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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복음(마 24:30-40)
오늘은 사중복음의 마지막인 재림의 복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1)중생입니다. 중생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2)성결은 성령세례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주가 되시고 나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평안이 주어졌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내안에 충만해집니다.
그리고 예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3)신유의 복음입니다. 신유는 내안에 주님의 생명이 충만함으로 육체의 질병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증거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모든 연약한 것과 모든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네번째 복음인 재림입니다. 재림은 성경에 기록된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며 우리 성도들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재림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영화로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지금은 불완전하지만 그 때는 완전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은 교회의 마지막 소망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의 공생애를 마치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행 1:10,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러한 마지막 약속을 하고 떠나는 것을 본 제자들은 이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의 복음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도 제자들에게 재림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부활과 승천을 예고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가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초림의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려고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십니다.
천군천사와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이 땅에서 오셔서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믿는 자와 믿지않는 자를 가르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오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이 세상의 종말이 되는 것입니다. 종말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영원한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에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에게 종말은 신부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하듯 우리가 고대하던 우리 주님을 실제로 다시 만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마지막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의 최고의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가 바로 ‘마라나타’였습니다. 이 마라나타라는 말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메시지인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아람어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재림신앙으로 세상을 살아갔습니다. 재림 신앙은 종말신앙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앞에 설 날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종말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우리의 미래이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 중에 종말을 부정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역사의 종말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심과 함께 이 땅의 바벨탑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개인의 종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종말입니다. 언제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종말을 의식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바로 종말을 생각하며 그날을 준비하고 그날을 바라보고 그날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말은 영원을 결정하는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가끔 종말을 맞이하는 분들을 접하게 됩니다. 준비된 사람들은 마지막에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그렇치 못해서 안절부절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평생을 우상을 숭배하고 귀신을 숭배하신 부모님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믿은 것은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복을 빌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는 그런 부모님이 안타깝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그 분에게 이렇게 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에 옆에 있던 강도도 구원받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 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질고를 다 대신 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몇일 전 그런 어머니가 평생을 우상숭배하시던 어머니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눈물을 흐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생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성결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신유의 복음을 필요합니다. 재림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재림의 복음은 마지막 복음입니다. 우리가 재림의 복음을 믿으면 천국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다가올 천국을 바라보며 또 오늘 우리 가운데 임한 천국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궁극적 목적인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오늘 천국을 누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 바로 재림 신앙인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구원에 있어서 재림의 복음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는 영화의 구원입니다. 지금은 구원받았어도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그 때는 홀연히 변화되어 영원히 거룩한 몸으로 변화되어 구원을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요한일서 3장 2절에 보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온전한 구원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몸으로 영화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성경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약속한 말씀이라면 신약성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신실한 약속을 붙잡고 간절한 소망중에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고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언제입니까?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그날을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행 1:6-7)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또 예수님께서 마 24: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나 마지막 종말이 가까워옴을 알려주는 징조가 있음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네 가지 징조 가 나타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1.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과 미혹입니다(4-5,23-24).
(마 24: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 24:23-24)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지난 2천년동안 거짓선지자들은 계속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했습니다. 최근에 들어서 거짓 선지자들이 다 극성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 시대를 가리켜서 적그리스도의 천국이라고 표현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면 과거와는 차이점이 있는데, 과거에는 은밀하게 성도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성경공부를 가르치거나 개종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공공연하게 드러내놓고 교회까지 선전지를 붙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만 자칭 예수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이십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예전에 통일교의 문선명씨, 전도관의 박태선씨가 두각을 나타냈는데 최근에는 신천지의 이만희씨와 안상홍증인회의 하나님 교회의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장길자씨 등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단들은 거의 교주가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라고 주장하니까 이들이 죽으면 거의 쇠퇴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교인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는데 이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2.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있습니다(6-8).
6-8절,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자연계에 많은 징조가 있습니다. 처처에 기근과 전쟁과 질병이 만연해집니다. 수천 년 동안 얼어붙었던 빙하와 빙산이 계속 녹아 인류의 대 재앙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아이티의 지진이 그러듯 지진의 강도와 빈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일달러에 힘입어 곳곳에 이슬람교가 확산되어 테러와 박해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이지만 뉴욕에 9.11테러 쌍둥이 빌딩 폭파되었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이 징조도 인류가 시작된 이래 계속 있어 왔던 일이지만, 이 요즘처럼 전쟁과 기근과 지진 현상이 강하게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여러나라에서 소요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는 내전들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프리카 지역은 내전으로 인해서 여행을 편히 갈만한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뭄과 기근으로 인류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녹색 지대가 점점 황폐해져 갑니다. 지구촌에는 밀림지대가 세 곳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일부지역과 동남아시아와 아마존 지역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큰 지진으로 인한 재앙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티의 지진, 일본 지진등 세계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 전 세계에 공포를 주고 있습니다. 지진 안전국가라고 자신했던 우리나라조차 지진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나라마다 난리와 난리, 전쟁과 테러, 태풍, 수해, 기근, 해일 등 수많은 각종 자연재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세계형편입니다.
3. 성도들에 대한 핍박과 박해입니다(9-10절).
9,10절,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이슬람에서는 기독교 박멸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정도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생존권을 박탈하고 근거를 없애 버리려 합니다. 중국에서도 요즘 선교를 아애 금하고 있고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유국가인 우리나라만 해도 현재 안티 기독교 세력이 얼마나 많이 늘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인들도 보이지 않게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매년마다 국가의 지도자들과 함께 국가조찬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반대서명이 그렇게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어떻게 무릎꿇릴 수 있는가? 비판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 임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 할지라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을 본을 보인 대표적 왕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 올 때에는 옷이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체면과 체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라면 얼마든지 무릎 꿇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하나님께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만일 대통령이 불교인이라면 그 분이 절에 가서 어떤 의식을 하든 비판할 성격이 아닙니다. 개인의 종교 행위를 존중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유난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작은 문제라도 있으면 비판하면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만큼 기독교가 힘이 있기에, 사탄의 전략은 매스컴을 필두로 해서 기독교를 끌어내리고, 작은 문제를 크게 확대 재생산하려는 악의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사실 복음이 들어가는곳에는 두 가지 대표적인 현상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잘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정신이 긍정적입니다. 부지런하며 역동적입니다. 그러기에 경제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가 실현됩니다. 기독교 국가치고 민주주의가 아닌 나라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공산국가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독재세력은 복음이 들어오면 반대하고 거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됩니다(14절).
마 24:14을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 많은 반대와 박해와 핍박이 있거나, 온 인류가 대혼란 속에 있다 할지라도 복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적으로 전파될 것입니다. 이제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만 명의 선교사들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당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인터콤선교단체도 전 세계에 12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선교사가 세계곳곳에 나가 있는데 지난해 말 통계에 의하면 170개국 2만7436명 파송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끝이 도래할 때에는 그 징조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징조들이 민감하게 체감할 정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은 정확히 언제 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징조가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요? 먼저는 이 땅에 대한 심판이요, 다음은 재림하실 주님만 갈망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다 끝납니다. 다 해결됩니다. 다투고 싸우던 아이들이 선생님이 오시면 다 끝이 나듯 주님이 오셔야 됩니다. 구원의 완성은 재림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아주 임박 가까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돋아남을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또 신앙하는 자라면 누구나 이 모든 징조들을 보고, 재림의 주님이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다 압니다. 그러나 그 대문을 열고 들어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한번 죽는 것을 다 압니다. 그러나 자기가 죽을 날과 시간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왜 이런 징조를 미리 보여 주십니까? 왜 이런 비유를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까? 믿는 자에게는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설 날이 있음으로 깨어 있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는 심판에 대한 경고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했는데 지금이 그럴 때와 같습니다.
롯의 때도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을 짓더니 유황불이 내려와서 소돔과 고모라를 다 심판하고 롯의 세식구만이 구원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롯의 때는 음란의 시대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맞은 음란하고 불의가 횡행하는 현시대가 롯의 때와 무엇하나 다른게 있습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심판에 대한 주님의 비유 중 열처녀의 비유를 보면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기름과 등불을 준비했다고 했읍니다. 오늘 우리도 이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과 같이 기름과 등불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또한 등불은 우리 신앙생활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성령충만한,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다면 언제 주님이 오신다 할지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의 복음이 전해진 이유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재림의 복음은 우리모두에게 마지막 복음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것은 주님의 마지막 약속입니다. 문제는 이제 우리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죽음이 가까운 어른들을 심방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주님앞에 설 때 어떤 모습을 설 수 있을까? 주님앞에 나의 삶을 결산한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 부끄러운 구원은 아닐까? 염려가 되지 않습니까?
정신을 차리고 이 시대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재림신앙을 가지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언제 주님이 오실지라도 준비되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주님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며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고치고 생명을 세우는 생명사역에 충성을 다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