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 , ‘용의 출현’을 보고>
광화문에서 지금도 건재하신,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21세기에도 우리나라의 영웅으로 귀감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
‘閑山’ 이순신은 ‘韓山’으로 ‘큰 산’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거북이의 출현’이 아니고, ‘용의 출현’이라는 부제는 다양한 시각으로 ‘이순신’을 해석하려는 입장에서 ‘용맹스런 이순신’보다는 ‘똑똑한 이순신’을 강조하려는 의미로 보여진다. 거북선은 ‘용이 머리’를 하고 ‘거북이 몸통’을 가지고 있다.
보통 이순신은 ‘무인(武人)’이고, 세종대왕은 ‘문인(文人)’이라는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당시에 머리가 좋고, 문자를 제대로 익혔다고 해서 출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세종대왕만큼 총명하고, 학문이 출중한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아버지(태종 이방원)와 할아버지(태조 이성계)는 ‘무인(武人)’으로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탄탄한 집안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성군이 되었다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일지도 모른다.
똑똑한 사람들이 단칼에 죽어나가고, 하루아침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기 십상이었던 시대였을 것이다. 강한 군대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세종대왕도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구·신석기 시대에 뗀석기 간석기 등을 시작으로 인류의 문명은 ‘도구’를 사용하면서 발달해 왔다. 21세기 인류의 ‘도구’를 몇 가지만 꼽으라면 ‘핸드폰’, ‘아이패드’, ‘노트북’ 등이 아니겠는가?
그 중에 ‘군대’는 더더욱 ‘도구’의 사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켓맨’이라고 불리는 북한 김정은의 ‘미사일’은 북한군의 중요한 ‘도구’이고, 최근에 말이 많았던 일본의 ‘스텔스 전투기’ 또한 중요한 ‘도구’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울산 조선소를 개발할 당시에 영국에서 ‘500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꺼내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은 ‘한국의 조선술’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배를 만드는 기술’은 엄청난 지적 기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명장 ‘이순신’에게는 ‘거북선’이라는 ‘도구’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만한 특징이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학익진(鶴翼陣)은 진법은 학이 날개를 펴는 모양을 진으로 응용하여 만든 것이다. 말 그대로 상대를 원을 그려가면서 둘러싸는 형태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월드컵 경기장의 건축적 컨셉은 이 ‘학익진’의 형태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21세기를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곳곳에 명장 ‘이순신’의 깊은 에너지가 스며져 있다는 의미가 아닐지...
16세기 조선시대의 ‘무인’들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 문인들보다 다양한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글자를 읽고 쓸 줄도 알아야 했지만, 활을 쏘고, 말을 타는 등의 여러 가지 기술을 갖춰야 했다.
이순신이 말에서 떨어져 버드나무껍질로 상처를 매었다는 일화를 떠올려 보면,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의학적 상식도 필요했을 것이다.
필자는 어린시절에 이순신 장군의 위인전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위인전이 많이 쓰여졌다. 아마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읽어본 위인전도 이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에 쓰여진 이순신 전기에는 이렇게 이순신이 지방의 탐관오리와 싸우고, 원균과 맞서고, 역모죄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선조의 미움을 사서 옥에 갖히는 등 불운한 이순신의 모습을 많이 다뤘다.
일제강점기 한국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이순신 전기를 만드는데 간섭할 수 있었다면, 이순신의 내부갈등 상황을 크게 부각시켜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을 한심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참으로 ‘와키자카 야스하루’처럼 ‘이순신’을 존경했던, 조상을 둔 후손들이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은 살리고, ‘한국’은 죽이는 관점인 것이다.
사랑하거나 미워하면 그 대상을 닮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그의 후손들은 임진왜란의 패배를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권토중래(捲土重來)하여, 또 다시 일본을 1,2차대전의 종주국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임진왜란에서 패하면서 ‘이순신’의 ‘정기(精氣)’또한 훔쳐갔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이순신’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을 보면, 내가 어릴 때 읽어봤던 이순신 전기에는 없던 ‘일본의 입장’을 많이 다루고 있다.
거북선은 바닷거북의 움직임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 ‘거북선’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거북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본말로 거북이는 ‘カメ ; のろい’ 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거북선’을 ‘거북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복카이센’이라고 불렀다. 복카이센沐海船(=목해선)이라고 표기를 하나 군대에서 그 의미는 ‘코드(암호)’로 해석해야 맞을 것이다. ‘해전에 능한 괴물’ , ‘메쿠라부네’라고 불렀다고 한다.
‘盲船’이라고 썼다고 한다. 장님배라는 의미인데, 눈이 뱃속에 들어가 있다는 뜻으로 배에 철갑을 두른 배의 통칭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일본군 수군지휘자였던 와키자카는 ‘거북선’에 대한 소식을 듣고 처음에 이를 매우 비웃었다고 한다.
그리고 불교경전에는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눈 먼 거북이 물 위에 뜬 나무를 만났다는 말이다. 이는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 그것을 극복했다는 의미다.
영화에 보면, 항상 중심되는 내용을 기반으로 주변에서 전개되었던 스토리가 펼쳐진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한국스님으로 변장을 하고, 이순신의 거북선(복카이센) 설계도면을 훔쳐가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쇄국정책’으로 외세의 상황이 어떤 지 잘 몰랐던 상황에서, ‘불교’는 외국과 원활한 교류가 가능했다. 따라서 한국스님에게 문화를 전달받았던, 왜군은 한국스님으로 변장해서 조선군 기지까지 들어와서 거북선의 설계도면을 훔쳐갈 수 있었을 거라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다.
또한 ‘눈길’이라는 영화에서 일제강점기 일본군성노예로 출현했던 영화배우 ‘김향기’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장수였던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생 ‘정씨부인’으로 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필자는 중국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유명한 중국드라마 ‘량아방’의 출연진들이 일제강점기 배경을 다룬 드라마 ‘위장자: 감춰진 신분’에 또 다시 나오는 것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던 조선의 스파이 ‘정씨부인’(김향기)을 살려준 대가로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최근에 한국에서 유명해 진 듯 하다.
필자도 일본에 가 본 일이 있다. 일본 여러지역을 방문하면서 1000여년 넘게 지켜져 온 문화유산과 나무를 보면서 감탄한 적이 있다. 나무는 성장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 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나무들은 전쟁피해를 겪지 않았던 일본의 나무보다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히노끼’(편백나무)는 배는 물론 집을 짓는 데에도 훌륭한 자재로 쓰이고 있다.
이순신의‘오동나무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직송상관인 전라좌수사가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오동나무를 베어오라고 지시하자, 전함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베는 일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맞서 싸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따라서 ‘이순신’이 21세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배나 비행기를 설계할 수 있는 다양한 지식(ぼっかい ; 墨界 ; 용지에 묵으로 선을 긋거나 먹색으로 인쇄한 괘선)과 도면을 그릴 수 있는 기술 등을 겸비한 ‘군인’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비행기나 배를 운전할 수 있는 면허증도 있어야 하고, 암호나 코드를 해독할 수 있는 다양한 외국어실력도 갖춘 그런 인물로 다시 태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에 부여된 코드명은 ‘리틀보이’이다. 뒤이어 나가사키에는 ‘팻맨’이 투하되었다. 따라서 ‘올드 보이’에 출연했던 최민식이 이순신이 ‘명량’이 아닌, ‘한산’을 찍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어쨌든, 이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을 재미있게 보고 나오면서, 이런 영화들이 계속 다양한 시각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