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 / 맹문재
동석이 어머니가 며칠 앓다가 떨어졌다
외아들인 동석이는 대구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다가 트럭에 깔렸다
아들 없어 업신여김 당한다며 장날마다 술주정하던 산옥이 어머니도 떨어졌다
산옥이네 집에 양자를 준 산옥이 어머니의 시동생 형옥이 아버지도 떨어졌다
손자들 사랑에 마실을 안 다닌 향숙이 할머니도 떨어졌다
점잖기만 하던 대흠이 아버지도 떨어졌다
대흠이 아버지의 큰형님도 떨어졌다
술에 약해 비틀거리며 신작로를 걷던 상호 아버지도 떨어졌다
많이 모자라는 상호는 제 아버지의 장삿날 먹을 것이 많다고 좋아했다
아침마다 우리집에 와 며느리를 흉보던 선희 할머니도 떨어졌다
선희 할머니는 그래도 큰며느리집에서 죽어야 한다고 인천으로 따라갔다
선희 아버지는 그곳 공장에서 일하다가 엄지손가락을 날렸다
작은아들을 따라 경기도 안산으로 갔던 형숙이 할아버지도 떨어졌다
키가 말처럼 크고 이야기를 시원하게 하던 형숙이 할머니도 떨어졌다
형숙이 삼촌도 공장 일에 지쳐 시름시름 앓다가 떨어졌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던 형삼이 할아버지도 떨어졌다
착하고 수줍음 많던 형삼이 할머니도 떨어졌다
형삼이 삼촌 상술이는 몇 해 전 농약을 마셨다
우리 할머니와 의형제를 맺은 용수 어머니도 밭고랑에서 떨어졌다
맹문재 시인
1963년 충북 단양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91년 『문학정신』 으로 등단. 1993년 전태일 문학상, 1996년 윤상원문학상을 수상.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책이 무거운 이유』, 저서로 『한국민중시문학사』, 『페미니즘과 에로티시즘 문학』, 번역서로 『포유동물』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 중앙대 강사 . 안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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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가리 / 맹문재
던지는 짚단을 받아 아버지는
쌓는다
지난 가을에는
아버지가 짚단을 던지고
할아버지가 저렇게 쌓았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올해
내가 짚단을 던지고
아버지가 받아 쌓는다
허물어지지 않게
어미 까치가 둥지를 짓듯
이리저리 맞추고 밟는 아버지를 보며
내아들을 생각한다
당신이 가시는 날엔 나도
아들이 던지는 짚단을 저렇게
쌓을 것이다
책이 무거운 이유 / 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주인 / 맹문재
마을의 공동 수도에서 목을 축인 뒤
수도꼭지를 잠그려는데 잘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내리누르기도 했지만
졸졸 떨어지는 물줄기를 막을 수가 없었다
많이 흐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놔둔 채 떠날 수 없어
나는 계속 잠그려고 했다
그래도 마을에서 공부를 제일 많이 했는데
낡은 수도관을 갈 수 있는 인물인데
몇 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수도꼭지를 잠그는 동안에도
나는 서울 사람이라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그때 이웃의 할머니께서 다래끼를 허리에 메고
자박자박 걸어오셨다
나를 어렸을 때 업어주기도 한 분이셨는데
다래끼 안에는 상치가 병아리들처럼 소복이 들어 있었다
나는 손님을 끌기 위한 가게 주인처럼 얼른 다가가
어디를 다녀오시느냐고 여쭈었다
이 놈의 날씨 뒈져뿌러라
할머니는 내 인사의 답으로 한바탕 욕을 해대면서
두꺼비 같은 눈으로 웃으셨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목을 축이고 나서 곧바로 잠근 뒤
다시 자박자박 가셨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도꼭지를 열고 잠근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또 물이 흐를까봐 겁이나 틀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첫댓글 우연히 지난 키페에서 내 글을 정리하다가 만난 맹문재 선생님의 명시 몇편 넘 가슴에 와 닿는 ...
짚가리 가 가슴을 후빕니다.
참 깐깐한 시인 그러나 참 고운 마음을 가지신 분입니다
외소한 체구지만 그분의 생활에서 참 단단한 시의 정신을 들여다 봅니다
이번엔 고산 문학상을 받으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