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음식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 곳곳에 있다. 이번 호의 주인공은 ‘막걸리 이야기’. 남도식 제철 안주와 전국 8도에서 엄선한 생 막걸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사당역 인근에 자리한 본점은 어머니 이건남(60)씨가, 서초역 2번 출구 뒷길에 위치한 2호점은 둘째 아들 나성민(27)씨가 운영하고 있다. 올 초 잠원동에 3호점도 오픈했다.
전남 나주 출신의 이씨는 음식에 대한 철학과 기준이 아주 까다롭다. 결혼해 광주·순천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오게 된 그는 2년간 한정식집을 운영하다 2010년 관악산 등산로 입구의 작은 막걸리 집을 인수했다. 우연히 손님이 남긴 막걸리가 상하지 않고 식초가 된 것을 본 게 계기가 되었다.
“술을 잘 못하고,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주점을 시작했어요. 이것저것 다 갖다 놓고 팔며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는 동시에, 식초가 되는 막걸리를 선별해나가기 시작했어요. 식초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술에 유산균이 많이 들어있다는 증거에요. 유산균이 계속 활동하며 발효를 시키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저희 가게의 대표 막걸리가 된 막걸리가 무감미료 막걸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송명섭 막걸리’에요.”
‘진짜 막걸리’에 대한 예찬은 계속 이어졌다. “막걸리는 발효 식품입니다. 2차 발효가 되어야 생막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만든 막걸리는 식초가 되는 막걸리에요. 합성감미료나 인공적인 성분이 가미된 막걸리는 식초가 잘 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재료에 어떤 발효제를 썼는지 성분을 명확히 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걸리 소비가 줄어든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진짜 제대로 된 막걸리만 나오면 잘 팔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어머님 피부는 뽀얗고 주름도 없이 고왔다. “혹시 막걸리가 비결이세요?”라고 여쭈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저는 주량이 약해서 막걸리보다는 막걸리 식초를 늘 마셨어요. 저는 화장품을 일절 쓰질 않아요. 세수할 때 막걸리 식초를 얼굴에 바르고 물로 헹궈주면 끝이에요. 소화가 안 될 땐 매실청에 식초를 넣고 물을 희석해서 마시면 ‘직방’이에요. 술 많이 드시는 분들은 아침에 막걸리 식초를 물에 희석해서 드세요. 숙취 해소제가 따로 필요 없어요.”
식초가 되는 막걸리가 좋은 막걸리라고 하는 그의 생각은 바른 먹거리가 보약이라는 철학에서 비롯된다. 음식에 화학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좋은 재료를 쓰면 부수적인 양념이 필요 없다고. 초장은 직접 만든 막걸리 식초와 고추장, 매실청만 넣어 만든다. 사서 쓰는 건 간장밖에 없다. 샘표의 프리미엄 라인인 ‘샘표 양조간장 701’을 쓴다.
“손님들은 뼈 빠지게 돈 벌어서 먹으러 오는데, 그런 손님의 건강을 위하는 마음으로 좋은 재료를 써야죠. 저희는 물티슈나 휴지도 다 친환경 제품을 씁니다. 그릇도 황토로 구운 그릇만 써요. 업소에서 흔히 쓰는 멜라민 그릇은 절대 쓰질 않아요.”
음식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곳은 기본 찬인 김치부터 유명하다. 매년 1500포기를 직접 담근다. 배추는 나주 봉황 황토밭에서 계약 재배로 키운다. 지하수로 배추를 씻은 뒤 절여서 오며, 양념은 강하지 않게 한다. 충북 옥천에 위치한 저온창고에서 2년간 숙성해 완성하는데, 김치만 놓고 먹어도 막걸리 2병은 뚝딱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이 좋다. 맛있어서 더 달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돈 주고 사겠다는 손님도 많다. 하지만 “김치는 금덩이”라며 팔지 않는다.
이곳 음식의 핵심은 계절별로 최고 좋은 재료를 쓴다는 것. 해산물은 모두 산지에서 공수해온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가본 적도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다. 봄에는 벌교 갯벌에서 자란 바지락, 서대나 명태. 여름에는 갯벌에서 손으로 잡은 낙지, 벌교의 반건조 가오리찜, 가을에는 막걸리 식초로 버무린 전어 무침, 진도 전복, 벌교의 주꾸미 등이 나온다. 해산물이 풍부한 겨울에는 생굴·피꼬막을 비롯해 해산물 잔치라고 할 정도로 메뉴가 많다.
우리술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온 아들 성민씨에게 요즘 맛보기 좋은 음식과 어울리는 막걸리를 추천받았다. 시작은 가리비찜. 통영에서 공수해온 자연산 가리비를 그대로 쪄서 낸다. 싱싱함 그 자체로 쫀득하면서도 보들보들한 육질이 살아있다. 여기엔 논산의 우렁이쌀 막걸리를 매칭했다. 가리비에 베어 있는 바다내음을 부드럽게 잡아주고, 은은한 단맛과 함께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막걸리 매니어들의 단골 안주 홍어. 홍어 명인인 안국현씨가 나주 영산포에서 삭힌 홍어를 낸다. 홍어회에는 막걸리 식초로 만든 초장이 함께 나온다. 홍어의 톡 쏘는 자극적인 맛과 향엔 드라이하면서도 담백한 송명섭 막걸리를 곁들여보자. 홍어의 향이 비강을 뚫고 온몸을 휘감기 전에 덤덤한 맛의 막걸리가 이를 잠재운다. 홍어 한 입, 막걸리 한 잔을 반복하다 보면 순식간에 한 접시를 해치울 수 있다.
감자전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겨 찾는 메뉴다. 산지에서 직송한 싱싱한 감자를 바로 채 썰어서 찹쌀가루에 버무려 카놀라유에 구워낸다. 구수하지만 다소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 데는 시큼하고 걸쭉한 금정산성 막걸리가 제격이다.
반건조 가오리찜이나 국내산 1등급 암퇘지를 사용한 돼지고기 수육도 안주로 인기다. 점심에는 꼬막 비빔밥, 청국장 등도 맛볼 수 있다. 막걸리는 총 10여 종. 어머니의 깐깐한 눈높이로 준비된 건강한 음식에 싱싱한 막걸리가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