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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춘천지맥 2기 종주팀을 따라, 6구간인 '신흥동 다리 → 신흥동 안부 → 소뿔산 → 황병고개 → 가마봉 → 문내피 → 백암산 → 451번 도로'의 19km 구간을 8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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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뿔산
높이: 1,108m
위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소뿔산은 강원도 홍천군과 인제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서, 춘천 영춘지맥 상에 우뚝 솟아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완연한 흙산이며, 울창한 숲과 함께 그리 알려지지 않은 오지의 산이다. 하지만 능선 곳곳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있는데, 특히 정상 서쪽 옆 전망 좋은 곳에는 약 7m 높이의 소뿔 또는 횃불 모양의 큰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흙산이지만 조망은 일품이어서 북쪽으로 멀리 양구의 대암산과 그 오른쪽으로 설악산 대청봉, 중청봉, 귀때기청봉 등 뾰족한 톱니바퀴처럼 보이는 서북 능선과 점봉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서남쪽으로는 우뚝 솟은 가리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등 사방으로 강원도의 고산준령(高山峻嶺)이 장관이다.
그리고 능선 동쪽과 서쪽에는 서로 다른 가마봉이 있는데, 해발고도가 낮은 서쪽의 가마봉을 작은 가마봉이라고 부른다. 소뿔산이라는 이름은 정상부에 있는 "2개의 봉우리가 소의 뿔처럼 보인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산악회
가마봉[可馬峰]
높이: 1,191.5m
위치: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가마봉(1,192m)은 강원도에서도 특히 오지마을이라 할 수 있는 인제군 상남면 김부리 남쪽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이다. 그러니까 인제군 상남면과 신남면을 연결하는 446번 지방도로의 중간쯤 되는 곳이 김부리가 되는데 하루에 두 번밖에 노선버스가 다니지 않는 그런 오지 마을이다. 그리고 백암산(1,099m)은 홍천에서 내촌 경유 상남으로 이어지는 451번 지방 도로변, 즉 내촌면 와야리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산 중턱에 [가령폭포]라는 높이 50m가 넘는 수준급의 폭포가 있어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 두 산은 약 20리 거리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특히 두 산을 연결하는 능선은 보기 드물게 유순하고 또한 초여름이면 야생화까지 만발하므로 이왕지사 산행에 나선다면 두 산을 연결하는 산행을 하도록 하자! 이때는 교통이 불편한 가마봉을 먼저 오르고, 그나마 교통이 조금 덜 불편한 백암산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정석이다. 얼굴 모습을 닮았다는 가마봉 정상부의 기암, 초원 능선, 야생화, 그리고 멋들어진 폭포... 이 정도면 산행의 매력 포인트는 두루 갖추어져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 토요일인 28일은 159번째 천고지 산행으로, 한 안내산악회의 춘천지맥 2기 종주팀을 따라, 강원도 인제의 가마봉에 오르기로 했다. 다른 산행도 그렇지만, 높이 1,000m가 넘는 산에 오르는 천고지 산행은 목표 달성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원하는 산으로 향하는 게 쉽지 않다. 그나마 인증 대상인 백두대간이나, 인기 명산은 인증꾼이 있는 한, 안내산악회에서 언젠가는 갈 거라, 기다리면 되나, 그렇지 않은 산은, 아주 드물게 오지 산행이라는 타이틀로 찾는 일도 있지만, 4,000개가 넘는 한국 산에서 원하는 산이 선택되는 경우는 하늘에서 별을 따는 수준이다. 고로 꼭 천고지가 아니라, 인증 대상에 끼지 못한 산은 대중교통이나, 자가용을 이용해 다녀올 수밖에 없다.
다 알다시피, 대도시마저 인구가 줄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오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주민이 없으니, 정기 버스의 운행회수가 줄거나 아예 없어지는 세상이다. 고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대중교통으로 산을 찾는 건 힘들어진다. 현재는 버스를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산이 2~3년 후에도 그러리라 확신할 수 없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럼 남은 카드는 자가용인데,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한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올랐던 길로 다시 내려오는 것만큼 짜증 나는 산행이 없다. 해서 안내산악회도 인증이 목적이 아니면 왕복 산행은 안 한다. 그게 싫으면, 반대편으로 내려가, 택시를 불러 타고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럼 운전하느라 피곤하고, 와중에 돈은 돈대로 들고, 자차 산행의 문제점이다. 그럼, 안내산악회는 기사 딸린 자가용으로, 신이 산꾼에게 준 선물이다!
마지막 해결책은 우리가 버스를 전세 낼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으나, 구성원들의 생각이 제각각이라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차리라 그 시간에 각 안내산악회를 돌아다니며 원하는 또는, 초행의 산을 찾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도 알았다. 결국 원위치! 일단 안내산악회 내에서 방법을 찾아야 할 거 같아, '가고 싶은 산행지 추천하기' 같은 게시판을 이용해 보기도 했으나, 번번이 성원 미달로 취소! 그러다 우연히 오지 중의 오지 산행을 발견하고, 신청자를 확인했는데, 성원을 넘어, 거의 만원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 확인해 보니, 그 산이 목적이 아니라,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대간꾼이 다음으로 정맥 종주, 끝으로 지맥 종주에 도전하고 있다. 오지 중의 오지 천고지 산은 그 길목에 있었던 거! 섬이 아닌 이상 높이 1,000m가 넘는 산이 뚝 떨어져 있지는 않을 거고, 정맥이든 지맥이든 어딘가의 길목에 있다. 이 순간 "Eureka" 외쳐야 하나?
맥 산행은 백두대간, 정맥, 지맥 순으로 규모가 작아질수록, 종주 인원도 적어져, 격주로 두 개 지맥 정도만 진행된다. 연구자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남한의 지맥 수는 대략 162개 정도라, 원하는 산이 속한 지맥 산행이 언제 시작될지 예측이 힘들다. 해서 맥 산행을 진행하는 안내산악회를 매일 방문해 신규 지맥 산행이 있는지 확인한다. 물론 내가 올라야 할 산이 어느 지맥에 속하는지 사전에 조사했다. 있으면, 몇 개 구간으로 나뉘고, 몇 번째 구간에 속하는지 확인 후, 산행 날짜를 계산한다. 격주 산행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순서대로 진행하니, 계산은 쉽다. 이번 가마봉 산행은, 총 8개 구간의 춘천지맥 6구간이다. 춘천지맥 2기 종주대가 토요일인 2022년 11월 12일 경강역을 출발하는 거로 종주를 시작한다. 산행 게시판에는 한 달 전에 올렸고! 그걸 보고 6구간 산행 날짜를 계산해 보니, 2월 25일 등산방 2월 정기산행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공식적으로 6구간 산행이 공지되면 결정하기로 하고, 고민은 뒤로 미뤄뒀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3구간이 6구간 뒤로 밀려, 4, 5, 6구간이 두 주씩 당겨졌다. 해서 2월 정기산행과 겹치는 일은 피했다. 하늘이 돕는다고 기뻐하며, 다음 산행 계획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5구간과 6구간의 순서가 바뀌어 공지됐다. 결과적으로 4주가 당겨졌으니, 이제는 1월 정기산행과 겹친다. 역시 신은 없다! 돌아버린다. 어쨌든 선택해야 해, 1기와 2기의 시간 간격을 확인해봤는데, 어떤 이유인지, 1기 없이 2기부터 시작했다. 살아생전에 춘천지맥 종주 3기가 시작될 거라는 보장이 없다. 시작한다고 해도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럼 볼 것도 없이 '가마봉'이다! 등산방 정기산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빠진다! 문제는 1월 25일 공지된 천고지 '면산'이 있는 낙동정맥 마지막 구간이 3월 26일 일요일로 3월 정기산행 일인 25일 다음 날이라는 거!
신흥동 안부에서 백암산을 지나, 451번 도로까지 이어지는 춘천지맥 6구간에는 이번 산행의 목적인 가마봉을 비롯해, 이름을 가진 천고지 봉우리 3개가 있다. 소뿔산, 가마봉, 백암산이다. 그중 소뿔산은 천고지 산행의 하나로 2020년 10월 10일[산행기], 백암산은 그보다 이른 같은 해 7월 19일[산행기] 다녀왔다. 소뿔산행 전 안내산악회의 산행 계획을 검토하던 중 코스에서 가마봉을 발견하고, 천고지 가마봉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산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산행 중에 소뿔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높이가 다른 가마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좌는 높이 925m, 우는 1,192m로 그 능선에서 가장 높다! 당시 오른 가마봉은 왼쪽이다! 좌·우로 같은 이름의 봉우리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해 발생한 착각이다. 사전에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지만. 어쨌든 소뿔산행 후 천고지 가마봉에 오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찾아봤으나, 모두 가성비가 좋지 않아, 산행을 뒤로 미로 두고 있다가, 지맥 종주 산행을 발견했다.
이번 춘천지맥 6구간 산행으로 소뿔산, 가마봉, 백암산의 천고지 봉우리 세 개를 한 번에 오른다!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하면서 깨달은 거지만, 철저한 사전 조사 없이 즉흥적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걸, 두세 번에 나눠서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와중에 올랐던 산에 다시 오르는 건 물론이고. 봉우리에 다시 오르는 거야, 문제없으나, 소위 접속 구간을 다시 가야 하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다. 이번 춘천지맥 산행 계획을 보면, 주변에 번지를 가진 건물이 없어, 날머리가 그저 451번 도로이나, 지도를 보면, 위치가 명확하다. 그런데, 가령폭포를 찾는 등산객, 관광객이 많아, 그 입구에 '폭포쉼터'라는 식당이 있는데, 날머리와는 5km 이상의 거리다! 유연한 대장이라면, 식당 방향으로 유도할 거 같은데, 처음 같이하는 대장이라 예측이 안 된다. 사실 백암산은 춘천지맥에서 벗어나 있다. 고로 하산주는 없다고 생각하고, 준비한다. 날씨는 평범한 겨울 날씨라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 목요일 내린 눈이 문제다. 누군가는 러셀을 해야 한다!
2 - 1
새벽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55분경이다. 물론, 산에서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기 위해 물을 끓여 1L 보온병에 넣고, 밑창을 바꾼 등산화를 신었다. 겉보기는 완벽해 보이나, 눈 쌓인 오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5시 59분에 도착한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에 도착해서, 6시 6분 열차로 양재로 향해, 6시 50분경 도착했다. 물론, 대화를 기점으로 한 열차라, 빈자리가 없어, 첫 번째 환승역인 종로3가역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앉아 갈 수 있었다. 다시 구파발을 기점으로 하는 5시 57분 열차로 바꿀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렇지만, 아주 적당한 시간에 양재에 도착한 건 사실이다.
12번 출구로 양재역을 빠져나와 안내산악회 버스 정차장인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또 다른 안내산악회가 버스 정차장으로 사용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의 수많은 등산객을 뚫고 가느라, 정작 목적지에는 5분 이상 걸려, 6시 57분에 도착했다. 외교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버스 한 대가 정차해 있는 걸 보고, 7시 출발 버스가 벌써 도착했을 리는 없고, 6시 50분 출발 버스가 지각한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감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 버스의 LED에 찍힌 "설악산 1호차"를 보고 놀랐다. 1호차? 그럼 2호차도 있다는 얘기라, 산악회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3호차까지 있다. 역시 설악산이다. 6시 50분 출발해야 하는 버스가 언제 출발하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그 뒤로 7시 출발 차가 속속 도착해 '춘천지맥2-6' 버스를 찾아, 사당 방향으로 200여 미터를 내려가, 거의 끝에서 차를 발견했다. 당연히 28인승 버스의 1인승이 자리라, 배낭을 짐칸에 넣고 차에 탔다.
버스에 타고 보니, 28인승이 아니라, 40인승이라, 차를 착각한 거로 생각해 내리려는데, 인솔 대장이, 28인승이 없어 40인승을 배차했다고 알려준다. 고로, 1인 자리가 2인 자리로 바뀌었으니, 배낭을 짐칸에 둘 이유가 없다. 같이 탄 앞자리 승객과 짐칸에 있는 배낭을 가져오려고 하자, 대장이 지금 출발하니, 휴게소에서 가져오라고 말린다. 해서 자리에 앉아, 슬리퍼로 갈아 신고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실내등이 들어와 눈을 떠보니, 인솔 대장이, 휴게소에서 20분간 휴식한다고 공지한다. 뭐 볼 것도 없이 가평휴게소다. 설악산으로 떠나는 버스가 3대나 될 정도니, 휴게소 상황은 안 봐도 블루레이다. 어쨌든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버스에서 내려, 볼일을 본 후 차량으로 가득 찬 휴게소에 새롭게 주차하려는 차량과 휴게소 주차요원과의 치열한 전투를 구경하다가, 추워서 바로 버스에 탔다.
물론,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오는 걸 잊지 않고, 다시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출발을 기다렸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코스에 관해 설명하려다, 자는 승객이 많았는지, 도착 직전에 하겠다며, 마이크를 끈다. 해서 나도 다시 잠을 청했다가, 버스의 덜컹거림에 눈을 떴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수시로 지도 앱으로 현 위치를 확인한 후 도착 10여 분을 남겨두고, 등산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다시 등산화를 신고, 끈을 조인 후, 미니 스패츠를 착용하는 게 다지만. 그리고 조금 지나자, 대장이 이번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먼저, 등산객이 거의 찾지 않는 지맥이라 등산로 상태가 좋지 않으니, 다른 길로 가지 않게 주의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산꾼의 산행기를 보면, 대략 8시간 30분 정도가 걸려, 원래 공지는 8시간이나, 30분을 더해 8시간 30분으로 한다고 했다. 해서 도착 예정이 9시 10분이라, 마감은 5시 30분으로 한다고. 그럼 20분 추가지! 그런데, 대장이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순간,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목요일 서울에 눈이 내렸으면, 강원도 오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2 – 2
9시 10분에 버스는 들머리인 신흥동 다리에 도착했다. 대장 포함 21명의 승객 중 3명은 들머리를 백암산 '폭포쉼터'로 해서 백암산 먼저 오른 후, 춘천지맥을 탈 예정이었다. 대장 말에 의하면 그중 한 명은 초보라, 다른 두 명에게 부탁까지 했었다. 물론 그 셋은 여기서 내리는 게 아니라, 버스를 타고 날머리의 길목에 있는 상황에 따라 하산주를 마실 예정인 ‘폭포쉼터’까지 가야 하는데,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두 내렸다. 이번에 같이하는 인솔 대장은 산악회 내에 명성이 자자한 여성으로 환갑이 넘은 걸로 알고 있는데, 거의 매일 산행을 인솔한다. 다른 건 몰라도, 후미에서 낙오병을 끌고 오기로 유명한 대장이다. 고로 이 대장 앞에만 있으면, 늦어서 눈치를 보거나, 버스를 놓칠 염려는 안 해도 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풍경을 기록으로 남기고,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실제 높이와는 오차는 있겠지만, 652m다! 이번 산행에서 가장 높은 가마봉이 1,191m라, 640m가량만 올라가면 되니, 표고차가 큰 산행은 아니다. 다만, 오지라 등산로 상태가 문제다. 이미 지난 소뿔산행 때 등산로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경험이 있어, 소뿔산을 지나, 통신대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그다음 백암산까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해서 경험자들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등산 준비가 끝나자, 먼저, 몇 명의 산꾼이 밭을 가로질러 춘천지맥 2기 6구간 산행을 시작했다. 이미 버스 안에서 산행 준비가 끝나,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나도 그들을 따라 밭을 가로질렀다.
짐승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밭을 둘러싸고 있는 그물망을 넘으며,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무리 봐도 여기는 길이 아니다. 총 8개 구간으로 나눠 진행하는 춘천지맥 종주를 이 산악회만 하는 것도 아니니, 비록 희미하기는 해도 등산로가 있어야 하나, 없다. 그럼, 들머리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어쨌든 선두의 산꾼이 길을 만들며 가는 걸 뒤에서 따라가며, 등산로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아무래도 계곡 건너에 등산로가 있는 거 같다. 그런데, 계곡을 건너기에는 너무 깊다. 어쨌든 계곡을 건너기 적당한 위치를 찾아 계속 올라가는데, 위로 갈수록 내 예상대로 눈이 깊어진다. 당연히 선두는 러셀을 하고 가야 하고! 그렇게 올라가, 그나마 계곡을 건너기 좋은 위치를 찾아, 산행 시작 후 9분이 지난 9시 19분에 계곡 건너 등산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난관이다!
들머리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이 깊어진다. 그리고 대단히 미끄럽다. 특히, 급경사 지역은 오르는 게 쉽지 않아, 체력 소모가 심하다. 덕분에 더워지기 시작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람막이 안에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배낭에 넣고,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물론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그렇게 복장을 재정비하고, 앞선 산꾼이 러셀로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급경사를 올라가는데, 아이젠이 아무 소용 없다! 사실 심설에서 아이젠은 무용지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고 착용했는데, 역시다. 심설에서 의지할 건 아이젠이 아니라, 등산지팡이라는 걸 다시 한번 절감했다. 등산지팡이에 의지해 죽죽 미끄러지는 급경사를 올라, 9시 43분경 능선, 즉 춘천지맥에 올라섰다.
주변에 보이는 건 없고, 비록 앞선 산꾼이 러셀로 길을 만들며, 간 덕을 보기는 했으나, 그래도 심설이라 속도가 나지 않아,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가,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자, 대여섯 명의 산꾼이 복장을 재정비하고 있다. 내가 능선에 올라서기 전에 했던 일을 이들은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해서 하고 있다. 해서 그들을 추월해 소뿔산으로 생각되는 봉우리를 보며 다시 앞만 보고 갔다(사진에서는 앞 봉우리가 아니라, 뒤 봉우리다). 낑낑대며, 눈 쌓인 급경사를 올라, 앞 봉우리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53분인데, 봉우리 정상에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이정표가 반겨준다. 소뿔산까지의 거리는 1.9km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 1.9km라면, 앞에 있는 봉우리가 소뿔산이 아닐 확률이 높다. 앞의 봉우리에 목표가 가려진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거리감을 상실했거나! 참고로 이정표에 있는 '가마봉 4.8km'는 이번 산행의 목적인 가마봉이 아니다. 산행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소뿔산 좌우로 같은 이름의 가마봉이 있다. 이정표에 있는 가마봉은 지난 2020년 산행 때 올랐다. 당시 같은 이름의 가마봉이 소뿔산을 마주 보고 있다는 걸 통신대 헬기장에서 산꾼이 매달아 놓은 이정표를 보고 알았다. 해서 이번 산행에 참여한 거고.
달음재 갈림길이기도 한 봉우리를 떠나, 소뿔산으로 향하는데,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 또한 심설이라, 하산이 쉽지 않아, 아예 스키 타듯이 미끄러져 갔다. 물론 스키 폴은 등산지팡이다. 그렇게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젠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방증이다. 낑낑대고 봉우리에 올라간 후,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걸 반복해야 그나마 2.0km/s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산행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최소 2.5km/s의 속도는 유지할 거로 생각했는데, 오판이다. 그럼, 탈출이다. 해서 생각한 게 그나마 날머리에서 가까운 백암산 부근 임도로 탈출하기로 했다. 계속 이 속도라면 그래도 주어진 시간 내 도착이 어려우나, 그나마 다행은 내 뒤로 인솔 대장을 포함 예닐곱의 등산객이 있다는 거! 그런 계산을 하며 다시 작은 봉우리에 도착해 보니, 역시 갈림길로 이정표가 있다. 소뿔산까지, 0.9km! 정상까지 아직 많이 남아 실망했지만, 거리감을 상실한 게 아니라는 것에 위안받았다.
스키를 타듯이 그 봉우리에서 내려가, 11시 25분에 소뿔바위에 도착했다. 2020년 당시 그 바위에서 소뿔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한참을 노려보았기 때문에 뇌리에 박혀있다. 말인즉 이 산이 소뿔산으로 불리는 이유는 산의 모양이 아니라, 이 바위가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소뿔바위 뒤는 전망대다. 아무리 시간이 늦어 낙오한다고 해도, 전망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위 뒤로 돌아갔다. 역시 절경이다. 저 멀리 정상에 돔이 있는 봉우리가 춘천지맥 4구간의 가리산이다. 그리고 오른쪽의 봉우리가 가마봉이다! 아, 물론 이번 산행의 목표 천고지 가마봉 말고, 반대편! 그리고 아래 골프장 건너 쌍봉이 고양산인 거 같다.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소뿔바위를 떠나, 정상으로 향하는데, 조리대 지옥의 시작이다.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코스 소개할 때, 다행히 조리대는 없는 거 같다고 했는데, 아니다!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고개를 숙인 조리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등산객의 발목을 잡지는 않았다. 그렇게 조리대 구간을 지나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소뿔산 반경 50m 내다. 혹시 놓치는 게 있을 수 있어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11시 40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상석을 찾아,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녔는데, 이정표만 보이다. 와중에 핸드폰은 추워서 못 견디겠다고 삐삐거리더니, 꺼져버렸다. 핸드폰에 보조 배터리를 연결해 응급조치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2020년 산행 때도 정상석을 못 본 거 같다. 해서 그나마 이정표라도 기록으로 남기려고 보니, 기둥에 누군가가 '소뿔산'이라 적어놓았다. 그걸 보자, 2020년에도 이정표를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는 게 기억났다. 아쉽게도 당시 카메라에 SD 카드가 없어, 실제 기록으로 남은 인증은 없지만[산행기]!
당시에도 이정표에 앞선 산꾼이 써 놓은 '소뿔산'을 보고, 이 봉우리가 소뿔산 정상이 아니라고 의심했다. 사실 높이만 보면, 통신대가 있는 봉우리가 더 높다. 고로 거기가 소뿔산 정상이다. 정상을 군부대에 내주고, 선택한 게 그다음 높이의 봉우리가 아닐까 하는 게 내 추측이다. 이정표를 설치할 정도라면, 정상석이나 정상목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산꾼과 등산 앱이 인정하는 정상에 도착했으니, 인증을 남겨야 하는데, 선두는 이미 안 보인 지 오래고, 후미 또한 초반에 몇 사람을 추월한 이후 한 사람도 못 본 상태라, 부탁할 사람이 주위에 없다. 누군가 옆에 있다고 해도, 이 추위에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염치없는 짓이고. 해서 이정표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는데, 역시 꽝이다. 두 번 소뿔산 정상에 올랐으나,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인증을 찍은 후, 이정표가 가리키는 '등산로 아님’ 등산로로 철탑을 바라보며, 군부대 통신대가 정상을 차지한, 진 소뿔산이라 생각하는 봉우리로 향했다.
통신대로 향해 12시 15분에 임도 아니 작전도에 도착했다. 2020년 당시에는 가드레일 너머에 있는 등산로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었다.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가드레일을 넘어 작전도에 들어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 주변을 감상했다. 저 멀리, 흰 눈에 덮인 봉우리가 발왕산 슬로프 같은데, 너무 멀어 정확하지는 않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이중 철조망으로 보호받고 있는 통신대로 접근하자 녹음된 경고 음성이 반복해 나온다. 군사시설이니, 무단으로 침입하지 말라는 경고다! 그런데, 철조망에 ‘4. 통신기지국 (소뿔산)’이라는 명패가 달려있다. 그 명패를 봐도 여기가 소뿔산이다. 춘천지맥은 철조망 옆으로 지나간다. 앞선 지맥꾼이 러셀한 흔적이 확연하다. 들머리에서 능선을 향하는 중에 인솔 대장이 눈에 남은 발자국 덕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거 같다고 한 말 그대로다. 눈이 없을 거라던 본인의 말이 빗나간 것이 멋쩍어 한 말이기도 하지만.
진 소뿔산 정상인 통신대 철조망에 매달린 명패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길까 하다가, 반복되는 경고가 지겨워, 포기하고, 앞선 산꾼의 발자국을 따라 철조망을 우회해 헬기장으로 향했다. 이미 2020년 경험으로 헬기장이 탁월한 전망대임을 알고 있었고, 당시에도 SD 카드 없는 카메라로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한을 풀기 위해 비록 시간은 늦었으나, 주변의 모든 걸 기록으로 남겼다. 와중에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예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했다. 두 번째 사진의 봉우리가 이번 산행의 목적인 천고지 가마봉이다! 끝으로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산꾼의 소뿔산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통신대 헬기장을 떠나, 가마봉을 향해 12시 21분경 초행의 등산로로 들어섰다.
이미 지난 소뿔산행 때 알고 있었으나, 헬기장에서 내려가는 게 쉽지 않다. 인솔 대장이 밧줄을 이용하는 구간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이젠이 제구실을 못 하는 상황이라 전적으로 밧줄과 등산지팡이에 의지해 내려가야 해, 지금까지 스키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온 것과 달리 등산보다 하산에 시작이 더 들었다. 고로, 시속 2.5km/s는 불가능이고, 2.0km/s 유지도 힘들었다. 와중에 산행 시작 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고, 시간은 12시간 지났으니, 배가 고픈 게 당연하다. 해서 준비한 컵라면을 먹을까 하고 춘천지맥을 따라가며 적당한 식당을 찾았으나. 모든 게 심설에 묻혔다. 그리고 컵라면 먹겠다고 시간을 지체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에너지 바를 먹으며 갔다. 결과적으로 이날 산행 중 먹은 건 에너지 바 3개, 군밤 한 봉지, 귤 하나가 다다. 물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고.
등산 앱이 500m마다 음성으로 알려주는 음성 메시지를 주의해서 들으며, 춘천지맥을 달리다가 나무에 매달린 반가운 이정표를 발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지맥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춘천지맥 960.4m 준.희'다. 정맥이나 지맥의 주요 봉우리나 고개 중 이름을 갖지 못한 곳에는 꼭 있는 이정표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150여 미터를 가자, 임도가 나타났다. 인솔 대장이 주의하라고 했던 도로다. 해서 그 임도에 난 발자국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도로를 따라 좌우 어느 쪽이든 내려간 흔적은 없고, 다만, 건너편으로 올라가는 쉬운 길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 인적만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건너, 무명의 봉우리에 오르자, 정상에 있는 바위 전망대에 올랐다. 그리고 뒤로 돌아보니, 통신대가 장악한 진 소뿔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봐도 저 봉우리가 소뿔산이고, 전진 방향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가마봉, 그 오른쪽 철탑이 있는 곳이 백암산 부근이라 생각되는데, 백암산 부근에 철탑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바위 전망대에서 360도로 주변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긴 후, 길을 재촉해 내려가는데, 나무에 '춘천지맥 1,116.5m 준.희' 이정표가 보인다. 높이 1,100이 넘는 무명의 봉우리다. 인솔 대장이 코스를 설명할 때 천고지가 넘는 봉우리가 예닐곱 개가 있어 산행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이건 정확했다. 그리고 소뿔산과 백암산은 춘천지맥에서 벗어나 있어 그 둘을 왕복하는 거리가, 1.5km 정도라, 정확한 거리는 18km가 아니라, 20km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응? 소뿔산이?' 했다. 백암산이 벗어나 있는 건 맞고, 이미 한번 올랐던 소뿔산은 지맥 위에 있었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번 산행에서 소뿔산이 정확히 지맥 상에 있는 걸 확인하고 나니, 대장이 소뿔산과 가마봉을 혼동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간에 쫓기고 있으므로 가마봉의 위치는 중요했다. 간신히 2.0km/s 속도를 유지하며 산행 중이라, 최대한 거리를 단축해 시간을 줄여야 해서, 이미 올랐던 백암산은 진즉에 버리기로 했다. 그렇다고 산행의 목적인 가마봉을 버릴 수는 없으니, 그 왕복 거리가 짧기를 바랄 뿐이다. 머릿속으로 그런 계산을 하며 가다가, 앞의 나무에 '준.희'가 아닌, '춘천지맥 1137.3m 다류'라는 이정표가 매달려 있는 게 보인다. 가마봉이 멀지 않았고, 표고차가 얼마되지 않는다. 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마봉으로 향하며, 갈림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 갈림길에 배낭을 두고, 가마봉을 다녀오기 위해서다. 그런데,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는 메시지를 띄울 때까지 갈림길이 없다. 산세로 봐서는 이미 지나왔으나, 분명 갈림길을 못 봤다. 그럼, 춘천지맥은 가마봉에서 반대편으로 뻗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야말로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갈림길이 없었으니, 일말의 기대를 안고 바위 봉우리인 가마봉에 도착한 시각이 2시 56분이다.
가마봉 정상까지 오는 동안, 갈림길을 지나친 건지, 아니면 예상과 달리 가마봉에서 춘천지맥이 방향을 바꾸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고 간 발자국을 유심히 살폈다. 오고 간 발자국은 많은데, 오늘 만들어진 발자국은 안 보인다. 혹시 구분을 못 하는 걸 수도 있어, 수시로 지나온 내 발자국과 다른 발자국을 비교해 보기도 했으나, 없다. 물론 한두 명의 발자국은 확인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발자국만 보면, 전부가 아닌 대부분 선두 그룹 또한 시간에 쫓겨 춘천지맥과는 거리가 있는 가마봉을 버렸다는 얘기다. 그리고 나는 갈림길을 지나쳤다! 고로 돌아가야 한다. 먼저 정상목을 사진으로 남기고, 셀카봉을 삼각대처럼 사용해 인증을 남겼다. 목표한 천고지 산행 중 가장 난감했던 가마봉 정상목과 인증을 남긴다는 건 산행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뿌듯하고 기쁜 일이다. 오고 간 발자국을 토대로 갈림길을 지나쳤다는 걸 확인했지만, 혹시 춘천지맥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어 주변을 샅샅이 살폈으나, 돌아가는 거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물론 춘천지맥 최고봉답게 반대쪽으로 하산로가 있어, 이 길로 탈출할까 생각하며, 그 길이 향하는 곳을 보니, 날머리에서 더 멀어져 포기했다.
가마봉 정상에 오른다는 묵은 숙원을 해결하고, 다시 춘천지맥으로 돌아가는데, 그 방향에서 후미 그룹의 두 사람이 100여 미터 간격을 두고 가마봉으로 오고 있다. 그럼, 대장을 비롯한 다른 후미도 곧 도착한다는 얘기다. 나야, 목표를 달성했고, 지맥 종주에는 관심이 없으니, 날머리와 가장 가까운 하산로를 찾아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백암산 직전의 임도가 가장 가깝고, 편하다. 문제는 거기까지 최소 5km 이상을 가야 한다는 거!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혹시 내가 가마봉에 있는 동안 대장이 후미 그룹을 끌고 지나쳤을 수도 있어, 서둘러 갈림길을 찾아가, 발견했다. '다류'가 이정표를 매단, 무명의 1,137.3고지에 있다. 아까는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한눈에 딱 들어오는데, 갈림길이 거의 직각에 가깝게 우회전하고, 가마봉에 오른다는 기쁨에 그 방향만 주시했기 때문 아닐까? 어쨌든 그 갈림길을 지나, 급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스키를 타듯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와중에 중간중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가마봉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고.
그렇게 급경사를 내려가며 앞을 보니, 양쪽으로 도로가 보이는데, 전면은 흰 눈이다. 고로 터널이다. 임도를 위해 터널을 뚫지는 않으니, 생태 다리, 즉 생태터널이다. 그런데, 생태터널 아래 임도 양쪽에는 발자국이 가득한데, 정작 백암산으로 향하는 생태터널 위로는 인적이 중간에서 끊겼다. 선두가 임도로 탈출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백암산까지 달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뒤따라오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나, 나는 선두를 따라, 임도로 내려간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터널 위에 도착해 다시 주의 깊게 인적을 살폈다. 위에서 정확하게 봤다. 모든 인적이 터널 왼쪽으로 내려가고 있어, 나도 왼쪽으로 내려가 터널을 사이에 두고 선두가 어느 방향으로 하산했는지, 살펴보니, 차량 바퀴 자국은 양쪽으로 뻗어 있으나, 인적은 터널을 통과해 오른쪽으로 내려가고 있어, 그 발자국을 따라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물론, 혹시 중간에서 백암산으로 향하는 길이 있을 수도 있어 수시로 그 방향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마감 시각이 5시 30분의 2시간 7분 전인 3시 23분에 임도에 도착해 하산을 시작하며, 500m마다 음성으로 알려주는 정보에 주의하며 내려갔다. 속도가 4.3~4.6km/s를 오간다. 5시까지 거의 1시간 30분을 내려왔는데, 주위에 민가는 없고, 군사시설만 보인다. 그리고 군사 보호 지역이라 그런지 통신 불통이다. 고로 지도 앱을 사용해 민가가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비록 앞선 산꾼이 러셀하기는 했으나, 거의 종아리까지 오는 눈을 헤치고 가는 것도 쉽지 않아, 7km 정도 내려왔을 때는 완전히 지쳤다. 그리고 임도가 끝나면 어떻게 할지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봤다. 먼저 선두가 대장과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 춘천지맥 종주라는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팀이고, 이미, 3개 구간을 같이 달린 사이니, 대장과 교감하에 임도로 탈출했을 경우다. 그럼, 임도와 차량이 다니는 도로의 합류 지점에 산악회 버스가 와 있을 확률 100%다! 내가 원하는 가장 최고의 솔루션이다. 이 외에 다른 경우의 수도 있으나, 생각하기도 싫었다.
어쨌든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났고, 예정된 날머리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면, 나로 인해 출발이 늦어지는 건 막는 게 안내산악회를 이용하는 산꾼의 예의다. 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설의 임도 아니, 작전도를 따라 내려가며, 마감 30분 전인 5시경 대장에게 전화해 현 위치를 보고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 주머니에서 꺼내 보니, 현재 시각 4시 54분, 대장이다! 위치를 묻는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중이라고 하니, 안심하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듣자 내가 더 반갑다. 그리고 위치를 물어, 생태터널에서 7km가량 내려왔다고 하자, 그럼 거의 다왔단다. 그리고 내 앞에 두 명이 더 있다고 해, 혹시 가마봉에 갔던 사람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해 앞이 아니라, 내 뒤 5분 거리에 있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2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왼쪽 계곡 건너로 민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자, 도로 한 가운데, 인솔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대장과 뒤에서 따라오는 두 사람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가 5시 16분에 반가운 버스가 기다리는 합류 지점에 도착하는 거로 천고지 가마봉 산행을 마쳤다.
3
아이젠을 벗어 파우치에 넣고, 등산지팡이를 분해하려고 보니, 연결부분이 얼어 안 빠진다, 그럼, 녹여야 하니, 그대로 들고 버스에 탔다. 자리에 앉아, 미니 스패츠와 등산화를 벗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어 버스 내부를 보니, 몇 사람 없다.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지쳐, 일단 컵라면용으로 들고 간, 1L의 뜨거운 물에 마른 우엉을 넣어 우엉차를 만들어 한잔했다. 이번 산행 처음으로 마시는 물이다. 그리고 대장과 진행 상황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역시 예상대로다. 내가 가마봉에 있을 때 대장이 나를 추월했을 수도 있으나, 동행하는 초보자를 봤을 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지 궁금했는데, 생태터널이 아니라, 그 전의 황병고개에서 후미를 끌고 탈출했다고. 그 전에 춘천지맥 종주팀 톡 방에 황병고개에서 탈출하라고 메시지를 남겼는데, 아무도 확인을 안 했단다. 다행히 노련한 산꾼들이라 생태터널에서 탈출한 거다. 그리고 가장 걱정한 건 초보자도 아니고, 종주 팀도 아닌 나였다고.
대장과 함께 후미가 제일 먼저 내려왔고, 물론 내려오며, 기사에게 전화해 버스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선두 그룹이 속속 도착했는데, 나와 가마봉 길목에서 만난 두 사람 등 총 세 사람이 오리무중이다. 그나마, 두 사람은 종주 팀의 일원이라, 통화라도 했는데, 나는 연락처를 알 수 없으니, 초조할 수밖에. 날머리가 이동했다는 걸 모르고 예정된 날머리로 갔다면 대형 사고다. 물론 마감 시각을 지났으니, 대장이 책임질 사항은 아니나, 나중에 문제될 소지는 충분하다. 해서 대장이 안내산악회에 연락해 내 번호를 알아내서 전화한 거다. 이 안내산악회의 원칙이 이번과 같은 특수한 때가 아니면 절대 고개의 연락처를 인솔 대장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저런 얘기하며 두 사람을 기다렸는데, 마감 시각인 5시 30분을 지나, 6시 3분경 나타났다. 대장과 여러 번 통화 후 다리에 도착했다는 얘기를 듣고 대장이 어디론가 갔다. 그 틈을 이용해 나도 버스에서 내려 볼일을 보는데, 한 무리의 산꾼이 조금 떨어진 정자에서 손에 디팩을 들로 버스로 오고 있다. 버스가 텅 비었던 이유를 알았다.
비록 마감 시각보다는 30분가량 늦었으나, 사전 모의 없이, 아무런 사고 없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중탈에 성공한 것만 해도 대단한 산꾼들이다. 아니 나만 그런가? 어쨌든 예정한 마감 시각보다 35분이 늦어 변경된 날머리인 협성교에서 6시 5분경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화양휴게소를 지나, 고속도로를 제 속도를 달리고 있는 것에 놀랐다. 토요일 오후 서울로 향하는 서울양양고속도를 정상속도를 달리는 건 처음이다. 아직 강촌 전이라 그럴 거로 생각했는데, 강촌을 지나도 마찬가지다. 둘 중 하나다, 날이 추워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거나, 경치 침체로 놀러갈 기분이 아니거나. 고속도로를 정상속도로 달리던 버스가 가평 휴게소에 들어가자 인솔 대장이 20분의 시간을 준다. 안내산악회와 산행 다니며, 상행에 휴식 시간 20분은 처음이다.
허기와 갈증을 한번에 해결하기 위해 식혜를 사러 편의점으로 갔는데, 없단다. 식혜가 없는 휴게소 또한 처음이다. 해서 빈손으로 편의점을 나와 휴게소를 구경했는데, 거의 텅 비어, 평소 가평휴게소에 들릴 때마다 긴 줄에 놀랐던 빵집의 상황이 궁금해 가 봤다. 역시 텅 비었다. 해서 이 기회를 이용해 인당 두 박스밖에 살 수 없는 과자 두 박스를 사서 버스에 탔다. 식혜를 마시러 갔다가 과자만 두 박스 샀다. 20분간의 휴식이 끝난 버스는 막힘없는 고속도로를 달려, 먼저 복정역에서 승객이 내렸고, 아침에 같이 탔던 나를 포함 셋이 양재에서 내렸다. 그리고 9시 15분경 집에 도착하는 거로 천고지 가마봉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물론 무사 산행을 축하는 하산주를 잊지 않았다.
인솔 대장이 예상하지 못한 심설로 처음 계획과는 달리 '신흥동 다리 → 신흥동 안부 → 소뿔산 → 황병고개 → 가마봉 → 생태터널 → 임도(중탈) → 협성교'의 19.75km(트랭글) 구간을 8시간 11분 동안 달렸다. 이동 7시간 59분, 휴식 12분!
지맥 종주가 목표인 산꾼은 실패한 산행이나, 애초 가마봉이 목표였던 나는 목적을 달성한 산행이다. 처음부터 춘천지맥을 벗어나, 백암산에서 연화사 방향으로 하산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못 간 황병고개에서 451번 도로까지는 산방이 끝난 5월 중에 번개 산행으로 진행할 거라는 게 인솔 대장의 생각이다.
겨울 심설 산행이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번 절감한 산행이다.
기온은 낮으나, 날이 맑아 조망은 탁월했으나, 그걸 감상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게 아쉬웠던 산행이다.
대간꾼보다 더 무서운 게 지맥꾼이라는 걸 깨달은 산행이다. 가능하면 앞으로 지맥꾼은 피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