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임은 아니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가사가 절절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로 꼽는 곡입니다. 전에 동심초에서 말씀드렸던 제대로 꼭 한번
불러보고 싶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채동선 작곡 이은상 작사인데 노래 자체로도 우리나라 근대사의 슬픈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제일 처음 1936년에 채동선이 '향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월북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시에 곡을
붙여 채동선의 누이 채선엽이 동경에서 초연한 '고향'이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조수미 고향
고 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
소프라노 박 계
이 노래는 암울했던 한국 근대사에서 일제에 항거하며 민족음악가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채동선(1901-1953)의 대표적
가곡입니다.
작사자는 한국 문단사에 빛나는 거목으로서 큰 자리를 차지했던 정지용, 이 곡은 고향에 대한 애절한 감성을 서정성 깊은
선율로 노래하면서 오랫동안 나라 잃은 우리 민족에게 깊은 위로를 주게 됩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지면서 이 가곡의 수난도 시작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의 작가 정지용이 6·25때 월북한 시인으로 낙인찍혀 금지가곡으로 묶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곡 '고향'은 이미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린 상태였고, 당시 출판된 명곡집에 예외 없이 수록되는 인기 가곡
이다 보니까, 각 출판사들은 급한대로 박화목의 '망향'으로 그 가사를 대신하였고, 후에 정지용의 시를 텍스트로 한
채동선의 모든 가곡을 다른 가사로 바꾸는 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망향
테너 신인철
박화목 / 망향
꽃피는 봄사월 돌아와도 이 마음은 푸른 산 저넘어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는 듯 철따라 핀 진달래 산을 넘고 먼 부엉이 울음 끊이지않는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나의 사랑은 그 어느멘가 날 사랑 한다고 말해 주렴아 그대여 내맘 속에 사는 이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것일래라
그렇게 봄노래가 되었다가 세월이 좀 흐른후에 채동선 유가족의 요청으로 박화목 시인의 '망향'은 맨위의 이은상 시인의
'그리워'란 가을노래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가 '망향'으로 배웠던 이 노래가 지금의 '그리워'란 노래이고
지금은 세가지 가사가 다 교과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리워의 가사를 제일 좋아하지만 흥얼거리다 보면 중간에 망향의 가사가 섞여서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2002년 정지용 시인의 시 중에 새롭게 발굴이 된 시가 있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그리워 / 정지용
그리워 그리워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어디러뇨
동녁에 피어있는 들국화 웃어주는데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보노라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옛 추억
가슴아픈 그 추억 더듬지 말자
내 가슴엔 그리움이 있고
나의 웃음도 년륜에 사겨졌나니
내 그것만 가지고 가노라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고향은 없어
진종일 진종일
언덕길 헤매다 가네
어떠세요? 정지용 시인의 이 시를 채동선 유가족과 이은상 선생이 알고 있었던 것 같지 않습니까?
식민시대에 민족들에게 마음의 힘을 주던 시인의 글이 이념의 차이로 좌우로 나뉘고, 그 붉은색의 노래를 부르고 다닌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