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반응[편집]
수원시
수원시는 2013년 8월 고은에게 수원시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 아래 주거·창작 공간으로 마련된 '문화향수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고은은 수원시로부터 수도요금, 가스요금 등을 면제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그 비용이 연 1,000만원에 상당한다고 보도되었다. 이제 이에 대해 광교산 주민들이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 보호법에 묶여 있는 지역에서 고은에게만 특혜가 제공되고 반발하면서 퇴거 집회를 열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시는 생계를 이어가려는 주민들에게 고발과 벌과금을 부과하면서 고은 시민에게는 혈세를 들여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은의 성추문 파문이 발생하자 이찬열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수원시 갑) 등이 퇴거를 요구하는 등 수원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으며 2월 18일 고은 재단이 1년 내로 퇴거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수원시는 고은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추진할 예정이었던 문학 행사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수원시가 고은재단과 함께 건립을 추진 중이던 '고은문학관' 설립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미 수원시는 고은문학관 부지로 팔달구 장안동 시유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고, 염태영 수원 시장은 고은문학관 건립사업 벤치마킹을 위해 2017년 6월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가 설계한 독일 쾰른의 콜롬바 박물관과 스위스 발스의 온천단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 고은의 성폭력 파문이 발생한 후 한명숙 수원시의원과 시민들이 고은문학간 설립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수원시는 약 3주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2월 27일 고은의 복수의 '성기 노출' 증언들이 나오자 마침내 28일 긴급 발표를 통해 고은문학관 건립을 전면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수원시는 고은이 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추모시도 철거했으며 권선구 권선동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소녀상’ 아랫단 우측에 설치되어 있던 고은의 추모 시를 2월말 철거했다고 3월 7일 언론을 통해 밝혔다. #
서울특별시
한편 서울시는 2017년 11월 2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중 주요사업의 하나로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 3층에 고은이 대표작 <만인보>를 쓴 서재를 재현한 '만인의 방'을 개관했다. 사실 1933년생인 고은은 사실 3·1운동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며 위에 썼듯이 고은은 3·1운동의 의의를 심각하게 폄훼한 인물이다. 그는 만해 한용운이 개인적인 컴플렉스에서 3·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주장했고, 당시 민족대표 33인을 장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폄하한 바 있었다. 그리고 서울시는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의욕적으로 '만인의 방'을 꾸몄고 여기에 3.1운동 관련 유물과 기념물을 전시했다.[11]
그 뒤 '만인의 방' 개관 두 달여 만에 고은의 성폭력 파문이 발생하면서 이곳을 폐쇄하라는 여론이 거세졌지만 2018년 2월 11일에도 서울시는 철거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 사실 서울시도 내부적으로 상당히 난감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러다가 고은의 성기 노출 및 자위행위 폭로가 터지자 결국 고은 기념관인 '만인의 방'을 철거했다.##
군산시
고은의 고향 군산시에서는 시민들의 당혹감과 충격이 이어졌다. 일부는 군산으로 모셔오자는 반응들이 있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잠잠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고은 아버지의 행적 때문에 군산시에서는 그에 대한 반감도 상당했다.
여기부터가 고은의 잊고 싶은 그 날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몇 년 전 군산문화원에서 시인의 생가 표지판을 마을 입구에 만들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실제 생가와는 동떨어진 곳에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중략)
군산의 향토학자 한 분은 "6·25 동란 때 용둔리 일대의 좌우익 학살 현장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선산 김씨 일족들과 좌익 활동을 했던 고은 일가친척들과의 풀지 못한 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또 그는 "고향을 등진 뒤로 노모와 가족들을 외면해 왔던 고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감도 절반의 이유쯤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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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는 배우 김수미, 개그맨 박명수 등과 함께 고은을 군산을 빛내는 유명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군산에 있는 은파호수공원에 고은의 시비가 있으며 군산 벽화마을 벽화에도 고은의 시문이 새겨져 있다.
군산시청에서는 직접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으나 고은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시에서는 직접 이 문제를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시
포항시는 시청사 1층, 2층 계단 벽면에 설치된 〈등대지기〉를 덧칠해서 없애기로 했다. 포항시는 2014년부터 시청사 내 계단 오르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계단 벽면을 다양한 벽화, 시화로 장식했는데, 그 중의 하나로 고은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진 〈등대지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성추행 폭로 이후에는 계단을 이용하는 민원인과 공무원들의 항의와 불만이 이어졌다. 결국 포항시는 2018년 3월 9일에 페인트를 덧칠하는 방법으로 철거하기로 했다고 공표했다. #
전술했듯이 〈등대지기〉는 19세기 미국의 찬송가 곡조에 일본 시인 카츠 요시오(勝承夫)가 가사를 붙여 만든 곡이다. 고은은 단순히 일본어 가사를 번역했던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니 다소 과민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중의 고은에 대한 분노가 매우 높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경기도
2018년 3월 19일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2016년 12월 개장한 파주시 임진각국민관광지에 위치해있는 독개다리 스카이워크(인도교) ‘내일의 기적소리’에서 고은의 이름을 스티커로 가리고 안내판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내일의 기적소리'는 6·25 전쟁 때 폭파돼 교각만 남은 임진강 경의선철교 독개다리에 설치한 스카이워크로, 고은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 이곳은 ‘분단 65년, 한반도 통일의 열망을 담아 고은이 명명하고 쓰다’라는 안내판과 ‘내일의 기적소리’ 시와 지형도를 담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사건 이후 조형물에선 고은의 이름을 스티커로 가렸으며 안내판은 철거했다. #
[1] 창비신서 121권 『고은 문학의 세계』(1993년 발행)에 실린 인터뷰에 의하면, 1960년
무렵에 구상과 처음 왔고, 그 다음(날짜 미상)에 불교계 관련 일로 한 번 더
방문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2] 고은 스스로도 1963년의 제주행이 세 번째임을 인정한 바 있다.
[3] 백궁다방은 단성사 옆에 위치한 서울 시내 유명 다방 중 하나였다.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세기극장(1979년 이후 서울극장)이 모여있던 곳이라 인기 있는 데이트
장소이기도 했다.
[4] 동아일보의 가십성 기사 게재 코너로, 현재(2018년)까지도 남아있다.
[5] 입주 당시 광교역처럼, 광교입주민들의 반발에 시달린 바 있다.
[6] 이러한 주장에서 비롯된 각종 발언 자체가 작가와 작품을 따로 떼어내어 작품의 질을
막론하고 작가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뜻에서 나온다. 후술하겠지만 옹호자
쪽에서조차 그의 도덕성에서만큼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7] 진짜 술 퍼먹고 남자한테 키스한 문인도 있었다. 술집에서 술 마시고 나오다가
김지하를 보게되자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들어 끌어안고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키스를 했다. 강제 키스 당하다 입술
깨물린 김지 하는 이후 최인호를 슬슬 피해다녔다.
[8] 고은의 절친으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음모론을 퍼뜨린 문단 권력자 백낙청이
지배하는 출판사.
[9] 1월경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도 고은 시인의 복귀를 반대하는 여론이 다수이다.#
[10]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을 복역하고 나와서 다시 농사에 종사하는데 주위에서 평생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 / 그 범죄 농부가 수확한 벼(장물 아님)를 모 정미소에서 판매할 수
있게 쌀로 도정해주었는데, 그 정미소에 대해 범죄인을 도와준 사악한 정미소라며 판매중단을 압박하는 것은
범죄입니까? 정의입니까? 등. 정작 고은시인의 성폭행에 대해서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를 폭로한 피해자와
언론 기자에 대해 고은 시인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을 뿐이다.
[11] 만인보에 3.1 운동 관련 인물들에 대한 내용도 있다는 것이 서울시청측의 설명
첫댓글 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