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한번 보지 못한 ‘스승의 스승’의 산조를 50년 동안 갈고닦았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1951년 부산 피란 시절 우연히 가야금을 손에 잡았다. 1952년에 김윤덕을 만나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그런데 김윤덕은 1946년 서울 종로3가 단성사 부근 조양여관에서 정남희에게서 산조를 배웠다.
황병기의 가야금 산조가 스승 김윤덕으로부터 나왔고, 김윤덕의 가야금 산조는 그의 스승 정남희로부터 나온 것이다.
황병기는 당시 김윤덕한테 들은 정남희의 산조를 이렇게 전한다.
“나(김윤덕)는 원래 가야금, 거문고, 양금으로 풍류만 했었는데, 정 선생 산조가 제일 좋아서 배웠어. 이 산조는 꽃처럼 화사하지 않고 말하자면 잎사귀보다 가지, 가지보다 줄기, 줄기보다 뿌리가 실한 산조야.”
김윤덕은 황병기에게
“흔히 귀에 쌈박한 가락을 좋아하지만 그런 데 현혹되지 말고 정남희 산조의 음악적 깊이와 격조를 이해하고 열심히 하라”
고 당부했다.
산조는 원래 무속음악에서 나온 시나위에 기원을 둔 것으로 신명 넘치는 즉흥연주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황병기의 가야금 산조는 즉흥성을 지양하고 구성이 치밀하다는 평가다.
스승 김윤덕의 당부대로 황병기는 지난 50년 동안 스승의 스승 정남희의 산조에 몰두해왔다. 스승의 당부를 따랐기보다는 스승의 스승이 만든 산조가 좋아서 저절로 그리됐다.
황병기는 정남희를 직접 만날 수가 없었다.
정남희가 1950년 한국전쟁 시기 북으로 갔기 때문이다.
황병기는 1934년과 1939년 일본 컬럼비아 축음기 회사에서 나온 정남희의 음반을 들었다. 그러다 1990년에는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해 북한에서 나온 정남희의 테이프를 구해 왔다.
스승 김윤덕에게서 배운 스승의 스승의 산조 가락에, 음반과 테이프를 통한 연구한 성과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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