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와 중수와 상수의 기준
서울 목동역과 등촌역 중간에 위치한 ‘구도 커피’라는 곳을 방문했다. 근처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고 이곳에 다다랐을 때는, 구름을 비집고 새어 나온 맑은 햇살이 카페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소품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메뉴판 상단에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정한 규율을 지켜나갑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는 원두에 대한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카페 사장으로 보이는 사내를 힐끔 곁눈질했다. 내가 커피를 주문하는 순간, 노트북 작업에 열중하던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재빠르게 주방으로 이동해 커피 추출에 필요한 도구를 집어 들었다. 직원이 여럿 있었음에도 일을 떠넘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커피를 내렸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게 될 때마다 머릿속에 굵직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하수와 중수와 상수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단순히 기술이나 내공의 차이일까?
어쩌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뻔함’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떤 방식으로 행하느냐에 따라 하수, 중수, 상수가 나뉠 거란 생각도 든다.
대개 하수下手는 기본에 해당하는 당연한 것의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건 누구나 아는 뻔한 거잖아!” 투덜대면서 근본과 기초가 되는 일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기본기를 닦는 수련의 과정을 훌쩍 건너뛰기 바쁘다. 당연히 자기 안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고, 주변의 형세를 살피지도 못한다.
적군을 보자마자 괴성과 함께 무조건 칼을 뽑아 들어 허공에 휘젓는 장수처럼 경거망동하기 일쑤다.
바둑 하수는 상대방을 바둑판 끝까지 몰아넣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라.
중수中手는 뻔한 것이 중요하다는 이치를 가까스로 이해한 사람이다.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수준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본다.
중수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현재에 만족하며 적당히 머물러 있을지,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며 살지 고민한다. 대부분 사람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상수上手는? 상수는 뻔한 걸 자기 것으로 만든 후, 그걸 날개 삼아 자신만 아는 아득한 세계에서 훨훨 날아다니면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다.
상수는 기대를 갈고 닦는 차원에서 벗어나 어떤 현상과 실재 너머에 있는 본질을 발견해낸 사람이다.
남이 일으킨 물결이 아니라 스스로 일으킨 물결에 올라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은 자다.
상수는 다른 상수는 물론이고 중수 또는 하수와 경쟁하지 않는다. 스스로 꿈을 이루었기에, 남이 볼 수 없는 세계를 이미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랜 시간 내공을 닦은 사람의 사소한 습관을 엿보게 될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고수는 아무도 모르는 일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누구나 아는 일을 가장 자연스럽게 행하는 자라는 것을
―이기주, 『마음의 주인』, 말글터,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