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공덕동 삼층석탑 / 경북 문화재자료
- 경북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고려시대 삼층석탑, 높이 2.4m. 이곳저곳 여러 번 옮겨졌다가 1974년 다시 이곳에 옮겨 세웠다.
단층 기단에 면석이 없이 삼층을 올린 석탑, 지붕돌 낙수면 좁고 육중한 조각 솜씨.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이다.
삼층 몸돌과 지붕돌, 노반은 복원할 때 만든 것 같다.
학서산 봉림사 (鶴棲山鳳林寺) / 전통사찰
-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한 청송 보현산 법화사(普賢山法華寺)를 이건, 1742년(영조 18)에 징월(澄月)이 창건했다.
1857년(철종 8)에 소월(韶月)이 중창하였다.
(한국문화대백과사전 발췌)
보현산은 청송과 영천에 결쳐 있는 산이다. 백과사전에 간단히 사적이 적혀져 있다.
전각은 옛스러움이 없다. 명확한 사적은 없어 보이지만 조용한 사찰이다. 내가 간 날은 누군가의 마지막재를 올리고 있었다.
눈에 익은 탑이다. 어느 탑을 모방하였을까?
관음전
대웅전
봉림선원
산령각
12시가 지나니 재가 끝난다. 대웅전 안.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유물 / 보물, 은해사 성보박물관 소장
현재 봉림사 후불탱은 복제한 그림 같다.
불화을 그린 수화승은 쾌민(快旻)으로 화기에는 쾌민, 체준(體俊), 덕종(德宗), 새정(璽淨), 지성(智性), 선월(禪月) 등 6명의 화승이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쾌민은 1708년에 조성된 보경사 괘불도(보물 제1609호)에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불화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활동한 팔공산화파의 의균을 수화승으로 석민(碩敏), 성익(性益)·지붕(智朋)·체환(體環)·쾌민(快敏)·삼학(三學) 등 7명이 조성하였다. 이들은 동화사, 파계사를 주축으로 하는 팔공산 지역의 대표적인 화승이다.
(한민족대백과사전에서)
자천교회 / 경북 문화재자료
- 경북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1903년 미국인 선교사 에드만Erdman이 신자들과 합심하여 지은 교회, 네모 형태인 우진각 지붕으로 지은 한옥교회다.
한옥교회는 복원하여 지금도 예배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만 달랑 있는 게 아니고 정원도 있으며 아름답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공간이다.
로마가톨릭이 들어왔을 땐 천주교, 천주학이었다. 100년 늦게 개신교가 들어왔다.
예수를 야소라고 불렀다. 아니 한자 표기다. 히브리성경(구약)과 신약성경이 같이 온 것은 아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한 복음서가 번역되었고, 처음 개신교를 받아들인 신자는 신구약을 다 접하진 못하였을 것이다.
신성학당 = 새별배움터
신자 외에도 배우고자 하는 이 모두에게 배움터로 열렸던 모양이다.
예배당
옛날 한옥건물을 그대로 복원, 예배 장소로 쓰고 있다.
신도 한 분이 계셔서 허락을 받고 안에 들어 갔다. 오늘이 주일인 것을 나는 잊고 있었다.
남녀는 따로 앉아 예배를 드렸다. 요즘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김경환 선생 기념비
자천교회 주위 땅을 기부하신 분, 기부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권헌중 장로 기념비
자천교회 제1대 장로로서 이 교회 설립에 큰 공을 세우신 분.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을 찾아 가는 길에 만난 절, 보현사.
정각리 삼층석탑을 보현사 삼층석탑이라고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찾기 전에 확인한 자료엔 보현사 삼층석탑이다.
정각리 삼층석탑과 보현사는 그리 관련이 없어 보인다.
보현사에서 보니 사과밭에 정각리 삼층석탑이 보인다.
영천 정각리 삼층석탑 / 경북 유형문화재
- 경북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밭에 흩어져 있는 것을 1981년에 복원하였다.
통일신라 양식을 따르지만 연꽃무늬, 지붕돌 등은 전형 양식에서 벗어났다. 고려전기에 세운 것으로 여져진다.
2024년 4월 28일
영천 포교당....화북면 공덕동 삼층석탑/봉림사/자천교회/정각리 삼층석탑..거동사..충효사..묘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