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나의 울트라맨
7층 병실 창에
4억 6천만 년을 지나온 바람이 머문 오후
왜 4억 6천만 년이냐고 묻는 당신에게
발음이 좋아서, 라고 짧게 답하려다
인도 비슈뉴의 어젯밤 꿈에 대해선지
우주 빅뱅론에 대해선지 떠들며
애써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우리
창문으로 느릿하게 불어오는 햇살 아래
종일 베갯잇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집고
한걸음이라도 빨리 출발하고픈 당신과
그 한걸음이라도 늦추고 싶은 나 사이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이는 밥상
바람 속 잉태돼 이곳에 뿌리내린 것들 중
오롯이 내 것은 없었다며 엷은 미소의 당신에게
그래서 서둘러 바람이 되는 걸 꿈꾸냐고
묻는 대신 식은 국만 휘휘 젓는 나
4억 6천만 년 전부터 얹어진 염원을 끌어모아
버석거리는 당신의 얼굴에 정성껏 펴 바르고
굳이 잠근 문틈으로 비집고 나가는
당신, 이편에서 저편으로
이사 가는 날
*그에게 죽음은 "4억 6천만 년을 지나온 바람"이고
"우주 빅뱅"이자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이는 밥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더 나아가 "문틈으로 비집고 나가 " "이편에서 저편으로
이사 가는 날"의 실제적인 장면에서는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경건하고
4억 6천만 년 전의 죽음마저 가로지르는 염원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에게 죽음은 4억 6천만 년처럼 맞이하기 어려운 비극의
대상이고 슬픔의 기제로 터져오르는 멀고 아득한 시간이기도 하다.
임수경의 시집 <<이상하게 슬픈 파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