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 06;00
새벽 온도가 17도까지 떨어졌다.
백로(白露)가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이슬이 종아리를
썰렁하게 만든다.
며칠간 새벽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지니 초록이 생기를 잃고 개여울의
흰빰검둥오리들이 점프를 하며 수초의 열매를 따먹는다.
검둥오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백로 한 마리가 나의 인기척에 놀라 먼 하늘가로
날아간다.
일자리 통계에 잡힐 노인들이 이 새벽에 낫을 들고 왕바랭이를 베어내며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욕을 하며 서로 말 폭탄을 던진다.
세상이 어지럽다.
내로남불, 문로남불에 이어 '조로남불'이라는 말이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한다.
잘 생겨 훤칠한 미남으로 불리던 사람이 어쩌다 국민들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가.
남의 잘못엔 가을의 찬서리를 뜻하는 추상(秋霜)같이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기세등등하게 나무라던 사람이 자기의 잘못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강변을 하는 나라,
검찰이 무수한 실정법 위반 의혹을 가진 살아있는 권력자 조국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자
며칠 전까지 검찰을 '적폐청산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던 여당대표는 "검찰이 나라를
어지럽힌다"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사람이 "검찰총장이 기밀 누설죄"라며 검찰을 공격하는 대목에선
어이가 없다.
법무장관 후보자 본인이 수사대상, 가족은 출금(出禁)대상이 되자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순식간에 이렇게 180도로 돌변할 수 있는지 생물학자들에게 이들의 DNA를
분석해보면 어떨까 제안을 하고 싶다.
나에게 최근 우리나라에 대하여 정의(定義)를 내리라면, 최소한의 설득 논리와
역지사지(易之思之)를 모르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겨우 6석 의석을 가진 정의당이라는 정당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나라,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4%, 법인세 세수의 16%를 감당하며, 32만 명을 직접 고용하고
간접으로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세계 1등 기업인 삼성의 총수를 구속시키지 못해
대법원이 난리를 치는 나라,
기업들이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사활(死活)을 걸고 살기위해 죽을 힘을 다하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삼성도 포스코나 KT같이 준국유화(準國有化) 시켜 공기업으로
만들려고 하는 나라의 법관이나 관료들이 일본보다 더 힘겨운 상대라고 하는 나라,
직접적이고 명료한 말이나 행동이 없어도 은근히 자신의 뜻을 내보였다며
묵시적(默示的) 청탁이라 판단하여 유죄판결을 내리는 나라,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들은 마음만 품고 있어도 유죄(有罪)라며 전지전능한 신(神)의
영역까지 진출하였다.
대통령과 정부에 협력하면 범죄자가 되고, 협력하지 않으면 정부에 찍혀 사업을
하기 힘든 기업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현명할까.
기업과 국민들은 이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소주성'보다 '정주경'(정치주도경제)이라는
말과 함께 '불확실성'이라는 말을 더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공부 잘하는 자사고나 특목고가 교육감이나 권력자들의 저격대상이고,
최저임금 1만원은 수많은 사람들을 파탄 나게 하였으며,
주 52시간 이상 열심히 일을 하면 범죄자가 되는 이상한 나라.
다른 나라들은 법인세를 인하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도와주는데 우리는 거꾸로 법인세를
인상하여 세금을 마구 퍼주는 나라가 되었다.
문정권(文政權)의 탈 원전 정책으로 2016년에 10조 원의 흑자를 내던 우량기업 한전이
올 상반기엔 9200억 원 적자를 냈으니 조만간 전기료를 올리는 거는 기정사실이고,
한전의 최대주주로 지분 32.9%를 가진 산업은행도 7700억 원 손실을 입었다는데
누가 책임을 져야할까.
한국형 원전모델(APR1400)이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최근 설계인증을 받았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서 비(非) 미국 원전으로는 최초로 최고의 안전성을 인정받아
미국에도 수출길이 열렸는데 관계회사인 한전과 두산중공업은 3만 원짜리 축하 플래카드도
걸지 않았다는 암울(暗鬱)한 현실을 가진 나라,
대통령과 권력자들은 지소미아를 파기하여 한·일 대결은 물론 한·미대결도 불사하고
배 열두 척의 함대를 이끌던 이순신장군의 흉내를 내는데 국민들 대다수는 아직 개입이나
의견을 내지 않는 복지안동(伏地眼動)을 택하고 있다.
이제는 관조(觀照)에서 벗어나 목소리를 높여 운동권의 '죽은 시민 사회'의 종료를
외치며 이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직시하고 진실의 순간을 맞이해야 긴 터널의 늪에서
헤어나리라.
맹자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네 가지 도덕 감정을 논하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할 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닌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닌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의
사단지심(四端之心)을 말한다.
사단지심에서도 시비지심(是非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다면 인간일까.
즉 지금 당장 밥을 먹으면 사는데 혀를 차고 욕을 하면서 주면 굶어 죽어도
받지 않을 것이요, 발로 차면서 주면 거지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기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얼굴 가죽이 두꺼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사는 권력자들을 보면 역겹다.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관조(觀照)는 지금 세상에선
어울리지 않고 사치가 된다.
나는 김형석 노교수의 표현처럼 박수를 치는 습관이 없다는 강원도 사람이 아니고
좀처럼 박수를 잘 치지 않는 충청도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박수를 많이 치는 대한민국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9. 9. 1.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어떻게 현실응 이렇게 잘 정리했는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