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각 독서의 편집
「미사 독서 목록」은 각 독서의 본문 출처를 밝혀 놓 은 곳에, ‘제목’과 ‘시작 말’을 제시하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의 사항에 유의하여야 한다. 가) 본문의 출처 표시
119. 본문의 출처(장, 절)는 시편을 제외하고 언제 나 『새 대중 라틴 말 성경』에 따라 밝힌다. 그러 132 나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원문(히브리 말, 아람 말 또는 그리스 말)의 출처를 덧붙인다. 관할 권위의 결정에 따라 「미사 독서」를 각 나라 말로 펴낼 때 그 권위가 승인한 전례용 번역 성경에 맞추어 장절 표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 하든지 여백에 하든지 장절의 표시는 언제나 정확하게 해야 한다.
120. 「미사 독서 목록」에는 빠졌지만 전례서에는 독서 본문을 소개하는 말이 필요하다. 이 소개는 전 례 거행에서 읽어야 한다. 그와 같은 소개는 아래 규범(121-122항)을 따른다. 그러나 이 규범은 관 습과 지역과 언어의 다양한 상황 때문에 관할 권위 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21.
(1) 봉독하기 전에는 언제나 “......기(서)의 말입 니다.” 또는 “...... 서 말입니다.”, “......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한다. 그리고 “...... 시작 입니다.”나 “계속입니다.”를 하지 않는다. 다만, 특 별히 알맞은 경우에 “시작입니다.”는 사용한다.
122.
(2) 성경에 들어 있는 각 책의 이름에 관하여는 전 통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따른다. 다만 아래의 사 항은 예외다.
(가) 같은 이름으로 두 권이 있으면, “상권”이나 “하 권”(예를 들면, 열왕기 상권, 마카베오기 상권) 또 는 “첫째 서간” 또는 “둘째 서간”이라고 한다.
(나) 다음의 책들은 현재 더 많이 사용되는 이름으 로 한다. “열왕기 I, II” 대신 “사무엘기 상, 하”,
“파라리포메논서 I, II” 대신 “역대기 상, 하”,
“에즈라 I, II” 대신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다) 지혜 문학 계통의 성경은 다음과 같은 이름으 로 구분한다. 욥기, 잠언, 코헬렛, 아가, 집회서.
(라) 『새 대중 라틴 말 성경』에서 예언서로 분류된 책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바룩, 에제 키엘, 다니 엘, 호세아 ...... 말라키’ 예언서의 말입니다.”라 고 한다. 일부에서 예언서로 간주하지 않는 책들도 그렇다.
(마) ‘애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예레미 야, 바오로 이름을 말하지 않고 읽는다.
나) 요약 말
123. 각 독서에 요약 말을 세심하게 선택하여 붙 다(거의 본문의 표현을 따왔다). 요약 말은 독서의 주요 주제를 보여 준다. 또한 필요한 경우 요약 말에서 벌써 그 미사의 독서 들 사이의 연결이 드러난다.
다) 시작 말
124. 시작 말은 무엇보다도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서 하는 말이다. “그때에”, “그 무렵”, “형제 여러 분”,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이렇게 말하 신다.”와 같은 표현들이 있다. 이 말들은 본문 자체 에 시간이나 사람에 대한 지시가 충분하거나 본문 의 성격으로 보아 그런 시작 말이 어울리지 않으면 생략한다. 이러한 표현은 관할 권위의 결정에 따라 각 언어권에서 다르게 표현하거나 생략할 수 있다. 이렇게 하고 나서, 그 본문이 들어 있는 전체 맥락 을 이해할 수 있도록 몇 마디 말을 빼거나 덧붙이면 서, 독서를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변경으로 번역문 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으면 그 부분에 알맞은 지시 를 한다.
라) 마침 환호송
125. 백성이 환호를 더욱 쉽게 하도록 독서자는 독 서를 마치면서 “주님의 말입니다.”라고 한다. 또 는 지역 교회의 관습에 따라 비슷한 다른 말을 해도 된다.
<끝> ******************************
독서집을 읽는 방법론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말으로 가득 찬 전례를 통해서… 기꺼이 성서에 다가가야 한다.”(계시 25).
「미사 독서 목록 지침」에 많은 보화가 있어도 독서집을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독서집에 들어있는 성서적, 전례적, 신학적 보화를 이해하도록 하자. 방법론이 물론 다는 아니다. 악보 읽는 법도 가르칠 수 있고, 악기 연주법도 가르칠 수 있어도, 음악가가 되는 것은 ‘기술’ 연마나 ‘지식’ 습득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몸으로 익히는 인내, 내면의 소리를 느끼고 조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 전례 거행은 항상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한다.
* 신학적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성서 가운데, 또 신약성서 중에서도 복음서가 가장 뛰어나다는 것은 아 무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우리의 구원자, 사람이 되신 말의 삶과 가르침에 관한 으뜸 가는 증언이기 때문이다.»(계시 18).
* 「미사 독서 목록 지침」은 «복음 봉독은 말 전례의 절정이다. 회중은 전통적인 순서에 따라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다른 독서들로 복음을 들을 준비를 한다.»(「미사 독서 목록 지침」, 13)라고 말한다.
1) 전례 성서 말의 생김새 파악
독서집에 있는 성경 말과 성경책에 있는 말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파악한다. 가끔 전례에선 성경 본문을 발췌해서, 독서용 성경 본문을 만든다. 아주 흔히는 성경 본문을 전례용으로 고쳐놓는다. 주로 세 부 분에서 그렇게 한다. 독서의 첫 구절과 끝 구절을 고치고 중간 구절은 빼기도 한다.
전례성서의 시작 말은 원 성서 본문의 앞부분과 분리시키면서 어떤 연결 기능을 한다. 간단히 말해서, 시 작 말은 전례성서 본문에 어떤 맥락을 부여한다. 주로 쓰는 시작 말은 «그때에», «그 무렵», «형제 여러 분»,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이렇게 말하신다», 등등이다.
예를 들어, 연중 제7주일 다해의 복음인 루카 6,27-38 앞에는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하 셨다.»와 같은 시작 말이 덧붙여진다. 왜냐하면 성서 본문이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 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27절)로 시작하므로, 이 말만 가지고서는 누가 누구에게 이 말을 하는지가 분명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순 제2주일 나해 복음인 마르 9,2-10을 보면, 성서 원문은 “엿새 뒤에”란 말로 시작하는데, 전례 독서 집에서는 그 “엿새 뒤에”란 말을 “그때에”란 말로 바꾸어놓았다. 이 단순한 말마디 수정으로 본문 해석이 바 뀌어 버린다. 탈출기 24,15-16을 보면,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오르고 엿새 뒤에 하느님을 만나게 됨을 읽게 되는데, 예수 변모 사화에서 “엿새 뒤에”란 말로써 표현하고자 했던 시나이산과 다볼산, 모세와 예수, 하느 님의 현현과 예수의 변모 사이의 신학적 틀이 단순히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관계로 좁아졌다: «그 무렵 예 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모세와 엘리야도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예수와 제자들뿐이 라는 내용이 이미 성서 본문에도 표현되어 있지만, 전례 독서의 시작부분을 통하여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끝 말]
전례 독서에서는 성서 본문의 원래 종결부에 앞서 끝을 맺거나 또는 한두 구절 더 앞으로 나아간 뒤에 마 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리하여 성서 본문의 원뜻은 전례 안의 특별한 맥락에서 다른 독서들과 상호 관계를 맺으며 새롭게 해석된다.
연중 제27주일 나해 복음은 마르 10,2-6이다. 10,1-12은 ‘혼인과 이혼’에 관한 내용이고, 10,13-16은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미사 전례 독서는 1절«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유 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를 빼고 «그때에»라는 구절로 대치한다. 이때문에 예수님께서 예루 살렘으로 올라가는 여행길에 하신 말이라는 신학적 맥락에서 벗어나게 되고, ‘혼인과 이혼’ 그리고 ‘어린 이들을 사랑하심’이라는 구체적인 주제에 더 집중하게 된다. 나아가, 이 두 주제를 함께 독서로 연결시킴으 로써 교회는 이혼 위기를 겪으면서도 혼인 계약에 충실한 것이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일임을 말하고자 한다.
어떤 성경 말은 주요 축일마다 반복해서 듣게 되는데, 똑같아 보이지만 끝 구절을 어디서 잡느냐에 따 라 뜻이 약간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루카 1,26-38을 전례에서 듣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8월 22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10월 7 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다 같은 성서 본문을 사용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날 전례의 의미에 따라 약간씩 어떤 구절이 덧붙여져 있거나 빠져 있다. 붙이든 빼든 결국 같은 성서 본문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편집의 효과로 뜻이 달라진다. 예수 성탄 대축일 새벽 미사의 복음(루카 2,15-20)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의 복음(루카 2,16-21)의 경우가 그 한 예다.
루카 2,15-20
15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 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 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16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 운 아기를 찾아냈다. 17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다. 19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 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 아갔다.
루카 2,16-21
그때에 목자들은 베들레헴에
16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 를 찾아냈다. 17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 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그것을 들은 이 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 하다. 19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 아갔다. 21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성탄 새벽 미사의 경우, 복음(루카 2,15-20) 첫 구절이 성서 본문 그대로이다. 그래서 15절의 “베들레 헴으로 가서”와 20절의 “돌아갔다”란 말이 대조를 이루며 천사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의 경우는 루카 2,15-20의 문학적 의도를 드러내지 못한다. «그때에 목자들은 베들레헴에»라는 첫 구절을 붙이고 15절은 생략하고 본문을 늘려서 끝 구절을 21절로 하고 나니, 인물들 이 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등장했다가 퇴장하는 듯한 느낌으로 독서를 듣게 된다.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 셉과 아기를 발견하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여드레가 차서 아기는 할례를 받고 예수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전례에서 독서의 첫 구절 «그때에 목자들은 베들레헴에»와 끝 구 절에 나오는 «여드레가 차서»라는 표현 덕분에, 성서 본문 자체가 ‘성탄 팔일 축제 내 제8일’이라는 전례 거 행의 의미를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이 날 구세주 메시아께서 할례를 받고 ‘예수’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데, 이 이름은 천사가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께 알려준 이름이었다.
[중간 말 생략]
성서 본문 중간의 몇몇 구절을 빼는 것이다. 이로써 독서가 짧아지기도 하고 뜻이 변하기도 하며 전례 회 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을 건너 뛰고 읽게 해주기도 한다.
중간 말 생략의 좋은 예가 사순 제2주일 다해 1독서(창세 22,1-2.9-13.15-18: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 물로 바치는 이야기)이다. 보다시피 창세 22,3-8.14가 생략되었다. 이 생략된 부분은 구약의 신학을 이해 하는데 아주 유익하고 당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독서에서 빠져도 아브라함의 순종이 라는 큰 주제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전례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 의 말을 들어라.”(마르 9,7)라는 하늘의 소리를 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본받아야 할 순종의 예표로 소개하 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의 복음 역시 이에 해당하는 마르 9,2-10의 말이다.
뜻이 변하게 되는 중간 말 생략의 예는 예수 성심 대축일 다해 1독서(호세 11,1.3-4.8-9)이다.
호세 11,1-9는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와 미래를 깨닫도록 과거의 일을 떠올려주고 있다. 생략된 구절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지난 죄들을 기억나게 하거나(2절: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 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또는 그들 위에 떨어질 재앙에 대한 예언이거 나(5-6절: “그들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고 아시리아가 바로 그들의 임금이 되리니 그들이 나에게 돌아오기 를 마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계략 탓으로 칼이 그 성읍들에 들이닥쳐 성문 빗장들을 부수고 삼켜 버리 리라.”), 현상황에 대한 예언자의 실망을 드러낸 표현이다(7절: “내 백성은 나를 배반하려고만 한다. 그들이 위를 향해 부르짖어도 누구 하나 일으켜 세워 주지 않으리라.”).
이상의 대목들을 생략하고 남은 부분들은 모두 ‘긍정적인’ 말들이다.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고, 그 극진한 사 랑은 북받쳐 오르는 마음의 연민에서 나온다.
본문 내용이 어려워서 생략한 예는 삼위일체 대축일 가해 1독서(탈출 34,4-6.8-9)이다. 본문에 빠진 부 분(7절: 주님은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은 구약성서의 사고방식 안에서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말이지만, 신약성서에 친숙한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되 는 대목이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앞을 보게 되는 이야기를 전하는 이날 복음(요한 9,1-41) 을 보면, 문제가 풀린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 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탈출 34,7이 말하는 하느님의 벌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말이다. 신앙 성숙과 계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전례 말이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2) 새로운 맥락 파악
먼저 성서의 원래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후에 전례 독서로 어떤 주제가 강조되고 있는지가 파악될 수 있다. 성서의 원래 맥락을 찾는 과정은 우선 복음과 복음환호송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 다 음 1독서, 화답송, 2독서 순으로 꼼꼼히 읽고, 끝으로 감사송, 입당송, 성체송을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