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덱’에서 가져온 민주교육 이야기
1. 행복을 미루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 - 우크라이나, 카타리나
1년 전쯤 꾼 꿈에서 우리나라에 전쟁이 터졌다. 그런 두려움과 무서움은 처음이었다.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고, 당장 우리 아이들을 내가 보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얘지는 걸 경험했다. 금세 깨어버려서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그런데 꿈에서 깬 현실이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죽음을 피할 곳이 없는 때가 올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확률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길만 말하자면, 사실 우리 모두가 죽음과 가까이 있는 거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온 교사, 카타리나.
밝고 유머가 가득한 에너지는 삶은 그 자체로 축복임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내일이 아닌 오늘 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전쟁에게서 선물 받은 듯했다.
행복을 미루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노래한다면?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억에 의존해서 옮긴다.
철학자가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고 아름다운 노을이 지고 있었다.
철학자는 삶에 감탄하며 뱃사공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철학자: 당신은 철학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뱃사공: 아니오. 철학을 공부하면 무엇이 좋습니까?
철학자: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지요.
뱃사공: 세상의 이치를 알면 무엇이 좋습니까?
철학자: 돈을 벌고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뱃사공: 돈을 벌고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무엇합니까?
철학자: 저처럼 여유롭게 강을 건너며 저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지요.
뱃사공: 저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2. 교육이란 바깥에서 넣는 게 아니라 안에서 피어나는 것 - 네팔, 베르난다
가장 감명 깊게 들었단 베르난다 선생님의 이야기. 사과나무를 예로 들어 전하셨다. 사과나무를 자라게 할 때 우리가 줄 것은 햇빛과 물 밖에 없다. 사과나무는 이미 씨앗 안에 사과가 들어 있다. 옆 사과나무와 똑같은 높이로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뽑아올리거나 잡아당기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과나무의 시간을 기다린다.
사람도 그렇게 이해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 안에 열매를 가진 채 태어나고, 우리가 할 것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따뜻한 관심을 주는 것, 햇빛과 물로 비유된 존중성을 담은 사랑으로 함께 하는 것이 전부라고.
베르난다는 교육은 인간에게 자연스레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조급하게 남들이 뭐하나 눈을 돌리는 게 아니라 오직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
네팔 어로 ‘마니샤‘
지금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의 소리를 다 억누르고 있다. 그런 생각 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게 일상이 되니 마음의 소리를 아예 듣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명상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런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누르거나 올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성을 지키며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자기 안의 아름다움을 찾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끌어내주는 것, 그게 진정한 교육이다.
교육 Education은 라틴어 Educare에서 온 말이다. 이는 ‘밖으로 드러내다’라는 뜻이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힘을 키워주는 것, 부모인 내가 도울 일이다.
3. 배우는 일이 행복한가? - 대만, 켄과 그의 아버지 로저
중국의 큰 대안학교인 인문학교에서 초중고 시절은 보내고 대학에서 재즈 색소폰을 전공한다는 ‘켄’의 이야기를 오가는 버스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 인문학교는 시험이 없다.
켄의 이야기에 따르면 중국의 대부분 아이들은 수많은 시험을 치르면서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켄은 스스로 음악을 공부하고 싶다고 알아차렸고 시작했는데 할수록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고.
켄의 아버지는 ‘돈이 중요치 않아… 돈은 중요치 않아.. 돈은 중요치 않아… 하다가 장난스럽게 ‘오케이 돈은 중요해 중요해 매우 중요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가 웃었다. 그러자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아들은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고, 뭔가를 배우는 일을 행복해한다. 이것은 평범하지 않은 일이다.”
켄의 아버지는 ‘타이완 티브이쇼’ 유튜버이기도 했고, 나무 오르기, 여름 캠핑, 서핀, 카약 등을 즐기고 있었다. 아버지도 아들도 활기찬 기운이 그대로 전달됐다.
마지막에 들은 자전거 이야기는 크게 공감했다. 맑은샘학교의 교육도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의 원하는 것도 알고, 그 둘을 맞춰가는 것. 내 삶의 주인으로서 더불어 사는 방법이다.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 만에 한 바퀴를 휙 도는 것은 쉽다. 누가 돌라고 하는 대로 빨리 휘리릭 돌면 된다.
그러나 천천히 30일간 동무들과 시내를 도는 것은 어렵다. 행위 주체성이 필요하다.
며칠 동안 어디로 어떻게 갈지 일정을 계획하고 그를 위해 소통하고,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속도를 맞추고 계속 조율하면서 가야 한다.
그것이 배움이다.
4.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 이스라엘, 야콥
이스라엘 하데라 민주학교는 야콥 헥트가 설립한 곳으로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내용, 장소, 방법, 상대를 결정하는 민주학교로 알려져 있다. 학생들은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고, 서로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배워나간다.
야콥은 민주주의는 어떤 완벽한 결과물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는데, 민주주의란 함께 살면서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말했다. 화장실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화장실이 더러워서 깨끗하게 하려면 가르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화장실은 이렇게 청소해야 완벽하다"라는 가르침은 답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한 학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교장 선생님인 야콥이 변기를 닦고 있는 뒷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전쟁 속에서 왜 민주교육을 하는가? 결국 민주교육만이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기’ 이야기에서 배운 대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상대를 가르치는 게 답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공동체 구성원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이해했다.
또한 야콥은 ‘자기 자신이 자신의 독특성, 자기 주변의 독특성을 찾아가고, 세계가 저마다 독특성을 찾도록 만드는 것’이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 모두가 저마다 방식대로 살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깃털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우리 집 거실 바닥을 뒹구는 아이들의 읽던 책과 벗어둔 옷가지 이야기를 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민주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우선은 그 과정을 민주적으로 쌓아가도록 애써야겠다. 그게 내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