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양(蘭陽)이 정소저(鄭小姐)를 찾다.
이 무렵 정소저는 부모를 모시고저 화기가 넘쳐흐르니 조금도 신세를 원망함이 없이, 최;부인이 매양 소저를 보면 슬프고도 섭섮함을 이기지 못하니, 춘운이 소저를 모시고 문필과 기예를 힘써 익히고 수심을 억제하며 세월을 보내나 마음이 타고 간장이 녹아서 점점 초조해 하니 소저는 위로 부모를 생각하고 아래로 춘운을 보살피나 자목 심회가 심란하여 스스로 편하지 못하되, 남들이 알지 못하더라
소저가 모친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할새, 픙악과 모든 구경거리를 구하여 시시로 받들어 노모를 즐겁게 하는데 하루는 한 계집아이가 찾아와 수놓은 족자를 팔려고 하여, 춘운이 펴 본즉 한 폭은 꽃 사이에 공작새요 다른 하나는 대숲에 자고새더라. 춘운이 그 수놓은 솜씨를 흠모하여 그 계집아이를 기다리게 해놓고 족자를 부인과 소저께 드리고 여쭙기를,
“아가씨는 매양 춘운의 수놓은 것을 친찬하는데, 시험 삼아 이 족자를 보소서, 이는 선녀의 틀 위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필연 귀신의 손으로 된 것이겠나이다.”
소저가 부인 앞에서 족자를 펴 보고 놀라며 하는 말이,
“이즈음 사람은 이토록 공교한 솜씨가 없겠거늘, 염색과 꾸밈새가 이토록 산뜻한데 옛 것이 아니니 팔려하나이다.”
이에 춘을을 시켜 그 계집아이의 출처를 물으니, 계집아이가 대답하되,
“우리집 아가씨께서 수놓은 것인데 아가씨는 요즈음 객지에 계시므로 급한 용처가 생겨서 값의 다과는 따지지 아니하고 팔려 하나이다.”
춘운이 다시 묻기를,
“너의 아가씨는 뉘댁 아가씨며, 또 무슨 일로 객지에 머물러 계시느냐?”
계집아이가 대답하되,
“우리 아가씨는 이통판(李通判:통관은 관명)의 매씨이신데, 통관어른께서 대부인을 모시고 절동 고울에 가 하시오나, 아가씨는 병환이 있어 미처 따라가지 못하옵고 외숙인 장벌가 댁에 머무시는데 별가댁에 근일 사소한 연고가 생겨 길 건너 연지점 사삼랑 집을 빌려 거처하시면서, 절동 고을에서 맞으러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나이다.”
춘운이 들어가 그 말대로 아뢰니, 소저는 비녀와 가락지와 그밖의 패물 등으로 값을 넉넉히 주고 족자를 사서는 대청에 높이 걸어 놓고 날이 저물도록 바라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이로부터 그 계집아이는 족자를 판 것으로 인연이 되어 정사도의 저택에 출입하며 비복들과도 사귀게 되며, 소저가 춘운에게 이르되,
“이씨 여자가 수놓는 재주가 이같이 뛰어나니 필연 비범한 사람일 터이니, 네가 시녀를 시켜 계집아이를 따라가서 그 소저의 용모를 보고 오라 하여라.”
이어서 영리한 비자를 가려 뽑아 보내니, 비자가 계집아이를 따라가 본즉, 여염집이라 몹시 협소하고 아예 내외하는 법은 없더라.
이 소저는 정씨 댁 비자임을 알고 음식을 먹여 보내니, 비자가 돌아와 아뢰기를,
“그 아가씨의 고운 태도와 아리따운 용모는 우리 아가씨와 흡사하더이다.”
춘운은 이 말을 믿지 아니하고 나무라되,
“그 수놓은 솜씨를 보건데 노둔(魯鈍)한 재질은 아니겠지만 어찌 이렇듯 지나친 말을 하느뇨? 이 세상에 우리 아가씨와 흡사한 분이 있다 함은 내 실로 믿지 못하겠노라.”
비자가 대답하기를,
“가유인(賈儒人:유인의 아내를 일걸음)이 실로 내 말을 의심할진대 딴 사람을 보내 보시면 내 말의 진실함을 알겠나이다.”
춘운이 사사로이 한 사람을 보내었더니, 돌아와 말하되,
“괴이하다, 괴이하다! 그 아가씨는 천상 선녀요, 어제[ 들은 말이 과연 옳으니 가유인이 내 말을 의심하거든 몸소 가보심이 좋을 듯 하오이다.”
춘운이 이르기를,
“전후말이 다 허망하도다. 어찌 두 눈이 없느뇨?”
서로 소리 내어 웃고 헤어지더라.
수일이 지나자 연지점에 사는 사삼랑이 정씨 댁에 와서 주인께 아뢰돠,
“요즈음 이통관 댁 소저가 이 늙은 것의 집을 빌려 거쳐하시는데, 그 소저의 고운 용모와 묘한 재주는 사모하와 한번 만나 뵙고 많은 말씀을 듣고자 하되 부끄러웁고,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오라, 선뜻 말씀을 못하옵다가 이 늙은 것이 부인께 사뢰어 보라 하옵기에, 이렇게 와서 아뢰나이다.”
부인이 즉시 소저를 불러 이 뜻을 말하니, 소저가 여쭙기를,
“소녀의 몸이 타인가는 다른 바 있사와 얼굴을 들고 남과 대면코자 아니하오나, 다만 듣자온즉 이 소저의 위인(爲人)과 범절(凡節)이 모두 그 수놓은 솜씨와 같다 하오니, 역시 한번 만나뵙고자 하나이다.”
사삼랑 노파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이튿날 이 소저가 비자를 보내어 온다는 말을 먼저 알리고 느직하여 휘장을 드리운 소옥교를 타고 시비 몇 사람을 거느리며 정사도 저택에 이르자, 정소저가 침방으로 맞아들여 볼새, 주객이 동서로 마주 앉으니, 광채가 서로 빛나 방안이 찬란하므로 서로가 놀라더라.
정소저가 먼저 말하기를,
“지난번에 시비들의 인연으로 이 근처에 계시다는 말씀을 들었사오나, 이몸은 신세가 기구한 사람이라 인사를 전폐하고 있기에 문후치 못하였사온데, 이제 소저께서 욕되이 왕림하시니 감격하고 죄송하와 사례할 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이소저가 대답하되,
“소매(小妹)는 우둔한 사람이오라, 부친을 일찍이 여의고 모친이 편벽하게 사랑하여 배운 것이 없고 아무런 재주도 가려낼 것이 없사와, 스스로 한탄하기를 남자는 뜻을 사방에 두어서 어진 벗을 사귀어 서로 배우고 서로 타일러 주는데 여자는 집안 식구와 비복 외에는 다시 대하는 사람이 없으니 규중이 막혔도다 하였으니, 공손히 듯사온즉 저저(姐姐:女兄)께서는 반소의 문장에다 맹광의 덕행을 겸하여 몸을 중문 밖에 나지 아니하시니 이름은 이미 궁중 궁궐에 들리시니, 소매는 이러함으로써 스스로 비루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성덕의 광채를 접하고자 원하였더니, 이제 소녀의 은덕을 입사와 족히 소매의 평생 소원을 이루게 되었나이다.”
정소저가 답사하되,
“저저(姐姐:女兄) 말씀이 바로 소매의 마음속에 있던 바이옵나이다. 규중에 매인 몸이라 출임에 걸림이 있고, 이목(耳目)에 가리움이 많은고로 본디 창해(蒼海)의 물과 무산(巫山)의 구름을 알지 못하오니 이 또한 옅고 짧은 지식의 탓이라, 어찌 족히 이를 괴이하다 하오리까? 이는 바로 형산의 옥이 광채를 물고 자랑하기를 부끄러워하며, 늙은 조게 속의 구슬이 고운 빛을 감추어 스스로 보배가 되는 것과 같나이다. 그러나 소매 같은 사람은 고루하오니 어찌 감히 과분하신 칭찬을 받으오리까?”
이어서 다과를 내어놓고 즐겁게 환담을 주고 받다가 이소저가 말하기를,
“소문에 듣자온즉 댁내에 가유인이란 사람이 있다 하옵는데, 어떻게 한 번 볼 수 있겠나이까?”
정소저가 이에 대답하되,
“소매도 역시 저저께 뵈옵게 하려 했나이다.”
이에 춘운을 뵙게 하니, 이소저가 일어나 맞을새, 춘운이 놀라며 마음 속으로 탄복하기를,
“전일 두 사람의 말이 옳도다! 하늘이 이미 우리 소저를 내시고 다시 이소저를 내시니, 참으로 하늘의 뜻을 측량할 수 없도다.”
이소저도 또한 헤아리되,
“가녀의 소문을 익히 들었으나 그 사람됨이 소문보다 월등하니, 양상서가 어찌 아끼며 사랑치 않으리오? 마땅히 진중서와 더불어 어깨를 견줄 만하니, 만일 가녀로 하여금 진녀를 본받게 하면 어찌 윤부인의 울음을 본받지 않을 수 있으리오? 대저 상전과 종의 자색이 이렇듯 빼어나고 또 재주가 있으니, 양상서가 어찌 놓을 수 있으리오?”
이에 춘운과 더불어 가슴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 하니, 그 정다와짐이 정소저나 다를 바 없겠더라.
이 소저가 작별인사로 말하되,
“날이 이미 늦었으매 더 앉아 이야기할 수 없으니 매우 안타깝사오나, 소매가 들어 있는 집이 다만 한길을 사이에 두었을 뿐이오니, 마땅히 한가한 틈을 타서 다시 찾아와 나머지 말씀을 들으려 하나이다.”
정소저가 이에 답사하되,
“외람히 왕림하심을 받잡고 이어서 좋은 말씀을 듣사오니 마땅히 당 아래로 내려가 사례하올 것이나, 소매의 처신이 남과 다른고로 감히 한 걸음도 문 밖에 나가지 못하오니 바라건대 저저께서는 그 허물을 용서하시고 그 정을 받아 주소서.”
두 사람이 작별할새 섭섭함을 이기지 못하여 차마 서로 손을 놓지 못하다가 이어서 떠나니라.
정소저가 춘운한테 이르기를,
“보검(寶劍)이 비록 칼집 속에 감춰져 있어도 그 광채는 두우(斗牛:두성 오성)를 쓰고, 늙은 조개가 비록 바다에 잠기나 기운이 누대(樓帶)를 이루거늘, 우리가 다 같이 한성 안에 살면서 진작 듣지 못하였으니 심히 괴이하도다.”
춘운이 여쭙되,
“전첩의 마음에 한 가지 의심이 있사온데, 양상서가 매양 말씀하시기를 화주(華州) 진어사(秦御使)의 딸과 더불어 누각 위에서 서로 보고 글을 객사에 얻어 아름다운 언약을 맺었으나, 진어사 집의 환난으로 말미암아 일이 어긋났다 하시면서 절세미인이라 칭찬하시기에 첩이 또한 양류사(楊柳詞)를 보온즉 진실로 재주 있는 여자이오니, 혹시 그 여자가 성명을 감추고 아가씨를 사귐으로써 전일의 인연을 이루고자 한이 아닌가 하나이다.”
정소저가 말하기를,
“진씨의 아리따움을 나도 또한 다른 길로 들어 알고 있는고로, 이 여자와 비슷한 점은 있으나 진녀의 집이 환난을 만나 궁녀가 되었다고 하는데 어찌 능히 이곳에 올 수 있으리오?”
하고, 부인께 들어가 뵈옵고 이소저를 칭찬하여 마지않으니, 부인이 이르기를,
“나도 역시 한번 청하여 보고자 하노라.”
하고, 수일 후에 시비를 시켜서 이소저의 왕림을 청하니, 소저는 혼연히 응낙하고 전사도 저택에 이르더라, 부인이 섬돌에 내려가 맞아들이니, 이소저는 자질의 예로써 부인께 뵙는지라 부인이 매우 사랑하여 이르기를,
“일전에 소저께서 딸아이를 찾아주시어 두터운 정을 드리우니 이 늙은 몸이 진심으로 감사하나 ㄱ때는 신병이 있어 제대로 접대치 못하였으니 지금까지 부끄럽고 한탄하는 바로다.”
이소저가 엎드려 대답하되,
“이몸은 저저께서 천상의 선녀 같사옴을 사모하오되, 오직 멀리 내칠까 두렵더니, 저저께서 한번 만나매 형제의 의로써 이 몸을 대접하시고, 부인께서 또 자질의 예로 대하시니 이몸의 소망에 과하온지라, 이몸이 다하도록 문하에 출입하여 친어머님 같이 섬기려 하나이다.”
부인이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나에게 과분한 말이로다.” 하더라.
전소저가 이소저와 더불어 반나절이나 부인을 모시고 앉아 있다가, 뒤이어 침방으로 청하여 춘운과 함께 솔밭같이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은은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기꺼이 주고 받으니,
마음이 서로 통하고 정의가 또한 친밀하여지는지라, 고금의 문장을 평론하고 부녀자의 덕행을 논의할새 햇볕이 이미 서창에 비끼는 줄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