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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문인인 徐謂(서위)는 자사호를 시로 표현하는데 사람들은 宜興(의흥)자사호라 부른다.
의흥시는 강소성의 남단으로 절갈성과 안휘성의 交界(교계)로 고칭 陽羨(양선)이라 하고 산명수수의 고장으로 수토의도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다.
사호의차는 당대의 陽羨紫筍(양선자순)은 조정에 납공하던 최고의 차로 봄에 성숙하는 차로 관원들이 친히 다원을 열어 수만명을 동원하여 삽시간에 채취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밤낮으로 달려 장안에 보내는데 급정차라는 별칭이 붙고 천자가 맛을 보기전에는 꽃도 피지 못할정도였다는 시가 전해온다.
북송시 소동파가 이곳에 폄적되어 송풍죽로 제호상호라 찬상하여 더욱 유명해지는데 자사포차는 향과 탕기를 지속적으로 보존해준다하였다.
차향이 유지되어 색 향 미를 지속시켜준다고 하였는데 보온성이 좋아 균등한 온도를 유지한다.
지금 중국의 차문화의 향상으로 대중생활중 날이 갈수록 자사호는 다구중의 지위가 더욱 중요해졌다.
자사호는 半燒結晶細陶器(반소결정세도기)로 도기와 도자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기공이 있고 호벽이 있으며 시유로 인해 투기성이 매우 양호하다.
그래서 注茶越宿(주차월숙)이 가능한 것으로 포차의 향을 유지시키고 차의 색과 향 맛을 유지시킨다.
자사호는 특징상 광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자사원광은 300여종으로 광산의 위치마다 품종이 다르고 질량도 모두 다르다.
황룡산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지질학상 5종의 시대변화를 거쳐 형성된 것으로 내륙의 천해가 침적후 수중에서 침적자사가 진흙으로 형성된다.
황룡산의 자사광상은 노천광이 많아 4계의 변화와 풍상우설로 인해 자연의 역량으로 광석이 풍화되어 인공선료단계로 진입한다.
잡질을 제거한후 분말로 만들어 진흙으로 만드는데 이를 련니라 하고 재료의 질량이 자사호의 최종효과를 나타낸다.
진흙사이의 일정한 縫隙(봉극)이 생겨야 하고 장시간 물에 흘려 물속의 철의 성분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사호의 완성은 각고의 과정으로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간고의 세월이 필요한 작업이라 한다.
시간과 도전이라는 조련을 통해 독특한 개성이 실리는 작업으로 완미한 자사호의 제작은 어렵다한다.
자사를 맷돌에 연마하여 분말로 만든데 공기가 들어간 공극이 생겨 기포가 발생하면 안된다.
분말은 진흙상태로 영하 15도의 냉장시설에 보관하고 진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속언에 재료는 귀천이 없고 좋고 好懷(호회)만 있어 며느리가 밥을 지으려 돌을 가려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자사호는 3가지 유형으로 花(화) 光(광) 紋樣(문양)인데 화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며 유묘유소해야 하며 광화한 호신은 기하조형으로 표면이 부드럽고 고박아치함이 강조된다.
근문화는 竪線(수선)위주로 근육이 생기고 횡선의 장식문의 선조가 유창하고 영동표일한 호체를 이루어야 한다.
자사호의 성형방법은 수공으로 손으로 돌리고 다듬는 것인데 접구부분의 가공이 특별히 중시되어야 한다.
자사호의 문양과 그림을 위해 수없는 노력을 하는데 문학작품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진흙을 다듬는 과정은 핵심으로 섞고 돌리면서 때리는 공력이 무한히 소비되고 공구는 두손이 대신하는 것으로 두께의 조절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자사니를 다듬는 과정을 태극에 비유하는데 영활한 정신의 결과물로 유기육의 활성화라 한다.
균윤과 광활을 위한 작업은 극한작업으로 정신력의 시험으로 무한한 공력과 인내의 산물로 칼과 손의 각고의 노력과 기량의 실험이라 한다.
자사호는 고래로 문인과 지식인의 애호물로 고박응중한 색택과 천자백태의 조형이 필수적으로 실용가치도 겸비해야 한다.
전통문화의 내함이 포함되어야 하며 자사호의 흥기와 발전은 중국의 특수한 민속으로 전통문화의 소산이다.
자사호에는 전통문화의 모든 인소가 포함되는데 시서화인 포칠 상감 상은등 예술품상 표현가능한 인소가 모두 동원되는 과정이다.
자사호의 창시연대는 부동한 학설로 정설은 명정덕 가정연간에 생겨난 것으로 보고 양선명호계란 저서에는 자사호가 당지 고승들의 제도공예에서 우연한 기회에 유래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수천도의 고온을 통해 소제되어 만든 것으로 사석의 고박한 질지로 문인아사들의 애호를 통해 발전한 것으로 후에 공춘이라는 이가 수예를 배워 수영호를 제작하게 되었다 한다.
樹癭壺(수영호)가 지금껏 전해오고 역사기록의 최초의 자사호로 명대에 제작한 것으로 자사호의 문류로는 화화자사류로 은행나무의 영절을 모방한 호형인데 호면에 풍부한 문양이 나타나고 은행나무의 나뭇가지를 닮은 문양으로 묘취한 모습이다.
명만력시 대빈이란 이가 수공으로 제호공에를 발전시키는데 독특한 성형기로 거듭나서 후세에 전한다.
다종예술형식이 가미된 자사호기예는 아박견치의 광화와 전각과 조소예술이 가미되고 품차와 동시에 다양한 예술형식의 향수가 가능한 것이다.
청전기에 의흥의 자사호는 다양한 풍격과 조형이 번복한 형태로 전환하여 황족의 애호로 지방관원들의 공품으로 인기를 누린다.
이후에는 궁정내부의 조판처에서 2차소제로 채유호가 출현하게 되고 법랑채 분채 묘금등의 장식공예로 발전한다.
원래 소아한 자사호의 돌림성형이 궁정에서 민간에 이르는 자사열기를 유행시키고 풍격은 다양 다원해져 전승하게 된다.
시대의 흐름으로 부단한 창신을 거치고 문화내함도 증가되어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소동파는 차를 좋아하여 전로와 석로를 늘 携帶(휴대)하는데 흥이 나며 장소불문하고 차를 다려 마신다.
후에 의흥에서 토지를 구입하고 정주를 결심하는 시까지 남기게 되는데 일호일춘추라 하여 호마다 매력이 있다고 하였다.
자사호는 무정법이라는 문양과 회화방식인데 방과 원을 모두 사용하여 복잡한 제작방법이다.
호의 각부분의 비례와 각도는 예인의 경험에서 시작되는데 형태가 만천인데 수공자사호의 낙취의 소재이다.
전통중국화의 선조는 직선을 중시하는데 정확한 직선은 불가능한 것처럼 곡선과 불일정한 圓(원)등 가능한 규거를 활용한다.
진흙으로 만드는 자사호는 수축력으로 인해 가소성이 약간의 障碍(장애)요인이며 소제후 약간의 瑕疵(하자)가 더욱 아름다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사호의 완결성은 예인의 수예가 관마와 학습에서 나오는 것으로 學無止鏡(학무지경)이 적절한 비유로 전인의 작품과 경험을 흡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인들은 하나의 호가 바로 자신으로 생각해야 함을 말하는데 자신이 만족해야 걸작인 것이다.
자신의 인장을 호의 밑동에 박아넣는 것으로 작품은 완성되는데 소제작업이 시작된다.
자사호의 전통소제법은 용요에서 이루어지는데 저두미고의 경사식요로로 1100-1200도로 소제하게 되는데 40-42시간의 소제기간이 필요하다.
양선명호계의 기록은 過火則老 老不美觀 欠火則稚 稚沙土氣라 하는데 이제 매요 기요 전요의 출현으로 소제시 온도의 공제가 쉽게 변한다.
근대 자호명가들은 의흥 황룡산 광산의 깊은 곳에서 채굴하는 자사원료를 사용하여 순정함과 진흙으로 만들면 세니한 원료를 선호한다
최근 황룡산의 4호 정봉정의 광원이 날로 부족해지는데 퇴적풍화로 잔류된 니조청이 날로 진귀해지는 현상이라 한다.
그래서 소제시 온도가 1170-1190도를 요구하여 흡수율이 높아지고 안색이 황색으로 균일해진다.
그런데 온도가 더욱 높아지면 흡수율이 낮아지고 안색이 편갈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노출되어 온도가 조형을 결정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자사호의 소제방법은 두가지로 환원소와 기화소인데 환원소의 요온은 900도정도로 상승하여 요내의 양기공급이 감소되고 양화소는 소제과정중에 요내의 충분한 양기를 공급하여 온도를 유지한다.
소제시의 연소재료가 중요하여 통상적으로 油松(유송)이 선호되고 환원소제법이다.
氧氣(양기)는 소요시 매우 중요한 변인으로 일정한 온도에 도달후 요내의 양기를 감소하게 하여 토태와 釉水(유수)중 양원소를 抽取(추취)하여 만드는 방법인데 환원소법이라 한다.
이는 광택과 관련이 큰데 소제온도는 950-1000도안밖인데 50-60도정도의 환원차이가 광택을 결정하는 것이다.
수차례의 소제를 통해 자사호는 청회색 혹은 심묵록색의 금속질감을 만들어 자사의 원시적이며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환원소와 달리 양화소법은 소제과정중에 다량의 양기를 요실에 불어넣고 보충하는 방식으로 화염을 통해 충분한 소제방법인데 선돈 월선등의 호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전기를 이용한 소제온도조절로 자사호가 비교적 깨끗한 광택과 효율제고의 방법이다.
정상적으로 완성된 자사호는 기형이 우미하고 매끄로운 광택과 리취를 겸비한 창작자의 사상이 포함된 입목삼분의 물이 흐르듯 후중한 감정을 느낄수 있고 결국 물의 조화로 진흙이 만든 걸작이다.
자사호는 금속과 유사한 견고한 기명으로 나타나 오행겸비의 단순한 다구가 아닌 정신과 감정을 寄託(기탁)하여 만든 예술과 미의 결합체이다.
코펜하겐의 덴마크박물관에 조형이 독특한 자사호가 진열중인데 6방형제의 다구로 두곳에서 물이 나오는 구조이다.
이는 동시에 두가지의 차를 마실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불사조소가 윗부분에 있고 세한삼우도가 호신에 그려져 있는 걸작이다.
17-18세기 자사호가 유럽에 전해진 것인데 유럽각국의 궁정에 유행을 風靡(풍미)하게 한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홍색자기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여 이싱이라 부르는데 강소성 의흥의 중국발음이다.
자사호는 의흥이 탄생지인데 가업으로 대대로 자사호제조가들이 많은데 가족단위로 만들어진다.
자사호는 자신의 悟性(오성)과 성실한 수공의 기본공력이 바탕인데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자사호는 방형(네모골)과 원형이 기본인데 방은 원래 원에서 분화하여 4방 8방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자사호는 방원의 결합품으로 방중유원이라 하는데 원중우방이라고도 하고 과도의 풍골로 만들어진다.
선조는 유창포만하고 조형은 고박단정한 특징으로 珠圓玉潤(주원옥윤)의 감각이 필수적이다.
자사호는 충실한 전통으로 다양한 영역의 기예를 수용하여 충실히 발전하는데 청강희중기이후에서 건륭말기에 이르는 전면 번영시기를 맞는다.
장식풍격은 날로 성숙되고 이시기의 자사예인들은 진명원이 대표적으로 명대풍격을 계승하고 청대의 호예의 신유파를 개창한다.
진명원은 청강희연간의 자사예인으로 의흥천부 상원촌인인데 자사세가에서 출생하여 진명원이전에는 실용성이 주로 중시되고 재질미 공예미는 부수적이었다.
진명원의 시대에 이러한 격국을 완전히 打破(타파)하고 방생의 수법으로 대자연중의 화조어충등을 모방하여 花貨(화화)라 하는 것이다.
화화자사호시대를 연 선구자로 궁중염설대빈호 해외경구명원첩이라는 영예를 걸머진다.
이후 추세는 기타문류의 예술이 자사호에 융진하여 호예창작으로 현대기식이 농후하나 자세히 품미하면 전통문화의 융합을 알 수 있다.
이제 자신의 언어를 융합시킨 전통과 현대 정보사회의 많은 견문과 신문명적인 기식이 결합되는 추세이다.
자사호는 문화소양인들의 애호품으로 자사특유의 개성이 반영되어 자사는 원래 흙인데 脫胎于火(탈태우화)로 불의 힘으로 暗合易數(암합역수) 拙而不俗(졸이불속) 浸而不悶(침이불민)하여 금은기와 비교하면 패기는 적으나 많은이들이 향수할수 있다.
옥석과 비교하자면 자색이 부족하지 않고 친화력은 더욱 강한 것으로 중국의 고대문인들이 추숭하던 風韻(풍운)으로 一扇一墨 一硯一棋의 雅玩(아완)의 문인들의 눈에는 자사호는 수신과 양심 명지의 佳品(가품)으로 보여진 것이다.
청대의 저명한 금석서화전각가인 진만생은 심후한 문화예술소양과 심미능력으로 당시 저명한 제호고수인 양팽년에게 문인자사진품을 공동으로 제작할 것을 제안한다.
양팽년은 신운의 예술가로서 18학사자호는 정참한 호예로 질박하고 고고한 예술기운으로 풍부한 인문정신을 가져 심경의 융합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작은 자사호는 관식과 도양에 명문 장식 서법 회화가 고장지간에 펼쳐진 것으로 다른 예술영역과 비교가 어렵다고 평가하였다.
자사호는 문인들의 지지와 후애로 화려한 전신이 가능해지는데 만상을 포용하는 호중천지를 실현한다.
소위 소호대의라 하여 청대시인 왕문박은 인간주옥안족취라고 하여 극찬하고 공기가 유통하는 자사호는 변황이 없어 다른 盃(배)와는 지교가 불가하다고 한 것이다.
다구지수로서 각계층의 문화인들의 애호대상이 되어 궁정 관장 사찰등에서 인기를 독차지한다.
만청과 민국시기에는 외국과의 무역이 늘어나자 상업자본의 발전으로 의흥의 자사업은 중대하고 심원한 변화를 맞는다.
전통식 작방제작방식이 근대 도자상호로 회사의 대량생산으로 변화하여 실업식의 생산으로 변한 것이다.
죽순처럼 신속한 성장으로 상해 무석과 외국으로 나가 생산기업이 크게 증가한다.
1910년 청정부는 남경에서 남양권업회 1차회동으로 실업진흥과 농공장려운동으로 의흥양선도업공사의 자사도호가 금상을 수상한다.
1930년 의흥자사호는 벨기에만국박람회에서 은패장을 수상하고 1935년 자사명사 범대생이 雄鷹(웅응)이란 조소자사호가 영국의 런던국제박람회에서 금패장을 수상한다.
민국시기의 중국명패로서 국위를 宣揚(선양)하고 세계의 황금시기를 구가한다.
자사호작품이 역사상 이처럼 휘황을 누린 적은 없는데 세계공예품의 무대에서 대단한 성가를 올린 것이다.
최근에는 자사호가 독특한 민족특징으로 설계수법과 시류성으로 세계각국에 전해지고 있다.
임어당선생은 자사호는 유가의 문기 불교의 대도 도가의 초연을 대표하는 것이란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자사호는 이제 문화부호로서 차를 마시는 용구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특수한 양본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