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도 그리움은 그 깊이를 모를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다가선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떻게 태어나서 성장하다 늙고 무너졌는지 더듬어본 적이 있는가?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인간을 만든다.”라고 했다. 그 말에 에드워드 글레이저(E Glaeser)는 최근『도시의 승리』에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도시”라고 응답한 바 있다. 그렇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생물이다. 아니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유기체다. 도시는 추하고 속된 반면 스스로 우아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고대도시가 보여주듯 도시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생태적 탄생과 붕괴과정을 거친다. 구체적으로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역사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세기(世紀) 전 화려하고 영원할 것 같은 도시가 천재지변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사라져 옛 이야기를 전설로만 남겼을까? 구한 말 혼돈과 외침, 8.15귀환동포와 6.25피란민의 상처를 싸맨 격동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떠나고 그 빈자리가 전장의 폐허처럼 어지럽다. 늙은이들은 오늘도 회상과 넋두리로 철지난 유행가를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굳세어라 금순아’를, 또 다른 사람들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아, 대한민국’을 부른다. 무심코 흥얼대는 노랫가락에 담긴 역사의 아픔과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슬픔이 우리의 등골을 타고 내린다.
영도는 섬이 아니다. 영도, 부산, 남항, 부산항대교 등 4개의 대교(大橋)가 뭍과 이어져 섬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한다. 밤이면 전체 섬이 꼬마전구로 장식한 대형 트리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도시가 늙고 낡아 무너지는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절영도히스토리의 잔영만 남았는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석기시대의 유적, 동삼동과 아치섬(朝島) 패총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곳에서는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고고학계에서는 그 시기를 대략 6000~5000년 전의 신석기시대로 본다. 그때 사람들의 한 무리가 이곳으로 와서 정착했을 것이다.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다. 이 지역은 말의 고장이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그림자도 못 따라올 정도로 빨리 달린다 하여, 끊을 '절(絶)'자와 그림자 '영(影)'자를 붙여 절영도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봉산마을 언덕바지의 재생사업에 연대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알티비피(RTBP, Return To Busan Port) 얼라이언스 김철우(44) 대표는 지난 5월 31일 밤 9시 영도 해양로의 대를 잇는 ‘우정 마린’에서 영도의 옛 지명 ‘절영(絶影, shadeless)’을 키워드로 오디오-비주얼 아트와 테크노 음악공연으로 젊은이들을 모았다. 김 대표는 민간 주체로 부산 영도 도시재생 사업에 앞장서고 봉래동 창고부지의 빈 창고를 개조하여 미디어 아트 장르를 연출한다.
그는 절영도 히스토리텔링의 메카가 될 복합문화공간 ‘끄티(GGTI)'를 마련하고 그곳에 도시농장 루프팜, 유휴 공간 중개플랫폼 등 5개 스타트업 기업과 연대하고 깡깡이마을과 봉산마을의 지역특성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가치 사슬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오는 14일 밤에는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December와 함께 네 번째 미디어 아트 공연을 준비 중이다. 지난 1월 한국해양대에서 알티비피 얼라이언스 주관으로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어반테크메이커스 워크숍을 열었다. 부산의 도시재생 사업에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려는 취지로 부산시민, 예술가, 기업인, 스타트업 멤버들을 규합했다. 해발 394.6m의 봉래산이 품은 절영도히스토리는 '영도할멈'처럼 그 품이 넉넉하고 푸근하다. 봉래동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아리랑고개와 봉래산 둘레길 따라 섬 안으로 들어가는 좁고 고불고불한 정감 어린 골목길. 영도대교 개통과 함께 이름마저 잃은 나릿가 마을, 아치섬(조도)을 마주한 세 곳의 마을이 있다고 붙여진 동삼동에는 위쪽으로부터 상리, 중리, 하리가 차례로 자리 잡았다. 동삼동 뒷산은 조선통신사 조엄이 1763년 대마도에서 얻어온 고구마 시배지로 자주빛 '조내기' 고구마를 심었다. 그밖에도 해안선 따라 개안, 석말투, 대퐁포마을을 비롯하여 청학동에서 태종대로 넘어가는 산등성이에 일산배기라는 자연마을을 형성했다.
부산의 근현대사와 해양성 문화를 품은 절영도히스토리는 부산항 개항으로부터 일제 강점기와 8.15와 6.25를 거치는 동안 영도다리 밑 점바치 골목이 서민들의 애환과 구차한 삶을 이었다. 지난 70년대 선진국에서는 쇠퇴해 가는 구도심의 도시재개발(urban renewal)과 도시활성화(urban reviltalization)로 도시기능을 회복시키려고 했다. 독일의 경우 ‘팩토리 베를린’ 프로젝트가 청년 스타트업 유치를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베를린 주 정부는 2011년 팩토리 베를린이라는 창업 단지를 만든 뒤 창업자들을 위해 저렴한 임대료, 대출 혜택을 제공하면서 유럽 각국의 젊은 인재들을 끌어 모아 베를린을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로 바꿔 놓았다. 이외에 베타 하우스, 더플레이스 등 창업자를 위한 공간이 동베를린에 잇달아 문을 열면서 다양한 성과를 창출하였다. 영국의 테크시티도 청년창업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의 사례다. 런던 테크시티는 뉴욕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창업클러스터로 2010년 실리콘라운드어바웃 인근 지역에 있던 미디어 관련 하이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창업클러스터 육성책을 추진했다. 2010년 85개에 불과했던 테크시티의 청년 스타트업 등 첨단기술 기업들은 2011년 200개, 2012년에는 5000개가 집적하며 초고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영도 봉래동 부둣가 빈 창고 ‘끄티’에서 도시재생을 꿈꾼다.
그 꿈이 부산 북항과 원도심의 개발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힘을 쏟고 있는 알티비피 얼라이언스 김철우 대표는 영도를 중심으로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아이디어와 창의력 개발에 전력투구(全力投球)하고 있다. 스스로 ‘도시재생의 프로젝트 매니저’이기를 자처하는 김 대표는 “대평동 물양장에서 선용품 가게를 운영하시던 아버지를 돕다 보세창고 주변 바다와 마을히스토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시작한 일”이라고 동기를 밝혔다. 최근에 그는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에 선정된 봉래동 봉산마을의 재생 사업에 민간주체로 참여해 창업과 문화 기획을 맡았다.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서 “제 전공이 영화라서, 민관 연대를 통해 도시의 특성에 맞는 프로듀싱이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애정을 가진 봉래동 창고부지와 청학동 해양로 등지가 멋진 기획이 실현되어 다양한 삶과 문화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합니다.”라고 장래 포부를 밝혔다. 영도를 사랑한 남자, 김철우. 영도가 사랑한 남자, 김 대표가 꿈꾸는 새로운 해양문화공간, 영도는 '팩토리 베를린'과 런던의 테크시티'로부터 가까이는 망미동의 옛 고려제강 자리에 'F1963'을 잇는 영도의 '끄티시티'를 꿈꾸고 있는가? 부산의 도시재생을 꿈꾸는 그에게서 희망을 본다. 알티비피(RTBP, Return To Busan Port) 얼라이언스에 뜨거운 환호를 보낸다. 앞날에 영광 있어라!!
첫댓글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꿈이 현실이 되도록 성원합니다...^^*
눈여겨 보면 우리 주위에 장한 젊은이들이 많답니다.
함께 성원해주십시오.^^*
영도하면 영도다리 태종대와 바다에 배가 떠있는 풍경이 아름다운 섬으로 생각했는데 영도의 역사를 잘 배웠습니다.
영도를 사랑하는 멋진 사람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시몬씨, 영도의 문화유산은 자세히 소개하지 못했군요.
다음 기회에 영도의 자연환경을 함께 공부하기로 합시다.
부디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