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허물을 벗듯-
그러나
마을에서 먼 변방의 작은 방에서는
어떤 계절이 자리를 비우고 있다.
가까운
어느 밤부터 풀벌레 소리가 하나둘 잦아들고,
새벽이면 닫힌 창틈으로 새콤한 바람이 스며든다.
어제와 같은 바람인데
어제의 바람 같지가 않다.
풀벌레와 바람에 귀 기울려
혼자 앉으니 사라지는 것들의 소리 듣다.
그제야 안다.
여름이 가고 있다는 것을.
변방에 홀로 사는 사람은
떠나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계절도 떠나고,
어제의 마음도 떠난다.
남아 있는 것은
빈 방과 낡은 가사뿐이다.
밤이 깊으면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
나도 오늘 하루의 마음 하나를
벗어놓는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듯.
...
붓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두려움 하나를 독에 비유하셨다.
뱀의 독이 몸에 퍼지기 전에 약초로 다스려야 하듯, 이미 일어난 분노도 마음 전체로 번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고.
그리고 그 다스림의 모범을 다시 뱀에게서 찾았다. 뱀은 몸에 맞지 않게 된 허물을 아까워하지 않으니,
한때는 자신의 전부였던 것을, 미련도 뒤돌아봄도 없이 벗어놓고 간다.
..분노와 욕망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에 눌러붙어 사람을 끌고 다닌다는 점에서는 한 몸이다.
끝난 일을 다시 꺼내어 성을 내고, 충분해도 손을 뻗는 것. 마음만 홀로 지난 계절에 서 있다.
저 뱀은
몸에 맞지 않은 묵은 허물을 벗고
제 갈 길을 간다.
이 가을에 오래 묵은 분노 한 자락,
채 끝나지 않은 욕망 한 자락을 내려놓아도 좋겠다.
그렇게 하나 벗어놓고 나면
그제야 알게 된다.
나를 무겁게 했던 것은
그 일이 아니라
그 일을 오래 붙잡고 있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