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 조미숙
안녕? 나야. 잘 지내지?
오늘 새벽녘에 잠이 깼어. 좀처럼 없는 일이었지. 먹고 자는 일에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는데 말이야. 갑자기 네가 생각났어. 다시 잠에 빠져 보려고 뒤척였어. 왼쪽으로 누우면 안정감이 느껴져 훨씬 편한데 어깨가 아파서 힘들어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누웠어. 그러기를 반복하다 다시 잠이 들었어.
요즘 갑자기 학구열이 불타올랐다는 거 알아?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창피한 경험이 많았어. 우연히 새벽 책 읽기 모임이 있어 등록했지 뭐야. 잠이 많아 아침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지 못해 늘 죄책감에 시달렸거든. 그런데 그게 과학책 읽기야. 그것도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읽는다는 거야. 어째 제목이 영 탐탁지 않았어. 난 그냥 물리를 모르니까 읽어 보면 뭐라도 도움이 되겠지 생각했는데 우선 책의 두께에서부터 질렸어. 뒤통수 맞은 기분이랄까? 이걸 읽을 수 있을까 싶었지.
염려는 현실이 되었지. 첫날부터 진행자가 내 소리가 좋지 않다고 이어폰을 빼고 읽어 보라고 하네. 두 번이나 지적을 받고 나서 다이소에서 이어폰을 다시 샀어. 그 뒤로는 별말을 안 하대.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책 내용을 하나도 모르겠다는 거야. 거기 참석자들은 오가는 말로 짐작건대 전문가이거나 그에 못지않은 실력이 있어 보였어. 전문 용어를 영어로 말하더라고. 기가 팍 죽었어. 거기에 좀 더 깊숙한 영역에 들어가자 생전 처음 보는 용어와 기호가 나오는 거야. 그리스 문자와 수식은 읽을 수조차 없었어. 아주 기초적인 수학 기호도 오랜만에 보니 잊어버린 거야. 처음에는 사실대로 말했어. 어떻게 읽느냐고 물어보며 어찌어찌 읽어 나갔어. 그때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몰라. 몇 가지는 딸에게 물어보며 예습까지 했는데 말이야. 그다음 주는 아예 목이 아파 못 읽겠다고 메시지를 보냈지. 너무 많은 식과 특수문자가 빽빽이 적혀 있는 거야.
책읽기 전날 저녁이면 늘 그만두라는 유혹에 시달려. 그런데 예서 중단하면 안 될 것 같았어. 열심히 유튜브에 올라온 강의를 찾아봤어. 하지만 아예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전문적인 강의를 듣는 들 무슨 도움이 되겠어. 소귀에 경 읽기지. 외계어가 난무하는데 졸음만 쏟아질 뿐이지. 읽는 게 끝나면 잠깐 책 내용이나 궁금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돼. 어차피 난 뭔 소린지 모르니 궁금한 것도 없고 질문거리도 없어. 아무리 상고를 나왔다고 위로한들 자기 합리화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았어.
같은 시기에 등록한 다른 요일 문학 읽기는 좀 나을 줄 알았어. 하지만 여기도 마찬가지야. 다들 글을 읽어내는 능력이 대단했어. 문장이 너무 긴 프루스트의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2014, 민음사)은 내 능력으로 소화해 내기가 벅찼어. 더구나 1, 2권도 아닌 3권부터 시작하니 더 그런 것 같았어. 시간 나는 대로 1권부터 읽고 있는데 거의 매번 그냥 글자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거야. 잡생각에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말고도 문장 이해력이 더 문제인 것 같았어.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공부해야 될 것도 쌓여만 가. 난 왜 이렇게 아는 게 없는지 모르겠어. 정치도 예술도 문학도 다 문외한이야.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느껴. 동시에 내 지난날이 싫어졌어. 넌 왜 그때 나를 좀 닦달하지 않았니? 내 삶을 방치했던 네가 미워. 왜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았어?
요즘은 영어 단어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흔하게 쓰는 낱말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글에서는 문맥에 따라 짐작하거나 인터넷에 찾아보면 되겠지만 청자의 처지가 되면 뭔 소린지 알 수가 없어. 그런데 절실하지 않나 봐. 네가 알다시피 난 눈앞의 게으른 유혹에 쉽게 흔들리잖아. 생리적인 욕구 충족이 우선이니 말이야. 네가 봐도 내가 한심하지? 누가 그러더라 잘살고 있는데 자꾸 그런다고, 겸손도 지나치면 예의가 아니라고. 그런데 난 진심이야.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자주 흔들려. 그래도 네가 있어 마음을 꼭 잡아 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물리 법칙 하나 모른다고 세상이 어찌 되는 건 아니잖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디제이가 끝맺는 말이 “오늘도 잘했고, 잘하고 있고, 내일도 잘할 거야.”이더라. 이 나이에도 뭘 잘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이렇게 항상 불평과 불만만 쏟아내도, 내 곁에서 힘들어하면 안아 주고 짜증을 내도 잘 받아 줘. 앞으론 나도 너를 더 사랑할게. 부탁이야. 우리 잘 지내보자.
첫댓글 공부를 많이 하시네요.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공부까진 아니고요. 너무 몰라서 한번 친해져 볼까 하고 시작했는데 어렵네요.
글쓰기도 힘든데 과학 공부까지 와 대단하네요.
아이고 , 공부 아니예요. 그냥 본 거예요.
선생님은 더 대단하시잖아요.
동화도 쓰시잖아요.
목포에서 한 번 뵈시죠. 작가가 된 이후의 삶을 들어 보고 싶어요.
좋죠. 작가라는 말은 빼고요.
황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시간이 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의 도전 정신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배움에 게으르지 않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저의 게으름을 인정합니다. 글로만 그렇게 안 보여서 그렇지요.
선생님 정말 부지런하게 사시네요.
항상 건강을 맨 앞에 두시기를 권합니다.
선생님이야말로 건강에 신경쓰세요. 저는 골골팔십형입니다. 하하!
우와.
선생님 글에 항상 제가 하는 감탄사.
글쓰기를 충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부지런한 게 아닐까요? 과학 공부까지 하시다뇨. 그 학구열에 놀랍니다. 게다가 겸양의 미덕까지.
아니라니까요. 다들 오해십니다. 그냥 너무 몰라서 읽으려고 덤볐는데 까막눈이라는 것만 깨닫습니다.
물리학이라니! 정말 피하고 싶은 과목이네요. 하하.
저도 과학과 수학은 질색팔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