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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se Most Affected
가장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들
Not all are affected to the same degree by the factors that have been considered. There are, of course, as there were in Jesus’ day, those who seem satisfied to follow some specific routine laid out for them, some of whom even take pleasure (and, all too often, pride) in the observance of traditional requirements and structured programs. Others are not particularly affected because they simply are not concerned about measuring up or gaining approval. Their very apathy shields them. 앞서 살펴 본 요소들에 의해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물론 예수 시절에 있었던 것처럼, 그들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일상습관을 따르는 것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요구사항과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준수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이들은 또한 긍지도 가진다.) 그외의 대다수 사람들은 조직의 승인에 부합되려거나 승인을 얻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바로 그들의 무관심한 태도가 그들의 방패의 역할을 하게된다. It is a sad fact that those most affected by the persistent pressure to do more and more in organizationally directed activities are those persons among the Witnesses who are the most sensitive and conscientious. For many of these, the argumentation—that subtly implies guilt if one does not follow the organization’s “suggestions” and “recommendations” in striving for “increased service”—creates a constant concern that they are not doing enough, not measuring up. As if on a treadmill, there is never a real sense of accomplishment but only the need to continue responding month by month to demands for performance, demands on their time that may not be openly stated but which are presented in ways that imply a lack of faith or of zeal or of love if one does not respond. So while many Witnesses just ‘go along with the crowd’ and show little effect from the pressure, the real test of Christian religion is not what it does for those who appear free from need, but what it does for those who are in a sense frail, afflicted. God’s rebuke to the spiritual leaders of the flock of Israel focused on this, saying: 서글픈 현실은, 조직이 지시한 활동에서 점점 더 많은 짐을 져야 한다는 압력을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가장 민감하고 양심적인 증인들이라는 사실이다. "더 나은 질의 봉사"를 위해 노력하라는 조직의 "제안"과 "권고"를 이들이 따르지 못할 경우 죄책감을 느끼도록 은근히 암시하는 논증의 글은ㅡ 양심에 민감한 증인들로 하여금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 조직의 지시에 순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끊임없는 죄책감을 낳게 하였다. 마치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것처럼, 참된 성취감이라기 보다 오직 매달 봉사 시간에 대한 실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공개적으로 표현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믿음이나 열정의 부족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증인들이 단지 '다수를 따라' 행함으로서 그 압박감으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반면에,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의 시험은, 도움이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약하고 죄의식으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양떼의 영적 지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질책은 이 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The sickened ones you have not strengthened, and the ailing one you have not healed, and the broken one you have not bandaged, and the dispersed one you have not brought back, and the lost one you have not sought to find.” . . .” “I myself shall feed my sheep, and I myself shall make them lie down,” is the utterance of the Lord Jehovah. “The lost one I shall search for, and the dispersed one I shall bring back, and the broken one I shall bandage and the ailing one I shall strengthen, but the fat one and the strong one I shall annihilate. I shall feed that one with judgment.” . . . “Here I am, I myself, and I shall certainly judge between a plump sheep and a lean sheep, for the reason that with flank and with shoulder you kept pushing and with your horns you kept shoving all the sickened ones until you had scattered them to the outside.”91 "너희는 약한 양을 강하게 하지 않았고, 병든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친 양을 싸매 주지 않았고, 길 잃은 양을 다시 데려오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양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거칠고 포학하게 그들을 다스렸다.". . . “내가 직접 내 양들을 먹이고, 내가 직접 그들을 눕게 하겠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잃어버린 양을 찾고, 길 잃은 양을 다시 데려오며, 다친 양을 싸매 주고, 약한 양을 강하게 할 것이나, 살진 양과 강한 양은 멸절할 것이다. 내가 심판으로 그 양을 먹일 것이다.” 그러므로 주권자인 주 여호와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 .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직접 살진 양과 마른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너희가 모든 병든 양들을 계속 옆구리와 어깨로 밀치고 뿔로 받아서, 마침내 그들을 바깥으로 흩어지게 하였기 때문이다."91 |
The same principles apply to Christian shepherds, and it is primarily their concern, not for the “sleek and the strong sheep” (NIV), but for the weak and injured and broken ones that tests the genuineness of their devotion to the flock. Of all those whom Christian shepherds are to “treat with tenderness,” certainly these should be foremost.92 To fail to recognize the pressures and strains that daily life in today’s world already subjects such ones to, is to be blind to their actual condition and needs. To push such ones by mental and emotional “prods,” to fail to provide them with needed emotional and spiritual rest and relief, can only bring the disapproval of the fine Shepherd, Christ Jesus. 그리스도인 목자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며, 그것이 목자들의 주관심사였으나, 헌신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대상은 '기름기 흐르고 튼튼한 양'(NIV)이 아니라, 약하고 상처 받고 부상당한 양떼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인 목자들이 "부드럽게 대해야" 할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러한 양들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92 오늘날 세상에서의 일상생활이 이미 그러한 사람들에게 압박과 부담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실제 상태와 필요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약한 사람들을 정신적이고 정서적 '몰이 막대기'로 몰아붙임으로써, 진정으로 필요한 감정적, 영적 안정과 안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칭찬을 들을 수 있겠는가? These thoughts were expressed in a letter written in 1977 and directed to Watch Tower president Fred Franz. The writer said: 이러한 생각들이 담긴 편지가 1977년에 쓰여져 워치타워 협회의 프레드 프랜즈 협회장에게 보내졌다. 편지를 쓴 이는 이렇게 말했다: | ||
I have the feeling that especially sensitive persons, that already have troubles coping with a demanding, cruel world, are loaded down by us with a lot of additional pressures and threats of destruction. The ones that really try to be faithful in all things, and then realize they are only imperfect men and women, that will never reach the combination of your strict goals for service, meeting studies, behavior, etc., are in danger of breaking down under the combined pressure of requirements that are planted in them one by one through methods they are not even aware of, so that they are not able to weigh the order of priority of all those requirements and fall into depression in trying to fulfill them all. 힘들고 잔인한 세상에 대처하는 데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히 민감한 사람들은 우리에 의해 추가적인 압박과 파괴의 위협으로 부담을 지고 있다는 느낌을 저는 갖게 됩니다. 정말 모든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그들이 불완전한 남녀라는 것을 깨닫고, 안간 힘을 써도 조직의 엄격한 봉사 목표, 집회 준비, 행실 등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인식도 못한 채 행해야 할 책임들이 너무 부담을 주어 도대체 어느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무게를 두어야 할지 갈팡질팡 거리면서 그 모든 책임들을 이행하려는 데서 우울증에 빠져 믿음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I found that I could only cope by reducing my exposure to your constant pressure. I attended only selected meetings and left certain meetings out because they made me depressed and upset. 저는 조직의 지속적인 압력에 노출되는 것을 줄여야만 처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집회에만 참석했고, 어떤 집회들은 저를 우울하고 화나게 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 ||
The writer of the letter was René Greutmann, a native of Switzerland. I quote here from his expressions since I believe the experiences he relates sum up and confirm much of what has been said in this entire chapter.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스위스 출신인 르네 그뤼트만이었다. 나는 그가 말한 내용들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상당히 요약해서 확인시켜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편지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As a Witness, René had spent time in prison for refusing to serve in the Swiss army. He felt a desire to help those mentally ill, trained as a male nurse and obtained work at a psychiatric hospital in Zurich. He resigned after a year or so due to the issue of having to serve patients food that contained blood plasma. He thus demonstrated his loyal adherence to the Witness stands regarding the military and blood. 증인으로서 르네는 스위스 군 복무를 거부한 죄로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병약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목표를 가졌고, 남자 간호사로 훈련받았고, 취리히의 한 정신과 병원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혈장이 들어 있는 음식을 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문제로 1년여 만에 사임했다. 따라서 그는 군복무와 피에 관한 증인들의 표준을 충실히 지켰다는 것을 증명했다. In his letter to the Watch Tower president he said his reason for writing was: 워치타워 협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
. . . to give you feedback on how your teachings and methods came across to me during the last twenty-two years of my being a Jehovah’s Witness. It is my hope that this contribution may shed some light on many depressions and suicides among very conscientious brothers and sisters. . . . 제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있던 지난 22년 동안 조직의 가르침과 방법이 어떻게 제게 와 닿았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기고가 매우 양심적인 많은 형제자매들 사이에 나타나는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
He then gave details of four suicides among Witnesses that he personally knew of and other cases of Witnesses needing psychiatric care.93 René, however, had a much more personal case to relate. 그 후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4명의 증인들의 자살과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증인의 다른 사례들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He related how he met and married his wife, Clarisse. A zealous Witness, she had moved to the German-speaking part of Switzerland, lived with a family of Witnesses, and in time started “pioneer” service, while working half-days as a secretary to support herself. She often bicycled up to an hour to reach her assigned rural territory. Conscientious, she pushed herself to the point where she felt unable to continue, but was still encouraged to keep on by the circuit overseer to whom she spoke. Adding to her stress, she experienced problems with a Witness, a married man who “made passes at her.” She reported the matter to the congregation overseer but thereafter suffered the anger of the married man’s wife for having done so. Before long she gave way to an emotional breakdown. Her parents brought her home to the French-speaking part of Switzerland but she was extremely depressed. The following morning she went to the roof of the four-story building and jumped. 그는 그의 아내 클라리스를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열성적인 증인인 그녀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지역으로 이주하여 증인 가족과 함께 살았으며, 반나절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비서로 일하면서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종종 한 시간이나 자전거를 타고서 지정된 시골지역에 도착하기도 했다. 그녀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다고 느낄 정도까지 양심적으로 자신을 밀어붙였지만, 여전히 그녀를 임명한 순회 감독자로부터 계속해 나가도록 촉구받았다. 스트레스가 더해가면서, "그녀에게 작업을 걸어 온 한" 유부남인 증인과의 문제를 겪게 되었다. 그녀는 그 일을 회중에 알렸지만, 그 유부남의 아내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오히려 화를 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감정적인 파탄에 빠졌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스위스 프랑스어권 지역으로 데려왔지만 그녀는 극도로 우울감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4층 건물의 옥상으로 가서 뛰어내렸다. | ||
She survived, but incurred multiple fractures on both legs and pelvis. The doctors had to amputate her right leg below the knee. When René met her she had learned to walk with an artificial limb. But she had never been able to recover from the effects of what had happened. She felt that she had failed as a pioneer and thus had failed God and that her purpose in life was finished. She could not find forgiveness for herself for the things she had done. In his letter directed to the Watch Tower organization, René wrote: | ||
그녀는 살아남았지만, 양쪽 다리와 골반에 다발성 골절을 일으켰다. 의사들은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무릎 아래까지 절단해야 했다. 르네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인공 다리를 가지고 걷는 법을 배웠을 때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받은 사고의 영향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파이오니로서 실패하였고 그래서 하나님께 실패했으며 삶의 목적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용서를 구할 수가 없었다. 르네는 워치타워 협회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
Naturally, she later heard that ‘nobody had forced her to go beyond her capacity in pioneering.’ Neither the persons that made these comments nor Clarisse knew of the power of constantly repeated “recommendations” and “counsel” in a tiring program. But you know it and God knows it. '아무도 그녀에게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 파이오니아를 하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되었음은 당연했다. 이런 말을 한 사람도 클라리스도 피곤하게 하는 조직의 프로그램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권고"와 "조언"의 힘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알고 있으며 하나님도 알고 계신다. | ||
René‚ found Clarisse to be a lovely woman despite her handicap, normally a bright, outgoing person. They married, after three years had a child, and René‚ later took her to live in California in the hope that it would enable her to break with the past and overcome her feeling of guilt and depression. They associated with a Witness congregation but found little understanding or warmth of acceptance and this disturbed Clarisse. René‚ recognized that his inability to give total support to all the organization’s teachings and practices may have contributed to the local Witnesses not giving much attention to them.94 He said he felt that to gain full acceptance he would have had to “submit to all teachings without thinking; to become a tape recorder that faithfully repeats everything that it is told.” He adds, “I don’t know how long I could have taken this without getting depressed myself.” 르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밝고 외향적인 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클라리스가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결혼했고, 3년 후에 아이를 가졌다. 르네는 그녀가 과거와 단절하여 죄책감과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녀를 캘리포니아로 데려가 살았다. 그들은 증인들의 한 회중에 연합했지만 그들을 이해하거나 따뜻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거의 갖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클라리스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르네는 자신이 조직의 모든 가르침과 책임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하지 못하는 것이 현지 증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지 않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했다.94 그는 그가 완전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모든 가르침에 복종해야 하고, 들은 모든 것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녹음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얼마나 이렇게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
Clarisse underwent psychiatric treatment for a while in Switzerland and then moved back to the United States, but with only minimal improvement in her feeling of depression. The sense of having failed religiously persisted. René‚ offered to move back to Switzerland but she expressed her preference to stay in California. One night in October 1975 she left for an appointment at Kaiser Hospital. She did not return. The following morning their car was located, parked near the Golden Gate Bridge. Her body was found floating in the waters of the bay by the bridge from which she had jumped. She was 34 years old. I realize that one cannot assign anyone’s problems entirely to a single source. Nor did René do so, candidly recognizing not only his wife’s somewhat fragile emotional makeup, but also his own imperfections and inabilities, wondering what more he might have done. But he also had no doubt there was an underlying factor that worked strongly against all efforts to bring relief to his wife. As he says in his letter to the organization: 클라리스는 스위스에서 잠시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우울증은 아주 조금밖에 개선되지 않았다. 종교적으로도 실패했다는 느낌은 지속되었다. 르네는 스위스로 돌아갈 것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머물러 있고 싶어했다. 1975년 10월 어느 날 밤, 그녀는 카이저 병원으로 약속된 치료를 위해 떠났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그들의 차는 금문교(金門橋) 근처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체는 그녀가 뛰어내린 다리 옆 튀어나온 부분의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녀는 34살이었다. 나는 인간이 지닌 어떤 문제가 하나의 원인에 전적으로 근거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르네 또한 그렇게 생각하였으며, 아내의 다소 연약한 감정의 기질뿐만 아니라, 르네 자신이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더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신의 부족함과 무능력함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의 아내를 구해주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강하게 저항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있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조직에게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I was reaching out with my arms and with my heart towards her. But I do not know how she perceived the world and the people around her, I was not in her shoes and artificial limb. I did not suffer her pain and distress. She was the type of person that could not protect themselves if they are programmed with overlapping and conflicting requirements. 나는 그녀를 향해 내 마음과 두 팔로 손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어떻게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인식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녀의 신발이나 인공 팔다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고통과 괴로움을 대신 겪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과 괴로움이 중복되고 상반된 요구사항으로 프로그램되면 그 자체를 이겨낼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 . . I would love to recommend our Assembly to unstable and sensitive persons, but I can not out of the depth of my heart recommend a religion whose pressure nearly killed me and that, I am convinced, was one of the biggest factors for the tragedy of my wife and others. . . . 불안하고 예민한 분들에게 우리의 모임을 권하고 싶지만, 나는 그 압박감이 나를 거의 죽게 할 뻔하였고 제 아내와 다른 사람들의 비극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였다고 확신한 이 종교를 마음의 깊은 상처를 벗어나 사람들에게 권할 수 없다. |
When approached by René, the elders in the California congregation refused to conduct a funeral service, based on their understanding of material about funerals for persons committing suicide in the Watchtower magazine of July 15, 1975, pages 447, 448. They told him they had to ‘protect the good reputation of the congregation.’ René could not see the rightness of such inflexible position. As he wrote: 르네가 장로들에게 갔을 때, 캘리포니아 회중 장로들은 1975년 7월 15일호 파수대지의 447, 448면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장례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장례식을 치르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그에게 '회중의 좋은 평판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르네는 그런 융통성 없는 입장이 과연 옳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썼다: |
We don’t have to approve of her act. It was wrong, it was a sin. A funeral to me is not an approval of someone’s lifestyle, but an act of support and love for the family left behind. 우리는 그녀가 행동을 잘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잘못되었다, 그것은 죄였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장례식은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의식이 아니라, 남겨진 가족을 위해 동정심과 사랑의 행위였다. . . . I gave her the funeral service myself. I went to the funeral home with my mother. I put a few roses on her body, caressed her for the last time and then went on my knees and prayed, thanking God for the time we had together, praying that he would remember her in the resurrection. I prayed that he would help me to increase my love and awareness of the needs of the people around me, to help me to raise our child to be a loving responsible Christian. . . . 내가 직접 장례식을 치렀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 나는 그녀의 몸에 장미꽃 몇 송이를 얹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애무한 다음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녀를 기억하여 부활시켜 주기를 기도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증가되어 주변 사람들의 욕구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우리 아이를 사랑이 많은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키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했다. |
It may be pointed out that two years later, in the June 1, 1977 issue of the Watchtower, an article was published specifically allowing for an elder’s conducting a funeral of one who had taken his or her life due to “extreme despondency or mental derangement.” This was not as a result of René Greutmann’s letter, for it never came to the Governing Body. Another incident brought discussion of the subject. In advocating a changed viewpoint during the discussion, I recall personally calling attention to David’s funeral dirge after the deaths of Saul and Jonathan in which David included both men in his eulogy, though the wounded Saul, seeking to avoid abuse at the hands of the Philistines, had taken his own life.95 The change reflected in the abovementioned Watchtower is good, commendable. The elders in the California congregation, having that material, would undoubtedly have acted differently as a result of it. But I think what needs to be noted is that their actions, their thinking, their feelings were, and probably still are, governed entirely by what the organization says, not by what human compassion and reason and Scriptural principles and the example of God’s Son would move one to do. In making its change regarding funerals for suicides, the June 1, 1977 Watchtower article presented no Scriptural argument as a reason for the change. It simply made the pronouncement that “Because of such fine purposes being served [by a funeral discourse], it seems that a Christian minister could see his way clear to conduct” a funeral in such cases. The organization had spoken and now elders might do what perhaps their own hearts would have normally motivated them to do. 그로부터 2년 뒤에 가서야 이 문제가 지적 될 수 있었다. 1977년 6월 1일자 '파수대'에는 '극도의 허탈감이나 정신착란'으로 목숨을 끊은 노인의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구체적으로 발행되었다. 이것은 르네 그뤼트만의 편지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편지가 통치체에 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이 그 문제를 논의하도록 발단이 되었다. 자살에 대한 변화된 관점을 옹호하면서 논의 중에, 블레셋 병사들에게 죽는 것을 피하려고 부상당한 사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울의 이야기에서 나는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후, 다윗이 부른 장송곡에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사실을 기억한다.95 위에서 언급한 파수대에 반영된 변화는 훌륭하고 칭찬할 만하다. 캘리포니아 회중의 장로들은 그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 결과로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행동, 사고, 감정이 아마도 전적으로 조직의 말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동정심과 이성과 성경적 원리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의 본보기가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1977년 6월 1일호 파수대 기사는 자살에 대한 장례식에 대한 변화를 설명하면서, 변경의 이유로 성경적 주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단지 " [장례식 연설]에 의해 이러한 훌륭한 목적이 치르지기 때문이라는 발표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한 경우, 그리스도인 전도인은 장례식을 치를 수 있을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는 발표를 했다. 조직이 발표를 했으므로 이제 장로들은 그렇게 해도 좋다고 마음에 동기를 평온하게 부여 받았을 수도 있다. If, however, the organization had not spoken, they would not feel free to act in such a compassionate way, would doubtless feel guilty if they did so, would certainly feel concerned about maintaining their eldership if they failed to conform fully to the organizational policy, and bereaved family members would continue to receive the same refusal René received after his wife’s tragic death. I am forced to wonder what there is in all this that can in any way be described as spiritually “paradisaical.” 그러나, 만약 조직이 그렇게 발표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렇게 동정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자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죄책감을 느낄 것이고, 그들이 조직 정책에 완전히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의 장로직 유지에 대해 걱정할 것이 확실하고, 유족들은 르네가 그의 아내의 비극적인 죽음 후에 당했던 거절을 계속 당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영적 "낙원과 같은"것으로 묘사될 수 있는 이 모든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 할 수 밖에 없다. Sometime after his wife’s death, René and his small son returned to Switzerland. He had learned that while his wife was undergoing treatment in Switzerland, a man on duty as a Frontier Guard at Lake Geneva had seen her, fully clothed, walking out into the water and had gone after her, pulling her from the water. Coincidentally, the man’s wife had known Clarisse as a child. René visited the couple to thank them for what they had then done on his now-dead wife’s behalf. During the conversation he mentioned that Jehovah’s Witnesses did not serve in the army, the reason being that they did not want to kill. The man’s wife replied in a way that René‚ has never forgotten. She said, “Sometime we also kill with words.” Whether or not the Watch Tower president personally saw or read René’s letter I cannot say. I know that the letter did not come before the Governing Body, but that was normal. Whatever the case, the president did not answer it, as it was passed to one of the men on the “correspondence desks” for reply. I think the overall tone of that reply reflects remarkably that of the expressions made by the congregation elders to whom René appealed: 아내가 죽은 지 얼마 후, 르네와 그의 꼬마 아들은 스위스로 돌아왔다. 그는 아내가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제네바 호수에서 초소 경비를 서고 있던 한 남자가 그녀가 옷을 완전히 입은 채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여 그녀를 따라가 물 밖으로 끌어내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람의 아내는 클라리스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르네는 그 부부를 방문해서 그들이 지금은 죽었으나 그의 아내를 위해서 한 일에 대해 감사했다. 대화 도중 그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경비의 아내는 르네가 결코 잊지 않을 대답을 해주었다. 그녀는 "때때로 우리는 말로도 사람을 죽이게 된다"고 말했다. 워치타워 협회장이 직접 르네의 편지를 보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난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편지가 통치체 앞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정상이었다. 어떤 경우든 답장을 하도록 '편지를 쓰는 책상'의 목록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협회장은 이에 대해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 답장의 전반적인 어조가 르네가 호소했던 회중 장로들의 표현에 매우 잘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워치타워 협회> EF:ESC 1977/11/14 르네 그뤼트만 히그돈가 211 마운틴 뷰 CA 9401 친애하는 그뤼트만 형제에게 지난 달 프랜즈 형제에게 보내진 형제의 추가 편지가 집필부로 보내졌습니다. 우리는 형제의 아내가 죽음에 이르게 하기까지 한 환경에 유의하였으며 그녀가 자신의 생명을 버릴 정도로 보이는 상태에 이르게 한 감정적 혼란을 알고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점과 관련하여 영향을 준 것에 대해 그뤼트만 형제가 어떤 결론에 이르렀지만, 우리는 인간의 감정과 동기가 어느 때 발생하는지 판단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문제를 자비와 정의의 적절한 균형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하실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행로의 안내를 위해 그분을 바라봄으로써 여호와의 자비로운 손에 맡기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아내를 대해본 방식과 문제에 대한 형제의 태도와 관점으로 형제가 내린 결론에 의해 집회 참석이나 봉사의 참여가 과다하여 좌절하게 되고 심지어 감정적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책임이 얼마간 여호와의 조직에 있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전체로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고 계시며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분명한 축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을 형제에게 권고합니다. 형제는 집회에 정규적인 참석과 좋은 소식 전파를 헐뜯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에게 무엇이 더 이치적인지 스스로 정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곳 본부의 형제들은 출판물과 다른 방법을 통하여 그리고 지방 장로들은 전세계적인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격려와 도움을 베풀므로써 또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세계에 증거하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여호와께 충실히 머물므로써 그분께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각자는 개인적으로 성서로부터 격려를 받아 자신의 환경과 능력이 자라는 데까지 응답해야 합니다. 형제가 우리의 격려를 올바로 평가한다면 분함이 사라질 것이며 형제 자매들을 로봇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과 같은 지배나 통제의 시도는 없습니다. 조직이 형제자매들을 세뇌시키거나 통제한다는 형제의 주장은 그 증거를 어디에서도 실제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형제가 예수나 사도들이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전서 1:10에서 " 같은 정신과 같은 생각으로 온전히 연합하"라는 말처럼, 그리스도인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 행했던 바에 유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9-11에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기도한 바울과 일치하게 여호와를 섬기려는 형제의 바람에 그분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형제들로부터, -서명- |
This response is almost entirely devoted to justification of the organization’s course and, bluntly stated, a put-down for the man who clearly wrote out of concern for a particular kind of persons within the organization and their welfare. The letter by the headquarters staff member contains at most one sentence that might be considered slightly comforting. As René mildly expressed it, “their reply was not very encouraging to me, left me rather on my own with my questioning and searching for truth and love.” He experienced some serious problems following his wife’s death but in time, through prayer and apart from the organization, overcame these and regained stability. 이러한 대응은 조직의 진로를 정당화하는 데 거의 전적으로 힘을 쏟은 것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조직 내의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과 그들의 복지에 대한 염려를 분명히 나타내면서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본부 직원이 보낸 편지에는 위로가 될 만한 문장이 기껏해야 한줄 정도 들어 있었다. 르네는 "그들의 답변은 나에게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질문과 진실과 사랑을 찾는 일에서 멀리 떠나 있었다"고 침착하게 표현했다. 그는 아내의 죽음 이후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겪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에 대한 관점과는 관계없이 기도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I believe that the combination of evidence, viewed on a worldwide basis, reveals why it is reasonable to say that sensitive and emotionally fragile persons in particular are at risk in what is called the “spiritual paradise.” I cannot help but think again of the prophet’s words, “You hustle the weary with flank and shoulder, you butt them with your horns until you have driven them away.”97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살펴 볼 때 특히 민감하고 감정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소위 '영적 낙원'에 대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를 제시해 준다고 본다. 예언자의 말씀을 나는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너희들은 약한 양들을 모조리 옆구리와 어깨로 밀쳐내고, 뿔로 받아 우리 바깥으로 쫓아 흩어버리기까지 하였다."97 At the beginning of this consideration I expressed a sense of sadness and what has been discussed only heightens that sense. What appeared to offer such promise, what seemed to lead the way to something beautiful, has proven quite otherwise. The fine qualities to be found among many have been diverted from their normal outlet. There has been a depersonalizing, and to some extent a dehumanizing, effect as a result of the elevation, almost the deification, of organizational authority. The sadness, as in the case of the former Roman Catholic theologian, results from “instances of the damage done to persons by workings of an impersonal and unfree system.” Not human interests, not the love of people that moved God to give his Son on their behalf, but the interests of an organization to sustain itself, to implant its essentially denominational views in more and more persons and extend and maintain its authority over them, has in effect ‘slain the idea which gave it birth.’ 이 성구를 고려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였고 논의된 것은 단지 그 감정을 고조시켰을 뿐이다. 그러한 약속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아름다운 무언가로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혀 다른 것으로 증명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꼭 발견되어야 할 훌륭한 자질들은 그들의 정상적인 배출구로부터 엉뚱한 곳으로 전용(轉用)되었다. 거의 신격화된 조직 권위의 격상의 결과로 탈인격화, 비인간화 현상이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었다. 이 슬픔은 전 로마 가톨릭 신학자 사례처럼 '비인격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체제의 작용으로 사람에게 피해를 준 사례'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을 감동시켜 아들을 대신 주었던 것은 인간의 관심사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체를 지속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분파적 견해를 필연적으로 심어주고, 그들에 대한 권위를 확장, 유지하기 위한 조직의 이익을 위한 것이 되어 사실상 '그 조직을 낳게 한 이상'을 말살하고 있다. |
91 Ezekiel 34:4, 15, 16, 20, 21.
91 에스겔 34:4, 15, 16, 20, 21.
92 Acts 20:29.
92 행 20:29.
93 This is not something exceptional. I know similarly of several suicides among Witnesses, including one occurring while I was at the international headquarters in which a staff member jumped to his death from the top of one the Society’s factory buildings, another in 1990 when a longtime member of the staff and a former member of the Factory Committee jumped to his death from the third floor of one of the Society’s residences. And I have correspondence listing an even greater number of suicides known to those writing. Any tally of the number in other lands, particularly in the industrialized nations, would undoubtedly be considerable— though such matters are generally kept quiet and never published.
93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몇 건의 증인들의 자살사건도 알고 있다. 내가 국제본부에 있는 동안 한 직원이 협회의 공장 건물 꼭대기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도 있고, 또 다른 사건도 1990년에 오랜 기간 동안 협회 직원이었으며 전 공장 위원회 성원이었던 증인이 협회의 한 주택의 3층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도 있다. 그리고 그 기록에 알려진 훨씬 더 많은 수의 자살 목록이 적힌 서신이 내게 있다. 다른 나라들, 특히 선진국의 총 자살 건수는 틀림없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ㅡ하지만 그러한 문제는 일반적으로 숨겨져 있고 결코 발표되지 않는다.
94 Among other things he viewed the practice of reporting time on “report slips” as undesirable, feeling that this had a coercive effect, something that even headquarters’ staff members such as Karl Adams and Robert Wallen basically recognized, as we have seen.
94 그 중에서도 칼 애덤스나 로버트 월렌 같은 본사 직원들도 우리가 살펴 본 대로 강압적인 영향이 있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느끼면서 '봉사 보고서'에 봉사 시간을 보고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95 2 Samuel 1:17-27.
95 삼하 1:17-27
96 The symbol EF indicates that the letter was written by Fred Rusk of the headquarters Writing Department.
96 EF라는 기호는 본부 집필부의 프레드 러스크에 의해 쓰여진 편지임을 나타낸다.
97 Ezekiel 34:21, NEB.
97 에스겔 34:21, 신영어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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