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쌍방울, 北에 대가 약속하고 6개 사업 우선권 확보... 이화영도 개입”
‘쌍방울 그룹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은 쌍방울이 북한으로부터 ‘전방위적’ 대북 사업권을 받으면서 북측에 대가를 주기로 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17일 전해졌다.
쌍방울 그룹의 수십억 상당의 달러 밀반출한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쌍방울 그룹 본사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검찰은 쌍방울그룹이 2019년 수십억원 상당의 달러를 중국으로 밀반출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 및 재산국외도피죄) 등을 수사하고 있다. 2022.10.17. /뉴시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쌍방울은 2019년 5월 중국 단둥에서 대남 민간 경제 협력을 담당하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와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쌍방울은 지하자원 개발, 관광·도시 개발, 물류·유통, 에너지, 철도, 농축산 등 6개 분야의 ‘우선적 사업권’을 획득했다고 한다.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가 북한 광물 채굴 사업권을 약속받은 것도 이때다. 이 합의에는 쌍방울이 대북 사업권 취득에 따른 대가를 북측에 추후 지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쌍방울과 북측 간 합의서 체결을 위해 이화영 전 의원, 아태평화교류협회 안모 회장 등이 쌍방울 실소유주인 김성태 전 회장과 함께 중국에 건너가 도와줬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의원은 쌍방울에서 뇌물과 정치자금 3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이 전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를 지낼 때 평화부지사로 임명돼 대북 사업을 추진했다. 아태협은 경기도와 두 차례 공동 개최한 대북 교류 행사 비용을 쌍방울에서 지원받았고, 안 회장 등 50여 명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위한 불법 선거 조직을 운영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쌍방울은 북측과 합의서 체결 전후로 임직원 60여 명을 동원해 수십억원에 해당하는 달러와 위안화를 중국으로 ‘쪼개기 밀반출’한 의혹도 받고 있다. 중국 선양에는 쌍방울 현지 법인 ‘심양상무유한공사’도 있다. 검찰은 쌍방울이 북측에 사업권 획득 대가를 전하려 한 것인지를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 쌍방울 전(前) 임원, 아태협 회장 자택에 이어 이날 쌍방울 본사와 계열사를 압수 수색했다.
쌍방울은 2019년 5월 북한 측과 대북 사업 관련 합의서 체결 전후에도 경기도, 아태협 등과 함께 북한 관련 행사를 추진했다. 2018년 11월 경기도와 아태협이 공동 주최한 ‘제1회 아시아·태평양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 행사 비용을 쌍방울이 지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북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고위 관료들이 참석했다. 쌍방울은 또 2019년 7월 경기도와 아태협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주최한 ‘제2회 아시아·태평양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의 행사 비용도 지원했다. 아태협 안 회장은 2019년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의 사내 이사로 임명됐고, 아태협은 쌍방울에서 사무실도 무상으로 받았다.
검찰은 과거 대북 사업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쌍방울이 이화영 전 의원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쌍방울은 2013년 2월 중국 정부로부터 ‘북한 내 위탁가공사업’을 허가받았지만, 사업 허가 기한이던 2015년 2월까지 통일부로부터 허가받지 못해 결국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전 의원이 2018년 7월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취임하자 그를 통해 대북 사업을 재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쌍방울의 대북 사업 관련 계열사인 나노스는 2018년 1분기 평균 주가가 2650원에 불과했지만, 2019년 5월 13일 7550원을 기록하는 등 크게 올랐다.
이 전 의원은 쌍방울에 사업상 편의를 주고 그 대가로 3억2000만원의 뇌물과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14일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쌍방울이 이 전 의원뿐 아니라 북한 측에도 사업권 획득과 관련해 수십억원에 해당하는 외환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검찰은 이 전 의원의 쌍방울 법인카드 사용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자 쌍방울 측이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에 나선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최측근이자 지난 2020년부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쌍방울 대북 사업을 총괄한 방모(구속 기소) 쌍방울 부회장은 작년 11월 검찰 수사관 출신 A감사와 논의해 이 전 의원이 사용한 쌍방울측 법인카드 등 사용 내역이 정리돼 있는 컴퓨터를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에게 컴퓨터에서 ‘이화영’을 검색하게 해 관련 파일이 있는 컴퓨터를 찾아낸 뒤 새 컴퓨터로 바꿨다는 것이다. 방 부회장은 또 검찰 압수 수색에 대비해 쌍방울 계열사 대표를 지냈던 엄모씨의 휴대전화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게 하는 등 증거 은닉도 시도했다고 한다. A감사도 지난 5월 과거 검찰 동료이던 현직 수사관으로부터 쌍방울 관련 검찰 수사 기밀을 입수한 후 압수 수색에 대비해 주요 임직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졌다.
쌍방울은 사건 핵심 관계자들을 해외로 도피시키기도 했다. 방 부회장은 지난 5월 김성태 전 회장과 함께 싱가포르로 출국해 6월까지 머물면서 검찰의 수사 상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후 김 전 회장과 함께 태국으로 이동해 김 전 회장의 수행비서를 만나 태국 도피 생활을 돕도록 한 뒤 국내로 들어왔다고 한다. 쌍방울 그룹 자금 전반을 관리해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김모 재경총괄본부장도 비슷한 시기 캄보디아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쌍방울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없애고 사건 핵심 인물들을 해외로 빼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