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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시인들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시민이라 여기면 얼마나 친근할까요. 신비스럽고 영웅 같은 존재였던 옛 시인들을 시민으로서 불러내 이들의 시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국민시인’, ‘민족시인’ 같은 거창한 별칭을 떼고 시인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어렵게 느껴졌던 시도 불쑥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
창랑에 잠방거리는 섬들을 길러
그대는 탈도업시 태연스럽다
마을을 휩쓸고 목숨 아서간
간밤 풍랑도 가소롭구나
아츰날 빛에 돗노피 달고
청산아 봐란 듯 떠나가는 배
바람은 차고 물결은 치고
그대는 호령도 하실만하다.
-김영랑, 「그대는 호령도 하실만하다」
나는 독(毒)을 품고 선선히 가리라
시인은 본래 종달새가 되어 푸른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아오르길 꿈꿉니다. 그러나 제 뜻과 상관없이 새장에 갇히기도 합니다. 누군가 한번 그런 사람이라고 낙인찍으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우리 처지도 별다르지 않을 겁니다. 김영랑도 그런 사람입니다. 민족과 전통, 자연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우리 곁에 있지 못한 시인입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슬픔을 오히려 찬란히 여기며 끝없이 기다리겠다는 비애를 거둘 수 없습니다. 센티멘털리즘은 우울증적 증세입니다. 그것이 생활의 고단함을 정화시키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서정적 극치를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도 기다리는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엇을 기다리며 자신을 구원하려 했는지 상상하는 일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북방에 백석이 있다면 그보다 훨씬 앞서 남방에 영랑이 있습니다. 백석이 고향 말 속에 심어 놓은 우리 정체가 영랑이 조곤조곤 읊조렸던 남도 말씨에 고스란히 빛나고 있습니다. 백석이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고 시에 적은 뜻이 영랑에게도 깊이 스며있습니다. 고향 강진에서 부르는 이 시 「그대는 호령도 하실만하다」는 다도해 연변 그의 고향 집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입니다. 정지용은 이 그림 같은 시를 참 좋아했습니다. 크고 작은 섬들이 ‘잠방거리는’ 오리 새끼처럼 떠 있는 바다와 간밤 풍랑이 휩쓸고 간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고요한 바다와 돛을 높이 달고 그 바다로 향하는 어부들의 호령을 높이 우러른 것이지요. 거기 슬픔은 잠시 맺혔다 사라지고 훌훌 털고 일어서는 기운이 가득합니다.
영랑은 3.1 만세 운동 때 참여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친구는 의열단원 박열입니다. 일왕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광복이 되기까지 옥고를 치렀던 불굴의 의지를 영화 속에서 본 적이 있지요. 일제 재판관 앞에서도 당당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 독기(毒氣)가 영랑 시에도 잠방거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그것을 ‘촉기(燭氣)’라 에둘렀지만 마음속에는 독(毒)이 서려있습니다. 시 「독(毒)을 차고」에서 “나는 독(毒)을 품고 선선히 가리라/마금날 내 깨끗한 마음 건지기 위하야”라 말한 뜻에 담겼습니다. 영랑이 노래한 슬픔은 ‘기름지고 생생한 기운’입니다. 특히 그가 말했듯 ‘슬픔을 딱한데 떨어뜨리지 않는’ 근성 같은 것입니다.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속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삶이기도 합니다.
■작가 소개
이민호 시인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참빗 하나』, 『피의 고현학』, 『완연한 미연』, 『그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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