리 마을을 얼룩송아지 엄매- 하는 소리는/ 마을의 춘궁을 또한번 알이었다//
그 봄은 그렇게도/ 우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슬픈 교훈이었다//
팔월 한가위 --- 아부지가 우리들의 노리개/ 땅총을 사가지고 온 읍내//
정월 대보름 -- 줄싸움 구경들/ 엄마 등에 업혀 갔다는 읍내//
인제 우리들은 나무를 등에 업고/ 읍내를 찾아가는 씩씩한 일군이 되었다//
삼십리길 -- 읍내의 못보던 경이는/ 우리들의 얼마나 동경의 세계였더냐//
햇곱한 지게에 찾아드는 어둠과 적료를 안고/ 돌아오는 논 무덕 위엔/ 피로와 배고픔이 가시발처럼 얽혀졌는데 ......//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이때부터 너는 하나의 슬픔을 안고 흘러갔다// 황혼은 언제/ 조고만 어린 가슴에 몇장의 연꽃을 피었더냐//
그리하여 나무하다 말고/ 쇠줄 두가닥이 머얼리 합치는 그곳에도/ 기차는 자빠지지도 않고/ 용하게 달리는 이유가 몹시도 알고 싶었다//
4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우리들의 설움이 너 함께 얼어붙고/ 또다시 너 함께 풀리고/ 세월을 하나의 밀물이던가/ 삼십리 밖 읍내의 못보던 경이는/ 차츰차츰 이곳에도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붉은 기!/ 흰 기!//
돌돌 말렸다 풀렸다 하는 땅을 재는 자/ 어느새 새끼쇠줄이 논바닥에 들어눕고/ 흙구루마는 영이와 풀싸움하던/ 그 언덕을 짓밟고 달아났다//
기어이 귀신이 산다는/ 은행나무 목이 다라난 그날 아침// 마을의 할부지 할무니들은/ [이제 동리사람이 모두 죽는다]고//
땅을 뚜디리고 통곡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의 경이의 탐색은/ 그런것에 눈도 거듭떠 보지 않았다/ ....그것은 크고 뻗는/ 우리들의 푸른 하늘의 의욕이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그러나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그 경이의 밀물로/ 끝내 제살부치는 되지 않았다//
조사모사가 우물가에 모이고/ 가로수 혓바닥에 귓속말이 잦아갈 때/ 고향은 하루 하루 호방넝쿨 시들듯 시들어갔다//
그리하여/ 노래속에도 읇지 못한 노래가/ 세월을 안고 너 함께 흘러갔다//
아! 초조와 희망은/ 우리들의 숙명이던가//
5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오리온의 별들이 일찍/ 우리들께 들려 준 이야기는 무엇이며/ 약속은 무엇이더냐//
우리들은 그것을 안다/ 우리들은 그것을 잊지않았다//
두팔을 벼개 삼아 밤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그는 우리들의 앞길을 밝히는 하나의 등대였다//
아! 그러나 ...... 그러나 ....../ 그것마자 영원한 동경의 세계였다//
우리들은 얼마나 착한 백성이었더냐/ 우리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무리였더냐//
6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밀물과 밀물의 부닥침 속에도/ 일찍 우리들은 절망의 노래를 무른 적이 없다//
너 하나만은/ 최후까지 지켜줄/ 우리들의 단 하나의 희망이었기 때문에 --//
그러나/ 그 희망마자 하루밤 사이/ 아 - 니 순간의 거품처럼/ 사라질 운염이었던 것을/ 가슴에 천 만번 뜯고 뜯어도 알길이 없다//
초조와 불안과 공포가/ 나흘낮 -- 사흘 밤 ---/ 우리들의 앞가슴을 차고 뜯고/ 울대처럼 선 온 산맥의 침묵이 깨어질 때/ 고숨도치처럼 뺏뺏한 대지를/ 한손에 휘어잡고 매어친//
[꽝] 하는 너의 최후의 선언은/ 우리들의 절말 그것이었다//
언제 너는 노아의 주구가 되었더란 말이냐/ 언제 너는 폭군 네로를 꾀하였더란 말이냐//
7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우리들은 너에게 고함친다/ 너의 폭위는/ 우리들 하나의 크나큰 시련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한마리 참새도 너의 폭위 앞에/ 그의 생명을 능이 상우지는 않았다/ 하물며/ 우리들의 새빨갛게 타는 생명을 짓밟기엔/ 네 함은 너무나 약하였다//
우리들은 사무치는 원한과/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또다시 털고 일어설/ 하나의 신념을 찾았다//
구름은 한갓 하늘을 떠도는 [유랑민은 아니었다]/ 그는 갈망과 추구의/ 생명의 깃발을 싣고/ 설계하고 건축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괴하고/ 또다시 탐구의 이동을 꾀하는/ 아! 지혜롭고 자유스런/ 선망할 하나의 생명이 아니었더냐//
8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이제 좀 지나면/ 돈냉미 상추쌈에 봄잠이 잦을 때다/ 우리들은 숫가락 몇개 바가지를 찼다/ 그렇게도 가뜬한 우리들의 살림살이었다//
북쪽 --/ 북쪽은 구름이 깃들인 고향/ 우리들은 구름의 의도를 따라 북쪽으로 간다//
할무니 어무니/ [쇠마차 타면 서울 구경 내일 아침 한다지"] 하던/ 당신들의 평생소원/ 그렇게도 타고 싶어하던 [쇠마차]가/ 지금 철교를 구얼고 달려오지 않습니까?//
아하!/ 기쁨의 물결이 일 당신들의 얼굴얼굴이/ 왜 그렇게도 앙상한 나무 가지처럼/ 뻣뻣하고 어둡고 차단 말씀이십니까?//
9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삼월에도 삼진날/ 흥부에게 줄 행복의 씨를 물고/ 제비가 틀림없이 이 마을을 찾던 그 때는 어느 때며/ [용 못된 강철이]가 산다는 그 바위가/ 우리들께 영원을 이야기한 때는 그 어느 때냐?......//
10
아! 그리운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너는 왜 말이 없느냐//
너의 슬픔은 무어며/ 너의 기쁨은 무어냐//
-『사해공론(四海公論)』, 1938년 9월.
김용호(金容浩.1912.5.26∼1973.5.14)
시인. 호 학산(鶴山)ㆍ야돈(耶豚)ㆍ추강(秋江). 경남 마산(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생.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 졸업. 1930년 『동아일보』에 시 「춘원(春怨)」을 발표하고, 1935년 『신인문학』에 시 「내 사랑하는 여인아」 「첫 여름밤 귀 기울이다」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38년 『맥(貘)』 동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詩作活動)을 했다.
학생 시절에 시집 『향연』(1941)을 냈고, 이후 『해마다 피는 꽃』(1948) 『푸른별』(1951) 『남해찬가』(1952) 『날개』(1956) 『항쟁의 광장』(1960) 『의상 세례(衣裳洗禮)』(1962) 『시원 산책(詩園散策)』(1964) 등이 있고, 저서에는 『시문학 입문』, 역서에 『문학 원론』(허드슨 원저) 등이 있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예술신문』 주간, 출판사 '남광문화사(南光文化社)' 주간, 문예지 『자유문학』 주간으로 활동했다. 4ㆍ19 기념시집 『항쟁의 광장』을 편찬했다. 1956년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했다. 6ㆍ25 때 부산서 대학 강사, 1958년 단국대 교수, 동 대학 문리대학장 역임(1966∼1973 사망시까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