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3장까지의 내용을 볼 때에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성도들이 사역자들의 인간성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그 인간성이
교회에 영향을 줘서 시기와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그 사역자들의 위치에 올라가려고 하고, 거기에 월권적인 부조리가 생겼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도 할 수 있어 목사면 다냐? 이렇게 나오는 식입니다.
요즘 인터넷 카페 같은데서 만인이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며 목회자들을
무시하는 듯 하는 글을 쓰는 이들이 기세를 올리다가 몇 년 후엔 흔적이 없습니다.
동기윤리만 있을 뿐 책임윤리가 없는 세상 풍조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일입니다.
예수 밖에 모르는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것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소리를 하며 복음을 위해 택정(set apart)된 주의 일꾼들을
우습게 보는 말을 하는 걸 봅니다. 지금 어느 교수 출신 목사가 성경을 표면적으로만
공부하여 순수한 열정으로 설교를 하니 그만한 목사도 없는 세상이어서 먹혀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고전4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너무
권위적이므로 사람들이 이를 끌어내리려하는 현상이 그 때나 지금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신자의 그룹이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권위 있는 그룹에 도전해서는 안 되죠.
세상에도 왕이 있고 스승이 있고 부모(군사부)가 있듯이 영적인 세계에도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복을 전달하는 하는 하나님의 계통이 분명히 존재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에 있는 권세자에게 굴복하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롬13:1)
사견입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연령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저보다 더 가까우면 하나님이 제게 보낸 사자라고 여기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러나 큰 교회 목사나 박사 학위 같은 외모로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습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란 세상의 정권에 대한 말씀만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할 말씀입니다.
1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일꾼
곧 그리스도 아래서 섬기는 자로 알아 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알아달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질서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이 된 자로서 진리의 성령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비밀을 가지고 뒤돌아서서 온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비밀을 간직한 바울과 같은 전도자로서 담대하게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절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리스도 아래에서 섬기는 자로서의 일꾼, 곧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를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앞에서 충성된 자로
발견된 자를 찾으라는 말씀인데 이는 업무수행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밀을
자기에게 적용하는 방법을 가진 사역자를 말합니다. 말재주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행하며 가르치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 서기관입니다(마5:19)
문제는 8복을 이루는 비밀을 터득해야만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데
심지어 빛과 소금이라고 바꿔 말하는 사람들조차 있으니 참 난감합니다.
이제 겨우 미국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8복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나오더군요.
8복은 말씀대로 지키는 게 아니죠.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씀부터 천국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의 것이요(마5:3-10) 하는 말씀까지 우리에게 성취가
되는 과정과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소금과 빛이 되며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의인이 되어 행하며 가르치는 천국 서기관이 되는 겁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능동순종이라는 말을 만들었더라고요. 귀 있는 자는
이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말씀을 자기 힘으로 순종하려고 낑낑대며
행하면서 가르치라고 다시 말하면 수동순종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비밀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능동입니다.
3절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 하노니" 고린도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율법의 문제가
다시 들어옵니다. 주의 날과 안식일과 사람들이 만든 날의 개념이 들어옵니다.
이런 것들로 인해 바울이 판단을 받습니다. 예컨대 바울이 이런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이라고 말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절기를 만약 안 지키면 난리가 나지 않을까요?
그러나 부활과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날마다 순간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시간이며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날마다 순간마다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그리스도 안에 새 출발하게 하는 성탄의 날인데 그 날짜가 대수롭겠습니까?
4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나 스스로 자책할 것이 없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의롭게 되지는 못합니다.
오직 판단하실 이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롬3:4)
어떤 경우에도 진리의 복음을 믿음으로 어떠한 판단 앞에서도 의를 얻어 이겨야 합니다.
5절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주님이 오시면 저절로 판단이 됩니다.
심판이 됩니다. 1) 어두움에 갇힌 것 2) 마음속에 있는 소원, 무엇을 좋아하는가?
이런 것들이 주님 앞에서는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 칭찬을 받습니다.
이것은 현재에 일어나는 일이며 또한 미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칭찬은 지금도
주어집니다. 그게 바로 의입니다. 그 의를 앞세우고 하나님은 행차 하십니다(시85:13)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은혜를 인정하고 주께 감사하면 성령이
반드시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의 칭찬을 느끼게 하십니다. 어쩜 하나님께서
옳지 됐어 하는 것 같은 감동으로 온 몸이 전율하게 됩니다. 이런 감동이 없이
어느 누가 외로운 섬과 같은 진리의 사역을 이 시대에 펼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와 같은 판단은 장차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첫댓글 좋은 성경 자료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은 눈에 남고, 멋진 말은 귀에 남지만
따뜻한 배려는 가슴에 남는다고 합니다.
오늘도 따뜻한 사랑 나누며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