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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그나로크(고대 노르드어: Ragnarǫk)는 노르드의 말세 신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그나로크란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 일련의 사건이다.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 신화의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사망하고, 다종다양한 자연재해가 닥치며, 최종적으로 세계가 물에 잠겨 멸망한다. 그 뒤 풍요로운 신세계가 물속에서 솟아나고, 살아남은 신들이 재회하며, 두 명 인간 생존자로부터 다시 세상은 인간들이 넘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다른 뜻으로는 아마겟돈도 있다. 라그나로크는 노르드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다양한 학술 연구, 이론 대상이다.
13세기 이전 서사시들을 모은 《고 에다》가 라그나로크에 관해 언급한 주요 문헌이며, 13세기에 아이슬란드의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쓴 《신 에다》도 중요하게 다룬다. 여기서 이 사건은 라그나로크(고대 노르드어: Ragnarǫk) 또는 라그나뢰크(고대 노르드어: Ragnarøkkr)라고 표기하는데, 각각 "신들의 운명", "신들의 황혼"이라는 뜻이다. 19세기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자기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의 마지막 작품에 《신들의 황혼》(1876년)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이후 이 용어도 널리 사용했다.
북유럽 신앙에서 최후의 전쟁이 있으리라 보고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원래 바이킹들이 믿던 '교리'이고, 라그나로크 이야기는 그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후대에 쓰인(기독교와 그 종말론이 전해진 이후에 그 영향을 받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2. 신화해석
시간의 순환
루돌프 지메크는 리프와 리프트라시르가 라그나로크에서 생존한 것을 “인류기원론의 반복적 사례로, 에다 종말론의 순환적 성격에서 이해할 수 있다”라고 했다. 지메크에 따르면 호드미미스 홀트는 “문자 그대로 두 사람이 숨을 수 있었던 나무 또는 숲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되며, 이것은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가리키는 또다른 이름인 것이다. 고로 통나무를 가지고 최초의 인간(아스크와 엠블라)을 만들었던 것이 라그나로크 이후에되 반복되는 셈이다." 시메크는 게르만 일대에서 인간이 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이 매우 오래된 것이며, 바이에른 지역의 전설 중에 한 양치기가 나무구멍 속에 살아서 역병을 피하고 그 양치기의 후손들이 역병 이후의 세상에 번창하게 되었다(F. R. Schröder 재인용)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또한 티르빙 대계의 등장인물인 오르바오드는 “나무-인간으로 살고 나서 회춘했다“(Ǫrvar-Odds saga 24–27)"는 것을 지적한다.[48]
무스필리, 헬리안드, 그리고 기독교
9세기에 쓰여진 고대고지독일어 서사시 《무스필리》와 라그나로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무스필리》의 내용은 기독교의 최후의 심판에 관한 것이며, 내용 중 "무스필레"(Muspille)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또한 9세기에 쓰여진 예수의 삶에 대한 고대 색슨어 서사시 《헬리안드》에도 "무스필리"라는 단어의 다양한 변형들이 나타난다. 《무스필리》와 《헬리안드》에서 모두 "무스필리"라는 단어는 불로 인한 세계의 멸망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49] 라그나로크에서는 "무스필리"의 노르드어에 해당하는 "무스펠"이라는 말이 라그나로크 때 등장하며, 라그나로크 역시 세계가 불길에 집어삼켜진다. 이런 공통점이 있고 이 단어들의 의미 및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 어원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49]
인도유럽조어 사용자들
노르드 신화의 라그나로크와 다른 인도유럽어족 신화들 사이의 유사성이 지적되고 있다. 세계구급 혹한인 핌불베트르는 페르시아의 분다히신 및 이마와 비교할 수 있고,[50] 비다르가 펜리르의 입을 "밟아" 찢어죽인 것은 인도 베다에서 비슈누가 바마나로 화하여 세 "걸음" 만에 지상과 천상을 모두 덮은 이야기와 비교할 수 있다.[50] 보다 큰 그림을 보면 인도유럽어족 문화들에서 나타나는 "최후의 전쟁"이라는 테마들을 서로 비교할 수도 있다. 예컨대 이 "최후의 전쟁"에서 맹인 또는 반맹인의 등장인물이 나올 때가 있는데, 이런 인물은 갑작스럽게 놀라운 기량을 나타낸다.[50]
화산 분출
힐다 엘리스 데이비드슨은 〈무녀의 예언〉에서 신들이 죽고 난 뒤 일어나는 일들(태양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증기가 올라오고, 불길이 하늘에 닿고)이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 수 있다고 본다.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 양상은 〈무녀의 예언〉에서 묘사된 일련의 사건들과 강한 유사성을 보이며, 특히 1783년 라키 화산의 분화가 그러하다.[51] 베르타 필포츠는 수르트라는 존재가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는 화산의 악마라는 이론을 제시했다.[52] 지금도 수르트의 이름은 수르트셸리르 화산동굴 등 아이슬란드의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중 거주자의 이야기
〈산중 거주자의 이야기〉(Bergbúa þáttr)는 13세기에 쓰인 사트르(일종의 단편소설)로, 여기 등장하는 요툰의 입을 빌어 노르드 신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토르드(Thórd)와 그의 하인이 겨울날 교회로 가다가 길을 잃어서 동굴에 들어가 그날 밤을 나기로 했다. 동굴에 들어가자 소음이 들리면서 한 쌍의 불타는 듯한 눈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눈은 12절짜리 시를 암송한다. 이 시에는 토르가 언급되는 등 노르드 신화가 드러나는데, 세계 멸망의 예언("산이 떨고, 땅이 움직이고, 인간들은 열수에 삶아지고 불에 타리라")도 하고 있다. 제10절에서는 수르트가 불을 지르는 이야기도 나온다. 존 린도우는 이 시의 내용이 “라그나로크에서 거인과 인간이 모두 파괴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예언에서 언급되는 땅이 갈라지는 현상은 아이슬란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화산활동과도 일치한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53]
3. 기본 서사
3.1. 파멸의 전조와 신들의 몰락
위대한 대신 오딘의 아들 빛의 신 발데르와 그의 아내인 식물과 자연의 여신 난나가 죽은 뒤 아홉 세상에 재앙이 시작된다. 그 전에 네 차례의 전조가 시작된다.
첫째, 기근과 추위를 몰고 오는 '극심한 겨울' 핌불베트르(Fimbulvetr). 이 재앙의 겨울은 3년 동안 결코 끝나지 않는다.[6]
둘째, 근친상간, 골육상쟁, 불륜 등이 난무하는 시대, 즉 늑대의 시대가 도래하여[7]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간다. 다인슬레이프가 나오는 덴마크 왕 호그니 이야기가 대표적.[8]
셋째, 태양과 달이 생기던 때부터 항상 그 둘을 쫓아다니던 늑대 스콜과 하티[9]가 드디어 태양과 달을 따라잡아 집어삼켜버리고[10] 지상에는 영원한 어둠이 찾아온다.[11]
넷째, 세 마리의 수탉과 헬에 있는 개 가름이 울기 시작한다. 요툰헤임의 붉은 수탉 퍌라르(Fjalar),[12] 아스가르드의 금빛 수탉 굴린캄비, 헬의 이름 모를 녹슨 붉은 빛의 수탉이다. 수탉들의 울음이 시작되면 요툰헤임에서는 거인들이 모이고 발할라에서는 에인헤야르가 소집된다.
그 후 대지가 진동하며 속박되었던 모든 존재들, 즉 가름, 로키, 펜리르 등이 속박에서 풀려나며, 저승에 반쯤 유폐되었던 헬과 깊은 바다 밑에 잠들었던 요르문간드도 풀려나 지상의 모든 것을 홍수로 휩쓸어버린다.
마침내 자유를 얻은 로키와 그의 자녀들은 세상을 멸망시키기 시작하는데, 펜리르는 아래턱을 지상에, 윗턱을 하늘에 대고 모든 것을 삼키며 나아가고 요르문간드는 그와 나란히 가면서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곳에 독기를 채운다고 한다. 헬(혹은 흐림)은 저승의 거인과 함께 죽은 자의 손톱을 엮어 만든 나글파르[13]를 타고 쳐들어오고, 속박에서 풀린 로키는 지옥으로 가서 지옥의 군단을 끌고 항해해온다.
마지막으로 남쪽의 불지옥 무스펠헤임에서 불의 거인들과 그 왕인 수르트가 불타는 검을 들고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너 쳐들어오며 불의 거인들이 지나가면서 비프로스트는 무너져 내린다.
비그리드 평원에 모든 등장인물이 모이고 헤임달이 거대한 뿔피리 '걀라르호른'을 불어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전투가 시작되자 펜리르가 오딘을 잡아먹고 그의 아들 비다르가 펜리르의 턱을 위아래로 찢어 죽이게 되며. 토르는 일생에 거쳐 여러 번 대적했던 대사(大蛇) 요르문간드와 싸우며 끝내 뱀의 머리를 망치로 짓이겨버리나 독기를 너무 많이 쐬어 아홉 걸음을 뗀 뒤 숨을 거두게 된다. 헤임달은 로키와 서로 맞찔러 죽었고,[14] 전쟁의 신 티르와 가름은 서로 싸우다가 역시 둘 다 죽는다.
프레이는 무기가 없어서 사슴 뿔을 가지고[15] 수르트와 싸우다 전사하고, 프레이를 죽인 수르트는 불타는 칼을 휘둘러 싸우던 신들과 거인족 거의 모두를 죽이게 되고, 지상과 하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다. 여기서 본인도 거기서 타죽는다는 전승이 있고, 태울 것이 없자 그냥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수르트가 던진 불칼에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타버린다. 위그드라실은 단지 세계를 지탱하는 것만이 아닌, 아홉 세계 전체의 근간이기에 아홉 세계는 멸망한다.[16]
3.2 이후
라그나로크 후 새롭게 땅이 솟아나고 바다에서 새로운 해[17]와 달[18]이 태어나며 살아남은 1세대 신들인 발리, 비다르와 성인으로 자란 2세대 신들인 마그니, 모디,[19] 회니르 등 살아남은 신과 죽음에서 부활한 발드르가 풍요롭고 평화로운 땅 이다볼(Iðavöllr)[20]에서 김레(Gimlé)[21]라는 산 혹은 궁전을 세우며 정의로운 '황금의 시대'를 연다. 발드르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잔해 혹은 호드미미르의 숲에 숨어서 연명했다. 인류 또한 살아남아 번성하게 되는데,[22] 어느날 천상계에서 한 명의 초인이 내려오고, 그 모습을 본 악의 축 니드호그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윽고 또다른 초인이 내려오며 북유럽의 예언과 라그나로크 이후의 기록은 여기서 모두 끝난다.
이 마지막 기록중 특히 의미심장한 부분은 천상에서 두 초인이 내려오는 장면인데, 마치 기존의 신들의 일화로써 지탱되던 종교들이 라그나로크와 같이 종말되고, 그 자리를 새로운 두 초인, 즉 예수와 무함마드와 같은 인물들의 주도하에 유일신교로서 대체되는 모양새로 비치기 때문이다. 기존 신들도 일부 남았지만. 때문에, 라그나로크 자체가 기독교와 그 종말론이 전해진 이후에 그 영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가장 마지막 부분(두 초인이 내려오는)만 기독교 영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시각도 있다.[23] 북유럽인들이 자기들이 평소에 섬기는 신들이 무력하게 죽어나갈 거라 믿는 건 좀 이상하다. 예를 들어 바이킹들은 죽은 후 발할라에 가고자 그렇게 애를 썼는데, 이 내용에 의하면 그 발할라의 전사들도 또 다시 죽게 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24]
민간에서 널리 믿어진 신화라 보기는 굉장히 이상한데, 이 관점에서 보면 북유럽 신앙에서 최후의 전쟁이 있으리라 보고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원래 바이킹들이 믿던 '교리'[25]이고, 라그나로크 이야기는 그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후대에 쓰인(그래서 위처럼 기독교와 그 종말론이 전해진 이후에 그 영향을 받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여담으로, '라그나로크에서 죽는 인간이나 신들은 저승도 못 가고 소멸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인간들에 대해서는 선인인지 악인인지에 따라 기독교로 치면 천국에 해당하는 저승과 지옥에 해당하는 저승에 살게 된다고 한다.[26] 인간이 이러니 신들도 어딘가엔 살아 있을 듯. 애초에 북유럽 신화에서 전쟁에서 전사하는 경우를 제외한 망자가 어디에 가는지는 발두르의 죽음이나 뵐숭 사가의 '브륀힐트의 저승 가는 길'에서 드러나있고 라그나로크가 와도 헬은 살아남는다는 얘기도 있으니 아마 저승은 무사할 것이다. 니드호그가 솟아나온 니다푤(Niðafjǫll)[27]이라는 곳의 전당이 선한 망자들이 기거하게 될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다만 극악한 악인은 나스트론드라는 북유럽 신화판 지옥으로 가게 된다.
어쨌건 중요한 것은 기존의 세상은 무너지고 새로운 신들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리라는 것이 라그나로크의 주제이므로, 사망 처리된 기존 신들이 어디서 뭐하냐는 것은 의미없는 설정놀음이다.
4. 기타
황금시대가 열린다는 점에서 다른 신화의 낙원신화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기존의 신들이 몰살당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28] 사실 신들만이 아니라 인간들도 몰살당하고, 리프와 리프트라시르라는 남녀 한 쌍이 살아남아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다고 한다. 북구지방은 기후가 정말 뭐 같은 지방이기 때문에, 고대 게르만 민족에게는 낙원이 도래하려면 어떻게든 이 세상을 갈아엎을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고대신화라 당연히 저작권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며[29] 더구나 고대 게르만 종교는 옛날에 맥이 끊기고 현대에는 뒤늦게 종교로 믿는 아사트루 등 소수의 신이교주의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 관계로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회사나 개인들이 이 신화를 이용하여 창작 활동 혹은 밥벌이를 하고, 그로 인해 또 인지도가 올라가는 그런 굴레 아닌 굴레에 빠져 있다.
북유럽 신화보다 먼저 만들어진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라그나로크와 비슷한 사건이 있는데, 신들과 거인족들(기간테스)이 싸우는 전쟁인 기간토마키아다. 다만 신들과 거인들이 모두 공멸하는 라그나로크와는 달리, 기간토마키아에서는 거인족들이 패배하고 신들이 승리하는 결말로 끝난다.
제2차 세계 대전 말엽, 점차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 국민들 중 일부가 이제 곧 라그나로크가 온다며 불안에 떨었다는 소문이 있다. 물론 라그나로크급 재앙이 이루어지려면 제3차 세계 대전, 곧 전면적인 핵전쟁 정도는 필요할 것이니 너무 지나친 비약이긴 하다. 물론 전쟁을 겪은 사람들 입장에선 그만한 라크나로크도 없을 만 하긴하다, 특히 베를린 공방전 이후 여성들 입장에서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