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존 홀 휠록의「시란 무엇인가를 통한 명상
(박병희 역주, 울산대출판부, 1996)
5-2 J. H. Wheelock의 네 번째 음성
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예지의 순간에, 모든 자아selves를 포함하는, 더 오래되고 더 현명한 어떤 자아가 시인을 통하여 말하는 음성, 즉 더욱더 비개성적인 음성이 네 번째 음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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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번째 음성에는 시인의 음성이 아니면서 시인의 입을 통해 울려나오는 하나의 음성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권위 있고 단호하게 말하는 시행이나 시구가 있습니다. 바하의 주제나 베토벤의
선율만큼 위대한 음악의 악절과도 같이 이 네 번째 음성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우리와 함께 떠오르는 영혼, 우리의 생명의 별은 다른 곳으로 진다."- 워즈워드
“달은 하늘이 맑게 개일 때 기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본다."-워즈워드
"크고 작은 만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기도를 잘 하는 사람이-코울리지
“그러나 내 등 뒤에는 언제나 날개 돋친 시간의 전차가 서둘러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온다."-마블
"들리는 선율은 아름답지만, 들리지 않는 선율은 더 아름답다."-키츠
느리게 굽이치는 강가의 풀밭혹은 제비꽃 수놓은 계곡에서-밀턴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 빛나는 창틀"-에디슨
대지 위 인간의 해변에게 성직자처럼 순결한 세정식을 베풀고 있는 출렁이는 물결-키츠
이 네 번째 음성은 표현의 특성상 재경험의 대상을 마술의 힘으로 불러내듯, 의식적인 기교로써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영원히 기억에 남을 묘사에서 언제나 이 음성이 울려나옵니다. 그렇다면 이 음성은 누구의 음성일까요?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목소리, 혹은 인류의 목소리입니다.
단어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단어는 도구가 아니라, 가장 숭고한 의미에서 내적인 실재가 외부로 나타난 증거입니다. 확실히 이것은 모든 시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음성입니다. 그 길고 외로운 시인의 노력과 자기 수련은, 이 음성이 찾아올 때, 시인 자신의 능력과 통찰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언어와 지혜를 표현하는 그 무엇입니다.
M. 마리땡은 그의 저서 <시의 상황>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리에 의하면, 시는 일종의 지식인데, 그 지식은 “이해를 위해 정돈된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되도록 운명지어진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시의 목표와 방법과 결과는 새로운 것의 창조입니다. 만물이 의미를 가지며, 모든 의미가 서로 관계를 맺고 서로를 상징화하고 있는 우주에서, 시인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서 살아갑니다.
월트 휘트먼은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내가 멍하니 누워 있노라면, 세상사의 온갖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려오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이들은 너무나 아름다워 내 스스로 주의를 환기하여 경청한다.”
그러나 시인은 단지 듣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무형의 어떤 것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 자신을 잡아끄는 실체 없는 그 무엇에 실체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에게 들려오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배
우는 것이 시인의 역할입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에 실체를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이 일은 생색도 안 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힘든 일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처럼 힘든 일을 스스로 떠맡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 즉 시인들이 시를 창작하는 일은 약간의 연구와 이해하려는 노력을 요하며 또한 일종의 욕망을 진정시키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거기 누구 있소?" 하고 나그네가 물었다.
달빛 비친 문을 두드리면서
적막 속에 나그네의 말은 숲속의
고사리 밭에서 풀을 뜯었다.
새 한 마리 지붕 위 작은 탑에서 푸드득
나그네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나그네는 다시 한번 문을 세게 두드리며,
"거기 누구 있소?" 하고 불러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그네에게 내려오지 않았다.
나뭇잎에 에워싸인 창으로 머리를 내밀지 않았다.
나그네가 당황하여 묵묵히 서 있는 곳으로 나와
허리를 굽히고 나그네의 잿빛 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고적한 집안에 살고 있던
한 무리의 유령들만이
인간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요한 달빛 속에 서 있었다.
텅 빈 마루로 내려가는 계단에
희미한 달빛을 모으면서 서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별 돋은 하늘 아래서,
말이 어둠 속에서 풀을 뜯으며 서성대는 동안,
나그네는 속으로 그들이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의 부름에 침묵으로 답하는 그들이
나그네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더 세게,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왔다고 말 하시오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고
그리고 내가 약속을 지켰다고 전하시오" 하고 나그네가 외쳤다.
듣는 이들은 쥐죽은 듯 움직임이 없고
나그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오직 한 사람 깨어있는 인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적막한 집안의 공허 속에 메아리치며 떨어져 내렸다.
그렇다. 그들은 나그네가 발로 등자를 딛는 소리,
그리고 돌 위에 부딪는 말발굽쇠 소리,
뛰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져갈 때, 적막이
부드럽게 물결치며 되돌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 월터 드라메어, 청자들」전문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묻는다 : "여기 나와 네가
서 있다. 각기 제 위치에서.
무얼 하려는가, 너는
무얼 하려는가?"
나는 대답한다 :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
나의 변화가 올 때까지." -"바로 그거야."
별이 말한다 : "나도 그럴 작정이야.-
나도 그럴 작정이야."
- 토마스 하디, 기다리는 둘Waiting Both」 전문
허형만 교수의 시창작을 위한 명상록 중 p3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