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꽃
강순희(향원)
꽃은 자신이 피고 질 때를 안다. 초록의 바다에서도 여름꽃은 물결처럼 고개를 들며 피어난다. 유월이 저물어 가던 날, 대구수목원에서 많은 꽃들을 만났다. 비비추, 원추리, 범부채, 초롱꽃, 수국 ……. 그중에서 분재원 뒤뜰의 모감주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띄었다. 긴 꽃대마다 자잘한 꽃들이 촘촘하게 붙어있었다. 꽃가지는 불꽃처럼 퍼지면서 노랗게 나무를 뒤덮었다. 모감주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영어로는 Goldenrain tree라고 부른다고 한다. 왜 ‘황금빛 비’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무 아래로 황금빛 비가 내려 뜰도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모감주나무 꽃이 지면 꽈리 닮은 열매가 달린다. 열매는 차츰 갈색으로 변하면서 얇은 종이 같은 껍질이 셋으로 길게 갈라진다. 그 안에는 까만 씨앗이 들어있고 그것으로 염주를 만들기 때문에 염주나무로 불린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게 되었다.
모감주나무 노란빛이 사라지면 능소화가 피기 시작한다. 나는 능소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끌리는 것을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래전 첫 임지의 자췻집에는 꽃밭이 있었다. 주인집 할머니는 아침마다 꽃을 가꾸고 화분을 매만졌다. 맨발에다 손에 흙을 묻히고 웃는 할머니와 키다리 달리아 꽃이 겹쳐지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곤 한다.
마당 한쪽에는 능소화 덩굴 아치도 있었다. 달빛이 고요한 밤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갔다가 떨어진 꽃송이를 보았고 너무 애틋해서 책갈피에 꽂아 두었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 빛바래고 종잇장처럼 얇아져 부서질 것 같은 꽃잎을 보았다. 고운 빛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설렘과 그리움은 온전히 되살아났었다.
능소화 빛깔은 노을빛처럼 따뜻하다. 꽃의 정면은 붉은빛이 감도는 진한 주황색이고 꽃의 뒷면은 노란색이 들어가 조금 더 연하다. 정면에서 보면 다섯 갈래지만 기다란 꽃 통에 꽃잎이 붙어있다. 꽃부리는 깔때기와 비슷한 종모양이고 예쁜 꽃받침은 꽃송이를 살짝 받치고 있다. 꽃 안을 들여다보면 별 모양으로 번진 노란 바탕에 가늘고 붉은 선이 그어져 있고 꽃술이 보인다. 꽃은 기다란 꽃줄기에 모여 한꺼번에 피기 때문에 풍성한 느낌을 준다. 꽃줄기는 아래로 늘어지거나 옆으로 뻗어 가지만 꽃송이는 약간 위를 향하고 있다. 능소화를 보면 고개를 살짝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화사하면서도 정결한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능소화는 낙엽이 지는 덩굴나무이다. 겨울에 보는 능소화나무는 등나무처럼 그냥 줄기만 보인다. 능소화 줄기는 옆으로 길게 뻗어나가기도 하고 담을 넘어 축 늘어지기도 하며 옆에 있는 다른 나무를 기어오르기도 한다. 줄기에는 공기 뿌리가 나와서 어디든 닿으면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시멘트, 철망, 판자, 가리지 않고 손을 뻗어 나아간다. 능소화는 담쟁이처럼 벽을 넘을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다. 주로 담장 안에 심어 놓은 능소화는 담을 넘어와 꽃을 피운다. 고택마을의 기와 올린 담장이나 나무 대문과도 잘 어울리고 흙으로 쌓고 솔가지를 얹은 소박한 담과도 찰떡같이 어울린다. 돌과 황토로 쌓은 담장에 늘어져 피어있는 능소화가 제일 멋스럽다. 능소화 꽃 덤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그 풍경 속에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다.
능소화는 질 때도 아름답게 진다. ‘툭’ 미련 없이 떨어진다. 동백꽃처럼 통째로 진다. 피어있던 모습 그대로 떨어져 조용히 땅 위에 누워 있다. 떨어진 꽃마저 피어있는 꽃과 어우러져 잔잔한 그림이 된다.
누가 능소화를 하늘을 훨씬 넘어서, 하늘을 타고 오르는 꽃이라고 했던가! 철제 울타리 키를 훌쩍 넘어온, 동네 화원의 능소화는 땅 위를 기어서 끝없이 뻗어 나가고 있다. 능소화는 주변을 탓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꽃 피우고 깨끗하게 진다. 능소화는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피는 그리움의 꽃이다.
2020.07.12
첫댓글 능소화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입니다. 능소화는 그 화려한 색깔과 모양,
그리고 생을 마치고 땅에 떨어진 꽃도 빨간 동백처럼 오랫동안 시선을 끄는 아름답고 음전한 꽃이지요.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능소화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었군요. 지난 해 옻골마을 담장 위에 핀 능소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능소화가 정결한 여인의 모습인 이유를 잘 묘사해 주셔서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책갈피에 끼워두었던 빛바랜 꽃 능소화 를 보면서 환희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난 날이 추억이 어둠을 밝히는 꽃이기도 합니다. 능소화가 어떻게 생겼길래 환호 하는지 호기심이 갑니다. 모감주나무에 이어 꽃피우는 능소화에 대한 애정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
아름답게 피지않는 꽃은 없는것 같습니다. 활짝핀 꽃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하던 마음도 꽃처럼 다시 활짝 피어나지요. 지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공연히 우울해 지는게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요? 능소화는 질때도 꽃중에 꽃 장미에 비해 그 본연의 우아함과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으니, 능소화를 사랑하시는 필자의 모습을 떠 올려보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꽃을 좋아하고 사진을 찍어 보관하다 보니 어느듯 800개가 넘고있습니다. 모감주 나무가 "황금빛 비" 인줄 몰랐습니다. 능소화는 고고하게 피었다가 통꽃으로 떨어져 절개있는 선비의 기상을 닮아서 양반가의 담벼락에 많이 심었습니다.글을 읽으며 어쩜 선생님과 어을리는꽃 같으며 시의 적절한 글이라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시골집 담벼락에 피어있던 능소화가 그리워 집니다. 그 꽃의 아름다움이 빛을 밝힌다는 말씀
공감이 갑니다. 능소화에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 주셔서 다시 옛 고향으로 돌아가 그때의 즐거웠던
시절이 그리워 더 정감이 갑니다. 꽃을 잘 가꾸지 못하는 나는 그저 보고 즐기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