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속전을 드리라
30: 11-16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찌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찌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찌며
14.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찌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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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대하고 있는 이 말씀은 매우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출애굽기의 후반부는 성막을 짓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지시하여 주시고 모세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의 지시하신 대로 성막을 세우는 일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성막을 짓는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는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생명의 속전"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나옵니다.
생명의 속전?
생명의 속전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한 속죄금이란 뜻입니다. 즉 죄악된 생명을 구속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비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대하여 가르치시던 중 이 생명의 속전을 내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속전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전을 내라 하심은 무슨 까닭일까요? 오늘 이 의미를 추적하는 가운데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기 바랍니다.
1.각 사람에게 생명의 속전이 필요함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다 죄인임을 가르쳐 주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모습은 각자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권력도 돈도 명예도 건강도 다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런 것들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는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금 사는 모습이 어더하든지 인간이 현재 입고 있는 옷가지 들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 던지고 나서 그 인생에게 남는 것은 그가 죄인이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 생명의 속전은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목사님 가운데 찰스 스윈돌 이라는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한 번 주일날 설교를 하다가 우리 크리스천들은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교통신호도 정확하게 지키십시오.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저도 가끔 그 설교를 합니다만. 설교 끝나고 예배 끝나고 이 목사님이 집에 가다가 딴 생각을 하다가 빨간불에 지나갔어요. 지나가는 순간 감이 이상해서 내가 빨간불 지나갔구나 그러고 옆에 보니까 자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애요. 순간적으로 아 교인들이로구나 우리 교인들이로구나 내가 설교 해놓고 내가 어기고 교인들에게 들킨 거라 말이죠. 그냥 쳐다보지 않고 엑셀레이터를 밟고 얼른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얼마 후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아까 아까 어디 차 가지고 지나가셨죠? 내일 한 번 우리 교인들이 목사님 만나고 싶습니다.' 아이구 이거 큰 일 났어요. 교인들이 아마 따지자고 나를 만나자는 모양이다. 그냥 점심 같이 해요? 목사님.
그렇지만 아이 이거 설교한 것 실천하지 않았다고 단단히 나를 아마 따질 모양이다. 한참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러자고 만나자고. 그 이튿 날 점심 시간에 약속된 자리로 갔습니다. 이 분이 굉장히 휴머가 많은 분이었어요. 딱 약속 장소에 목사님이 나타나는데 목에다 무얼 걸고 나왔어요. 무얼 써 갖고 나왔어요. 영어로 I am guilty.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이다 쓰고 나오니까 얼마나 우스워요. 교인들이 막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환영을 하더래요. 딱 그 모습을 보더니 목사님이 갑자기 뒤를 딱 돌아섰어요. 뒤에도 무얼 걸고 있어요. 뒤에 보니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나를 치라.
2.이 속전은 우리의 생명은 값을 지불하고 사야만 하는 것임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속전을 내게 하심은 우리의 생명의 구속이 그냥 이루어 진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임을 알게 합니다. 즉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반드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구원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값이 지불되었습니다. 가장 값진 예수의 생명이 지불됨으로 우리가 구속함을 입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3.이 속전은 부자나 가난한 자를 구별함 없이 모두가 반 세겔씩 내야만 했습니다.
1)하나님 앞에서는 부자의 생명이나 가난한 자의 생명이나 다 동일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세대에서는 각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몸값이 다르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금년에도 메이져 리그에서 10승 이상을 거두어 들임으로 내년도 연봉을 최소 50억 이상은 확보해 놓았다고 합니다. 그 선수의 몸 값이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스타의 몸 값과 무명의 몸값을 현저하게 구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에 차등을 두시지 않고 동일하게 보신다는 사실을 이 말씀은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지도자들의 생명이나 나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다 귀히 여겨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 인생 하나 하나를 귀히 여기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인생이 다 같이 되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휴 프라이스 허기 감독은 사람이 모두 평등하게 되는 순간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세례받을 때 "주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에게"
*.결혼 할 때 "당신은 이 남자를 (이 여자를 )"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에서도 동일한 혼인서약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할 때
*.죽음의 순간 "사랑하는 형제가 여기에 묻히다"
3)성막의 일에는 부자나 가난한 자라 구별없이 다 똑같은 생명의 값을 드려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 자신이 할 일을 남에게 넘길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감당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생명의 값이라는 것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데 마음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만이 하는 일은 교회 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 같이 할 일들만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식의 사고를 가지고 어떤 일을 대한다면 그는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그마만큼 소중히 여길 줄을 모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굉장한 사람도 다 같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다 같이 보신다는 것을 이 진리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4.이 속전은 오직 회막봉사를 위하여서만 쓰여질 수 있었습니다.
1)생명값은 성막을 세우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막이 곧 그들의 생명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이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성막이 됩니다.
2)이스라엘 중에 존재하는 이 회막은 그들의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생명의 값을 모아 놓은 성전은 바로 그들의 생명과 같이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를갖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성막에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성막에 그의 생명값이 드려졌다는 것은 ,즉 생명의 가치를 지닌 이 귀한 물질이 성막에 드려졌다는 사실은 그의 온 마음이 여기 있음을 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투자한 주식 하락으로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투자를 했으니 많은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가장 귀한 생명값이 성막에 투자 되었으니 그 성막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3)생명의 속전이 드려짐으로 성막이 잘 운영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생명과 성막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 줍니다.
만일 성막이 황폐하게 변하고 잘 운영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 생명의 피폐함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너무나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5.성막에 대한 관심은 바로 교회를 향한 관심을 의미합니다.
성막은 예전 이스라엘에게만 주시는 교훈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1)성막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막은 후에 성전이 되고 성전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일컬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은 결국 오늘날의 교회를 가르키는 것으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막 중심의 사고를 가진 삶이란 교회 중심의 사고를 가진 삶과 같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교회에 어떤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2)성도들은 교회와 생명적인 연합관계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 성도가 평안합니다. 성도가 평안할 때 교회가 평안합니다. 이 양자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한 지체로 존재해야 합니다. 이런 존재의 모습을 상실한 성도는 참으로 비참한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하나됨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하는 그저 교인에 불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교회는 바로 자신의 생명값이 지불된 곳임을 알아서 관심을 갖고 가꾸어야 하며 온 정성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부족한 일들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공동체를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생명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값은 바로 구속함을 입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명값인 것입니다.
성막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명값이 다 속하여 있는 것 같이 우리의 모든 생명값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귀한 생명값의 총체인 그리스도께서 그 생명값을 치루시고 세우신 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값을 지불하고 산 존재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 값을 소중한 것으로 안다면 우리의 온 마음이 이 교회 안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 값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마만큼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총을 감사한 줄 모르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을 소중히 알기에 내 자신의 온 정성이 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가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이 소중함을 알기에 온 마음으로 교회를 돌보고 헌신하는 성도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생명의 속전!!!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