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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0일, 토요일>
제9길 죽산성지순례길 트레킹을 마치고 금산리 버스정류장옆 느티나무 아래서 10여 분 간의 휴식을 취하며 이른 점심을 간단히 마친후 오전 10시 50분경 영남길 왼주의 마지막 코스인 제10길 이천옛길 트레킹을 이어 갑니다~
충청도로 이어지는 경기도 영남길의 마지막 구간 이천옛길은 총 10개의 코스로 구성된 영남길의 마지막 구간으로 아름다운 우리네 농촌의 들길을 즐길 수 있는 길이며, 안성의 금산리를 출발하여 이천의 산양리로 들어서면 영남길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산양리를 지나 석산리의 부래미마을은 이천의 정보화마을로 조성된 후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지금은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는데, 부래미마을을 지나면 충북으로 이어지는 길의 종점에서 외세의 침입에 용감히 싸웠던 어재연 장군 생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 소요시간 : 3시간 30분 (9.9km)
☆ 코스 : 일죽면 금산리 ~ 율면 산양리 ~ 부래미마을(석산리) ~어재연 장군 생가
트레킹 시작 前 상하산전마을 아치 앞의 '망이산 아랫녘 가재가 뛰놀던 하산전마을' 안내판을 일독합니다~
조선 철종 때 본관이 함안(咸安)인 윤석정(尹錫禎)이 한양에서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하산전(下山田)마을에 이르러 바위 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한 노인이 '이 곳 큰 바위 터에 집을 짓고 살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 하자 그 자리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며, 윤석정은 이후 무과에 합격하여 병마절도사에 제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은 망이산 아래의 밭이라하여 윗마을을 상산전, 그 밑 마을을 하산전 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하산전 마을은 예로부터 청정지역으로 물이 깨끗하고 맑아 옻이 옮았을 때 들어가 몸을 씻으면 낳는다는 '옻샘'이 있었고 개울가에는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를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천옛길 안내판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긴후 영남길 마지막 코스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금산슈퍼와 보건진료소 삼거리를 지납니다~
하산전마을 도랑살리기 사업 안내도와 하산전마을 경로당을 지납니다~
상산전마을 방향으로 임로를 따라 오릅니다~
이 곳 상산전마을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향합니다~
하산전마을을 내려다보고, 백구가 있는 이 곳에서 좌측으로 가야하는데, 갑자기 개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그만 이정목을 지나쳐 계속 오르는 알바 후 이 곳으로 되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밭 옆의 좁은 길이라서 주민께 확인한 후 내려가다 "고부간의 갈등도 사라지는 율면의 밤골 이야기"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율면이라는 지명은 옛 명칭인 밤골에서 유래한 것으로 옛날 사이가 몹시 좋지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밤골에 살았는데 어는 날,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한 며느리가 무당을 찾아가 시어머니를 없앨 방도를 은근히 묻자, 무당은 며느리에게 매일 밤을 삶아 어머니 밥상에 백일동안 함께 올리면 어머니가 죽게 될 것이라 알려주어 며느리는 번거롭고 귀찮지만 꾹 참고 매일같이 무당이 일러준 대로 삶은 밤을 넣은 밥을 시어머니께 올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시어머니가 혈색도 좋아지고 오히려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시어머니도 매일 삶은 밤을 올리는 며느리의 정성에 감동하여 집집마다 며느리 자랑을 하고, 전보다 더욱 살갑게 며느리를 대하게 되어 고부간의 갈등은 사라지고 화목한 집안이 되었다고 합니다~
숲을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풀이 허리춤까지 자란 숲에는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 동안 이어지는 울창한 숲길을 비얌과 진드기가 무서워서 신속하게 전진합니다~
복숭아 등 과수가 많은 작은 농원을 지나다, 마음씨가 넉넉하신 주인장님이 타주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느라 우연히 진한 휴식을 하고 갑니다~
다리를 건너 숲속에는 쉼터 정자가 있습니다~
산양지로 통하는 철문 옆 좁은 길을 통과합니다~
산양지에는 작은 연꽃이 가득합니다~
'산양리 마을의 망이산성' 안내판을 지납니다~
개울을 따라 걷는 이곳에서 서남쪽의 산양리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 뒤편으로 보이는 커다란 마이산(馬耳山) 정상에는 망이산성(望夷山城)이라 불리는 산성의 또 다른 이름은 패성(敗城)이라고 하는데 임진왜란때 가등(加藤) 휘하의 한 부장이 망이산성에 진을 치고, 맞은 편 죽산성의 곽재우 장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곽재우 장군이 머무는 죽산성은 먹을 물이 풍족하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망이산성의 적장이 이를 눈치채고 장기전을 준비하려 하자 곽재우 장군은 꾀를 내어 병졸을 시켜 흰쌀로 군마를 씻기게 하였는데 멀리서 바라보던 적군에게는 마치 물로 말을 씻기는 듯 보였다고 하며, 이를 보고받은 적장은 죽산성에 물이 풍부하다고 판단하여 망이산성을 버리고 물러나버렸다고 하여 이때부터 죽산성을 승성(勝城), 망이산성을 패성(敗城)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양1리 건강증진센터와 버스정류장을 지납니다~
살기 좋은 충효의 고장 산양1리 아치와 가재ㆍ다슬기가 살아있는 청정마을 산양1리(용산동) 표석을 지나서 차도를 건넙니다~
차도를 따라가다 산양1리 작은 표석에서 우측으로 산양천변 농로를 따라 갑니다~
천변길에는 리본이나 이정목이 없어 좌측 논옆의 진행방향 표식을 반신반의하다가 저멀리 농가와 차도까지 갔다 되돌아 오는 알바를 하고, 다시 계속 직진합니다~
이곳 농로 사거리에서 우측 뉴삼보목장 방향의 오르막길로 향합니다~
뉴삼보목장을 지나서 우측으로 오릅니다~
이 곳에서도 농장을 두어번 들락거리는 알바후 좌측 농로를 따라 갑니다~
수확이 거의 마무리 된 듯한 담배밭을 지나고 산양2리마을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산양리 버스정류장을 거쳐 선우실업(주)에서 설치한 산양리마을 장승을 지납니다~
다시 차도를 따라 가다 버스정류장 옆 정자에서 우측으로 향합니다~
물댄동산 농촌교육장을 지나는데, 물댄동산은 500여종의 야생화와 150여종의 철쭉을 4,000여 평방미터의 시설에 각각의 야생화 특성에 맞추어 꾸며 놓은 정원과 야외 쉼터가 있는 농촌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장 입니다~
오래돼 보이는 산양교를 건너면 '돌다리가 있던 마을, 석교촌' 안내판이 있습니다~
석교촌과 산양리 부락 사이를 흐르는 석원천 지류에 오래전부터 돌다리 石橋가 하나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 다리가 우리나라 중앙부와 안성ㆍ용인을 거쳐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고 합니다~
석교촌에는 안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옛날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 밑에 유복자로 태어나서 몸집이 강대하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안씨 성의 장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젊어서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가 개울 건너 양아리에 사는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몰래 외출을 하는 것을 알게되었고, 어느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개울을 맨발로 건너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효성이 지극한 안 장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산위에서 큰 돌을 모아다가 다리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이후 이 다리를 안장사 다리라 하였으며, 장사가 태어난 마을을 석교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차도를 건너서 마을길에서 잠시 알바후 우측으로 돌아나와 다시 농로를 따라 가는데 한참을 가도 영남길 표식을 발견할 수가 없는바, 농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돌아 차도로 나와야 합니다~
차도를 건너 언덕길을 오르면 부래미 마을 방문 환영 현수막과 인증스탬프 박스가 보입니다~
인증 스탬핑과 인증샷을 마치고 '석산리 안불암이 전설' 안내판을 일독합니다~
석산2리를 안불암이라고 부르는데 불암(佛巖)의 안쪽이라는 뜻이며, 옛날 석산1리와 2리 사이에는 부처님상이 있는 산이 있어 돌산이라 불렀는데 이 돌산 주변에 유독 부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는 날 중이 이 마을을 찾아 시주할 것을 권했는데 마을부자들이 시주는 커녕 매몰차게 내치기만 했고, 이에 중은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더니, '저 돌산만 없으면 마을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될텐데 안타깝구나'라고 읊조리며 마을을 떠났는데 부자들은 더욱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부처님과 돌산을 없애버렸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떤 일인지 재산만 탐내던 마을 부자들은 하나 둘 망하고 결국 마을을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부래미마을 다목적 체험관과 깡통열차 승차장 입니다~
부래미마을은 마을공동체 체험 프로그램 마을로 부래미 포도농장, 복숭아농장, 배농장, 딸기농장, 사당가는길, 생태공원길, 짚풀공예체험장, 천연염색체험장, 인절미체험장 등 다양한 체험 시설이 있습니다~
부래미마을을 벗어나며 이쁜 전원주택을 뒤로하고 다시 농로를 따라 갑니다~
언덕을 내려와서 이천시 산성2리마을회관을 지납니다~
김시중 선생 공적비와 산골 버스정류장을 지납니다~
칠성사입구를 거쳐서 차도 건너편 충북 음성군 호산2리 버스정류장 앞을 지납니다~
이 곳이 충청북도임을 알리는 표석을 지나서 차도를 따라가면 이천 어재연 고택 이정표와 그 아래의 영남길 마지막 인증스탬프 박스가 보입니다~
영남길 마지막 인증스탬핑과 인증샷을 드디어 마치고 '돌원장이 서던 돌원마을' 안내판을 일독하고 갑니다~
돌원마을은 양달말 서남쪽에 위치한 돌이 많던 곳으로 조선시대 마을 앞으로 역로가 지나갔는데 역의 이름을 석원(石院)이라 했기 때문에 돌원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며, 동국문헌비고(1770년)에 따르면 이천도호부의 읍내장, 군량장, 판교장과 음죽현의 장해원장, 돌원장이 기록되어 있는데 돌원장이 서던 곳이 지금의 율면 산성리 입니다~
충장교를 건너서 어재연 고택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쌍충연(雙忠淵)이 있습니다~
쌍충연은 1871년 5월 미국 아시아함대의 강화도침략(신미양요)을 저지하고자 진무중군으로 부임하여 전투 중 부하장졸들과 함께 결사 항전 끝에 전사하신 충장공(忠壯公) 어재연(魚在淵)장군과 그 동생 어재순(魚在淳)의 호국의지와 충성심을 기리고자 조성하게 되었으며, 윗 연못은 충장연(忠壯淵), 아랫 연못은 이의연(吏議淵)이라 하고 함께 쌍충연이라 이름짓게 되었습니다~
'부정타는 느티나무'를 지납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어재연 장군의 후손 어윤기의 장례를 치를 때 일로 장사를 지내는 중에 이 느티나무(160년) 아래에 상여를 놓게 되었는데 상갓집에서 음식을 먹은 조문객과 장사에 참가한 마을사람들이 원인모를 병에 걸렸는바,
그 뒤로 이 느티나무 밑에 상여를 놓지않았으며 마을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이 느티나무에 먼저 술을 올려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천 어재연 고택에 도착했습니다~
어재연 장군 생가 (중요민속자료 제127호)는 병인양요 때 선봉장으로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하였으며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미국 로저스 제독이 지휘하는 군함과 광성진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한 어재연(1823년∼1871년)장군의 생가입니다~
1800년대 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앞에 넓은 마당을 두고 사랑채와 안채·광채가 모여 튼 ‘ㅁ’자형의 배치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안채는 ‘ㄱ’자형 구조로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배치되었고 부엌광이나 골방은 따로 두지 않았습니다~
대문의 왼쪽에 위치하는 ‘一’자형의 사랑채는 부엌·대청·사랑방으로 되어있으며 대청은 안마당쪽을 막아놓고 바깥마당과 동쪽벽을 터놓았는데 전체적으로 여유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원형의 변형 없이 비교적 잘 보존된 가옥입니다~
'어재연 장군 이야기' 안내판도 일독합니다~
<어재연 장군과 말무덤 이야기>
산성1리에서 태어난 어재연 장군은 신미양요 때 외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는데, 장군에게는 집 앞의 돌을 밟고 올라타던 아까는 말이 있었고, 장군의 사랑을 받으며 늘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강화도에서 장군이 사망하자 이 말은 장군의 안장을 얹은채로 산성리 장군의 집까지 혼자서 찾아 와서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댓돌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는뎌 마을 사람들은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일지언정 주인을 향한 마음은 사람보다 더 기특하고 애처로워서 말무덤을 만들어 곱게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어재연 장군과 사장말랭이 이야기>
어재연 장군이 태어나서 자란 율면 산성1리는 팔성산이 삼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로 장군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유씨 부인은 혼자서 힘겹게 집안 살림을 꾸려가야 했는데 증조부와 조부가 모두 무과에 급제한 무인 집안에서 태어난 장군은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우며 틈틈이 무술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도와 밭일을 나가면 산자락에 있는 밭을 향해 활을 쏘고 다시 건너편으로 넘어가면 화살을 뽑아 반대편 산자락으로 다시 날리며 연습을 했는데 그가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곳은 지금도 '사장말랭이' 혹은 '사장골'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어재연 고택을 두루 돌아보고 되돌아 나옵니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대파밭에는 무더위에도 불구 여러 농군들이 잡초 제거 작업중입니다~
산성1리경로당을 지나면 쌍충제가 있습니다~
어재연 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에도 잠시 들렸는데 한창 대수선이 진행중 입니다~
다시 산성리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나오며 금산리 시점을 출발 후 약 4시간 16분이 소요된 오후 3시 8분 경 영남길 제10길 이천옛길 트레킹을 마치며 영남길 완주의 여정을 행복하게 마무리 합니다~
귀가를 위해 일죽터미널행 이천 및 경기택시를 수 회 예약을 시도했지만 휴일이라 배차가 전혀 안된다고 하고, 버스도 운행이 적어 잠시 고민하다 일죽터미널까지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합니다~
수십 회 시도 끝에 다행히 음성군 삼성면까지 태워다 주신다는 마음씨 푸근한 봉고트럭 차주님을 만나서 삼성터미널에 도착, 시외버스로 일죽터미널을 거쳐서 죽산터미널에서 오후 4시 20분 발 경일여객 1329번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남부터미널로 향합니다~
이천옛길에서 만난 이쁜 꽃들 입니다~
첫댓글 더운데 영남길 완주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울러 완주를 축하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길 이어 가세요.
수고 하셨습니다.
가곡님 ! 항상 격려해주신 덕분에 영남길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완주를 축하해주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지난 금요일 처서도 지나며 날씨도 많이 선선해져서 걷기에 좋은 계절이 오는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발걸음 이어 가시길 기원드립니다~
santajeon 님. 축하드립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릴때 영남길의 마지막을
완주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읍니다.
그것도 더위와의 싸움에서 9-10길 두구간을
끝내신 후의 기쁨을 오래도록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최윤영(연산동)님 !
완주 축하해 주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
무더위가 가신 후 길나섬 하라는 말씀을 무릅쓰고 폭염속에 걷느라 힘들었지만 나름 행복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행복한 발걸음 이어 가시길 기원드립니다 ~
santajeon님,
이보다 더 상세할 수 있는 명품후기가 없습니다. 경기옛길 세 갈래길 272.5km 완주 마스터 등극을 축하합니다.
개강 첫날 3시수 강의 끝내고 야간일터로 가는 남부지원/지청 앞에서 신호대기 중에 간단히 댓글 답니다. 늘~ 고맙습니다.
앵베실 선배님! 완주 축하해 주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
항상 격려와 응원을 해주신 덕분에 무사히 경기옛길 3개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