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이 세상 최초의 인간을 찾아와 묻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인간은 '근사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식물을 처음 본다며 감탄하는 악마에게 인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식물에는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데 익은 다음 즙을 내어 마시면 아주 행복해집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포도'에 관한 내용인데요. 인류는 신석기 시대부터 포도를 먹어왔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맏며느리에게 먹였다고 하는데요. 주렁주렁 열린 포도가 다산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악마도 몰랐던 포도의 효능
"젊음을 원한다면 포도를 먹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포도를 먹으면 겉모습은 물론이고 속까지 젊어질 수 있는데요. 포도에 든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활성산소를 억제해 세포와 피부, 근육의 노화를 늦춥니다. 또 뼈 건강을 책임지는 칼슘, 마그네슘, 인, 비타민 K까지 골고루 들어 있어 젊고 튼튼한 몸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포도의 껍질에는 외부 독성으로부터 말랑하고 연약한 과육을 보호하기 위한 라스베라트롤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성분이 몸에 들어가면 암세포의 생성과 발전, 전이를 모두 억제하는 뛰어난 항암 효과를 보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항암제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외에도 포도의 효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입에도 달고, 몸에도 좋은 포도는 익숙한 과일입니다. 무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어질 때쯤 달달하고 속이 꽉 찬 제철 포도를 한 일씩 따먹으며 기운을 차리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포도에겐 한 가지 편견이 있습니다. 바로 동그랗다는 것인데요. 포도는 둥글다는 공식을 깬 포도계의 신성이 등장했습니다.
가지야? 포도야? 블랙 사파이어
포도답지 않은 충격적인 비주얼로 한국을 강타한 이 과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로 2018년 여름부터 국내에 유통되기 시작한 '블랙 사파이어 포도'입니다. 독특한 생김새 덕분에 다양한 별명이 붙었는데요. 가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지 포도', 검은 매니큐어를 칠한 마녀의 손톱 같다고 해서 '위치 핑거'라고도 불립니다.
한 입에 쏙 넣는 포도와 달리 손가락처럼 기다란 모양으로 두 번 베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알이 큽니다. 신맛 없이 매우 달콤해 세계적으로 인기가 급상승 중인 최신 포도 품종이죠. 껍질째 먹을 수 있고 과육이 단단합니다. 8월 중순 경 수확하는 품종으로 다른 포도 품종에 비해 저장력이 뛰어난데요. 상온에 보관해도 쉽게 상하지 않습니다.
2013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판매가 이뤄진 블랙 사파이어 포도는 '포도는 동그랗다'라는 편견을 깨부수고 포도계의 다이아몬드로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블랙 사파이어 포도의 기다란 생김새에 반하고, 달콤한 맛에 또 한 번 반했죠.
그런데 이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유전자 변형'을 의심하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모양이 길쭉한 특징을 보이는 두 가지 품종의 포도를 교차 재배해 몇 년에 걸쳐 자연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포도 품종을 제치고 인기를 독차지한 블랙 사파이어 포도와 우리가 흔히 먹어왔던 포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적포도 VS 청포도 VS 델라웨어 VS 블랙 사파이어
궁금한 건 못 참는 에디터 Y! 시중에 파는 포도를 비교하기 위해 마트에 다녀왔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먹는 씨 없는 포도인 크림슨 시들리스 적포도, 톰슨 시들리스 청포도. 국내에서도 재배되고 있는 작고 먹기 좋은 델라웨어 포도. 그리고 인기 초절정이라는 블랙 사파이어 포도. 네 가지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생김새는 어떻게 다를까요?
크림슨 시들리스 적포도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 칠레 쪽에서 오는 품종으로 흔히 먹는 씨 없는 적포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약간 길쭉한 형태로 연한 자줏빛 껍질이 특징입니다. 알 크기는 거봉보다는 작고 일반 포도보다는 약간 큽니다.
톰슨 시들리스 청포도는 크림슨 시들리스 적포도와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데요. 크림슨 시들리스 적포도의 청포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약간 길쭉한 형태로 노란빛과 연둣빛이 섞인 껍질이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에 칠레산 시들리스 수입 후 껍질째 먹는 청포도의 인기가 폭등한 적도 있습니다.
델라웨어 포도는 1851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발견돼, 1855년 오하이오주 델라웨어 지방에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품종입니다. 알 크기가 1.4g~1.8g으로 매우 작아 입에 넣고 2, 3번 정도 씹으면 과육이 사라집니다. 맛을 느끼려면 적어도 3, 4개는 입에 넣고 씹는 것이 좋습니다.
스윗 사파이어라고도 불리는 블랙 사파이어는 포도답지 않은 크기를 자랑합니다. 평균 5~7cm, 최대 10cm까지 자라며 손가락처럼 기다랗고 크죠. 한 알 평균 10g으로 델라웨어 포도의 약 7배에 해당합니다. 커다란 크기 덕분에 한 입 가득 포도를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맛은 어때요?
4가지 모두 포도이지만 미묘하게 맛이 달랐습니다. 크림슨 시들리스 적포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씨 없는 포도 맛입니다. 상큼함보다는 달달함이 강합니다. 매우 훌륭하지도 모나지도 않아서 대중적인 포도로 자리 잡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톰슨 시들리스 청포도는 적포도와 식감은 비슷하지만 살짝 더 새콤합니다.
델라웨어 포도는 '봉봉'이라는 음료 속 포도 알맹이 같은 식감입니다. 젤리처럼 부드럽고 탱글탱글합니다. 당도는 17~18브릭스로 평균 포도 당도인 14브릭스보다 높은 편에 속하는데요. 과육은 매우 달콤하지만 껍질에서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4가지 포도 중에 가장 호불호가 강하게 갈렸습니다.
대세를 증명하듯 블랙 사파이어 포도가 가장 인기가 좋았습니다. 크기가 크고 과육이 단단해서 씹는 맛이 있습니다. 한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깊고 진한 포도의 풍미가 느껴집니다.
포도, 제대로 씻어 먹자!
포도는 청, 적, 자, 흑 4가지의 색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 때문인데요. 색에 따른 영양성분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포도의 껍질과 씨에 영양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껍질째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포도를 껍질까지 모두 먹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세척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흐르는 물에 포도를 가볍게 씻어줍니다. 2. 포도가 잠길 정도로 물을 받아준 뒤 베이킹 소다를 뿌려줍니다. 3. 베이킹 소다 물에 포도를 5분 정도 담가 둡니다. 4. 흐르는 물에 한 번 더 씻어줍니다.
포도를 너무 오래 담가두면 단 맛이 빠질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포도에 붙어있는 하얀 가루의 존재를 '농약' 혹은 '상한 것'이라 의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포도의 하얀 가루는 친환경의 지표인데요. 봉지 재배처럼 친환경 재배 기술을 적용하면 과분(과실 표면에 붙어 있는 흰 가루)이 잘 형성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요리로 변신한 블랙 사파이어
영양분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신이 내린 과일이라 불리는 포도. 요리에 활용하기보다는 씻어서 바로 먹거나 과일 주스로 섭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중에서도 디저트를 제외하곤 포도가 들어간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없어 '포도를 요리에 넣겠다'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비주얼에 놀라고, 맛에 또 한 번 놀라는 블랙 사파이어 포도를 활용한 건강 레시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블랙 사파이어 치킨 오픈 샌드위치
출출하지만 거창한 요리는 힘들고, 배달 음식에 질렸을 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블랙 사파이어 치킨 오픈 샌드위치인데요. 이거 하나면 완벽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뿐만 아니라 포도 속에 풍부하게 든 비타민까지 함께 섭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포도 속 타닌 성분과 폴리페놀은 음식의 느끼한 맛을 덜어주고 고기의 맛을 더욱 살려주는데요. 마요네즈와 겨자로 버무린 닭 가슴살에 포도까지 넣어준다면 영양은 물론이고 맛의 균형까지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료 : 식빵 2쪽, 닭 가슴살 한 덩이, 블랙 사파이어 포도, 새싹채소, 마요네즈, 겨자
통곡물빵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흰 밀가루 식빵에 비해 훨씬 건강하기 때문인데요. 통곡물을 먹는 것만으로도 심장 질환과 당뇨병, 비만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여리고 맛있는 새싹채소는 재배 기간이 짧아 화학 비료 없이도 잘 자라는 무공해 식품으로 유명합니다. 닭 가슴살이 단백질을 공급하는 아주 좋은 음식이란 건 다들 아실 텐데요. 통곡물빵과 새싹, 닭 가슴살이 식사의 느낌을 만들고 포도가 고급스러운 풍미를 더해줍니다.
블랙 사파이어 포도와 삶아진 닭 가슴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줍니다. 닭 가슴살은 시중에 나와있는 완제품을 썼는데요. 물에 한 번 데치거나, 프라이팬으로 가열하면 조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먹기 좋게 자른 블랙 사파이어 포도와 닭 가슴살을 그릇에 담고 마요네즈와 겨자를 적당량 뿌려줍니다. 부드럽게 먹고 싶은 분들은 마요네즈를 더 넣어주시고, 톡 쏘게 드시고 싶은 분들은 겨자를 더 넣어주시면 됩니다. 만약 마요네즈의 칼로리가 부담스럽다면 플레인 요거트로 대체하셔도 잘 어울리니 참고하세요.
여유가 있다면 빵을 한 번 구워주세요.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빵 위에 새싹을 잘 올렸다면 소스에 버무린 블랙 사파이어 포도와 닭 가슴살을 차곡차곡 얹어줍니다.
만드는 시간이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초간단 레시피인데요. 닭 가슴살의 퍽퍽하고 담백한 맛을 겨자와 마요네즈가 1차로 잡아줍니다. 거기에 씹는 맛이 일품인 블랙 사파이어 포도가 더해져 단짠의 매력을 자랑합니다.
블랙 사파이어 넛츠 샐러드
식욕이 없을 때 먹으면 딱 좋은 레시피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각종 채소 위에 블랙 사파이어 포도를 얹고 닭 가슴살과 견과류, 치즈로 맛을 더한 샐러드인데요. 포도 특유의 새콤한 맛을 내는 유기산은 입맛을 좋게 해 식욕을 돋워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입맛 없는 날, 블랙 사파이어 포도 샐러드 한 접시면 식이섬유와 비타민, 단백질, 질 좋은 지방까지 골고루 섭취 가능합니다.
재료 : 블랙 사파이어 포도, 채소, 닭 가슴살, 견과류, 발사믹 드레싱, 치즈(선택)
채소는 어떤 종류를 사용하든 상관없습니다. 좋아하는 채소나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활용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싱싱한 채소를 사용하느냐입니다. 닭 가슴살은 지방 함량이 적고 단백질 함량은 높아 포만감을 더해줍니다. 여기에 고소하고 바삭한 맛을 더해줄 견과류를 뿌려준다면 샐러드를 좀 더 재밌게 먹을 수 있습니다.
블랙 사파이어 포도를 먹기 좋게 잘라주세요. 과육이 단단해 칼로 잘라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한 입 가득 먹고 싶다면 그대로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여러 가지 채소가 믹싱 되어 있는 간편한 샐러드용 채소를 사용했는데요. 케일이나, 로메인, 루콜라 등 한 종류의 채소만 사용하셔도 됩니다. 잘 담은 채소 위에 포도를 듬뿍 얹어주세요.
손으로 찢은 닭 가슴살과 견과류, 치즈를 차례로 얹어주세요. 그 위에 발사믹 드레싱을 뿌려주면 완성입니다. 정말 쉽죠? 발사믹 드레싱 대신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뿌리고 후추, 소금으로 간을 해주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샐러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왜 지금까지 샐러드에 포도를 넣을 생각을 못 했을까요? 흔히 들어가는 방울토마토 대신 포도를 넣어 간단하지만 색다른 맛을 자랑하는데요.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포도를 한 번 구워서 사용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포도의 향과 맛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밭에서 나는 우유'라고 불리는 포도의 뛰어난 영양성분과 맛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올여름, 색다른 포도를 즐기고 싶다면 기다랗고 아삭한 블랙 사파이어 포도를 드셔보시는 건 어떨까요? 터져 나오는 과즙과 기분 좋은 식감, 깊은 단맛에 반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