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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적 소 굴 ● 스크랩 지난 세월(11) - 공무원 사직
산적(주정필) 추천 0 조회 32 15.12.18 11: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세월(11) - 공무원 사직


- 나 애 못낳을것 같아

- 뭐라고~?


만 34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각시의 뺨을 때렸다.

미안해~


근무처는 대인동사무소로 바뀌었고 집도 담양 고서의 신축된 시골집 상하방으로 옮겼다.

그곳에서는 펌프로 물을 길어다 손빨래와 밥을 지어야 했는데 날마다 펌프질을 해야 했다.

어느 순간 서서히 입덧이 풀려갔다. 체중도 조금씩 불어가기 시작 했고.

아마도 펌프질하며 몸을 움직이게 되면서 혈액순환도 좋아지고 호르몬 균형도 잡혀서 입덧이

사그라 지지 않았을까?




덕분에 순산하게 되었고 우리 결혼식때 주례를 서주셨던 목사님 사택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정관 수술을 했다. 혹독한 입덧으로 더이상 울각시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였다. 어머니는 손자를 낳아주기를 그후 10 년 정도 기다렸지만 그때마다 임신이

안된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하루는 선배가 대낮부터 내게 술을 권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맘껏 마시란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간곳은 영안실.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어떤 아가씨가 함께 죽자며 음료수를 건네준 남자와 함께 음독을 한것

이다. 남자는 음료수를 뱉었는데 여자는 삼켜 버린것이다. 

그리고 어느 산부인과 쓰레기통에서 신생아 시신이 발견 되었는데 사체 부검을 한다 했다.




검사와 공무원 입회하에 부검의의 사체 부검 현장에 투입 된것이다.

지하실인데다 형광등 불빛은 을씨년 스러웠고 세멘트로 만들어진 부검대 위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시신이 누워 있었다. 야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등골이 오싹해 그자

리를 떠나고만 싶었다.


부검의의 칼은 가슴과 복부를 가르고 내부 장기를 꺼내 점검을 했다.

이어진 신생아의 부검.

여리디 여린 관절을 메스로 가르고... 차마 눈 뜨고 볼수 없었다.


나는 의사 특히 부검의 직업 가지신 분들을 존경한다.

물론 직업이라 생각하고 하겠지만 나라면 간이 떨려 하지 못할것이다.


부검이 끝나고 통행금지 시간때까지 잔뜩 술을 마셔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동구청 세무과로 발령이 났다.

처음엔 세금 징수 요원으로 출장 다녔는데 세무 민원 창구를 자청하여 취득세 등록세 자진 납부

창구에 앉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민원인들과 씨름해야 했지만 6시면 정확하게 퇴근할수가 있어서 자원했다.

생활력 강한 울각시는 내가 받는 봉급의 절반을 어머니 생활비로 드려야 했기에 딸내미를 안고

보험 외판원 일을 했고 내가 퇴근하면 다시 미용 학원에 다녔다.




나는 나대로 아침 일찌기 영어 화화 학원을 다녔고 민원 창구에 앉아 틈틈히 정통 종합 영어를 

1년에 3차례 뗄수 있었다. 

당시 처음 출시된 삼성 mymy를 거금 4만5천원에 구해 오디오 감상용 헤드폰 밖에 없던 시절에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이찬승 hearing tape 을 들으며 출근 버스를 타고 다녔다.


구청에서도 당직이 있었다.

하루는 학동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정신 병자가 둘이나 있으니 인계해 가라는 거다.


정신병 전력이 있으면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 행정 관서에서 정신병자 수용소로 인계해야 하는

절차가 당시에 시행되고 있었다.


선배들과 함께 구청 봉고차를 타고 파출소에 가서 50 대 남자 한분과 30 대 여자 한분을 인계

받았다. 남자분은 거세게 몸부림을 쳐서 양쪽에서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 넣고 제압을 하며

가야했고 여자분은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봉선동 어디쯤 은성원이라는 정신병자 수용소가 있었다.

문이 열리자 얼핏 안을 내어다 보았는데..




복도 양켠으로는 감옥과 같이 쇠창살로 칸이 있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두 남녀를 인계해주고 돌아 오면서 선배로 부터 충격적인 애기를 들었다.


수용소에 들어 가면 신고식을 치른단다.

20 개 남짓 되는 칸칸을 돌아 다니며 남자는 몽둥이 찜질, 여자는 윤간 당한다 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그후 몇년후 대구에선가 형제 복지원 사건이 터지면서 인권 사각지대의 정신 병자 수용소에

대한 은폐된 사실이 드러나 개선될수 있었다.


당시 광주시는 전라남도 산하 기관이었고 각 시군에서 7~9 급 공무원들 상대로 소양고사를 

실시하여 3명씩 뽑아 다시 도에서 소양고사를 실시했다. 나도 응시했다.


하루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 행정계 선배와 마주쳤다.


- 자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가?

- 무슨 공부요?

- 이번에 소양고사에서 자네 합격 되었으니 도청 소양 고사 준비해야 잖아?

- 예? 그래요? 금시초문인데요?


총무과 행정계는 무척이나 분주한곳이다. 워낙 바쁜 나머지 내게 알려 주는걸 잊어버린 거다.

남은 시간은 딱 3일. 나는 계장님과 과장님께 사실을 알리고 사흘동안 결근하겠다 했다.


벼락 공부 한두번 해봤나? 영어는 평소 해왔으니 암기 과목인 국사와 윤리, 그리고 행정 실무가

문제였다. 아뭏든 사흘동안의 벼락 공부 끝에 소양고사를 무사히 치렀다.


결과는?

당연히 1등이었다.

1등에 대한 포상은 상장과 더불어 도청으로 자리를 옮겨준다 했다.


상장 수여식이 예정된 날 아침 이발소에 가서 예쁘게 단장하고 신사복을 입고 출근했다.

당시 동구청은 금남로 2가 대로변에 있었고 지하는 카바레 였다.

도청은 걸어서 1-2분 거리인 현재의 문화의 전당 자리.


도청으로 상장을 받으러 가려는 찰나 행정계에서 전화가 왔다.

그날 새벽에 도지사가 건설부 장관으로 발령이 나서 도지사 공백 상태이므로 상장 수여식이

취소 되었단다. 대신 상장은 보내준다 했다. 맥이 좀 풀렸다.


순진했던 나는 아는 분의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봉급 절반이 차압되어 있는 경제적 위기

상황. 도청 서무과에 도청 발령 문제를 상의하러 갔다.

그곳에서 어이없는 대답을 듣고 힘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전임 도지사 공약 사항일뿐 도지사가 새로 바뀌었으니 도청 발령이 불가능하다는 거다.

대신 정말 도청으로 들어오고 싶으면 100 만원 현금을 가져 오라는거다.

당시 내 봉급은 20 만원이었고 전세금이 100 만원 이었다.




울각시는 유덕동에 미용실을 차렸다.

새내기 미용사였지만 촌구석이었던 유덕동에 미용실이 생겨났으니 바빠지고 있었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봉급 차압건도 있고 뇌물이 통해야 승진이나 발령이 되는 환경에 회의를 갖게 되었고

7급 시험을 보기 위해 나는 사표를 제출했다. 만 4년 근무하고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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