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Symphony No.41 in C major, K.551
'Jupiter'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모차르트는 1788년 6월부터 8월에 이르는 짧은 시기에 걸쳐, 교향곡 39번부터 41번까지의 최후의 3대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세 작품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창작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작품으로서 ‘신이 통치하는 성역’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또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오페라 <돈 조반니> <마술 피리>와 비견되는 깊은 정신세계를 드러내고 있어 기악곡의 표현적 가능성의 정점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은 장대한 규모로 인해 신 중의 신인 주피터의 이름을 붙였다.
모차르트 최후의 3대 교향곡들 가운데서도 ‘주피터’라는 부제가 붙은 교향곡 41번은 베토벤 이전에 작곡된 교향곡들 가운데 최대 규모의 교향곡이다. 이 교향곡에 붙은 ‘주피터’라는 별명은 하이든의 후원자이며 바이올리니스트 겸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요한 페터 잘로몬이 붙인 것으로, 그는 1819년 10월 20일에 에든버러에서 이 교향곡을 연주할 당시 이런 부제를 처음 사용한 이후 1821년 3월 26일에 열린 런던 필하모닉협회 연주회에서도 사용했다. 과연 이 교향곡은 그리스 신화에서 모든 신들의 제왕이었던 주피터의 이름에 걸맞게 웅장하고 장대한 규모의 작품이다.
당시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음악은 모차르트 생전에는 이해되지 못했다. 교향곡을 단지 즐거운 놀이 음악으로 인식하고 있던 빈의 음악애호가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장대하고 심오하며 밀도 높은 텍스추어로 되어 있었고, 그 정교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반음계주의, 대위법적인 악상은 그 사람들에게 그저 산만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을 뿐이다. 1791년에 모차르트가 세상의 무관심 속에 외로운 최후를 맞이했을 때만해도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1829년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마지막 교향곡 C장조는 기악음악 최고의 승리”라 말했고 당대의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모차르트의 기악 언어는 당대 청중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적이었기에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은 작곡가의 사후 38년이 지난 후에야 ‘기악음악 최고의 승리’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추천음반 모차르트 교향곡의 전통적인 명반으로는 카를 뵘이 지휘하는 빈필의 연주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안정되어 있는 뵘의 해석이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마치 전류가 흐르듯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레너드 번스타인과 빈 필하모닉의 연주도 추천할 만하다. 고악기 연주의 날렵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의 음반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한편 좀 더 과격한 악센트를 원한다면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로열 암스테르담 콘서트허보 오케스트라의 음반이 적당할 것 같다.
아래 글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축제에서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축하 연설입니다. 아르농쿠르는 빈 필하모닉과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연주하기에 앞서 자신이 왜 모차르트에 평생을 바쳐야 했는지, 모차르트의 음악이 가지는 시대적인 역할과 속속들이 드러난 모차르트 음악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연주자들이 모차르트를 왜곡되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일침을 가합니다. 또한 오늘날 위기에 처한 음악교육과 상업주의에 물든 모차르트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가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축제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축하 연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이야말로 이 축제의 진정한 서막이라 여깁니다. 이제 연주하게 될 교향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세 개의 마지막 교향곡(39, 40, 41번) 중에서 가운데 곡입니다. 분명 이 세 개의 교향곡은 인간이 목적지로 가기 위해 택한 일종의 길을 나타냅니다. 이 마지막 세 교향곡의 첫 곡은 E플랫 장조인데, 이것은 사랑의 조성이며 동시에 ‘의례적 장중함’의 조성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시작해 모차르트는 G단조 교향곡으로 넘어가 앞선 모든 것이 의심되는 깊이 있는 단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리고 ‘주피터’ 교향곡의 현란한 C장조로 이어지는데, 이 곡에서는 모든 것이 해결되고 전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사람들이 하모니 속에 평온함을 느끼게 합니다. 모차르트는 41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G단조는 25번 교향곡과 함께 두 곡밖에 없습니다. 당시에는 G단조가 죽음과 슬픔의 조성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한숨의 동기’가 나오는 첫 주제 악장에서는 단 한 개의 음도 바로 연주되지 않습니다. 모든 음은 위에서 아래로, 또는 그 반대로 연결되는 자식음인 ‘아포지아투라’(appoggiatura)를 갖고 있어서 매우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 흐릿해집니다. 마치 물방울을 통해 보는 것처럼 불명료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악장은 ‘주피터’ 교향곡에서 살짝 숨겨져 있기도 한 푸가 주제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E플랫 장조인데 마치 첫 번째 악장의 악몽을 완전히 없애려는 듯,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호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언어가 무색해지고 우리가 그 앞에서 잠잠해져야 하는 이 놀라운 음악을 들으신 후에 저는 이제 모차르트와 그를 기념하는 올 한 해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아니, 어떤 축하연설도 이 음악에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제가 모차르트의 음악 외에 다른 것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인데, 이제는 모두가 음악 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와 동일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차르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돈을 벌고 사업과 관련된 것이어서 유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모차르트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고 지난 200년이 넘게 우리에게 요구해온 바는 너무나 단순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엄숙히 그리고 주의 깊게 그의 음악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의 말없는 간청과 호소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쭐해하기보다는 진실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를 축하하고 있는데 그것이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축하하고 싶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빈과 잘츠부르크에서 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천재의 가차없는 엄격함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데, 우리는 경제적 증대 효과와 사업상의 거래로 그를 축하하고 그의 음악을 모든 종류의 경영 채널을 통해 조각조각으로 흩어 보내고 있습니다.
추악하며 수치스러운 것이죠. 어떻게 그것이 용납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성의 한 해가 의미를 가지려면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모차르트가 전하는 메시지의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우리의 시상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의 격동하며 요동치는 폭풍을 갈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해는 실로 우리를 위한 기회인 것입니다.
모차르트가 이룬 성과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술 자체입니다. 그것은 음악이고 우리는 그 음악을 통해 이루어 온 것과 지금도 이루어 가고 있는 것, 또 이루지 못한 것을 설명해야 합니다. 음악과 예술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실용적인 것과 균형을 맞추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예술이며 음악이라고 말할 때 저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매혹적인 선물이며 마법의 언어입니다.
현 세대들은 행복의 기대치가 물질적인 것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당장 쓸모 있는 것에만 점점 집중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성공과 동일하고, 성공은 재산과 같다. 나는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잘 살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이미 학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술 과목들, 상상력에 도전하는 모든 것들과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 혹자는 '필수불가결하게 되고 싶은' 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 대부분의 것들이 억압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노래를 하도록 권유받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노래해야 할지 모르고 아예 아는 노래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만들고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이미 3, 4, 5세 때 시작됩니다. 이후에는 이것이 방송이나 워크맨에 맡겨지게 됩니다. 만일 예술교육이 독서, 쓰기, 그리고 수학과 동일한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실용주의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면, 물질주의와 탐욕이 우리 시대의 맹목적 종교가 될 극도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단순한 기술 훈련이 아니라 완전한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음을 다급하게 경고합니다! ‘피사 연구’(Pisa Study)처럼, 음악을 다소 경시하는 경향이 우리의 교육목표가 잘못 설정되었다는 증후입니다. 저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상류층에서 확고하게 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고급화된 형태의 예술은 아무도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 때 결국 공허한 외침이 되리라는 것이 진실입니다. 음악은 교만하고 자기만족적이며 특권을 갖고 있는 소수만의 신비한 언어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고, 어린 나이부터 안테나가 바르게 맞추어졌다면 그 부유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보이지 않는 힘은 강력하고 위험스러우며 그 효과는 파괴적입니다. 그런 이유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것을 활용하려 애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권력에 반대하고 그 어떤 지배도 받지 않으며, 길들여질 수도 전유될 수도 없기에 그들의 시도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예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이지만 말의 언어보다도 진리에 더 가깝습니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은 항상 그 시대의 영적 상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왔습니다. 모차르트의 G단조 교향곡이 처음 연주되었을 때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음악 어법이 허용될지에 대해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때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이 교향곡이 극단적인 음악 언어의 형태라고 느꼈습니다. 아무도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술은 어떤 깨달음에 이르도록 인도하며 때로는 강제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아야만 하는 거울입니다. 거울은 보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예술을 단지 미학적이거나 대중적인 어떤 것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취합니다. ‘듣기 좋은’ 음악을 듣고, ‘보기 좋은’ 그림을 보면서 되도록이면 파괴적인 경험에 노출되거나 철저하게 분쇄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게 됩니다.
50년 전에 오케스트라의 단원일 때, 저는 일 년에 몇 차례 모차르트의 G단조 교향곡을 연주해야 했는데 그것은 항상 부드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청중들은 행복에 젖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고 곡이 끝나면 ‘모차르트 행복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 책상 위의 진실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멜로디, 화음, 그리고 리듬,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되었고 정말로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미뉴에트 악장의 ‘로맨틱한 트리오’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마도 2차대전 후라는 시대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장 극명하게 정반대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현란한 하모니와 순수한 행복감은 필요로 했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는 모차르트 음악에 관한 해석이 다소 밝고 긍정적인 면은 강조하고 파괴적인 면은 억압하는 양상이었습니다.
이 교향곡은 개인적으로 저의 ‘운명 교향곡’(제 개인의 운명에 관한 교향곡)이 되었고 제 인생을 영구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로 17년을 지낸 어느 날, 저는 더 이상 그 곡을 그런 식으로 다시는 연주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교향곡은 많은 문학작품이나 공예품과 똑같이 위대한 본보기가 됩니다. 예술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가? 또 청중은 무엇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가? 모차르트는 계속 이 한계에 매우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모차르트는 인간으로서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정말 불가사의합니다. 사람들은 모차르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인생은 서류상으로 매우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결코 모차르트에 관한 진실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입니다. 그의 음악만이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인물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에 이중적 견해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두 명의 모차르트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아이, 활달하고 외향적인 젊은이, 모차르트의 친구들은 그가 결코 우울해한 적이 없으며 젊어서부터 세련된 필체로 편지를 쓴, 교양 있고 재치 넘치며 자기 확신에 찬 인물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전기를 통해 아는 경제적ㆍ예술적 위기를 겪고 가정사에 문제를 안고 있는 모차르트, 그는 부자였을까요, 가난했을까요? 그는 아버지와 다투었을까요, 아니면 그 관계가 조화로운 사랑의 관계였을까요? 빈에서 초연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성공하지 못하자 모차르트는 예술가로서 실패했을까요?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한 마디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스바르트 슈펭글러(Osward Spengler)가 말햇듯이 자연은 과학적으로 다루어져야 하지만, 역사에 대해서는 시를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모차르트는 진실한 바로 그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생각을 넘어서며 어떤 평가를 내리기가 불가능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의 척도가 모차르트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모차르트는 다른 행성에서 온 것 같습니다. 오직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살고 있습니다. 매순간 심각하고 농담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숨 막힐 듯 답답합니다. ‘음악적 농담’( Musikalischer Spass)도 오페라 ‘자이데’(Zaide)에서 나오는 ‘유령과 같은 분위기의 웃긴 아리아’처럼 어둡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모차르트에게 천재성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가족에게 틀림없이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유쾌하고 총명한 어린아이를 대면하고 그가 악어와도 같이 무시무시한 존재임을 발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떨어지는 유성과 같습니다. 연주하는 어린아이가 어른이었던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는 천재를 양육하는 모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악마적 존재는 그의 환경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는 ‘양육될’ 수 없고 가족에게 사랑받는 존재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아주 초기 작품에서 예술가로서 모차르트의 길은 외부 환경과는 정반대로 절대적으로 확고하며 놀라운 확신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심지어 아이일 때도 모차르트는 정서적으로 경험하거나 겪을 수 있었던 범위를 넘어서는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젊은 청년으로 남아 있고 또 언제나 젊은이였던 모차르트에게 사랑과 죽음, 비극과 죄, 그리고 행복에 관한 가장 극단의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우리로 하여금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다음 하늘을 올려다보게 합니다. 아마도 그는 신의 손에 들린 펜대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