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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감사
제목 :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감사
성경 : 시69:30~31
찬송 : 589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1117 낙양교회 추수감사 주일
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시 69: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작년 다니엘기도회 간증 강사였던 김인강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2살 때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그는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닙니다. 엄마 등에 업혀 학교를 등교하지만 학교는 그를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일어서는 훈련과 혼자 하나님과 함께 공부합니다. 초등학교도 못간 그를 하나님은 서울대를 가게 하시고, 미국 버클리대 박사 학위를 받게 하십니다.
이후 그는 카이스트와 서울대교수를 거쳐 지금은 한국고등과학원에 재직 중입니다. 모든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은 그가 고백합니다. 무지하고 가난한 가정의 부모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가난과 고통을 이해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체적인 약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신 것에 감사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감사하라고 전합니다.
√(영상 : 김인강 교수의 감사)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금년처럼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추수감사주일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감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어떤 감사를 드릴 때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감사
√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시 69: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편 기자가 여호와께 찬송과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의 위대하심 때문에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송 가운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과 감사의 근거는 하나님의 구속의 표현입니다. 구속받은 것이 찬양과 감사의 목적입니다. 예레미야 31:11에는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라고 합니다. 12절에는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위대하십니까?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위대합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미리암의 찬송을 보세요. 시편 98:1에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 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은 우리의 끊임없는 찬송과 감사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 자기들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래를 청합니다. 시편 137:4에는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라고 합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을 때에 그들은 찬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포로지에서 해방하여 본국에 돌아왔을 때에 그들은 찬양을 회복하고 다시 찬양과 감사를 합니다.
18세기 영국 교회의 목사이며 영성가인 윌리엄 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그것은 기도를 가장 많이 하거나 금식을 많이 하는 사람 아니다.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는 사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표로 받고 늘 그로 인해 마음에 하나님을 찬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찬양과 감사야 말로 가장 훌륭한 성도가 할 일입니다. 찬양과 감사를 드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욥기 1:21에는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라고 합니다. 찬송과 감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다 잃고 찬송하는 사람이 진짜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망하고 찬송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을 부릅니다. “구속함을 받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 찬송과 감사는 영혼의 복입니다. 찬송과 감사는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찬송과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가무민족이라고 합니다. 노래를 즐기고 많이 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 민족은 모내기를 할 때도 노래를 합니다. 방아를 찧을 때도 노래를 합니다. 함께 모여 강강술래도 합니다. 심지어 상여를 매고 나갈 때도 노래를 합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가무 민족을 넘어서서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찬송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것보다, 구제하는 것보다, 전도하는 것보다, 봉사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찬송과 감사를 더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것은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전심으로 드리는 감사
√시 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다윗이 이토록 전심으로 감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1)주의 인자하심 때문에(시138:2)~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행14:17)
시 138:2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인자’라는 말은 ‘헤세드’라는 말입니다. 그 의미는 ‘친절, 자비, 인애 등’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인자(헤세드)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행 14:17 그러나 자기를 증거 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우리가 결실기를 맞이하여 이렇게 일용할 양식을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2)주의 성실하심 때문에(시138:2)~하늘로서 비를 내려 주심(행 14:17)
‘성실’이라는 말은 ‘에메트’라는 말인데 이 말은 ‘아만’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 뜻은 ‘신실(성), 성실(성), 충실함, 확고함, 확실함, 진리, 진실'을 의미합니다. 에메트는 아멘, 곧 확고한, 확실한, 신실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진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이 인격에 대해 사용될 때 그것은 때때로 그의 말, 행동, 사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을 표현합니다. 이쉬 에메트는 그의 행위가 진리의 규범에 지배를 받는 사람이며,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적용될 때, 특별히 그의 신실성에 대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오 신실하신 주”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으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바울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증거 한 것처럼 하나님은 때를 따라 하늘로서 비를 내를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결실기를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는 연년이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 때문에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감사는 차원적인 문제입니다.
√첫 번째 차원이 무엇인가 하면 받은 바를 아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받았다. '모든 것은 받은 것이다.' 할 때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받았다. 여러분, 내가 준 것과 받은 것, 어느 쪽이 많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받을 때 감사합니다. 받은 바에 대한 감사입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받았을 때에 감사한 것입니다. 받은 바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감사로 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쟁취한 것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자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감사가 없습니다. 왜? 쟁취한 것이니까.
여러분, 빼앗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가 있겠습니까? 쟁취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행복이 없습니다. 그것은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뿐입니까? 자기 의를 내세울 때에도 감사가 없습니다.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율법적 관계로 사는 사람에게도 감사가 없습니다. 소유란 소유하는 순간 약간의 기쁨이 있는 것 같아도 소유하자마자 또 다른 욕심에 사로잡힙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성취감이라는 기쁨이 있습니다만 성취되는 순간 불안합니다. 지속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로지 감사만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자유하게 합니다. 참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차원은 깨달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많이 은혜 받았다고 많이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부분만큼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의식이요 의식과 감성이 합쳐지는, 그래서 지성과 감성이 통합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습니다. 얼마나 깨닫느냐 하는 것입니다. 헬라사람들 가운데 감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가다가 손을 들고 "오 신이여!" 그러며 감사를 하더랍니다. 왜 감사하냐고 물어보니까 이 눈썹이 있어서 비가 이렇게 밑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또 감사합니다." 무엇이 감사하냐 하니 콧구멍이 밑으로 뚫린 것을 감사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위로 뚫렸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지요?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의 깊이에서 감사하는 것은 사실인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때에 깊이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 남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지각을 가질 수 있느냐? 그것이 바로 역경입니다. 사람은 평안하게 되면 둔해집니다. 배부른 사람은 코가 둔해집니다. 배고픈 사람이 코가 예민합니다. 환난과 핍박과 고난, 남다른 어려움을 치를 때에 그는 은혜에 대해서 민감해집니다.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 옛날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빌립보 1장 12절에서 말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그는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또한 그는 감옥에서 2년 동안 재판도 없이 처박혀서 고생을 했습니다. 로마로 가는 동안 배가 파손이 되었습니다. 죽을 고생을 3년 동안 했지만 이 로마 감옥에 갇혀서 생각해보니 이 모든 과정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큰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알고 '복음의 진보가 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바란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남다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과 핍박과 환난과 어려움과 같은 것은 웃음으로 감사하기보다 눈물로 감사할 때에, 다른 사람이 미처 상상도 못하는 세계를 생각하게 될 때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1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은혜를 오늘 이 시간에 생각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감사절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환난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줄 믿습니다. 깨닫는 자만이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일본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이질이라는 질병으로 뇌성마비를 얻어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눈꺼풀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사람, 우찌무라간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몸은 머리만 크게 발달하고 나머지는 어린아이의 것 그대로인 채 흐느적거리는 그야말로 볼품없는 몰골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어머니 한 분밖에는 없었는데 어머니가 성경책을 머리맡에 펴두고 머리를 받혀놓고 나면 돌아오기까지 그 장만을 보아야 하는 불편 때문에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고린도전서 12장을 읽어 내려가던 중이었습니다. 주님이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신 말씀을 자기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처럼 몸에 박힌 가시를 제해 주시기를 구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그의 모습은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눈꺼풀을 이용해서 자판을 집어가면서 윙크하는 방식으로 복음적인 시를 지어 두 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뒤늦게 책과 방송을 통하여 완악한 일본인을 회개시키는 사도로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선택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변모되기까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먼 길을 마다 않고 자신을 회개시키려 찾아온 목사님 덕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지은 회고적인 시 √'괴롭지 않았더라면' 시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외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감사할 조건이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감사할 조건이 있어서 감사하였습니까? 그야말로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것과 같이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추수 감사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금년에는 예년과는 달리 살인적인 무더위로 엄청난 고생을 하셨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들이 많았습니다. 진정한 감사 즉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드리는 감사는 바로 ‘범사에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감사는 다른 감사가 아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1863년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북쪽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대단하고 격렬한 전쟁 중임에도 나는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키고, 축복 받은 우리 조상들을 기리기 위하여 미국 전역에서 나의 동료 시민들을 초청하였다"
격렬한 전쟁 중에서도 감사의 절기를 성대하게 지킬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신앙이 어떤 신앙이었는가를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십니까? 진정 범사에 감사하십니까?
√범사에 감사는?
√1)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할 때만 가능합니다.
범사에 라는 말속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은 일뿐 아니라 슬픈 일과 괴로운 일까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십시오. 좋은 일도 있었지만 괴로운 일들도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렇다면 실망하고 낙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어떤 목회자가 스페인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에 위치한 "극빈자 보호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답니다. 이 목회자는 어떤 늙은 여성 앞에 멈춰 서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 여성은 분명 가난하지만 너무나 즐거워 보였습니다. 목회자는 여성에게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나이 많은 여성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하답니다. 보시다시피 제 이는 겨우 두 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아래 위 어금니 하나씩 남아있어서, 이렇게 감자를 씹어 먹을 수도 있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 나이 많은 여성은 정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하고 불쌍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은 무언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우리가 평탄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아니면 성난 파도를 따라 항해하고 있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시는 그 눈으로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므로 우리가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바로 그 문제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에 역사 하시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해도 이를 우리의 유익으로 바꿔주실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기억하십시오. 시편 기자는 시편 107편 1절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오늘도 시련을 축복으로 바꾸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2)더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는 사람이 드리는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뿐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통해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인 부모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을 압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자기 자녀들을 고난이라고 하는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연단을 시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를 통과하였더니 어디에 이르렀습니까? 엘림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는 물샘 12과 종려나무 70 그루가 있어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허락하였습니다. 항상 좋은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너무나 지극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세 가지만 들어주마."
이 사람은 무척 기뻐하면서 무슨 소원을 아뢸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아내가 퍽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소원으로 "지금 마누라를 데려가시고 새 마누라를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소원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아마도 화장실에 가서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부인이 죽고 나니 많은 문상객이 찾아 왔습니다. 그 문상객들은 한결같이 "아이고, 그 좋은 분이 돌아가셨군요."하며 "남들 몰래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참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착하고 복된 분이 돌아가셨군요"라고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그런 사람이 죽어서 되겠나' 싶어 하나님께 "제 마누라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라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두 번째 소원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이루어질 소원이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 무엇을 구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하나 남은 소원을 투자할 만큼 귀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이렇게 해서 그는 정말 세 번째 소원을 이렇게 기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현재의 내 처지 이대로 좋습니다. 이대로도 분에 넘칩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하는 신앙인이 된다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더 좋은 것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3)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힘쓰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해서는 별로 감사할 것이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고통과 근심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과 변치 않는 선하심에 대해 그분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할 때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한 헨리 프로스트는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집으로부터 슬픈 소식을 전해들은 후 깊은 어두움의 그림자가 내 영혼을 덮었다. 기도를 하여도 그 어두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견디어 보려고 애를 써 보아도 어두움은 점점 깊어만 갈 뿐이었다. 그런 후 내륙 선교 본부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 선교 본부의 벽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감사를 연습하십시오.' 나는 그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곧 모든 어두움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다시는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 시편 기자의 말이 옳다. '하나님께 감사함이 좋으니이다.'”
혹시 최근에 당신의 영적 생활을 덮는 어두움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습니까? 또는 감당키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당신을 위해 해주신 일들에 감사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며 당신을 버리지 아니하셨음을 알고 있다고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당신을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해서, 당신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신 선한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쓰러졌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위하여 태어났고, 감사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으며,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