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 군사사를 논할 때 항상 우스갯소리가 돌았는데, 중국의 중기병은 남북조 시대에만 번창했고, 당나라에서는 갑옷을 입지 않은 날렵한 경기병들을 내세워 사람과 말이 모두 갑옷을 입은 중기병을 제압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말이 모두 갑옷을 입은 중무장 기병을 묘사한 당나라의 유물인 당삼채. 과연 저런 유물이 나왔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당나라에 중무장 기병이 없었다고 자신있게 떠드는 것일까요?)
그러나 거짓된 루머로 인해 역사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나라가 중기병을 없앴다는 주장은 당나라에서 중기병이 계속 활동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짓입니다.
중국인들이 투르크인(돌궐족)들에게 배운 병과인 중기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초원 벽화 위의 투르크 중기병
당나라 때 중기병이 없어졌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육중한 기갑기병이 기동성과 유연성이 뛰어난 경기병을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나라의 상대는 투르크족과 같은 유목기병으로, 결코 굳건하게 진형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당나라는 현실적 필요에 따라 투르크족의 기병 전술을 배우고 투르크족을 모방한 경기병 부대를 설치하여 주력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만약 당나라가 투르크 기병의 전술을 실제로 배웠다면 중기병을 제거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중기병은 여전히 투르크 전술 체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투르크 활동 지역의 벽화 어디에서나 기갑 기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 초기의 중요한 사료인 대당창업기거주(大唐創業起居注)에서는 갑옷을 정규복으로 착용하는 투르크 군대가 강력한 중기병과 유연한 경기병의 긴밀한 협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기록했습니다. 대략 6세기에 그들의 영토는 동쪽의 외흥안령산맥에서 서쪽의 흑해까지 뻗어 거대한 유목제국을 건설하고 수나라와 당나라,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로마 같은 동방과 서방의 대제국들과 교류했습니다.
또한 병력을 모집할 당시 병력이 700명에 불과했던 후돌궐(당나라에 복속했던 투르크-돌궐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세운 나라)조차 실제 전투에서 중기병의 역할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후돌궐 제국의 제4대 군주인 빌게 카간(Bilge Qaghan, 비가가한)의 일생을 서술한 유물인 빌게 카간 비문에 의하면, 빌게 카간은 갑옷을 입은 밤나무색의 말을 공격했으며, 후돌궐 장군인 퀼 테긴(Kül Tigin)은 전투 중에 갑옷과 셔츠에 100개가 넘는 화살을 맞았지만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실제 전투에서 중기병의 인상적인 방어력을 보여줍니다.
쇠를 다루는 뛰어난 대장장이로 이름이 높았던 투르크인(돌궐족)에게 중장갑 기병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게다가 고구려부터 토번(티벳)에 이르기까지 당나라의 적들은 모두 말에 입히는 수많은 갑옷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문화유적에는 사람과 말이 모두 갑옷을 입은 이미지가 가득하며, 티벳 고원에서 활동하던 토번족은 병사와 말이 모두 쇠사슬 갑옷을 입었는데 갑옷이 아주 잘 만들어졌고 몸 전체가 덮여 있었으며 구멍이 두 개만 열려 있어 날카로운 공격에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당나라 군대가 강력한 갑옷과 장비를 가진 중무장 기병을 갖춘 고구려나 토번 군대와 싸우려고 했는데, 그들 당나라 군사 자신들은 중기병이 전혀 없이 경기병을 내세워 중기병과 싸우려 했다는 주장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고구려 벽화의 중장갑 기병
당나라 중기병은 모두 의장대였는가?
당나라의 중기병에는 관련 출토문물과 기록물이 있습니다. 1970년대 초, 당 익왕의 무덤에서는 갑옷과 승마 장비를 갖춘 수많은 인형이 출토되었습니다. 사료에도 아직 젊은 시절의 당태종 이세민이 지방 군벌인 왕세충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돌아올 때 갑옷을 입힌 1만 명의 중기병들을 내세워 호화로운 행렬을 벌이고 그들의 무술솜씨를 뽐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나라에 중기병이 많았음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와 문화유적이 있는데 왜 일부 사람들은 당나라가 중기병을 폐지했다는 헛소리를 아직도 믿는 걸까요? 당연히 어떤 사람들은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당나라의 중기병은 실전용이 아니라 그저 의전용에 불과했다. 당나라 중기병을 묘사한 인형들에는 금과 은 같은 호화로운 장신구들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라는 더욱 큰 거짓말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의 남자, 말, 기갑 중기병은 모두 의장대가 아닌 실제 전장에 투입되어 싸우던 전투 부대였습니다!
당나라 이전의 왕조인 수나라 시절, 수나라 황제인 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수나라 기병대가 금 장신구로 치장한 말들을 타고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왜 무시하나요? 중국의 군마에 금 장신구를 달는 풍습은 춘추시대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되는데, 이제 후세 사람들이 금 장신구를 단 기병 부대가 실제 전투 부대가 아니었다는 허황된 핑계를 내세운다면 우리 조상들을 웃게 하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증거는 당나라의 법률에서 나옵니다. 당률소의(唐律疏議)에서 말갑옷은 일반인들이 소유할 수 없는 금지된 장비로 분류됩니다. 당률소의의 내용에 의하면 말갑옷 1벌을 일반인이 갖고 있으면 2,000리 밖으로 유배를 가고, 말갑옷 3벌을 일반인이 갖고 있으면 사형을 선고받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대, 당나라에서 석궁에 쓰이는 화살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전혀 금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석궁보다 중기병의 중요성과 위험성이 더 높았습니다. 이는 당나라 정부가 그만큼 말갑옷은 일반인이 함부로 가져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장비로 여겼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사람들이 의장대가 될 수 있을까요?
중기병은 당나라 대외 전쟁의 주요 부대 중 하나였습니다.
당나라 전투에서 기갑 기병의 사용에 관한 많은 역사적 자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세민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주필산 전투에서 당태종은 직접 중기병 4,000명(주: 현갑군. 사람과 말이 모두 검은색 갑옷을 입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당태종 이세민이 직접 만든 중무장 기병 부대였다.)을 지휘해 적을 맹렬하게 공격해 15만명으로 전해지는 고구려 주력군을 격파했습니다.
위구르인들이 홀로 달려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 당나라 장군 곽자의도 위구르군을 겁주기 위해 2천 명의 기갑기병을 이끌고 좌우로 출동했습니다. 곽자의의 부하들은 토번 출신 장수인 복고회은을 만나러 출발할 때 호위병 500명을 선발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는 실제 전투에서 중기병의 억제력을 보여줍니다.
관례에 따르면 수나라는 고구려로 쳐들어갔을 때, 수만 명의 중무장 기병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에서 중기병을 사용한 사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구성에서 수만 명의 병력과 싸울 때 당 장군 치비합리는 800명의 강력한 기병으로 그들을 직접 공격했습니다.
이르티시강 전투에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기병을 직접 이끌고 북원으로 들어가 무작위로 공격하여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벽화에 있는 고구려 기병 훈련 사진
당대 중기병의 존재 이유와 필요성, 또한 그것을 뒷받침하는 출토문물과 역사적 자료가 많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전투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당나라 군대에 중장갑 기병이 없다고 자신있게 떠드는 사람들의 속셈은 뭘까요? 아마 아래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요?
"서양에서 중장갑 기병이 발달한 것을 보았으나 중국은 나중에 그 중장갑 기병을 동원한 요나라와 금나라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고, 몽골 유목 기병에 의해 완전히 정복되었다. 그러므로 서양 기병은 어찌됐든 중국 기병보다 나을 수 없다. 유목민이기 때문에 경기병이어야 한다, 중국의 최전성기인 당나라 시절에 중장갑 기병 대신에 경기병을 사용했다고 칭찬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조상들이 서양인이나 유목민들한테 지는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이러한 터무니없는 생각은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당나라에 중장갑 기병이 다수 있었다는 증거와, 심지어 요, 금, 원 역시 다수의 중장갑 기병이 있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날조된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지루한 자존감은 돼지기름만큼이나 눈이 멀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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