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너희는복받으라
골3:12-17
새해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복이라는 말처럼 오해도 많지만 그래도 ‘복’이라는 말만큼 좋은 단어도 드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예레미야 31:7-14인데 이런 말이 나옵니다. “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이 말씀에 의지에서 여러분에게 축복하고 싶습니다. “
하나님의 복으로 만족하게 되는 한 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은 어떤 인사를 받으셨는지요?
요즘은 카드보다는 문자로 새해인사를 많이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 가지 새해 인사를 문자로 받았는데 그 중 두 가지 인사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
새해는 하나님 선물입니다.
선물을 열어보듯이 매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가소서.”
매일을 선물을 끌러보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새롭고 기쁘겠습니까?
또 다른 하나는 “
하나님도 아직 써보지 않은 새해를 주셨습니다.
감격스런 나날 되소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나님도 아직 써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아끼고 아끼던 것일까?’
매일 매순간을 하나님도 아직 써보시지 않은 값지고 소중한 시간으로 아낀다면
그 어느 해보다 보람 있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새해인사를 하지 못한 분 계시면 지금 말씀드린 멘트를 참고해도 좋을 듯합니다.
오늘은 골로새서 3장 12절 이하를 읽었습니다.
이 본문은 새사람 즉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새사람의 특징을 말해주는 단어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
용납
용서
사랑
등입니다.
어찌 보면 교회에서 많이 쓰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단어 같지만
조금만 깊이 묵상해도 좋은 에너지가 흐르는 단어들입니다.
무엇보다 이 본문은 “
감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란 예의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에 힘입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깃들 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 용납, 용서, 사랑,
그리고 감사 같은 새사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특질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하는 일종의 열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하듯이,
새사람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새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새사람 즉 그리스도인이란 위에서 열거한 열매를 맺기 전에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개괄하고,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인지 연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새사람을 네 가지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입니다.(12절)
둘째, “주님의 용서를 받은 자”입니다.(13절)
셋째,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15절)
넷째, “그리스도를 힘입는 자”입니다.(17절)
우선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라는 것은 ‘
근본이 다르다’ ‘뿌리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용서를 받은 자”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이해 즉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은 ‘삶의 지향과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뜻합니다. 넷째, “그리스도를 힘입는 자”라는 것은 ‘힘의 원천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에 대해 시간 되는 만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그리스도인은 근본이 다른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뿌리가 다른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뿌리는 돈도 아닙니다. 세상 권력도 아닙니다.
쾌락과 향락도 아닙니다.
일시적인 감정도 아닙니다.
돈을 뿌리로 하면 사람이 탐욕스런 돼지로 변합니다.
권력을 뿌리로 하면 사람이 잔인하고 냉혹한 늑대로 변합니다.
쾌락과 향락을 뿌리로 하면 사람이 추한 족제비로 변합니다.
감정을 뿌리로 하면 사람은 변덕장이로 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근본은 다른 데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시인은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뿌리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앞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데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을 때 우리는 권력이 아니라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 뿌리를 박을 때 우리는 쾌락과 향락 대신에
거룩한 감정을 갖게 되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하는 감정에서
해방되어 삶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근본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이 택했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택했다는 뜻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택할 때 가장 좋은 것을 택합니다.
가장 비싸고 가장 값진 것을 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했을 때는 우리가 비록 부족한 점이 많고 죄도 많지만
가장 값지고 고귀하게 될 가능성을 보시고 택하신 것입니다.
이 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이요,
값진 것이요, 그런 가능성으로 꽉 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여기서 한 가지 사족을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하는 맥락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다, 라는 말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문맥에서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택함 받았지만 너희들은 택함받지 못했지?’ ‘약 오르지?’ ‘
우리는 천국 갈 텐데 너희들은 지옥 갈 테니 불쌍하구나!’ 이런 게 아닙니다.
택함받았다는 것은 언제나 고백의 맥락에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비교하기 위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신앙 공동체에 속하고 보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일어난 것이구나, 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 속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우월감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자성과 함께 감사만 있을 따름이지요!
둘째로 ;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고 합니다. “
거룩하다”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비교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
기적”이 아니라 “성화”입니다. “부자”가 아니라 “성인”입니다.
이 거룩과 성화와 성인을 향한 지향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부족합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예수 믿어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목표는 대형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셋째로 ; 사랑받는 자”라고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요, 삶에 가장 필요한 요소이지만
이것만큼 부족한 것은 또 없습니다. 성장과정 중에 충분하다 할 만큼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아이는 없습니다.
인간의 98% 이상이 사랑의 결핍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나머지 2%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인간의 사랑은 부족하고 결핍되었을지 모르지만 “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새로운 자기 이해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올 한 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삶의 환경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통과 아픔이 끊이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 한가운데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좀 더 여유 있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상처를 주었다가도 사과할 수 있습니다.
아, 참, 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이지! 그러면서 과격한 말을 철회할 수도 있고,
화를 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옆에 계신 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자녀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결코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막말해서도 안 됩니다.
존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성적에 좌우되지 않고
자식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사실 이외에 없습니다.
돈도, 성적도, 성품도 아닙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이 하나의 사실입니다.
끝으로 기대와 희망의 차이에 대해 말씀 드리고 맺겠습니다. ‘
기대’와 ‘희망’의 차이를 아십니까? ‘
기대’는 ‘내가’ 중심입니다.
하지만 ‘희망’은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내 기대에 어긋나면 우리는 실망합니다.
사람이 어쩌면 그럴 수 있어, 하며 분노하게 됩니다.
내 기대에 어긋나면 조금만 어려운 일을 겪어도 금방 좌절합니다.
하나님 믿느라고 애썼는데 하나님이 어쩌면 그럴 수 있어,
하나님 계신 거 맞어?, 하며 불평을 터뜨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중심이 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도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괴로운 과정을 통해 내가 더 배우고 더 성장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해에 기대는 버립시다. 그리고 희망을 가집시다. “
기대는 버리고 희망을 가져라!” 꼭 잊지 마십시오.
그런데 이런 희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라는 사실 역시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