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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2: 13 길을 여는 자
미 2: 13 길을 여는 자 -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
본문은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의 힘찬 행진을 증언한다.
1]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길을 여는 자’는 포로 생활의 속박을 뚫고 나가는 자이다.
참된 구원과 회복은 죄와 죽음의 속박을 뚫고 나가는 것이다.
길을 여는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우리들 앞서 올라가신다.
그는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를 따라 죄와 죽음의 속박을 뚫고 담대히 나갈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님, 우리의 목자, 우리의 인도자, 우리의 왕이시다.
2]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여는 자'는 '왕'과 병행을 이루며(Von Orelli) 메시야를 암시한다.
왕은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위임 통치자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나와 백성들보다 앞서 나아가는 인도자이다.
그러므로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는 말씀은 백성들 앞에 서서 인도하는 왕의 모든 행위와 통치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그는 백성들의 인도자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나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통해서 백성들을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이 예언은 가깝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의 통치에서 해방됨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구원받게 됨을 예표 한다.
남은 자에 대한 축복
(1) 본문 성경을 기록한 미가는 B.C. 700년경,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외적으로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앗수르의 침략 위협에 직면한 국가 위기 상황이었고, 내적으로는 심각한 정도로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도덕적 타락과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지경이었다.
특히 강하고 힘 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 행위가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여 사회적 분열과 불안, 불만이 위험수위에 이를 정도였다.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거짓 예언을 난발하며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다.
이같은 실상을 기록한 성경에서 찾아보자.
* 미 1: 7 -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 미 2: 1-2 - 1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 미 3: 11 -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른 바 온갖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가 나라 민족의 존망마저 위협할 정도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 정권의 임기 말에 계속해서 터지는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들이다.
깨끗하다고 자부했던 현 정권의 수많은 권력형 부정부패와 온갖 비리는 임기 말까지 그칠 줄을 모르고 터지고 있다. 권력형 부정부패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빈부격차를 초래했다.
우리나라 국민 중 상위 5%의 사람들이 38%의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또 부동산은 더 심각해서 상위 10%의 점유비는 현재 9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은행에서 최근 조사한 것에 의하면 상위 20%가 전체 금융자산의 71%를, 상위 5%가 38%, 상위 1%가 19.4%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수치가 100명중에 부자 5명이 우리나라 돈의 거의 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땅과 집은 100명중에 10명이 90%를 갖고 있다.
이같은 빈부격차는 개선되기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를 통해서 이루어진 축재라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미가 선지자 당시의 사회적 병폐와 다를 바 없다. 미가 선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다.
* 미 2: 4 - 그 때에 너희를 조롱하는 시를 지으며 슬픈 노래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 도다. 하리니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 쓰라린 경험을 풍자하여 이런 애가를 지어 부를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망하였네. 여호와께서 우리 땅을 빼앗아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원수들에게 주었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는 이스라엘은 조만간 이같은 “슬픈 애가”(哀歌)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2)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멸망이 목적이 아니다.
그들로 하여금 “슬픈 애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공의로운 심판은 그들 민족을 정화시켜 새롭게 만들고자 하시는 ‘사랑의 징계’이다.
‘사랑의 징계’를 통해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들에게는 아브라함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히 12: 5-9 -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결국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매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갔다.
그 포로 생활 중 겪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 시편 137이다.
* 시 137: 1-9 - 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바벨론 포로가 되어 바벨론 여러 강변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던 때를 기억하며, 악기를 들고 망국의 설움을 달래고 있었다.
어느 바벨론 사람이 자기들을 위해 노래 한 곡 부르라고 하자 자신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던 그 입술로 어찌 우상숭배자들의 노래와 그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 혓바닥이 입천장에 붙을지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처럼, 그리고 다니엘처럼 이렇게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서도 철저히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자기의 신앙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사람들, 그리고 바벨론이 아무리 당대 최고의 문화와 문명을 자랑하고 높은 생활 수준을 보장한다 해도 그곳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님을 확실히 믿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아니한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부르며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홍수의 심판 속에서도 노아와 그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방주(교회)를 지으라는 하나님 말씀에 세상 사람 모두가 조롱할지라도 120년 동안 굴하지 아니하고 순종했기 때문이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의 심판 속에서 롯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세상 모두가 온갖 죄악으로 범람할지라도 홀로 의롭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의 악독한 우상숭배 강압 정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상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켰던 7천명의 참된 선지자들을 남겨두셨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돈과 세상 권세, 우상과 이단의 우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세상 풍속을 따르지 아니하여 신앙을 거룩하게 지키시므로 ‘남은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외눈박이 원숭이만 사는 곳에 어쩌다가 두눈박이 원숭이가 살게 되었는데 외눈박이 원숭이들의 조롱과 멸시를 견디다 못해 두눈박이 원숭이는 한 눈을 빼고 외눈박이가 되었다.
한 사회에서 홀로 의롭게 산다고 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두눈박이가 온통 외눈박이 사회에서 끝까지 홀로 두눈박이로 남는 데는 온갖 조롱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받지 않아도 될 환난과 핍박을 당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손해와 고통이 크다 해도 심지가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남은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보스라 양떼 같게 하리라’는 축복을 약속하셨다.
‘보스라’는 애굽의 한 성읍 이름으로 ‘높은 벽으로 둘러 세워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요새화된 성읍’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남은 자’를 ‘보스라의 양 떼 같게 하리라.’는 말씀은 ‘남은 자들을 아무라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요새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완벽하게 보호하시겠다.’라는 축복을 말한다.
이 시대에 ‘남은 자’의 신앙생활로 ‘보스라의 양 떼같이’ 온전하게 보호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4) ‘남은 자’에게 주시는 두 번째 축복은 ‘하나님께서 선두에 서서 그들의 앞길을 형통하게 열어주신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 같은 하나님을 ‘길을 여는 자’, ‘선두로 행하시는 자’로 표현했다.
‘길을 여는 자’의 히브리어 ‘파라쯔’는 앞으로 나가는 길에 모든 장애물을 돌파하여 약속한 축복의 땅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 출 23: 20 -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 출 23: 27-28 - 27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28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앞길에 모든 장애물을 모두 깨끗이 제거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그 모든 장애물들을 여지없이 부수고 돌파하여 형통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가로 놓인 홍해에 길을 열게 한 것은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 출 14: 21 -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 것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고, 밤에는 혹독한 추위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기 힘든 광야 길에 낮에는 시원한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따뜻한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의 길을 열어주신 분은 모세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선두에 서서 축복의 땅으로 가는 길을 여시는 분이다.
예수께서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축복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을 열어주시고자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것이다.
이를 히브리서 성경이 이렇게 기록했다.
* 히 10: 19-20 -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죄의 장벽(휘장)을 부수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영원한 축복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다.
오직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그 길로 갈 때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부수고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 엡 2: 13-18 -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십자가는 인간관계의 막힌 담을 돌파하여 화평의 길을 열어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끝까지 따라가면 모든 길이 열린다.
삶의 모든 닫힌 문과 높은 담을 헐어버리고 형통한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남은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남은 자들’이 되셔서 선두에서 삶의 모든 길을 형통하게 열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초장의 양 떼 같이’ 부족함이 없이 보호하시는 온전한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한다.
본 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악의 결과는 멸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와 불법과 학대 등의 악을 행했고 또 거짓 선지자들은 그 악을 책망치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했어야 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싫어하지 말고 사모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 곧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 경고의 말씀을 싫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한 자에게는 유익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 16).
우리는 성경적 교리와 생활 교훈을 귀히 여기고 사모하며 그 말씀을 다 믿고 힘써 실천해야 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로 구원을 받았음을 알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를 굳게 붙들고 자기를 부정하고 고난을 참고 천국만 바라보며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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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에 행복을 담아 나의 인연 모든 분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미소와 함께 전해 드립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 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