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으로 / 이미옥
“언니, 그 얘기 들었어요? ○○중학교….”
“응, 듣기 했는데. 무슨 일이야?”
“모르겠어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이랑 문제도 없었다는데.”
저녁 모임에서 후배가 소곤거리며 전하는 말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며칠 전 작은아이가 어디서 들었는지 같은 얘기를 내게 전했다. 그렇게 소문은 안개처럼 조용히 퍼져 다시 닿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온통 노랗게 물든 나무를 내려다본다. 곧 겨울에게 제 옷을 다 벗어 주겠지. 춥다. 건너편 아파트 옥상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이 갔어. 가 버렸어.” 숨이 넘어가던 울음이 들려온다. 가슴이 뻐근해진다. 커피를 목구멍으로 올라오려는 것과 함께 삼킨다. 아이를 키우면서 늘 다칠까 아플까 걱정했다. 그 아이가 스스로 삶을 놓는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을까? 언니도 그랬다.
큰아이와 동갑인 조카는 내 핸드폰 앨범 어디에나 있다. 언니와 나란히 아기 띠를 매고 환하게 웃던 시간부터 우리의 키를 훌쩍 넘긴 아이들과 팔짱을 끼고 있는 순간까지. 조카는 고등학교 들어가고 친구들 때문에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그맘때를 우리도 지나왔으니까. 조카는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학교를 조퇴하거나 결석하는 일이 잦아졌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게 버거워졌다. 언니는 조카를 데리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렇게 언니는 마음이 아픈 아이를 안고 매일 울었다. 조카는 고등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여름, 우리 곁을 떠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언니는 아이를 보내는 내내 겁도 많은 애가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작은 상처에도 곧잘 울음을 터트리던 아이는 죽음이 무섭지 않았을까? 솔직히 한동안 왜 그랬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우리 탓일 거 같아서. 열일곱 살 딸을 떠나보낸 브런치 작가 글을 읽고 그녀가 추천한 책도 샀다. 하지만 읽을 수 없었다. 알게 될 사실이 무서웠다. 그러나 안개가 내 눈을 덮어버리기 전에 나가야겠지.
커피를 내려놓고 김현아의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집어 들었다.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작가는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은 딸의 7년을 아프게 때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책 속에는 아픈 조카와 답답해 우는 언니가 있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상처를 주는 나까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다루는 방법을 몰랐다. 아이는 안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우리는 아이가 만든 상황에만 몰두해 허둥댔다.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오래전부터 난 속에서 뭔가가 잘못되었어. 내 마음속에 항상 살고 있던 우울이 이제는 날 집어삼키려 해. 난 내가 너무 미워. 왜 힘든지 묻지는 마. 우리 집 같은 환경에서 뭐가 우울하냐고 할거잖아.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못해. 그냥 힘들다고 하면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 (김현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창비, 2023, 5쪽)
그냥 힘들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어떤 일이든 이유가 있다는 강박적인 사고가 결국 ‘이해’를 막아섰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키웠으면서 왜 조건 없이 이해하지 못했을까? 조금 일찍 이 책을 읽었으면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맺음말에서 작가는 딸이 조금씩 사회로 들어오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기대하거나 안도하지 않았다. 상황을 인정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이 책을 언니에게 권하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밀려오는 미안함을 언니는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첫댓글 "솔직히 한동안 왜 그랬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우리 탓일 거 같아서." 저도 이럴 때가 많았어요. ㅠㅠ.
마음이 ...
'안개가 내 눈을 덮어버리기 전에 나가야겠지.' 선생님의 용기와 참구하는 마음을 읽습니다.
에고...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러야 아픔이 옅어질까요? 선생님과 언니 모두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