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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3: 1-15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모세는 요셉의 형들이 부친의 허락으로 다시 곡식을 사러 애굽에 간 사실을 기록합니다.
1. 본문 1-2절은
"①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②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 입니다.
43장에서는 앞서 애굽에서 갖고 온 양식을 다 소비한 후에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위해서 두 번째로 애굽 여행을 하게 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되는 양곡을 갖고 야곱이 짧은 동안이나마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들 하나가 여러 마리의 나귀를 인솔하여 여행을 했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양곡이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을 얼마나 부양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만 하더라도 이보다 많은 하인을 두고 있었으며 이삭의 하인도 이 정도에 상회하는 숫자였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살림 형편이 갑자기 빈곤해져서 데리고 있던 하인을 모두 내보내야 할 정도로 궁핍하게 되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타향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에 사정이 점점 어려워져서 데리고 있던 하인을 모두 팔아버려야 할 정도로 살림 형편이 딱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지나친 추측이라고 누구나 인정을 할 것입니다.
그런 억측보다는 그들이 전부 질 좋은 곡식을 먹고 그 흉년을 지낸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식솔들은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들이나 풀뿌리 또는 여러 가지 산채(山菜)로 연명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욱 타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동양 사람들은 식물에 대한 지혜가 깊어 식량이 부족한 때를 만나면 평상시에는 잘 먹지 않던 식물들을 양식 삼아 재난을 넘기는 지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빈약하기는 해도 이런 것으로 양식을 삼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이렇게 양곡이 핍절된 때에야 그런 것말고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먹을 것이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애굽에서 사온 양곡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손자들만을 위한 양식이었을 것이고 그것도 최소한 검소한 식사를 위한 곡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하인들이 먹는 것이란 그들이 먹는 것과 같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하인들과 그 식솔들은 앞에서 말한 여러 야생 열매와 풀뿌리 같은 그 지경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무엇이나 다 먹었을 것이며 평상시에 먹던 곡물류는 사치스런 것으로 당시의 부호들이나 대할 수 있는 것이었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 야곱이 모든 풍요를 다 누리도록 허락 받고 선택받은 그 땅에서 푸대접을 받고 타향 사람 대접을 받아 그의 전 가족과 함께 굶주리게 되고 그가 결국은 거의 멸망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참으로 심각한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축복하노니 생육하고 번성하라' 고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복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이러한 지경에 이르는 야곱은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이 세상적인 복을 보류하고 계실 때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어떤 무기로 이러한 역경을 극복해 내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아는 것은 힘겨운 시련을 당하게 될지도 모를 우리들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2. 본문 3-10절은
"③유다가 아비에게 말하여 가로되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④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⑤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⑥ 이스라엘이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오히려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⑦ 그들이 가로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힐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그저 살았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말을 조조이 그에게 대답한 것이라 그가 너희 아우에게 대답한 것이라 그가 너희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⑧ 유다가 아비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 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⑨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 그를 물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 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⑩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입니다.
유다는 아버지로부터 자기가 선뜻 허락 받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허락 받기 위해 사실을 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는 상당히 많은 토론과 의논이 있었을 것이지만 모세는 그러한 것들을 늘 하던 대로 다 기록하지 않고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기 아우 베냐민을 그토록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이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고는 자기에게 다시 오지 못하도록 치밀한 방법을 강구했을 것입니다 그는 베냐민이 자기에게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법적 대처까지 서슴치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긴 논쟁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는데 모세는 이런 긴 논쟁을 서술해 놓음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야곱이 자기 아들 베냐민을 떠나 보내는 것을 얼마나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괴로워 하고 있었던가를 알게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한편으로는 엄습해온 기근으로부터 자기 가족을 구원해 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자기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곁에 두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좋지 못한 음모를 다시 꾸미고 있지나 않나 하고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는 자기 자신을 보증인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베냐민을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조건밖에 없었을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만일 베냐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이제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고 어떤 처벌과 질책이라도 감수할 것을 맹세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그들은 베냐민을 데리고 가면서도 형제들이 흉계를 꾸미고 있지 않다는 결백을 또한 드러내 보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의 인내와 참을성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어떤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참을성과 인내를 우리에게 명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을 참고 견디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시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자기 곁에서 떠나 보낼 때, 마치도 그는 그를 죽음의 골짜기로 내보내는 것 같은 심정으로 떠나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3. 본문 11-13절은
"⑪ 그들의 아비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을 삼을 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비자와 파단행이니라
⑫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⑬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입니다.
여기에 모세가 하나하나 열거한 과일들은 보통 때는 대개 그리 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식량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야곱의 경우에는 그 사정이 좀 달라졌을 뿐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또 사치스런 선물을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처지에서 그런 선물이나마 보내는 정성을 보임으로써 요셉이 호감을 갖고 자기 아들들을 대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 과일이라든지 하는 그런 특산물이란 항상 산지에 따른 값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귀한 것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아들들에게 이런 모든 지시를 내리고 나서 야곱은 애굽 통치자가 자기 아들들에게 호의를 보여 주게 되기를 하나님께 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업이나 일이 난관에 봉착하게 될 때는 언제나 야곱이 행했던 이 두 가지 일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 후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이 두 가지 일 중에 어떤 하나도 게을리 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평온한 신앙 태도와 게으름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일이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스스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내고 찾아 낼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완수해 놓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신앙적인 측면에서 관찰해 보는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도 진행되는 모든 일들이 자기 노력에 의해서 진행되고 완성되어졌다고 보지는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는다면 자기들의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신앙인들은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기원을 통해서 사람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야곱의 신앙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때 우리가 사람과 모종의 거래를 한다거나 상관을 할 때 하나님께서 거기 임재해 계시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에 넣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사람 마음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별로 주의하고 유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루기 힘들고 거친 사람이 아무리 난폭한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 감정이 하나님에 의해서 그가 보시기에 선한 방향을 돌려질 수 있으며 언제라도 그가 원하시기만 하면 선한 뜻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으며 그의 성질이 얼마든지 완화되어지고 진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반면에 전에는 아무리 양같이 순했던 사람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난폭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요셉을 굉장히 엄격하고 무섭도록 근엄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왔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언제라도 돌변해서 온화하고 인간적인 마음씨를 지닌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고 의롭게 대하지 않을 때에라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함으로써 그들이 변화되어 옳은 법대로 살게 되기를 원해야 될 것입니다. 반면에 그들이 우리를 혹독하게 대하고 괴로움을 안겨 줄 때도 하나님 허락 없이는 이러한 일들을 그들이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4. 본문 14-15절은
"⑭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⑮ 그 사람들이 그 예물을 취하고 갑절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의 앞에 서니라" 입니다.
처지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자 야곱이 침착해지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가 여기에 기록한 야곱의 기도가 신앙의 결과라고 한다면 이러한 신앙에 서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야곱은 좀 더 침착하고 조용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모든 일의 진행과 결과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상의 모든 희망을 잃은 듯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그에게 남은 것이란 생이별 뿐 인 듯 한탄하고 있습니다.
"잃으면 잃으리라" 고 그는 절망에 찬 사람처럼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는 공허하게 믿음도 없이 기도했거나 믿음 없이 모든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 원한 듯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해답은 간단합니다.
야곱은 그에게 전해져 온 복에 대한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기 기도의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아들들이 자기의 이러한 고백을 듣고 베냐민을 더욱 더 잘 돌보아 주고 보호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들은 베냐민이 자기들에게 맡겨질 때 손쉽게 넘겨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슬픔으로 인해서 거의 돌아가실 듯이 괴로워 하면서 자기들에게 위탁한 가슴 아픈 장면을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자들은 이 말은 달리 해석합니다.
어떤 이는 야곱이 정말 생이별을 한다고 믿었기에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야곱이 기대했던 요셉을 잃고 베냐민까지 잃은 자기 처지를 원망했다고 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아들 둘을 잃게 됐으니 이 다음은 셋째를 잃을 차례가 되었구나' 하는 한탄으로 보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견해를 좀 더 확장시켜 분석을 해 보면 "이제 내가 내 처지를 돌아보니 나야말로 운이 없는 늙은이로구나! 처음엔 내 가문이 번성하여 많은 식구가 불어나더니, 이제는 전부 없어져 버릴 차례가 되었나보다" 하는 지독한 탄식이 함축된 말입니다.
이는 아들 하나 둘이 아니라 모두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정이 이쯤 되면 아들들은 모두 깊은 근심과 걱정에 쌓이게 될 것이고, 모두 다 자기가 맡은 임무를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야곱이 의도한 바 그 목적은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안목과 의지에는 건실하고 아름다운 가족 관계를 엮어 보려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성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권속이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