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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진남군(통영) 사또에게 올린 소지(所志)와 등장(等狀) 3건>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는 대한제국기 진남군(鎭南郡, 통영)의 수령(사또)에게 올린 고소장, 즉 소지(所志) 2건과 등장(等狀) 1건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소지(所志)와 등장(等狀)을 앞서 소개한 바가 있지만 다시 언급하건대, 소지는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 청원서, 진정서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보통 소지(所志)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는 것인데 비하여, 여러 사람이 연명하여 관부에 올리는 청원서를 등장(等狀)이라고 한다. 등장(等狀)은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관부(官府)에 올리면 관부에서는 이를 검토한 뒤에 이에 대한 처분(題辭, 제사)을 등장의 왼쪽 아래 여백에 써서 다시 되돌려 주는 게 원칙이다.
먼저 ①「1902년 토지 매매 사기 사건에 대한 고소장, 윤도기 소지(尹導祺所志)」는 거제(巨濟) 하청면 지역에 거주하는 윤도기(尹導祺)라는 인물이 1902년 12월에 진남군(통영) 사또에게 제출한 소지(所志)다. 진남군의 정윤길(鄭允吉)이 통영 순방청(統營 巡房廳)'에 소속된 공적인 땅을 개인 땅인 것처럼 거제군의 윤도기에게 속여 팔았으니 사기꾼 정윤길으로부터 매매 대금을 돌려받게 해달라"는 소송 건이다.
다음 ②「1903년 6월 가정불화로 억울함을 호소한 고소장, 김용갑 소지(金用甲所志)」는 1903년 6월에 김용갑(金用甲)이라는 인물이 진남군(통영)의 사또에게 올린 소지로, 아내의 가출과 장모의 가혹한 처사로 인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아내를 다시 데려오고 관련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요청이다. 고소인 김용갑은 김치일(金致一)의 딸과 결혼하여 7년 동안 함께 살며 딸 둘을 낳고 화목하게 지냈는데 흉년(麥凶)이 들어 살기가 막막하여 고향의 친척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약 20일간 고향에 다녀오니, 장모가 아내를 부잣집에 재가시키겠다며 이삿짐을 찢고 아이들을 빼앗고 노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다시 아내를 데려가 살 수 있게 하고 노모와 자신의 수치를 씻어달라고 요청한 청원서다.
세 번째 ③「1903년 6월28일 부당한 전결세 시정 청원서, 한산면거민등장(閑山面居民等狀)」은 1903년 6월28일, 한산면 주민들이 진남군수(城主)에게 제출한 소지다. 한산면 주민들은 새로 책정된 결세(토지세) 및 군비(군 운영 비용) 문제에 대해 이미 관청에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군수는 "조사해서 고쳐주겠다"고 약속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상급 기관의 지시대로 다시 면밀히 조사(另査)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歸正) 주시기를 재차 압박하는 내용이다. 그 결과 군수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시 조사해서 억울함이 없게 하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렸다.
1) 「1902년 토지 매매 사기 사건에 대한 고소장, 윤도기 소지(尹導祺所志)」
이 문서는 대한제국기 거제(巨濟) 하청면 지역에 거주하는 윤도기(尹導祺)라는 인물이 진남군(鎭南郡, 통영) 사또에게 제출한 소지(所志, 청원서)다. 문서 내용에는 "진남군의 정윤길(鄭允吉)이 공적인 땅을 개인 땅인 것처럼 거제군의 윤도기에게 속여 팔았으니 사기꾼 정윤길으로부터 매매 대금을 돌려받게 해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담긴 소송문이다.
* 내용인즉, 경자년(1900년) 2월, 거제군 하청면에 사는 윤도기에게 정윤길이 "내가 직접 산 논 13두락 5마지기가 있는데 팔고 싶다"며 접근했다. 이후 윤도기가 돈을 주고 땅을 산 뒤 뒤늦게 알아보니, 그 땅은 개인이 사고팔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전 통영 순방청(統營 巡房廳)'에 소속된 공적인 논(공답)이었다. 그래서 윤도기가 정윤길을 추궁하자, 정윤길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지고 돈을 돌려주겠다"는 각서(성표)까지 써주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해 가을, 조정(경부)에서 이 땅을 다시 공적 장부에 등록(승총)해 버려 윤도기는 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에 고소를 하게 되었다. 정윤길은 이 땅이 곧 공공의 소유로 환수될 것을 미리 알고 윤도기에게 떠넘긴 '사기 행각'을 벌였다. 윤도기가 여러 차례 돈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정윤길은 핑계를 대며 거절하였다. 그래서 정윤길을 잡아들여(착치) 돈을 돌려받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문서의 시기 및 성격을 살펴보면, 문서 끝에 임인(壬寅) 12월이라고 적혀 있다. 정황상 대한제국기 1902년 12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진남 영감 합하(鎭南 令監 閤下)는 당시 통제영이 있던 곳의 수령을 지칭한다.
* 결국 이 문서는 조선 시대 토지 매매 과정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민사 및 형사 소송의 사례를 보여주는 자료로, 특히 관청 소유의 토지를 개인 간에 불법 거래했을 때 발생하는 갈등과 해결 과정을 잘 보여준다.
* 덧붙여 이번 「1902년 토지 매매 사기 사건에 대한 고소장, 윤도기 소지(尹導祺所志)」는 발급자가 윤도기(尹導祺)이고, 수취자는 진남군 영감(鎭南 令監)이며, 문서 종류는 사문서(私人文書) 소지류(所志類, 토지관계土地關係)이다. 또 출전은 『규장각(奎章閣)』 고문서이며, 수결은 진남군인(鎭南郡官印)이다.
**「1902년 토지 매매 사기 사건에 대한 고소장, 윤도기 소지(尹導祺所志)」**
*[거제 하청면 거주 윤도기가 올리는 소지(고소장)]*
거제군 하청면에 사는 윤도기(尹導祺)는 삼가 글을 올립니다. 지난 경자년(1900년) 2월, 사또의 통치 아래에 있는 정윤길(鄭允吉)이 찾아와 말하기를, "내가 직접 사들인 논 13두락 5마지기가 본 읍 하청면 실전(宲田) 등의 땅에 있는데 이를 팔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제가 중간에서 일을 주선하여 해당 논의 값을 치르고 산 뒤에 나중에 뒷조사를 해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땅은 전(前) 통영 순방청(巡房廳)의 논(공답)이었습니다. 이에 즉시 정윤길과 서로 따지며 묻기를, "너의 그 많은 논 중에 하필이면 왜 이 논만 팔았느냐? 여기에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다른 말 하지 말고 네 땅을 도로 가져가고 내 돈을 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정윤길이 백방으로 간절히 청하며, "만약 이 논에 나중에라도 탈이 생긴다면 내가 스스로 담당할 것이며, 돈을 돌려주겠다는 뜻으로 증서(성표)를 써주겠다"고 하기에 의심 없이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 중앙 관청(경부)에서 이 논을 다시 공적 장부에 등록(승총)해버렸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이 사람(정윤길)의 흉악하고 교활함이 이미 나라 땅으로 귀속될 근거가 있음을 미리 예측하고는, 차마 못 할 짓을 저질러 남에게 화를 떠넘긴 것입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도리도 무시한 채, 죄 없는 다른 고을 백성인 저를 원통하고 막막한 지경에 빠뜨렸습니다.
그 사태를 따져보건대, 당시 속은 사람은 저요, 이득을 본 사람은 그놈입니다. 그놈은 자기 땅을 다시 찾아간 꼴이고 저는 제 돈을 찾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에 여러 차례 가서 돈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처음에는 차일피일 미루고 그다음에는 이리저리 횡설수설 핑계만 대더니, 결국에는 억지를 부리며 전혀 돈을 내줄 기색이 없습니다.
이 사람의 간사한 형태는 천지 사이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어찌 관아의 심문 현장에서 입을 열 수 있겠습니까? 정윤길이 쓴 수본(증서)을 첨부하여 우러러 호소하오니, 살펴주신 뒤에 정윤길을 잡아들여 돈을 돌려주도록 처분해 주시어, 다시는 번거롭게 송사하는 일이 없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남 영감 합하 앞. 임인년(1902년) 12월 일
[관리의 판결(제음)] 질문하여 공정하게 판결할 것이니, 차례를 기다려 향하라(출두하라). 주인 25일 (관인 찍힘)
[巨濟河清居尹導祺. 右謹言所志段去庚子二月分의治下鄭允吉이來言曰矣 自己買得畓十三斗五刀落이在於本邑河清面宲田等地而願言放賣故로生居間干事야右畓을給價買得之後의追問裏許則乃是前統營巡房廳畓故로當塲與允吉相詰曰汝之畓許多之中의惟獨以此畓放賣者必有其曲折이라蔽一言고推爾畓還吾錢라온즉同允吉이百般恳請曰此畓이設有後㢢면矣自擔當고 還出價錢之意로成標以給故無疑置之矣러니是歳之秋의自京部로陞摠右畓야事至此境오니此人凶狡가豫料各公畓陞摠根柢고忍行其陰人嫁禍之事고不思其己不欲勿施人之意야使無辜他官之民로至於抱寃向隅之境오니究其事體컨于時見欺者 生也得利者渠也渠推渠畓고生推生錢이理當然事有公故로屢徃推錢初延拖再橫竪고畢竟生臆야 落落無出給之意오니此人奸狀이焉容於覆載之下이오며 開喙於頭質之前乎잇가允吉之手本을粘連仰訴니 叅啇教是後同允吉을捉致推給俾無煩訟之地望良只爲 行下向敎是事 鎭南 令監 閤下. 壬寅十二月 日.
(題音) 質問公決次率待向事 主人 廿五日. (官印 一個處)]
[주1] 소지(所志) : 관청에 올리는 청원서나 고소장. 또는 청원서
[주2] 통영 순방청(統營 巡房廳) :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도수군통제영 산하의 관청 중 하나.
[주3] 승총(陞摠) : 누락되었던 토지를 조사하여 정식 세금 장부(결총)에 올리는 것. 여기서는 공답으로 귀속됨을 의미함.
[주4] 제음(題音) : 관원이 소지를 읽고 아래에 적은 판결이나 지시 사항. 본문 끝의 '질문공결차율대항사(質問公決次率待向事)' 등이 이에 해당한다.
2) 「1903년 6월 가정불화로 억울함을 호소한 고소장, 김용갑 소지(金用甲所志)」
이 문서는 계묘년(광무7년) 1903년 6월에 김용갑(金用甲)이라는 인물이 진남군(통영)의 수령(진남군 사또)에게 올린 소지(고소장)이다. 주요 내용은 아내의 가출과 장모의 가혹한 처사로 인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아내를 다시 데려오고 관련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요청이다. 고소인 김용갑은 김치일(金致一)의 딸과 결혼하여 7년 동안 함께 살며 딸 둘을 낳고 화목하게 지냈다. 지난 5월, 아내의 뜻에 따라 처가 근처로 이사했으나, 흉년(맥흉)이 들고 아는 사람도 없어 생활이 막막해졌다. 김용갑은 아내와 상의한 후, 고향의 친척들에게 도움을 받아 집과 재산을 마련하기 위해 약 20일간 고향에 다녀왔다. 그런데 그 사이 장모가 "내 딸을 부잣집에 다시 시집보낼 테니 너는 물러가라"며 이혼을 강요했다. 김용갑이 노모와 딸들을 데리고 떠나려 하자, 장모가 북문까지 쫓아와 짐을 찢고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노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에 김용갑은 유부녀를 어떻게 강제로 뺏어갈 수 있느냐며 분개한다. 시어머니에게 욕을 하고 남편을 배반한 행위는 국법(법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김용갑은 김치일의 딸(아내)을 잡아와 법대로 엄벌하고, 다시 아내를 데려가 살 수 있게 하여 노모와 자신의 수치를 씻어달라고 요청했다.
*관청의 처분 (제음/題音) 문서 끝에 적힌 처분 내용에 따르면, 사도는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관련자들을 "잡아와 대기시키라(捉待)"고 명령했다.(6월 24일 사령 집행)
이 문서는 당시 기근 상황에서의 민생고와 더불어, 전통 사회에서도 재혼이나 가정불화 문제로 인해 법적 소송이 빈번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료다.
* 덧붙여 이번 「1903년 6월 가정불화로 억울함을 호소한 고소장, 김용갑 소지(金用甲所志)」는 발급자가 김용갑(金用甲)이고, 수취자는 진남 사또(鎭南使道)이며 문서 종류는 사문서(私人文書) 소지류(所志類, 풍속風俗·토색討索)이다. 또 출전은 『규장각(奎章閣)』 고문서이며, 수결은 진남군인(鎭南郡印)이다.
**「1903년 6월 가정불화로 억울함을 호소한 고소장, 김용갑 소지(金用甲所志)」**
창녕에 사는 김용갑(金用甲)은 삼가 호소문을 올립니다. 대체로 남편이 있는 여자를 누가 감히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관할 지역인 신상동에 사는 김치일의 딸과 우연히 인연을 맺어 7년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그사이에 딸 둘을 낳았고, 부부간의 정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5월, 아내의 간절한 소망에 따라 온 가족을 이끌고 진남군 관내로 이사를 왔습니다. 하지만 마침 보리 흉년이 든 데다 사방에 친척 하나 없어 도저히 살아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이에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일단 옛 고향으로 돌아가 넉넉한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해 집을 사고 살림 기반을 마련해 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고향에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기간은 고작 20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모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내 딸을 부잣집에 다시 시집보낼 것이니, 너는 당장 물러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꾹 참고,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 딸들을 이끌고 짐을 짊어진 채 떠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북문에 이르렀을 때 장모가 달려오더니 짐 보따리를 찢어 발기고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아 갔습니다. 제 노모께서 아이들을 돌려달라고 나무라자, 장모는 딸(제 아내)을 불러내어 시어머니에게 차마 못 할 욕설을 하며 패륜적인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비록 지금은 원수처럼 되었다 하나 어제까지는 고부 사이였습니다. 예의의 나라에서 어찌 이런 도리가 있겠습니까? 남편을 배반하고 시어머니를 욕하는 행위는 법전에도 엄히 금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에 감히 엎드려 호소하오니, 살펴주신 후 김치일의 딸을 즉시 잡아다가 법에 따라 엄히 징벌해 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아내를 데려가 살 수 있게 하여, 이 못된 버릇을 고치고 저희 모자의 억울한 수치를 씻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계묘년(1903년) 6월 일, 김용갑 올림.
[관청의 판결 및 지시(題音)] 질문하고 징계할 것이니 관련자들을 잡아와 대기시키라. 24일 사령(심부름꾼)(진남군인 직인 찍힘)
[昌寧居金用甲. 右謹陳所志矣段有夫之女孰能奪取矣身與治下新上洞金致一之女偶然作配同居七年連生二女未甞無情誼而去五月從厥人之所願移渾眷於 治下當此麥凶四顧無親者生活無路還故次與厥人相議後投徃故郷使饒族買家治産而來來徃之間不過二十日也所謂妻母言内吾女當改適於富民矣汝即退去是如乎所 含忍欝憤與老母率女兒負之産物而去至於北門妻母趍來裂破負物奪去兒女故使老母責出兒女則厥女呼女而悖辱今雖仇讐昨日姑婦我東禮義之邦寧有是理大抵背其夫辱其姑載在法典乙仍于敢此仰訴爲去乎 叅燭後同金致一之女即爲捉致依律嚴懲使之率去是去乃 以杜後習之意로極爲嚴懲와以爲母子雪恥之地爲只爲 鎭南使道 處分. 癸卯六月 日. (題音) 質問懲勵次捉待할事 廿四日 使令. (鎭南郡印 一個處)]
[주1] 맥흉(麥凶): 보리 농사가 망한 흉년을 뜻하며, 당시 생계가 매우 어려웠음을 보여줍니다.
[주2] 고부(姑婦):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뜻하며, 장모가 자기 딸을 시켜 시어머니(김용갑의 어머니)에게 욕을 하게 한 상황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주3] 진남군(鎭南郡) : 지금의 경남 통영시 일대를 말한다. 1900년에 설치되어 1909년에 용남군으로 통합된 지명이다.
3) 「1903년 6월28일 부당한 전결세 시정 청원서, 한산면거민등장(閑山面居民等狀)」
이 문서는 계묘년(광무7년) 1903년 6월28일, 한산면 주민들이 진남군수(城主)에게 제출한 소지(所志, 청원서)와 그에 대한 제음(題音, 판결)이다. 당시 주민들이 겪었던 억울한 세금 문제와 이에 대한 군수의 판결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인즉, 한산면 주민들은 본 면에 새로 책정된 결세(토지세) 및 군비(군 운영 비용) 문제에 대해 이미 관청에 이의를 제기(의송)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군수는 "상급 기관의 지시에 따라 다시 자세히 조사하여 바로잡을 것이니 물러가 기다리라"는 판결(제교)을 내렸다. 그런데 주민들은 군수가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다시 한번 그 사유를 상세히 보고하며 호소하고 있다. 상급 기관(부)의 지시대로 다시 면밀히 조사(另査)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歸正)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군수의 판결 (제음/題音) 주민들의 청원을 접수한 군수는 당일(28일) 즉시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다시 자세히 조사하여 바로잡음으로써,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당시 문서의 역사적 배경 : 1903년(광무 7년)은 대한제국 시기로, 국가 재정 확보를 위해 세금 조사와 징수가 엄격했던 때다. 경남 '진남군(鎭南郡)'은 당시 통영시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 구역이며, 한산면 주민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어 세금 행정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했던 민원 문서로서 가치가 있다. '신결군비(新結郡費)' 즉, 새로 측정된 토지에 부과된 군 운영 비용이 과다하거나 부당하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이미 한 번 소송을 냈었고, 관청에서 "조사해서 고쳐주겠다"고 약속했던 상황이었다. 군수가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자 주민들이 "약속하신 대로 빨리 조사해서 세금을 깎아달라(혹은 바로잡아달라)"고 재차 압박하는 내용이다. 그 결과 군수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다시 조사해서 억울함이 없게 하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내렸다.
* 덧붙여 이번 「1903년 6월28일 부당한 전결세 시정 청원서, 한산면거민등장(閑山面居民等狀)」은 발급자가 한산면거민(閑山面居民)이고, 수취자는 성주(城主, 사또)이며 문서 종류는 사문서(私人文書) 소지류(所志類, 전결세田結稅)이다. 또 출전은 『규장각(奎章閣)』 고문서이며, 수결은 진남군인(鎭南郡印)이다.
**「1903년 6월28일 부당한 전결세 시정 청원서, 한산면거민등장(閑山面居民等狀)」**
*한산면 주민들의 호소문* 삼가 아뢰옵니다. 본 면(한산면)에서 새로 결부된 토지의 군비(신결군비) 문제와 관련하여, 일전에 관아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당시 사또(성주)께서는 "상급 관청인 '부(府)'의 지시에 따라 별도로 상세히 조사하여 바로잡을 것이니 물러가 기다려라"라는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그 판결에 따라 물러나 기다리던 중, 이제 사또께서 다시 공무에서 돌아오셨기에(還官) 그 사정을 감히 다시 호소합니다. 부디 잘 살펴주셔서, 이전 판결대로 조사를 통해 세금 문제를 바로잡아 주시기를 천만번 엎드려 빕니다. 계묘년(1903년) 6월 28일. 사또(성주) 앞 처분 바람.
*판결 제음(題音) : 별도로 조사하여 바로잡음으로써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없게 하라. 28일 향중(관아 답변) (진남군 인장 1개 찍힘)
[閑山面居民狀. 右謹陳所志矣段은本面以新結郡費事로呈議訟到付于 城主前하살온직題教内依 府指另査敀正리니退待事고시이시두更伏俟還官하와縁由敢此仰訴爲去乎 叅商教是後에依 府題敀正之地千萬伏祝 城主 前 處分. 癸卯六月二十八日. (題音) 另査歸正야無至呼寃할事 廿八日 鄕中. (鎭南郡印 一個處)
[주1] 신결군비(新結郡費) : 새로 파악된 토지에 부과된 군의 운영 비용(세금).
[주2] 성주(城主) : 고을의 수령, 즉 여기서는 진남군수를 의미함.
[주3] 제교(題教) : 수령이 내린 판결이나 지시.
[주4] 귀정(歸正) :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
[주5] 계묘(癸卯) : 문맥상 대한제국 시기인 1903년으로 보입니다.(진남군은 1895~1909년 사이 존재했던 통영의 옛 지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