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나) 완전 죽었어'(グエ-死んだンゴ, 영어로는 'Gwegh, I’m deadngo')
22년의 짧은 삶을 마감한 일본 남성이 세상을 떠난 지 이틀 뒤, 생전에 웃음을 잃지 않는 투병기를 올리던 엑스(X)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화제의 주인공은 나카야마 가나루로 희귀한 공격성 연조직 종양과 2년을 투병하다 지난해 10월 12일 눈을 감았다.
@nkym7856 계정에 위 글이 올라온 것은 이틀 뒤였다. 전날 친구가 부고를 전하며 응원해준 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던 터라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나카야마가 죽음을 예견하고 게시글 예약을 걸어놓았던 것이 업로드됐던 것이었다. 고인이 남긴 글은 일본 소셜 미디어에서는 어려움에 닥치거나 난감한 상황에 몰릴 때 내뱉는 자학성 밈(meme) 멘트였다.
본인의 죽음을 알고도 마지막까지 웃어넘기려 했던 그에게 누리꾼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물론이다. '세상을 떠난 뒤에 올라온 괴짜 게시물'이라며 반색했다. 조회 수 3억 6000만회를 넘겼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지난해 12월 28일 전했다. 누리꾼 중에는 '성불하시라'고 농을 섞어 애도하는 이도 있었다. 이 게시물은 100만 개의 좋아요!와 8만 6000건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많은 이들이 젊은이가 죽음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당신은 일상적인 병과의 싸움을 극복했고, 생을 마감한 후 마침내 떠났다. 당신의 삶의 방식을 깊이 존중한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죽음을 마주하는 멋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사람은 "1억 개를 넘은 좋아요!는 인터넷의 바다에 사는 이들에게 그의 장례식을 마치 국장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 게시물은 나카야마의 부친에게도 위안이 됐다. 부친은 장례를 마친 뒤 아들의 급우가 뜨거운 관심을 모은 게시물에 대해 묻자 비로소 아들의 계정을 확인했다. 부친이 22년 동안 알아왔던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북부 홋카이도현 출신의 농민인 부친은 아들이 항상 조용하고 혼자 방에서 공부하고 노는 것을 즐겼다고 했다. 어릴 적 다쳤을 때도 거의 울거나 불평하지 않아 부친은 아들이 너무 내성적이거나 아들이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걱정했다.
나카야마는 2023년 홋카이도 대학에 농학 전공으로 입학했다. 아들은 부친에게 최고 대학이라서 다녔닥 말했지만, 부친은 장례식에서 아들이 앞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농업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입학 후부터 '등이 가끔 아프다'라거나 등이 부어오르는 등의 증상이 있긴 했는데, 통증이 크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름방학에 혹이 커지는 것을 느껴 정밀 검사를 받고, 2023년 10월 유상피육종 진단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연간 20명 정도 발병하는 희귀암이었는데, 종양이 갈비뼈에도 붙어 있어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고 한다. 등 근육 일부와 종양이 붙어있던 갈비뼈까지 제거해 걷기 어려울 정도로 큰 수술이었다. 그러나 본인은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아르바이트에 복귀하고, 대학 수업에도 나가면서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부모가 차로 태워다주겠다고 하면 되레 혼자 할 수 있는데 왜 그러냐며 화를 냈다고 했다.
그렇게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며 병상 일지를 계속해 블로그와 X에 올렸다. '(종양이) 엄청나게 커!'(デカスギイ!)란 제목으로 진단받기까지의 병원 일상을 정리해 올렸다. 그 와중에도 '난생 처음 CT를 찍었다. 그런데 금방 끝나 재미 없었다'고 썰렁한 농담을 했다.
수술에 이어 항암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생각했지만, 1년 뒤 재발 진단을 받았다. 심지어 일 년 뒤의 생존율이 50%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덤덤하게 블로그에 '재발했대요. 운이 없네요. 한탄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 소재라도 재밌게 승화시켜 보려고 합니다'라고 올렸다. 그 뒤 '너무 큰 것, 다시 말해 암에 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암 투병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투병기에는 본인의 삶을 긍정하고 다른 사람의 일상에 힘을 실어주는 얘기들을 올렸다. 예를 들어 저체중인데도 거식증에 걸려 계속 샐러드 등으로 연명한다는 청소년의 게시글에 "이런 거 그만 먹고 맛있는 거 먹자"고 댓글을 다는 식이었다. 또 병세가 악화할 때도 "내가 당황해봤자 암이 낫는 것도 아니고 다음 생을 기대나 해야겠다"라거나 "생각보다 게임을 할 때 사람이 체력을 더 쓰는 거였네" 등 자조적인 농담을 올렸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9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갈 때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지만 날마다 즐겁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휴가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썼다.
그리고 한 달가량 지난 10월 10일 '아마 조금 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라는 게시글을 업로드하고, 그로부터 이틀 뒤 세상을 등졌다.
얼마 뒤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나카야마를 위한 조의금이라며 기부 행렬이 잇따랐다. 그가 입원했던 홋카이도 암센터에는 11월 한 달 동안 1248건의 기부가 접수됐다. 금액은 521만8000엔(4804만원)이었다. 심지어 나카야마가 사망하기 전까지 그 해 기부는 0건이었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무척 당황했다.
같은 기간 도쿄에 본부를 둔 재단법인 일본암연구협회에 지난달 4일 기준 2400건의 기부가 이어졌고, 암에 대한 기초 연구를 지원하는 오스미 기초과학 창성 재단에도 2000건의 기부가 접수됐다.
일본은 기부 열기가 좀처럼 없는 나라라 할 수 있다. 영국 자선단체가 101개 국가를 조사했는데 일본은 연간 소득 가운데 기부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최하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나카야마가 세상을 떠난 뒤에라도 조금은 바꾼 것이다.