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꽃과 참깨 / 곽주현
아카시아꽃이 핀다. 산책하는 둑길에 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 나무가 서로 맞대어 하늘을 가리는 것은 이곳에서 처음 본다. 탐스럽게 핀 꽃이 어찌나 많이 달렸는지 가지가 찢어질 것 같다. 계절을 잊고 내린 눈처럼 푸른 잎을 감추고 온통 하얗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양이 작은 포도송이 닮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벌들이 아직 일과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마음은 바빠진다.
한참을 더 걷고 있는데 참깨 밭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 한 분이 소복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솎아 내고 있다. 잠깐 멈춰서 “할머니 이 봄 가뭄에 싹이 어떻게 그렇게 잘 나왔데(대)요?”라고 물었다. 많이 뿌리고 부직포로 덮으면 이렇게 잘 난다며 어려울 게 없다고 가볍게 말한다. '나는 아직 씨도 넣지 않았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걸음이 더 빨라진다. 여기도 몇 그루의 아카시아가 군데군데 흩어져서 꽃을 피우고 있다.
아마 내 고향 마을 뒷동산에도 이렇게 피어나고 있을 거다. 자그마한 산에 다른 나무는 띄엄띄엄 한두 그루씩 있고 키 큰 아카시아가 거의 덮었다. 70년, 80년대에 조림한 것이다. 그때는 헐벗은 산이 대부분이어서 억세게 잘 자라는 이 나무를 많이 심었다. 또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산사태가 나고 흙이 씻겨 내려 논과 밭을 망쳐 버렸다. 이것을 예방하고자 정부가 나서서 (산림녹화 사업을 벌렸는데) 빨리 자라는 이것을 산림녹화 수종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전국 어디를 가나 지금도 이 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5월 이때쯤이면 내 고향 동산도 하얀 차일을 쳐 놓은 것 같았다. 이때쯤이면 약속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아카시아 숲으로 모였다. 꽃잎을 따서 입으로 빨면 살짝 꿀맛이 났다. 서로 자기 것에서 단물이 가장 많이 나온다며 먹어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냥 통째로 입에 넣고 씹어도 달콤한 맛과 함께 향내가 가득 퍼졌다. 배고픈 그 시절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잎자루를 통째로 따서 누구 것의 잎이 많이 남는지 내기했다. 마주 보고 가위바위보로 진 사람이 자기 것의 잎을 떼어 내는 단순한 게임이다. 패자는 꿀밤을 맞거나 승자의 요구에 따라 그를 등에 업고 널따란 공터를 한 바퀴 돌아 주어야 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축 늘어진 가지를 잡아당겨 한 아름 안고 집으로 온다. 가시에 찔러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오물오물 먹는 토끼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아픔은 사라졌다.
해가 설핏해지면 부지런한 몇몇 어머니는 일터에서 돌아와 알맞게 핀 꽃을 한 바구니씩 따서 머리에 이고 내려간다. 소주를 부어 꽃술을 담고, 설탕과 버무려서 꽃차를 만들고, 몇 송이는 부침개로 부쳐 밥상에 올렸다. 귀한 손님이 오면 광 깊숙한 곳에서 꺼내어 술이나 차로 대접했다. 술은 물론 꽃차도 어른만 마시는 거라며 어린애들은 곁에도 가지 못하게 꼭꼭 숨겼다. 어떻게 진액을 찾아 몰래 한 숟갈 떠먹으면 독해서 목이 칼칼하고 기침이 나와 들킬까 봐 입을 틀어막으며 애를 먹었다.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 참깨도 심었다. 시기를 잘 몰라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고향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빨리 심어야 수확이 많이 난다는 사람도 있고 늦게 심어야 튼튼하게 잘 자란다는 분도 있어 의견이 엇갈려서 종잡을 수 없었다. 나이 많은 친척이 지나가기에 “언제 심어야 좋으냐?”라고 물으니 “동산에 아카시아꽃이 필 때.”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으면 틀림없다 한다. 또 다른 노인도 같은 대답(같은 말)을 했다.
첫해는 비닐하우스에 심어서 그런지 제법 발아가 잘 되었다. 전체의 약 80% 정도였다. 작년에 고추 심는 곳이라 거름기가 많아 내 키를 훌쩍 넘게 자랐다. 농사가 전업인 친구가 와서 보고는 초보가 일냈다고 칭찬을 한다. 익어 갈 무렵 진딧물과 노린재가 생겼지만, 농약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터여서 그대로 두었다. 튼실하게 자라서 기대가 컸는데 병충해 때문에 겨우 남들만큼 털었다.
다음 해는 참깨를 노지에 심었다. 열 개의 구멍이(구멍이 열 개) 뚫린 비닐을 땅에 깔고 씨를 뿌렸다. 간격이 좁다고 생각했으나 발아가 안 될 것을 계산해서 빼곡히 파종한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너무 촘촘하다고 한마디씩 하고 지나간다. 솎아 내느라 땀 좀 흘렸다. 시간이 지나도 고르게 자라지 못하고 키가 큰 놈과 작은 놈의 차이가 크게 났다. 그나마 좀 컸다는 것도 삐기처럼 가느다랗게 자라 간들간들 서 있었다. 노인 한 분이 농장과 접해 있는 마을 경로당의 창문을 빼꼼히 열고 웃거름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유튜브(youtube)에서 농사 전문가들이 참깨는 거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무시했다. 그 후로도 몇 사람이 거들며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해는 망쳤다. 콩만 심어서 거름기가 없는 땅이라 그랬던 거다. 늦게야 영양분이 부족했음을 알아차리고 아차 했지만, 이미 열매가 익은 뒤였다.
또다시 뒷동산에 아카시아꽃이 허옇게 피었다. 부지런히 땅을 갈고 비닐을 씌우고 참깨를 뿌렸다. 며칠이 지나자 하나둘 새싹이 올라왔지만, 가물에 콩 나듯 했다. 다시 파종했다. 그런데 또 듬성듬성 나왔다. 속상해서 갈아엎어 버릴까 하다가 5월 말경에야 빈 곳에 다시 씨를 넣었다. 그제야 빈 구멍 없이 채워졌다. 문제는 또 있었다. 심는 시기가 달라 자라는 크기가 뒤죽박죽이다. 이러면 큰 참깨에 작은 것들이 가려서 자라지 못한다. 비가 오는 날 아내가 크기별로 뽑아 키를 맞추어 심었다. 네 이랑을 크기별로 옮기는 데 꼬박 사흘 걸렸다.
해마다 참깨 농사는 빼놓지 않고 지었다. 이런저런 실패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했다. 씨앗이 싹을 잘 틔우려면 온도와 습도가 알맞아야 한다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진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을 맞추기가 여간 어려웠다.(어렵지 않았다.) 참깨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 식물이다. 그래서 습기가 너무 많으면 발아하지 못한다. 농사 경험이 많은 어른들은 참깨 귀에 물이 들어가면 싹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씨앗에 무슨 귀가 있겠는가만 물기가 많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 또 파종할 때 조금 깊이 심어도 올라오지 못한다. 궁리 끝에 이번에는 왕겨로만 씨앗을 덮었다. 가볍고 보온도 잘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방법을 처음 해 보는 거라 걱정이 컸다. 며칠이 지나자 비닐 구멍마다 소복하게 귀여운 싹이 올라왔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봐봐 나, 이제 전문가 됐어.”라고 아내에게 큰소리쳤다. 물론 그 해는 깨가 알차게 여물어 많이 털었다.
또 다른 봄이 왔다. 동산이 허옇게 색칠해질 무렵 작년과 똑같은 방법으로 참깨를 파종했다. 지난해에 잘 틔었으니까 올해는 자신이 붙었다. 친구들에게 깨 농사는 이 방법이 가장 좋은 거라며 적극 권장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어쩌다 한 개씩만 싹이 보였다. 똑같이 했으니까 아마 잘될 거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려도 더는 소식이 없었다. 보온도 했고 습기도 작년처럼 맞추었는데 또 탈이 난 거다. ‘참깨 속을 현미경으로 해부해 볼 수도 없고 이를 어쩌지?’ 참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참깨를 가꿀 때 잘 손질된 밭에 그냥 흩어뿌림했다.(흩어 뿌렸다.) 그리고는 갈퀴로 득득 긁어 놓고 기다렸다. 싹이 트면 많은 곳은 솎아 내고 빈 곳은 옮겨 심었다. 그렇게 해도 깨가 잘되었다. 내 방식은 단위 수확량을 높이기 위한(높이려는) 건데 어렵기만 하다. 새삼스럽게 수천 제곱미터의 땅에 참깨를 심어 잘 가꾸는 분을 보면 (새삼스럽게) 위대해 보인다. 아니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은 다 그렇다. 10년 넘게 농작물을 가꾸었어도 아직 초보 수준이니 말이다. 올해도 또 심었다. 새싹을 기다리는 중이다.
두 손주와 손잡고 꽃구경하자며 둑길로 갔다. 이것이 다 꽃이냐며 팔짝팔짝 뛴다. 이름을 말해 주고 한 송이 꺾었다. 꿀이 나온다며 빨아 보라고 했다. 정말 달콤하다며 벌이 꿀을 묻혀 놓았냐고 묻는다. 그 반대라고 설명했지만 글쎄 아직 어려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봄이 오면 이 애들과 고향 뒷동산에 올라 잎을 따서 가위바위보 게임도 해 보리라. 참깨 자라는 것도 보여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