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김주대
호미처럼 굽은 허리에 물통을 걸로 할머니가 산동네 꼭대기까지 오셨다. 마을회관 앞 화분 속 목말랐던 고추 모종이 “할머니 오세요”하고 그림자 손을 공손히 내민다.
-『시인의 붓 – 김주대의 문인화첩』, 한계레엔, 2018.
감상 – 김주대 시인의 그림을 두고 문인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문인화(文人畵)는 “전문적인 직업 화가가 아닌 시인, 학자 등의 사대부 계층 사람들이 취미로 그린 그림”으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니 복잡한 현대에는 잘 맞지 않는 개념이긴 하다. 전문적인 직업 여부도 애매할 뿐만 아니라 신분사회가 아니니 사대부 계층도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취미로 그린다는 것도 그림에 전력하지 않고 상업적 목적도 갖지 않는다는 의미로 여겨지는 면이 있다. 그림 그리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그것으로 생활의 자구책을 삼는 이에겐 취미 운운이 불편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인생관이 투영되어 있고, 그림과 글이 어울리면서 생기는 문향(文香)이 있다는 점에서 김주대 시인의 그림을 문인화의 창조적 계승으로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별반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 창조적 계승의 두드러진 일면은 이전의 풍속 화가처럼 생활의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그늘지고 소외된 현장을 유난히 잘 포착해낸 점이라 하겠다. 또한 이를 형상화하는 과정에 그 그늘지고 소외된 것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에도 공감이 크게 가는 부분이다.
시 「오월」이 놓인 그림 작품(2016)은 산동네 꼭대기 풍경이다. 멀리 매끈하고 높은 아파트와 비교되는 누옥이 시멘트 길 양쪽으로 나란히 있다. 낡은 창문은 그대로 두어도 물이 새는 지붕은 그럴 수 없어서 방수포를 두르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자동차 타이어를 여러 개 얹은 것이 퍽 궁색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골목 끝자락은 궁색해도 궁색하지 않고, 초라해도 초라하지 않은 뜻과 인정이 있다.
고추 모종 뒤에 있을 독자의 시선은 고추 모종뿐만 아니라 고추 모종이 반기는 할머니에게도 가 닿는다. 독자는 등 굽은 할머니를 반기는 고추 모종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물통 들고 고추 모종과 그 너머를 보는 할머니 시선을 받으면서 착한 손주처럼 순해지는 마음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등 굽은 할머니는 “너도 봄이 되면 엄마 맘이 좋겠다”며 「봄 전화」를 넣던 시인의 어머니를 닮기도 했지만 “피가 통하지 않는 의자”(「난전 할머니」)가 된 우리 모두의 할머니 모습을 떠올려 보게도 한다. 그녀의 빨간색 상의에 마음이 몹시 빼앗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테다. (이동훈)
첫댓글 간결한지만 많이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늘 평화로우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